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공관은 불가침이여야 한다(2024년 15호 뉴스레터)

* 본 기사는 Tricontinental: Institute for Social Research의 “The Premises of the Diplomatic Mission Shall Be Inviolable: The Fifteenth Newsletter (2024)”를 번역한 글입니다.


번역: 이재오(번역팀, ISC)

감수: 심태은(번역팀, ISC)

아프신 피르하셰미 (이란), 무제 , 2017

안녕하세요.

트라이컨티넨탈: 사회연구소에서 인사드립니다.

우리는 확실성이 붕괴하고 악이 세계로 스며든 거짓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물론 가자지구가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가자지구는 우리 마음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10월 7일 이후 33,0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군에 목숨을 잃었고, 7,000명의 실종자 중 5,000명이 아동입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전 세계의 여론을 깡그리 무시했습니다.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끔찍한 폭력에 분노를 금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는 한 민족을 완전히 파괴하기로 마음먹은 군대에 휴전을 강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반구 국가들은 일구이언만 하고 있습니다. 절망에 빠진 자국민을 달랠 틀에 박힌 어구들을 말하며 UN에서는 이스라엘군 무기 금수조치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중적인 행동이 바로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같은 사람에게 처벌 없이 만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줍니다. 

이런 면책의 분위기를 등에 업은 이스라엘은 UN 헌장과 외교관계에 대한 비엔나 협약을 위반하고 2024년 4월 1일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위치한 이란 대사관을 폭격하여 이란군 고위 장교 등 16명을 살해했습니다. 이 면책 분위기는 미국의 오만을 보고 자신감을 얻는 지도자 사이에서 확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에콰도르 대통령 다니엘 노보아는 준군사조직 부대를 퀴토에 위치한 멕시코 대사관에 투입하여 멕시코에 망명한 호르헤 글라스 전 부통령을 납치했습니다. 노보아 정부는 네타냐후 정권처럼 외교 관계에 대한 존중이라는 역사적 전통을 거스르고 저지른 이런 행동이 가진 얼마나 큰 위험을 함의하고 있는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네타냐후와 노보아 같은 지도자 사이에서는 처벌 없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북반구의 보호 아래 자신들 역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만연합니다. 

루시아 치리보가 (에콰도르), “나는 기억의 심연에서 왔다” 시리즈 중 무제, 1993.

외교적 전통은 수많은 문화와 대륙을 넘어 수천 년이 넘는 역사가 있습니다. 기원전 4세기 중국의 장자와 인도의 카우틸랴가 쓴 고대 문헌은 대사를 통한 국가 간의 정직한 관계 수립의 조건을 말합니다. 분쟁을 종식하기 위해 대사를 교환하고 협약을 맺는 등 이러한 조건들은 전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로마법을 비롯하여 고대 세계의 이런 관념들은 휴고 그로티우스(1583-1645), 코넬리우스 반 빈케르수흐크(1673-1743), 에메르 드 바텔(1714-1767) 등 국제 관습법의 토대를 닦은 근대 유럽의 사상가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외교적 예우의 필요성에 대한 이런 전 세계적 이해가 외교관의 면책 특권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습니다. 

1952년 유고슬라비아 정부는 UN 국제법위원회(ILC)가 외교 관계를 제도화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UN은 ILC를 보조하기 위해 UN 팔레스타인 특별위원회(1947) 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는 스웨덴 변호사 에밀 산드스트룀을 특별 보고관으로 임명했습니다. ILC는 산드스트룀의 도움으로 외교 관계에 대한 조항을 작성했고, 이를 UN 81개 회원국이 분석하고 수정했습니다. 1961년 빈에서 한 달간 진행된 회의에서 모든 회원국이 외교 관계에 대한 협약 수립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61개 협약국 중에는 에콰도르, 이스라엘, 미국도 있었습니다. 이 세 나라 모두 1961년 비엔나 협약의 창립국이었습니다. 

비엔나 협약의 22조 1항은 이렇습니다. “공관 지역은 불가침이다. 접수국의 관헌은 공관장의 동의 없이는 공관 지역에 들어가지 못한다.” 

사프완 다훌 (시리아), 꿈 77, 2014.

이스라엘의 시리아 이란 대사관 공격에 대한 UN 안전보장이사회 브리핑에서 겅 솽 중국 부대사는 25년 전 미국이 주도한 NATO의 유고슬라비아 폭격 중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 대사관이 공격당한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대사관 공격을 “예외적인 비극”이라고 부르며 공식적으로 사과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에콰도르는 이란과 멕시코 대사관 공격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겅 솽 부대사는 회의에서 “국제법과 국제 관계의 기본적인 철칙이 지켜지지 않은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인간 양심의 밑바닥 또한 수없이 짓밟혔다”고 말했습니다. 브리핑에서 에콰도르의 호세 데라가스카 대사는 다마스쿠스 이란 대사관 공격을 규탄하며 “그 무엇도 이런 공격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며칠 후 에콰도르 정부는 1961년 빈 협약과 1954년 미주기구 외교망명협약을 위반하고 멕시코 대사관에서 호르헤 글라스를 체포했습니다. UN 사무총장은 즉시 이 행위를 규탄했습니다.

이러한 대사관 보호 조항 위반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좌우 양쪽에서 많은 급진적 단체가 정치적 메시지를 위해 대사관을 공격하곤 합니다. 예를 들면 1979년 이란 학생들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여 53명의 직원을 444일 동안 인질로 붙잡았습니다. 하지만 국가 정부가 외국 대사관을 강제로 침입하는 경우 또한 많습니다. 예를 들어 1985년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아프리카민족회의를 도운 네덜란드인을 체포하기 위해 네덜란드 대사관을 습격한 사건이나, 1989년 파나마를 침공한 미군이 니카라과 대사의 관저를 수색한 일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공격에 대해 제재와 사과 요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1961년 빈 협약 조인국인 이스라엘과 에콰도르는 사과하려는 조짐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이란과 시리아는 이스라엘과 수교한 적이 없지만, 멕시코는 최근 사건으로 인해 에콰도르와 외교 관계를 단절했습니다.

그라시엘라 이투르비데 (멕시코), 천사 같은 여자, 소노라 사막, 멕시코, 1979.

가자지구 뿐만 아니라 에콰도르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분쟁, 콩고민주공화국 동부와 수단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전쟁, 우크라이나에서 계속되고 있는 교착 상태 등 폭력이 전염병처럼 세계로 퍼지고 있습니다. 전쟁은 인간의 의지를 꺾어놓기도 하지만, 총성이 울리는 것을 막기 위해 거리로 나서야 한다는 강력한 본능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또다시 권력자들은 이 반전 감정을 탄압하고,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 자들이 아니라 평화주의자들을 범죄자로 몰아갑니다.

파르비즈 타나볼리 (이란), 이란의 마지막 시인, 1968.

이란은 아부 압달라 루다키(858-941)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빛나는 시의 전통이 있습니다. 이는 콰자 샴스 알딘 무하마드 하피즈 시라지(1320-1390)의 시집 디완에서 가장 빛나는데 하피즈는 쓰라린 마음을 담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먼지의 세계에서 사람은 빛나지 않는다. 또 다른 세상을 만들고 새로운 아담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페르시아 시 전통을 따라 가루스 압돌말레키안(1980년생)은 전쟁과 그 여파로 가득한 시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의 ‘정적을 위한 시’(2020)에는 총탄과 탱크가 지나는 가운데서도 평화와 사랑을 향한 강한 열망이 보입니다.

그는 총구로 찻잔을 젓는다
그는 총구로 퍼즐을 맞춘다
그는 총구로 생각을 긁는다 

그리고 가끔
자신과 마주 앉아
총탄의 기억을
머리에서 끄집어낸다 

그는 여러 전쟁에서 싸웠지만
자신의 절망에는 맞설 수 없다

이 흰색 알약이
그를 아무 색깔도 없게 만들었다
그의 그림자가 일어나서
물을 가져다 줘야 한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 어떤 군인도
전쟁에서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따뜻한 연대의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 

비자이 프라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