[전문번역] 아무것도 아니었으면서 모든 것이 되는 우리가 새롭고,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 2020년 10호 뉴스레터
번역: 안소연, 지민경, 신미숙(ISC, 번역팀)
1917년 3월 8일 (율리우스력 기준 2월 23일) 페트로그라드 방직 공장의 여성 노동자 100명은 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다른 공장을 돌아다니며 동료 노동자의 파업 동참을 호소했다. 얼마 후, 방직 공장 여성 노동자를 필두로 약 20만 명의 노동자가 거리를 행진했다. 시위대는 ‘전쟁 반대,’ ‘빵을 주지 않으면, 일하지 않겠다’고 외쳤다. 이 파업을 시발점으로 결국에는 차르 전제 군주제를 타파하고, 러시아 혁명을 촉발시켰던 무수히 많은 시위가 일어났다.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기 7년 전, 독일의 맑스주의자 클라라 체트킨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제2차 여성 사회주의자 국제회의에서 매년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할 것을 제안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유럽의 군주들이 명목상의 보통 선거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1848년 ‘3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선정했다. 1911년부터 선거권 운동의 일환으로, 그 후(특히 1914년 이후)에는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3월 8일 집회와 시위를 벌였던 주역이 바로 여성 사회주의자였다. 이들은 끔찍하고, 차르 제국 역사상 가장 가혹할 수도 있는 압제를 받았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1914년 3월 8일 시위를 앞두고 라보트니차 (여성 노동자, 러시아 볼셰비키에서 여성을 위해 만든 신문) 편집실의 전원이 체포되었을 때, 레닌의 누나인 안나 엘리자로바(결혼 전 이름: 안나 율리아노바)는 동료들을 긴급히 소집하여 신문을 발행한 후, 당일 1만 2천 부를 배포했다. 이들 여성 사회주의자들에게 ‘세계 여성의 날’은 전쟁의 잔혹함과 가부장제의 치욕에 맞선 강력한 항의였다. 볼셰비키의 활동가 예카테리나 파블로브나 타라소바는 1917년에 발생했던 여러 사건 중에서도 한 여성 노동자가 “아무것도 아니었으면서 모든 것이 되는 우리가 새롭고,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회상한다.
1920년 볼셰비키 지도자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의 여성은 권리와 투표권을 가졌지만, “이들의 삶 전체가 완전히 달라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공산주의를 위한 투쟁의 과정에 있을 뿐, 어둡고 억압적이었던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세상 속에 살고 있다.” 고 기록했다. 이들의 앞에 놓여 있던 것은 그러한 세상을 바꾸기 위한 투쟁이었다. 이듬해에 제2차 여성 공산주의자 국제회의에서 3월 8일이 세계 여성의 날로 확정되었고, 국제 여성 민주연맹의 활동 덕분에 1977년 국제연합(UN)에서 정식으로 채택되었다.
이 날의 기원은 라보트니차 편집부 소속 볼셰비키 당원이자 훗날 명화 『전함 포템킨』의 작가 니나 아가자노바와 같은 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니나 아가자노바는 1917년 3월 8일 전차 앞으로 뛰어들어 운전수의 키를 빼앗은 후 페트로그라드시가 파업 중임을 선언했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사상을 확장하기 위해, 트라이컨티넨탈: 사회 연구소 연구팀은 투쟁하는 여성의 역사에 대한 연구 시리즈를 발간할 계획이다. 3월 8일을 기념하기 위해 발간된 소책자는 이 시리즈를 위한 발판으로써, 우리 시대의 여성이 처한 환경, 긴축과 전쟁 체제에 대항하여 여성이 이끌었던 투쟁을 분석해 보았다. 라틴아메리카, 인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위태로운 사회적 상황뿐 아니라, 이러한 악조건의 대응으로 발전해 온 투쟁의 조직적 형태에 대해서도 심층 분석을 실시하였다. 우리 연구팀이 밝혔듯이, “우리는 남반구의 진보적이고, 페미니스트적이며 대중적인 저항 과정을 조명하고, 20세기 전반에 걸친 투쟁에서 여성이 남긴 유산에 영감을 받아 우리 시대의 투쟁에서 나타나는 주요 특징을 밝히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 연구 시리즈를 정독하고, 당신이 속한 운동 단체 및 네트워크와 공유하기를 바란다. 이 시리즈의 후속 글들은 향후 수개월에 걸쳐 게재될 예정이다.
베르타 카세레스의 수상 소감, 골드만 환경상, 2015
4년 전인 2016년 3월 2일, 온두라스 민중주민회의(COPINH)의 지도자인 베르타 카세레스가 청부 암살자들에 의해 암살되었다. 카세레스와 온두라스 민중주민회의는 온두라스 서부에 위치한 괄까르께 강 유역의 댐 건설 프로젝트에 반대해 싸웠다. 댐 건설 회사였던 데싸를로스 에너지 (데사, DESA)는 온두라스가 가진 모든 권력을 이용하여 그녀와 싸웠다. 온두라스 경찰과 군이 건설 부지를 지켰고, 카세레스를 암살한 주범이 바로 퇴역한 온두라스 군인들이었다. 카세레스의 암살자들에 대한 재판에 제출된 증거를 통해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가 집권하는 현 정권을 포함하여 온드라스 정부 전체가 사건에 깊숙이 공모한 것이 드러났다. 2009년 미국 정부는 온두라스 엘리트 계급과 함께 좌파 성향의 마누엘 셀라야 정권을 전복시켰고, 그 자리에 엘리트 계급과 미국의 입맛에 맞는 에르난데스와 같은 우파 성향의 국민당 인물을 앉혔다. 베르타 카세레스는 암살자들뿐 아니라, 죄를 짓고도 처벌받지 않는 정부를 탄생시킨 쿠데타의 잔여세력에 의해 암살당했다.
최근에 베르타 카세레스의 딸 베르타 수니가 카세레스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지난 4년은 개인적으로도, 현재 그녀가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는 온두라스 민중주민회의에도 어려운 시기였다고 말했다. 베르타 카세레스의 암살자들은 징역형을 받고 수감되었지만, 암살을 설계한 데사의 소유주 및 정부 기관 관계자들은 조사를 받지도, 기소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주목하는 것은 이 부분이 아니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전통의 책임감을 어깨에 진 수니가 카세레스는 자원을 채취하고 온두라스 민중의 권리를 훼손하는 다국적 기업들을 환영하는 정부의 태도에 초점을 맞춘다. 그녀는 온두라스의 “재건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베르타 카세레스의 암살이 자행된 것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판자촌 거주자 운동의 지도자 툴리 은들로부의 자택에 무장 암살자들이 침입한 사건이 발생한 지 2년이 지나서였다. 콰은뎅게지의 정치 지도자들의 이해는 주택 개발에 있었다. 은들로부와 판자촌 거주자 운동은 일하는 여성들로 구성된 정치 조직을 만들어 저들의 경제적, 정치적 파워에 정면으로 맞서는 대담함을 보였다. 은들로부는 바로 이러한 이유로 암살당했다. 이튿날, 판자촌 거주자 운동은 이 암살 사건에 대하여 강력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는 “우리의 운동은 충격에 빠졌지만, 놀라지는 않았다”며, “우리 중 일부는 투쟁 속에서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받아들였다... (중략) 우리는 전쟁 중이다. 토지와 존엄함을 위한 투쟁은 계속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베르타 카세레스와 은들로부 외에도 투쟁하는 여성 리스트에 포함해야 할 이름이 너무도 많다.
온두라스의 에르난데스 대통령은 부정선거 의혹으로 전국적인 대중 투쟁이 벌어졌던 이후, 2018년에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당시 에르난데스 대통령은 최루탄과 실탄을 사용해 시위를 진압했다. 미주기구(OAS)의 사무실에서는 누구도 그것에 대해 놀라지 않았다. 마약 밀수입 관련 조사가 이루어졌음에도 미국은 에르난데스를 선호했다. 미주기구 같은 기구들이 좌파 성향의 정부를 약화하려는 무기로 변신하면서, 온두라스의 부정선거 문제는 심각하게 정치적인 것이 되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두 학자가 발표한 새로운 연구는 2019년 볼리비아 선거에서 선거 부정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주기구의 ‘예비보고서’는 볼리비아 대선을 부정 선거라고 주장했고, 미국 정부와 볼리비아의 권력 엘리트 집단은 이 보고서를 이용해 에보 모랄레스 아이마 정부를 타도했다. 모랄레스는 아르헨티나로 망명했고, 극우 세력이 볼리비아 실권을 장악했으며, 워싱턴은 미국 국제개발처(USAID) 팀을 보내 선거를 감독했다(볼리비아 선거에 대한 내용은 적색경보 No.6 참고). 2020년 5월 3일로 예정된 선거의 조건은 끔찍하다. 모랄레스의 사회주의운동당(MAS)에 대한 폭력이 국가 기관에까지 스며들어 제도화되었다. 게다가 미국 정부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 온두라스의 선거를 인가한 살바도르 로메로가 볼리비아 선거를 관리하고 있다.
무엇이 델리에서 우익 폭력을 촉발했는가?
2020년 2월 23일, 인도인민당(BJP)의 선출직 관리들이 부추긴 극우파 무리가 델리 북동부의 무슬림 주민을 상대로 난동을 부렸다. 지금까지 거의 50명이 숨지고 수천 명이 부상당하고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다. 이 무리는 자신들의 목적이 살인과 구타, 그리고 방화를 통해 무슬림을 위협하는 것이라는 폭력적인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 정부 휘하의 델리 경찰은 BJP의 차별적 시민권 법으로 촉발된 이 끔찍한 폭력사태를 묵인, 방조했다.
민중을 위해 20만 호의 주택을 짓는 케랄라 주의 LIFE 미션
한편 좌파민주전선이 집권하고 있는 케랄라 주에서는 주정부가 라이프 미션(LIFE Mission)을 통해 노숙자들을 위한 20만 호의 집을 지었다. 케랄라 주 수상이자 공산당 지도자인 피나라이 비자얀은 주 정부가 종교, 시민권 보유 여부 그리고 카스트 신분의 종류를 불문하고 사람들에게 집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또한 '자신에게 자기 집이라고 부를만한 곳이 있는지'만을 물었다고 밝혔다.
역사의 한편에서는 집을 불태우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집을 짓는다.
투쟁하는 여성, 저항의 씨앗을 뿌리다
3월 5일부터 9일까지 브라질리아에서 열리는 제1회 무토지 노동자 운동 내 무토지 여성 전국회의)에 3,000여 명의 활동가가 참석한다. 자신들이 투쟁하는 여성이며, '저항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참석할 것이다. 회의 마지막 날, 멕시코의 여성들은 파업에 들어갈 것이다. 이 파업에서 사용되는 해시태그는 #UnDiaSinNosotras(운 디아 신 노소트라스, 우리가 없는 날)이다.
볼셰비키 당원 니나 아가자노바와 현재 자신들의 전차를 세우고 거리를 행진하려고 하는 멕시코 여성들은 직선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