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이 우리의 집을 집어삼키고 있다: 해외사례로부터 배우는 교훈
글: 송대한
번역: 황정은
감수: 심태은
토머스 모어는 16세기에 발표한 "유토피아"에 영국에서는 양이 사람, 들판, 집, 도시를 잡아먹는다고 썼다. 양모의 수익이 훨씬 높았기 때문에 지주가 땅을 일구며 살아가던 소농과 공동체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울타리를 쳐 양을 키우는 목장을 만든 인클로저 운동을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는 주택 문제가 초기 산업화 시절의 양처럼 우리의 집을 집어삼키고 있다. 즉, 부동산 시장이 집의 개념을 이윤을 위해 판매하며 투기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꿔버리면서 세입자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이사하거나 주택 개발에 떠밀려 쫓겨나고, 수많은 사람이 양질의 집에서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겼다.
이런 일은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치솟는 집값과 전월세를 잡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경제정의시민실천연합(경실련)에 따르면, 집값이 내려가기는커녕 이전 정부 대비 2019년에는 52%, 2021년에는 81%나 올랐다. 문재인 정권이 그간 쏟아낸 25개가 넘는 부동산 대책은 실효성도 없고 모순적이었다.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한 지역을 겨냥한 핀셋 규제는 풍선효과를 불러와 다른 지역의 집값을 뛰게 했다. 어디 그뿐인가. 적정가의 주택을 제공하겠다는 공약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시세로 주택을 판매하면서 자가당착에 빠졌다. 실효성 없고 방향성도 없는 정부 정책에 진보와 보수 모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수천 채의 공공임대주택을 시세보다 저렴하게 장기 임대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기본 주택' 정책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재명표 '기본 주택' 정책은 주택이 주거용이라는 메시지와 방향성이 분명하다. 반대로 문재인 정부와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의 주택 정책 실패는 집(사는 곳)으로서의 주택과 수익을 창출하는 부동산으로서의 주택을 구분하지 못하는 무능에서 기인한다.
현재의 주택 문제를 더욱 잘 이해하고 탐구할 수 있는 간명한 개념을 제시하는 책이 바로 <주택을 변호하라 (In Defense of Housing)>이다.
집값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정치
자본주의 경제에서 상품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으로 결정되는 것이고, 정치적인 결정으로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라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통념을 뒤엎는 주장을 제시한다.
주택 판매 수익에 부과하는 세금을 줄이거나 부동산에 부과하는 세금이 줄어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보자. 두 정책 모두 이윤 추구를 위한 주택 매매를 부채질해 주택 수요를 상승시키고, 그 결과 주택 가격이 오를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6월 18일에 1가구 1주택자에게만 부동산세를 큰 폭으로 감면하는 정책을 당론으로 정한 것 역시 같은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1주택자의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준액을 실거래가 9억 원이 아닌 12억 원으로 올리면 주택 거래에 부과되는 세금을 감면해주는 효과가 생기기 때문에 부동산 거래로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게 된다. 또한, 집값 상위 2%에만 종합부동산세가 부과되기 때문에 공시지가 기준 9억 원과 11억 원 사이인 주택에 대해서도 세금이 면제된다. 이처럼 종합부동산세를 완화하면 89,000가구(2021년 9억 원의 주택을 소유한 1가구 1주택자 183,000명의 48.6%)가 세금을 면제받는다. 한국의 재산세가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낮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주택 소유자의 불만을 잠재울 목적으로 이러한 정치적 선택을 했고, 그 과정에서 집값과 부동산 시장에서 수익 증가를 규제하는 부동산 세금 정책을 약화시켰다. 이 사례는 주택 정책이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경제 문제라는 <주택을 변호하라>의 핵심 주장을 잘 보여준다.
반대로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거나 신축 주택에 가격 상한선을 두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임대용/매매용 주택을 적정가에 직접 제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집값을 끌어내리는 효과를 낼 수 있다. 2028년까지 교통 요지와 주요 지역에 16,000채의 공공임대주택을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30년 이상 장기 임대할 수 있도록 하는 이재명 지사의 기본 주택 정책이야말로 이러한 방향성을 제대로 보여준다. 과거 노태우 정부에서도 주택 200만 채를 건설하고 시세의 절반 가격에 판매해 즉각적으로 집값을 잡았던 사례도 있다.
이렇게 시각을 달리하면 정치적인 결정에 따라 생산된 정책이 수요와 공급, 결국은 집값에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이 드러난다. 그렇게 보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집값을 잡는다며 보여주었던 무능과 무성의한 시도는 정치적 의지박약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고위급 인사들이 각종 부동산 스캔들에 연루되었다는 소식으로 저녁 뉴스가 도배되는 것을 보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운동본부의 김헌동 본부장과 안진이 더불어삶 대표의 책 <부동산 대폭로>를 보면 얼마나 많은 주택 정책 담당 관료들이 친재벌 정책을 추진할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적정가의 집을 제공할 수 있는 정책에 반대하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결국, 주택 시장의 고삐를 죄는 것은 정치적 의지가 수반된 정치적 결정뿐이다.
상품화: 거주용 vs. 투기용 주택의 가늠 잣대
<주택을 변호하라>는 주택 정책이 투기 세력에 도움이 되는지, 실거주 목적의 주택 수요자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로서 상품화를 핵심 개념으로 다룬다. 시장 경제에서 주택은 우리가 거주하는 집과 투기나 임대로 수익을 올리는 부동산으로서의 두 가치를 갖는다. 주택의 상품화는 거주 목적보다 수익 창출 목적이 지배적일 때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주택이 상품화되면 그 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상품화라는 개념이 주택 정책을 평가하는 리트머스지가 될 수 있다. 주택의 상품화를 추구하는 정책은 주택의 수익 창출과 거래를 더욱 쉽게 만들 것이고, 주택의 탈상품화를 추구하는 정책은 안정적이고 양질의 거주 공간으로서의 집으로 주택이 기능하도록 할 것이다. 이재명 지사의 기본 주택이나 분양가 상한제, 경실련 등의 단체가 주장하는 시세 이하의 공공임대주택 등이 모두 주택의 탈상품화 정책이다.
이 리트머스지를 공급 확대와 무주택자 대출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한 더불어민주당의 주택 정책에 적용해보자. 일단 무주택자에게 주택 소유의 길이 열리는 것은 맞다. 그러나 동시에 (2008년 금융 위기를 촉발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막대한 주택담보대출에 시달리는 '하우스 푸어'를 양산할 가능성도 생긴다. '하우스 푸어'가 조달한 자금은 집을 지어 높은 분양가를 설정하고 대출을 끼고서라도 이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에게 판매하는 건설사/개발사의 수중으로 들어간다. 무주택자도 집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책의 목적이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은 주택의 상품화 측면을 규제(탈상품화)하는 것이 아니라 주택 소유자의 부채를 증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정책은 표면적으로 무주택자가 집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계부채를 늘려 투기 세력과 부동산 개발업자의 배만 불린다.
그렇다면 탈상품화에 기반한 정책 대안은 어떤 모습일까.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문재인 정부가 집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분양가 상한제에 기반한 공공주택을 판매하거나 시세 이하로 공공임대주택을 장기 임대하면 된다고 설명한다.
주택 정책 수립에 전문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방향성을 확실히 하지 않는 가운데 정부 전문가가 제대로 된 정책을 내올 리 만무하다. 게다가 친기업, 반서민 정책을 생산한 것으로 보상(예: 고위 공직자 퇴임 후 대기업 취업 등)을 받는 공직자가 많은 상황에서 명확한 비전은 더욱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가 주거 접근성과 안정성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그저 맹목적으로 공급을 늘릴 것이 아니라 임대료 통제, 세입자 안정화, 공공주택, 가격 상한제 등의 탈상품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김성달 경실련 국장은 공기업부터 활용하면 된다고 말한다. 서울 시내 정부 소유 공공부지를 민간 개발사에 팔아넘겨 막대한 이익을 거두게 내버려 두지 말고, 그 자리에 고층 아파트를 지어 시세 이하로 판매하거나, 공공주택을 지어 30년 장기 임대를 하면 된다는 것이다. 용산 정비창 부지와 삼성동 서울의료원 부지처럼 서울 시내뿐만 아니라 근교에도 이런 공공부지가 많이 있다.
불안을 유발하는 시장
서울도시주택공사(SH) 사장 후보에 내정된 김현아 전 국회의원 같은 시장주의자는 시장의 미덕을 찬양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시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막고, 주택을 정치 문제로 만들며 주택 시장에 윤리 및 도덕적 가치를 주입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시장이 삶을 강제하는 상황이 어떠한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전월세 계약 기간 2년이 도래해(그나마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한 번 행사할 수 있어 4년으로 늘어남) 집주인이 전월세 금액을 올리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한다거나 2년에 한 번씩 이사한다는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대출을 끼지 않고 몇 십억짜리 집을 구매해 사는 소수를 제외하고 말이다). 기껏 열심히 가게를 차려 공간을 꾸미고 단골을 확보했더니 월세를 더 내든가 가게를 옮기거나 접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한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주거와 같이 삶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스스로 통제하는 능력을 시장에 빼앗기면 불안감과 무력감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주택을 변호하라>는 이렇게 삶의 필수적인 요소를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을 '소외'라고 부른다. (투기 세력과 부동산 개발사에 유리한) 정책과 규제를 통해 주택이 상품화될수록 주거 통제권은 실제 거주하는 사람의 손을 떠나 건물주와 투기 세력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간다. 결국 집뿐만 아니라 집이 속한 지역 공동체에서도 거주자가 소외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2009년 용산 참사처럼 서울시 재개발 투쟁의 오랜 역사에서 명백하게 나타난다.
거주자가 집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은 시장의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소외(및 그로 인한 불안감)는 주택 시장의 필수 요소이다.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거주자가 주택에서 소외되어야 쉽게 판매와 임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 백의 낯선 사람에게 지불하는 임대료
<주택을 변호하라>는 주택이 점점 금융화되면서 한 명의 집주인이 아니라 주택을 소유 및 관리하는 회사의 수백~수천 명의 주주에게 임대료를 지불하게 되는 상황에 주목한다. 리츠(REITs, 부동산 투자신탁)는 100명 이상의 개인(상장 시 주주)이 소유권을 나누어 갖는 자산관리 회사로, 이미 전 세계 부동산 시장의 대세이며 한국에서도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리츠가 왜 중요할까? 우리가 아무리 집주인을 싫어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 집주인은 우리가 인간 대 인간으로 관계를 맺고 이런저런 부탁을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리츠의 경우 주택 소유권의 익명성과 단기성 때문에 단기 수익을 추구하며 기계적인 무자비함이 더 커질 수 있다. 개별 건물주보다는 리츠 회사의 주식을 일시적으로 보유하는 주주가 저소득층 장애 노인을 집에서 쫓아내는 것을 (알더라도) 용인하고 합리화하며 묵인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리츠가 한국에 도입된 것은 2001년이며, 이후 부동산 시장의 지배적인 형태로 자리하고 있다. 리츠사의 수는 2010년 50개(자산 규모 7.6조 원)에서 2020년 9월에 274개사(자산 규모 61조 원)로 대폭 늘었을 뿐만 아니라, 2019년 리츠 상장 규제 완화(주식 시장에서 투자자로부터 자본금 조달을 할 수 있도록 만듦)가 도입되어 상장 리츠사의 수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시장에 좌우되는 집값
금융화를 통한 주택의 고도 상품화는 인간적인 요소를 배제한다. <주택을 변호하라>는 주택의 금융화가 세계화되면서 어떻게 임대료와 부동산 가격이 국내의 수요 및 공급과 분리되고, "안전한 금고를 찾는" 국제 자본의 변동과 흐름에 좌우되는 세계 금융 시장에 따라 가격이 설정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것이 잘 나타난 사례가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이다. 당시 붕괴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에서 흘러나온 자본이 원자재 시장으로 유입되어 식량 가격을 치솟게 만들었고, 그에 따라 인도 등지에서는 폭동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투자 결정은 식량 시장 자체의 상황보다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거품과 붕괴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주택 시장이 세계 금융의 한 부문으로 자리할수록 주택 가격은 국내의 수요와 공급이 아니라 세계 금융 자본의 흐름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주택의 금융화가 세계화된 새로운 체계에서 단순 공급 확대 정책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집값 결정 요인이 국내의 필요와 수요에서 분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주택 공급 문제에 대한 유엔 특별조사위원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푸시 - 누가 집값을 올리는가>에서 나타난 것처럼 금융회사 블랙스톤 그룹(Blackstone Group)은 시세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현금으로 주택을 매수했다. 이렇게 매수된 주택은 집값 상승을 기대하며 빈 집인 채로 유지되었다. 주택 매매 과정을 전적으로 시장에 맡겨버리면 개별 주택 수요자가 주식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글로벌 기관 투자자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집에서 쫓겨날 것을 걱정하는 한 남성은 자신이 매월 납부하는 연기금이 블랙스톤에 투자하는 연금 기관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장면이 나온다. 즉, 주택의 금융화는 핫머니(단기 투기자금)가 들어와 집값을 단기간에 부풀릴 수 있게 한다. 1997년 IMF 위기는 금융 자본의 무자비한 이윤 추구로 사회가 얼마나 고통을 받을 수 있는지를 충분히 알려주었다.
분노의 대상은 개별 플레이어가 아니라 게임 그 자체
한국 청년층의 인기를 끌고 있는 고위험 투기(갭투자) 현상은 주택의 고도 상품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갭투자는 집값의 90~95%를 세입자의 전세금으로 충당하고, 자기 자본은 5~10%만 투입해 집을 구매하고, 집값이 오르면 높은 수익률을 내고 소유권을 되파는 것을 말한다. 이런 투기에 적극적인 세대는 20~30대인데, 그렇다고 무턱대고 이들을 비판하기도 어렵다. 청년 실업률이 높고 불안정한 일자리가 만연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세입자가 임대한 집에서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사회는 구성원에게 일정한 요구(예: 아파트 청약 시 신혼부부 가점 제공 등)를 하고, 구성원은 그 사회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 그 요구에 따라 게임에 참여한다. 그렇기에 <주택을 변호하라>는 투기 세력의 투기 행위를 억제하는 부담을 투기꾼 개인에게 지울 것이 아니라 그런 투기 행위를 조장하는 시스템을 정부가 나서서 고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집을 해방시키자
1969년 말론 브란도 주연의 영화 <번!>(Burn!)은 가상의 카리브해 섬에서 일어난 노예 반란을 그렸다. 노예 반란의 지도자 호세 돌로레스(Jose Dolores)가 체포되고, 그를 감시하던 순진한 젊은 흑인 병사 하나가 호세에게 협조하라고 회유한다. "협조하면 곧 당신을 풀어줄지도 모릅니다"라는 말에 돌로레스는 "안된다네, 어린 병사여. 그런 식으로는 안 돼. 다른 사람이 준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네. 자유는 자네가 혼자 획득해야만 하는 것이네"라고 답한다. 이 대사처럼 거주 공간으로서의 집을 되찾는 일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았다. 정부에 맞선 저항을 통해 정부의 양보를 쟁취해서 승리를 일군 것이었다.
더 자세히 살펴보자. 임대료 통제나 공공주택 등의 탈상품화 정책은 정부가 선의로 만든 것이 아니다. 청와대 고위급 관료들과 국회원들처럼 국민이 사는 집으로서의 가치를 희생시켜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만들고 친기업 정책을 추진하는 기득권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탈상품화 정책은 그동안의 주택 정책에 진절머리가 난 대중이 오랜 투쟁 끝에 이끌어낸 것이다. 사회 변화를 누적하고 혁신을 만들려면 단기적인 승리를 뛰어넘어 장기적인 사회 변화로 나아가야 한다. 기존의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유산계급의 권력을 유지하는 개혁은 착취하는 계급과 착취당하는 계급 사이의 힘의 균형에 아무런 변화도 만들지 못한다. 사람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이양하지 않으면 경기 불황이나 건물주의 반대에 부딪히면 임대료 규제가 완화되고 공공주택은 민영화될 수도 있다. 지난 촛불항쟁이 우리에게 준 교훈은 전투에서 몇 번 승리했다고 해서 싸움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싸움을 계속해야 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해 대열을 강화해야 한다.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이 비엔나 시정부를 집권했던 사례와 같이 민중이 집권하면 지역 공동체에 사람을 품는 공공주택을 만들 수 있다. 당시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이 집권한 비엔나 시는 1919년부터 1934년 사이 공원과 학교를 포함하는 6만 채의 공공주택을 건설했다. 이렇게 더 나은 세상에서 안전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집에 살려면 싸움을 통해 이를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영화 <번!>에서 돌로레스와 젊은 군인의 대화로 돌아와보자. 자유의 본성을 설명한 뒤 돌로레스는 젊은 군인에게 "내 말을 이해하는가?"라고 묻지만 이 군인은 천진난만하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돌로레스는 "이미 이것을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내 말을 이해하게 될걸세"라고 답한다. <주택을 변호하라>도 이와 같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마음을 해방하고 집과 공동체를 건설하는 가능성을 모색하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