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넛 밀크 뒤에 숨겨진 자본주의의 잔인한 얼굴
글: 심태은(번역팀장, ISC)
요즘 건강, 기후 변화, 동물권 보호 등 저마다의 이유로 채식을 하는 인구가 많이 늘면서 기존 식품의 대체제에 관한 수요가 급증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대기업 브랜드를 달고 나오는 채식 제품도 마트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만큼 수입된 채식 제품도 많아졌다. 그중 한국에서도 유제품, 특히 우유를 대체할 목적으로 수요가 늘어난 제품이 바로 코코넛 밀크이다.
코코넛 밀크와 동물 노동
코코넛 밀크와 자본주의를 연관지어 생각하면 우선은 이렇게 늘어난 수요에 코코넛 밀크의 생산이 증가했다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발 더 깊이 들어가 살펴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 ‘노동’이다.
2022년에 동물권 단체인 PETA에서는 태국 코코넛 농장에서 원숭이를 착취하여 코코넛을 채취한다며 고발하는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PETA에서 파견된 조사관이 태국 주요 코코넛 생산 농장을 포함하여 8개 코코넛 농장을 방문하여 조사한 결과, 코코넛 농장주들이 원숭이를 착취 및 학대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런 농장에서는 새끼 원숭이를 부모 원숭이로부터 납치하여 가혹하게 훈련했으며, 원숭이의 공격을 막기 위해 강제로 이빨을 제거했다. 또한 원숭이에 목줄을 채워 하루 종일 코코넛을 따도록 한다고 한다
태국 이외의 다른 코코넛 재배 지역에서는 사람이나 기계를 써서 코코넛을 수확한다. 심지어 인도에서는 아직 상용화 전 단계이기는 하지만, 한 연구진이 2020년에 코코넛 수확 로봇을 개발했다. 동물의 노동을 농업에 활용하는 일은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니, 원숭이 활용을 태국의 전통적인 농법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규모와 노동 강도를 보면 이는 전통적인 농법이라기보다는 착취가 분명하다. 왜 착취라고 보아야 하는 것일까. 그 뒤에는 동물권 문제 외에도 자본주의라는 체제적인 문제가 있다.
우선 표면적으로 드러난 동물권의 문제부터 살펴보자. 한겨레에서는 이 문제를 보도한 기사에서는 PETA 보고서와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코코넛 농장에서 ‘일하는’ 원숭이를 착취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인간과 공생 관계를 구축한 가축이 아니라, 원래 야생에서 살던 동물을 강제로 데려와 목줄을 채우고 인간도 하지 않을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코코넛 밀크와 자본주의는 무슨 관계인가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애초에 ‘왜’ 원숭이를 코코넛 수확에 활용하게 되었는지 생각해야 한다. 다른 코코넛 재배 지역에서는 기계와 인간 노동을 활용하여 잘 익은 코코넛을 상처 없이 수확하고, PETA는 그런 방식이 원숭이를 활용할 때보다 낫다고 했다. 그럼에도 원숭이를 활용하는 이유는 ‘노동 생산성’에 있다. 사람은 하루에 코코넛 80개를 딸 수 있지만, 원숭이 수컷은 하루 최대 1,600개, 암컷은 800개까지 딴다고 한다. 거의 10배~20배에 달하는 생산력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원숭이가 코코넛이 잘 익었는지 아닌지 구분을 못 하고, 열매를 떨어뜨리면서 코코넛에 상처가 발생할 수 있지만,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탐욕 때문에 끔찍한 학대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원숭이 학대를 멈추기 위해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코코넛 밀크 생산 공장이 문제가 되는 농장에서 생산된 코코넛을 사용하지 않고, 코코넛 농장이 원숭이를 학대하고 착취하지 않는다는 인증만 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개별 소비자가 그런 코코넛을 사용한 기업의 제품을 불매하면 되는 것일까.
제품 불매 운동이나 인증 제도 도입 등의 방법은 원숭이 노동 착취 문제 해결에 일정한 효과를 거둘 것이다. 기업에 불매 운동이란 상당히 효과적인 강제 수단이기는 하니 말이다. 그러나 최저의 비용으로 최고의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몇십 년 동안 착취당한 염전 노예에 관한 기사가 났던 것이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니다. 같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저항하지 않는다면 인간 역시 언제든지 착취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자본이 인간을 착취하는 방식은 겉으로 보기에는 알 수 없을 정도로 예전보다 더욱더 정교해졌다. 앞으로도 자본주의는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착취를 일삼을 것이다.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생산 현장에서 자본에 저항할 힘을 가진 ‘인간 노동자’ 뿐이다. 한편으로는 원숭이를 학대하고 착취하는 농장에 철퇴를 가하고, 기업에서도 이렇게 생산된 코코넛을 사용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단지 코코넛뿐만 아니라 생산 전반에서 인간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사회, 문화, 경제 전반에 걸친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생산이 아닌, 인간과 지구 전체를 위한 생산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전 세계의 ‘인간 노동자’가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