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혁명에 대해 무엇을 믿고, 그렇게 믿는 이유 (2024년 2호 뉴스레터)
* 본 기사는 Tricontinental: Institute for Social Research의 “Why I Believe What I Believe About the Chinese Revolution: The Second Newsletter (2024)”를 번역한 글입니다.
번역: 이재오(번역팀, ISC)
안녕하세요.
트라이컨티넨탈: 사회연구소에서 인사드립니다.
작년 말, 한 동지가 2023년 마지막 뉴스레터를 비롯하여 제가 중국에 대해 쓴 글을 비판하는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이번 뉴스레터는 그 편지에 대한 제 답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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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상황은 진보진영 내에서 큰 논쟁의 원인이 되곤 합니다. 그렇기에 중국 사회주의에 대한 문제를 제게 직접 제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는 지금 정말 위험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국이 다른 강대국에 맞서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는 행보는 1991년 이래 지구에 대한 최악의 위협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인종청소에서 우리가 마주한 위험을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저는 미국이 이란을 갈등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우려스럽습니다.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와 긴장을 악화하고, 여기에 이란이 대응하면 미국이 이란을 폭격할 구실로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을 향한 신냉전이 이런 분쟁을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격상시킬 것이 분명한 가운데, 대만은 이미 새로운 분쟁의 지렛대가 되었습니다. 성급한 판단이 내려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잘 아시다시피 사회주의의 건설은 계급투쟁과 생산력 개발이라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보내주신 편지에서 1990년 출판된 빌 힌튼의 저서 거대한 반전: 1978-1989 중국의 민영화(The Great Reversal: The Privatisation of China, 1978–1989)를 언급하셨습니다. 힌튼 씨가 타계하시기 1년 전인 2004년,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그분을 뵙고 중국 관련 몇 가지 문제에 대해 토론을 나누었습니다. 빌 힌튼, 그리고 중국의 낙농업 현대화에 기여한 여동생 조앤, 제부 시드 엥스트를 비롯하여 이사벨 크룩, 에드가 스노, 헬렌 포스터 스노를 비롯한 그들의 친지들, 그리고 해리 덱스터 화이트의 딸인 번역사 조앤 핑컴 등 힌튼 가 사람들과 그 친지들만큼 중국을 깊이 이해하는 미국인은 없었습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에는 중국에 대한 우려가 컸습니다. 수십 년 전 제가 중국에 방문했을 때 저는 농촌 지역의 빈곤을 보고 혼란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1949년 중국 혁명이 이룩한 위대한 투쟁의 역사를 이어가며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다는 신념을 가진 민중의 존엄성에 감동받았습니다. 빌 힌튼은 저서 어두운 거울에 비친 듯: 미국의 눈으로 본 중국 혁명(Through a Glass Darkly: U.S. Views of the Chinese Revolution)에서 서술했듯이 마오주의를 고수하며 사회주의 건설의 모순적인 면을 확실하게 이해했습니다.
장쩌민 정부(1993-2003)와 후진타오 정부(2003-2013) 동안 불평등은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습니다. 제가 가난한 나라들: 가능성 있는 남반구의 역사(Poorer Nations: A Possible History of the Global South)를 썼을 때, 저는 가난한 국가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러시아 혁명 이후 서구 혁명이 실패했어도 혁명을 일으킨 나라라는 것을 알았지만, 중국 혁명에 대해 다소 부정적으로 서술한 바 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저는 에즈라 보겔이 중국 혁명의 전체 과정이라는 맥락에서 1978년 덩샤오핑의 여러 결정을 훌륭하게 분석한 덩샤오핑과 중국의 변화(2011)를 읽을 수 있었고, 덕분에 덩샤오핑 개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덩샤오핑이 시장을 허용하여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것으로 저조한 경제성장률을 극복하고자 했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당시 가난한 후진국이었던 중국은 이러한 개혁 없이는 절망적인 형태의 사회주의로 전락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새로운 접근법을 개척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물론 덩샤오핑의 시장 개혁은 아주 위험한 상황으로 빠질 수도 있는 문을 열었습니다. 빌 힌튼의 비관적 시각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 중국공산당 기관지를 비롯한 많은 곳에서 대중 행동을 통해 불평등과 빈곤을 해결해야 한다는 토론이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10월, 중국공산당은 16차 당대회 5차 총회에서 “새로운 사회주의 농촌을 건설”할 “위대한 역사적 사업”을 발표했고, 여기서 농업, 농민, 농촌을 아울러 “삼농”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 사업은 농촌 인프라 개발을 위한 정부 투자, 무상 의무교육 제공, 그리고 2009년부터 전국적으로 진행되어 온 보건의료 민영화 정책의 후퇴를 포함했습니다. 제가 흥미롭게 본 부분은 이 캠페인이 관료주의가 아니라 수천 명의 당 간부들이 참여한 대중 사업으로서 진행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십수 년 후에 진행된 빈곤퇴치 캠페인의 전신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제가 흥미를 느낀 부분은 중국 최초의 농촌 소비에트 중심지였던 광둥성 하일루펑과 같이 “붉은 자원”이 있는 지역이 행동의 중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서구 학자들이 태평양 해안 지역에 집중하느라 내륙 농촌 지역의 새로운 변화를 등한시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엘리자베스 페리 교수나 중국의 농촌 개발 정책: 새로운 사회주의 농촌에 대한 연구(2009)를 저술한 민지 수 교수 같이 진심을 다하는 학자는 몇 안 되는 예외로, 중국에 대한 담론에서 무시되곤 합니다.
새로운 사회주의 농촌을 향한 노력은 중국공산당이 순수 자유시장 체제에 대한 암묵적인 반격을 강화하는데 고무적인 역할을 하였고, 2012년 말 시진핑이 당 주석으로 선출될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시진핑이 농촌에 보이는 관심은 청년 시절을 중국 북서부의 저개발 지역에서 보낸 것과 1980년대 말 당시 푸젠성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었던 닝더현의 지역 당 서기로 복무한 데서 유래합니다. 시진핑은 지역 당 서기 재임 기간에 빈곤율을 줄이고 사회복지를 증진해 이촌향도 현상을 감소시킨 것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중국 경제 성장의 대가가 자연파괴여야 할까요? 2005년 저장성 후저우에서 시진핑은 환경보전과 경제개발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녹수청산 금산은산” 이론을 발표했습니다. 이로 인해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의 미세먼지 오염이 39.6% 감소하고 기대수명이 2년 증가했습니다. 2023년에는 “아름다운 중국 건설”이라는 새로운 환경정책을 발표하였고, 이는 농촌 지역을 위한 환경 계획을 포함했습니다.
편지에서 하신 주장 중 몇 가지가 제 눈길을 끌었는데, 특히 “전국적 강제 귀농 정책”이라고 주장하신 것은 “새로운 사회주의 농촌” 정책의 일부분에 대해 말씀하신 것 같아 조금 더 깊이 다루겠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2017년부터 농촌 재활성화의 필요성에 대해 계속해서 말해온 것은 사실입니다. 더불어 광둥성을 비롯한 많은 지역의 대학교 졸업생들이 농촌으로 가서 지역 활성화 사업에 참여하도록 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는 힘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고 혁신적인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런 사업은 최전선에서 청년이 이끌어 나가며, 극빈곤 퇴치 정책을 위해 농촌으로 파견된 300만 명의 당 간부 중에도 청년이 다수였습니다. 이 정책을 위해 1,800명의 당 간부가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을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중국의 농촌 지역은 국가의 아주 거대한 부분이기 때문에 마오쩌둥과 마찬가지로 시진핑 역시 중국 농촌의 현실을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지하고 있습니다. 시진핑 본인 역시 문화 대혁명 시기 중국 북서부 농촌으로 하방한 바 있습니다. 2002년 시진핑은 농촌 하방 경험에 대해 “15세 나이로 량자허 마을에 도착했을 때 혼란스럽고 방황했지만 22세로 나이로 떠날 때는 확고한 목표와 자신감으로 충만했다.”라고 회고했습니다. 이런 태도는 중국의 국가 정책에서도 드러납니다.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당원들이 농촌을 경험하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일까요? 그들이 중국의 현실을 더 잘 이해하길 바란다면 그렇지 않을 겁니다.
저는 지난 10년간 중국에 여러 번 방문하며 다양한 도시와 농촌 지역을 살펴보았습니다. 시진핑이 “새로운 사회주의 농촌” 정책에 기반하여 추진해 온 쌍순환 전략을 눈여겨보고 여러 학자와 협력하여 중국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상세하고 실증적인 분석을 추진해 왔습니다. 이런 시각은 저희가 문화종횡과 트라이컨티넨탈 연구소에서 나눠 연재한 극빈곤 퇴치 연구보고서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저 선전물에 불과할까요?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 바람은 중국혁명이 전진함과 동시에 저희가 그에 대한 이론적인 평가를 하는 것입니다. 혁명이 흠 없이 완벽할까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서구에서 중국에 대해 퍼뜨리는 편견보다는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중국이 인구의 1.8%가량 되는 2,500만 무슬림 인구를 억압하고 있다는 비난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제가 2000년대 중앙아시아를 방문했을 때 알카에다와 탈레반이 많은 지역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보았고, 이는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IMU)의 지부를 통해 더욱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IMU는 신장지역 전체를 정복하려는 전략을 수립하였고, 지도자 주마 나만가니 휘하에 많은 위구르인이 포섭되었습니다.
알카에다 지도부 위원 출신의 압둘 하크 알투르키스타니 등 알카에다 관계자가 이끄는 투르키스탄이슬람당은 이러한 접점에서 생겨났습니다. 공공시설 폭탄테러가 자주 자행되었고, 이는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테러의 주모자인 압둘 하크로부터 2010년 지도자 자리를 이어받은 압둘 샤쿠르 알투르키스타니는 2008년, 2011년 카슈가르 테러와 2011년 호탄 테러의 주범입니다. 이슬람당 조직이 2013년 시리아로 근거지를 이전하였을 때, 저는 튀르키예-시리아 국경에서 조직원 중 몇 명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이들은 이들리브에 근거지를 두고 있으며 현지 알카에다 조직의 중핵을 맡고 있습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이들의 본질이 튀르크 민족주의가 아니라 알카에다식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것입니다.
당시 이 테러조직에 맞서 여러 가지 방법의 대응이 가능했습니다. 미국과 역내 친미국가들이 선호한 방법은 폭력이었습니다. 테러조직 은거지라고 의심되는 곳을 습격하여 전부 체포한 뒤 미국이 운영하는 비밀 수감소로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압둘 하크, 압둘 샤쿠르 등 투르키스탄이슬람당 조직원 다수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국경 지역에서 미국의 폭격으로 사살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중국은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몇 년 전 저는 리비아 이슬람투쟁조직의 조직원 중 폭력과 알카에다 사상을 포기한 몇몇 사람을 취재했습니다. 런던에서 그들이 만들어 낸 퀼리엄 재단은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이집트의 “참회”와 알제리의 “화해” 방법론을 따르는 노만 베노트만이 이끄는 조직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인지행동 방법론을 사용하여 사상을 바꾸고 폭력을 멈춰 온건화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지하드를 그만둔 리비아인들은 암살과 대규모 체포 대신 이 방법론을 리비아에 적용하고자 했으나 실패하였고, 서방에 정착하였습니다. 2012년 하야트 프로그램이 설립된 독일을 제외하면 서방은 이들을 거부하였습니다. 서방이 선택한 폭력적인 방법의 문제는 암적인 정치사상에 물든 이들을 온건화하기보다는 모든 무슬림을 악마화했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경우, 신장자치구 내 극단주의 단체와 그들이 활동하는 사회에 전면전을 선포하고 모든 무슬림을 악마화하기보다는 정부 차원에서 온건화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슬람 중국화 5개년 계획을 확장하고, 이슬람을 사회주의와 공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중국이슬람협회와 중국공산당의 2019년 회의를 기억해 봅시다. 흥미로운 사업이지만 이해가 힘들 수 있습니다. 이슬람을 중국적으로 만드는 것이 사업의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이슬람을 사회주의 건설에 조화시키는 것입니다. 후자는 현대 사회에 걸맞은 사회학적 방법입니다. 넓게 보자면 종교를 현대적인 가치관, 중국의 입장에서는 성차별 퇴치와 같은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과 일치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이슬람의 중국화는 조금 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고, 저는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종교가 현대적 가치관, 그리고 특히 사회주의적 가치관과 일치해야 한다는 입장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이를 어떻게 실천하는 게 좋을까요? 프랑스에서 히잡을 금지했듯이 특정한 종교적 행위를 완전히 불법화해야 할까요? 아니면 보통 가장 보수적인 사상을 갖곤 하는 종교 지도자들과 토론과 논의를 시작해야 할까요? 신장과 같이 국내가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혹은 심지어 시리아 같이 외국에 뿌리를 두고 있는 테러조직과 맞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요? 이는 모두 심각한 딜레마입니다. 하지만 좌파 내의 논의에서는 미국 국무부나 버지니아 주 랭글리 CIA 본부 근처에 몰려 있는 “싱크탱크”들의 “대량학살”과 같은 헛소리를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현재 상황에 대한 더 깊은 이해이지 바이든과 네타냐후가 “하마스를 규탄하는가”라고 캐묻는 것과 같은 함정에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편지에서 언급하시길 “지난 몇십 년간 중국 민중, 특히 도시 주민들의 생활 수준이 급격히 상승한 것은 사실”이라고 하셨습니다. 분명 모든 자료와 제 개인적인 경험을 보아도 도시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 특히 서부와 북부 지역에서 생활 수준이 상승했습니다. 국제노동기구의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연간 실질 임금 상승률은 4.7%로 다른 남반구 국가뿐만 아니라 인도(1.3%)와 미국(0.3%) 또한 훨씬 웃도는 수준입니다. 2013년에서 2021년까지 8년간 중국의 4억 9,800만 농촌 인구의 인당 가처분소득은 72.6% 상승하였고, 9억 1,400만 도시 인구의 인당 가처분소득은 53.5% 상승하였습니다. 동시에, 농촌과 도시 주민 간의 소득 격차는 5% 감소하였고, 농촌 인구 소득 상승률은 12년 연속(2009-2021)으로 도시 인구 소득 상승률보다 높은 수준을 보였습니다.
2012년에서 2020년 사이 집중적인 빈곤퇴치 정책으로 9억 8,900만 명에 달하는 농촌 인구가 극빈곤 상태에서 구제되었으며 모든 극빈곤 가구가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혁신적인 과정의 일환으로 중국공산당은 풀뿌리 당 간부 훈련교육을 디지털 기술과 접목하여 지역 단위에서 현대적인 거버넌스 능력을 강화하고 당원과 당 간부가 민중을 위해 더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복무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예를 들어 농촌 월세 지원금과 같은 공공 서비스를 제외하고 계산되는 지니 계수로만 비교해 봐도 중국의 소득 격차는 인도보다 24% 낮은 수준입니다.
중국의 불평등을 조사하는 사람들은 보통 중국의 억만장자들에 집중하곤 합니다. 제게 보내신 편지에서도 “중국은 국가의 지원을 받는 백만장자와 억만장자로 가득하다.”라고 쓰셨습니다. 물론 말씀대로 거대 부르주아 계급이 성장하여 해외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개혁개방 시대는 몇몇 사람이 매우 부유해질 수 있는 사회 정세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그 규모는 이제 감소하고 있습니다. 2023년, 세계 억만장자 2,640 명 중 562명이 중국인이었으며, 이는 그 전년의 607명 대비 줄어든 것이었습니다. 이에 더해 여러 번의 당대회에서 대규모 재벌이 수립되는 과정을 역전시키는 것을 우선과제로 삼기도 했습니다. 제20차 당대회에 참석한 2,296명의 전국위원 중 그저 18명만이 민간 기업 임원이었으며 그마저도 대부분 중소기업이었습니다. 이 역시 2012년 18차 당대회의 34명보다 줄어든 숫자였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2021년 시진핑 주석은 1953년에 이미 중국공산당이 언급한 바 있는 “공동부유”를 정책 기조로 발표했고, 이로 인해 많은 억만장자가 우려를 표했습니다. “해외 투자”라고 말씀하신 것이 이런 억만장자들의 도피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해외 송금을 50,000 달러로 제한하는 등 강력한 자본 통제 조치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 간 부자들이 자본 통제가 약한 홍콩 등의 경로를 통해서 현금을 유출시키는 불법 사업이 성행하기 시작했지만, 정부는 부정부패 퇴치와 더불어 이런 자본 유출 사업 또한 퇴치하고 있습니다. 2023년 8월에는 경찰이 상하이에서 불법 외환 유출과 연루된 이민 회사의 대표를 체포하였습니다. 마윈(핀테크 기업 앤트 그룹), 희가얀(부동산 기업 에버그란데), 바오판(투자은행 르네상스 홀딩스) 등에 대한 압박은 억만장자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입장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편지에서 말씀하시길 중국의 생활수준이 향상되었더라도 “중국의 의제에 사회주의는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중국공산당이 사회주의 의제를 추진하지 않았더라면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급등하고 북반구와 남반구를 아울러 대부분의 사민주의 정책이 실패하는 시대에 어떻게 극빈곤을 완전히 퇴치하고 불평등을 감소시킬 수 있었겠습니까?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볼 수 있듯이, 중국에서는 국가가 은행을 통제하여 대규모 자본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여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용이합니다. 물론 중국에서도 계급투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9,800만 명에 달하는 당원을 가진 중국공산당 역시 그 계급투쟁의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저는 몇 가지 사실을 제공하여 담론을 이끌어내고 제가 보기에 신빙성 있는 사회주의 이론으로 엮어내려 노력했습니다. 제 이론에 따르면 사회주의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계급투쟁에 뿌리를 내리고 직선이 아닌 전후좌우 긴장상태의 지그재그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빈곤국에서 그 경로는 생산력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시급한 필요성이 강조되곤 합니다. 전지적인 관점을 자부하기보다는 이 과정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따뜻한 연대의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
비자이 프라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