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번역]거대한 자본주의의 전환기: 맑시즘과 “기후가 아니라 시스템 변화를” 2부
생태적 맑스주의의 세 가지 중요한 돌파구
1920-30년대 등장한 서구 맑스주의 전통은 자연의 법증법에 대한 거부와 소비에트형 변증법적 유물론을 주요하게 구분했다. 서구 맑스주의 전통에서 자연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맑스적 접근의 해석은 1962년 출간된 알프레드 슈미트의 <맑스의 자연 개념>에서 초기의 가장 구조적인 표현을 찾아볼 수 있는데, 원래 이 책은 프랑크푸르트 학파 철학자인 맑스 호르크하이머와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지도하에 쓴 박사논문이다. 슈미트는 자연의 혁명적인 새로운 개념을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맑스의 사회적 신진대사의 개념의 중심적 중요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슈미트의 폭넓은 비판에서 논외로 취급되었고, 슈미트의 비판은 곧 맑스를 대체로 “계몽의 변증법”의 특징과 같은 협소한 도구적주의자-생산주의자 비전으로 생각했다.
1970-80년대 맑스에 대한 전반적인 부정적 평가는 지금에 있어서 테드 벤톤과 안드레 고르즈와 같은 인물들과 결합되어 ‘생태사회주의 1 단계”로 알려지면서 채택되었다. 벤톤은 맑스가 멜서스의 인구론을 비판하면서 자연적 한계를 부정하는 논점까지 함께 선을 넘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맑스의 경제철학 수고와 구분되는) 성숙한 맑스는 긍정적 생태적 가치가 결여되고 불완전한 “프로메테우스”적 생산주의를 권장하는 것으로 보여졌다. 생태사회주의 1단계의 공통된 실천은 신멜서스 개념과 녹색이론의 주요한 윤리적 관점 두 가지를 보다 전통적인 맑스주의 이론에 포함시켜 혼합 생태사회주의 내지 “맑스주의의 녹색화”라는 이론을 만들어냈다. 레이몬드 윌리암스가 비판적으로 이야기한 것처럼, 결과는 자체의 생태적 전제를 밝혀내기 위해 역사적 유물론의 뿌리로 돌아가기보다 녹색 이론과 맑스주의를 결합시킨 “두 가지 사고를 섞으려는” 경향이었다.
1990년대 많은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자들의 작업에서 1단계에 도전하는 “2단계 생태사회주의”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 바로 이러했다. 사회주의 이론가들은 전통적인 역사적 유물론과 가치 이론 구조의 토대를 파기 시작했다. 맑스의 생태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극적으로 변화시킨 첫 번째 중요한 돌파구를 맑스주의 경제학자 폴 버켓(Paul Burkett)이 보여준다. 그의 1999년 맑스와 자연은 맑스의 정치경제학 전반 비판에 정당성에 입증하는 생태적 가치형태의 분석을 밝혀냈다. 맑스의 가치이론의 이중자연을 처음으로 강조한 이는 초기 소련의 경제학자 루빈이었는데, 맑스의 가치이론은 첫 번째 가치형태 이론 또는 미국의 맑스주의 경제학자 폴 스위지가 “질적인 가치 문제”라 부른 것, 두 번째 가치와 가격의 양적 결정론. 가치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형태와 계급과 생산과의 가치를 연결하는 자본주의 물가 안정책의 보다 질적인 측면에 초점을 두는 가치 형태 분석으로, 가치의 양적인 측면에 대한 이해도 변화시키는 맑스의 유일한 업적으로 구성된다. 버켓의 작업에서 맑스의 가치형태 이론은 처음으로 고전 역사적 유물론에 결합된 생태적 가치형태분석으로 구조적 설명을 위해 다듬어진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맑스의 전반 비판은 어떤 형태이든 인간 생산을 특징 짓는 그가 “전반적인 생산”이라 말한 것과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자본주의적 노동과 생산 과정 간에 모순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생산에서 인간의 노동 과정은 자연의 생산물, 또는 자연적-물질적 사용 가치로 변화되어 실질적인 물질적 부를 구성한다. 그러나 하나의 생산양식으로 여겨지는 자본주의에서 다수의 노동자들이 생산 수단, 특히 토지에서 소외되어 프롤레타리아가 되어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생산의 특징은 대체로 보다 소외된 형태를 취한다.
고전 정치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모든 가치는 노동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고전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보편적이고 범역사적 사실로 바라봤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맑스는 역사적으로 구체적 형태, 즉 자본주의에 국한되는 것으로 이 문제를 바라봤다. 맑스가 강조한 것처럼 자본주의 하에서 자연은 가치/교환가치라는 직접적 창조물에서 소외되었다. 이는 지금도 국가수입 또는 GDP 통계에 반영되어 임금이나 자산수입의 형태로 측정되는 인간 서비스의 부가 가치라는 측면으로 전반적인 경제 성장을 설명한다. 즉 가치나 경제성장의 자본주의적 가치는 내재된 전제로, 맑스의 말을 인용하면, “자본에 대한 자연의 공짜 선물”이다. 자연의 힘은 자본 그 자체에 직접적인 선물이 되는 시스템으로 간주되어, 이를 위해 어떤 교환도 이루어질 수 없다. 실제 이는 자연 또는 실질적 부의 강탈을 의미한다. 사회주의적 생태경제학자인 윌리엄 카프는 1960년대 “자본주의는 비용을 치르지 않은 경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갈 것은 토지나 자원에 대한 임대가 존재한다고 해서 자연이 가치 계산에서 제외된다는 근본적 사실이 변화지는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임대는 사회가 생산한 잉여가치의 부분이 자연 자원에 대한 “권리”를 독점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재분배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맑스주의 생태학의 두 번째 중요한 돌파구는 맑스의 신진대사 균열 이론으로 알려진 것의 회복이었다. 맑스는 자연과 사회의 구조적 관계를 소개하기 위해 신진대사 개념을 도입했는데, 이 개념은 1850년대 후반 쓴 그의 주요 정치경제학 저서인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시작하여 1879-1880년 아돌프 와그너에 관한 노트로 이어졌다. 1850년 맑스는 신진대사의 개념이 확장된 초기 생태주의적 시스템의 관점을 알게 되었고 친한 친구이자 정치적 동료인 사회주의 물리학자인 로널드 다니엘이 쓴 소우주를 통해서 식물과 동물의 상호 관계성에 대해 파악하게 되었다.
후에 맑스는 독일 화학자인 유스투스 폰 리비히의 영국 기업농 비판, 특히 1862년 농화학 분야에서의 리비히의 위대한 작업의 도입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리비히의 자본주의적 농업에 대한 매서운 비판은 19세기 토양 위기에 대한 것이었다. 리비히는 질소, 칼륨, 인산과 같은 토양의 필수 영양분이 음식과 섬유질의 형태로 인구가 집중되는 새로운 도시산업지대로 이전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영양분들이 새로운 도시산업지대에서는 도시를 오염시키는 물질이 되지만 토양은 이런 영양소들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리비히와 맑스는 모두 기업적 자본주의 농업을 땅에서 영양분을 빼앗아가는 수탈구조로 불렀다. 이 시기의 영국은 토양의 양분이 상실되는 부분을 메워야 했고 이를 위해서 나폴레옹 시대의 전장과 유럽의 지하 묘지에서 나오는 뼈와 페루에서 구아노(바닷새의 배설물)를 제국주의적으로 수입했다. 맑스는 세계적인 신진대사의 균열이 자본주의가 생명 자체의 “영구적인 자연 조건”을 분열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생명 자체의 자연 법칙으로 규정된 상호 의존적인 사회적 신진대사 과정에 회복불가한 균열”을 만들어 낸다. 이런 균열은 자본이 중심이 되어 토양과 자원의 주변을 시스템적으로 수탈하는 국가간의 불평등한 생태적 교류에서도 볼 수 있다.
맑스는 이를 전반적으로 분석한 1861-1862 경제적 원고와 자본론에서 “자연의 보편적인 신진대사”, “사회적 신진대사”, 그리고 신진대사 균열의 3가지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맑스는 인간이 “자연의 보편적인 신진대사” 내에 존재하며, 자연의 사용가치를 뽑아내고, 생활과 발전에 필요한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사회적 신진대사”와 같이 생산으로 전환시킨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생산의 특정 형태인 자본주의는 시스템적으로 노동자를 토지, 자연, 도구 등의 생산수단으로부터 소외시켜 프롤레타리아화하고 자본주의적 착취와 자본의 축적을 가능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모든 가치의 원천”인 토지와 노동자의 기반이 약화되고 신진대사의 균열이 생긴다. 맑스는 결과적으로 신진대사의 “회복”이 필요하지만 이는 사회주의와 같이 고차원의 사회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점을 염두해 두며 맑스는 생태적지속가능성의 가장 급진적인 개념을 소개한다. 자본론에서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높은 수준의 사회경제학적 형태의 관점에서 자연에 대한 특정한 개인의 사유 재산은 사람을 한 사람의 사유 재산으로 하는 것처럼 터무니없는 것이다. 전체 사회, 국가, 또는 동시에 존재하는 모든 사회를 통털어도 지구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그들은 단순히 자연의 점유자이며, 수혜자이고 가정의 훌륭한 책임자처럼 자연을 후대에게 좋은 상태로 물려주어야 한다.
맑스에게는 생태적지속가능성과 실질적 평등은 함께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전반적인 근거를 규정한다. 맑스는 “이 영역에서만 자유가 존재할 수 있으며, 협력하는 생산자인 사회화된 인간이 이성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신진대사를 통제할 수 있고, 이는 최소한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인간의 본성에 적합하고 가치있는 조건에서 달성할 수 있다”라고 썼다.
2단계 생태사회주의의 세번째 중요한 돌파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태학적 위기의 이중 구상을 되찾았다는 점이다. 생태학적 위기의 첫번째 형태는 자본론에도 설명했듯이 자연자원의 희소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문제는 일반적으로 자원의 희소성과 환경 편의시설의 증가가 생태학적 비용을 높이고 이윤폭을 압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내전 기간 동안 영국의 목화 산업 위기를 맑스는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서 볼 수 있다.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에서 지속적인 자본의 비용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자원의 역할과 지속적인 자본의 보전을 위해 자본의 필요성을 논의하는 속에서 볼 수 있다. 자원의 비용증가와 환경 파괴는 자본의 축적에 큰 문제를 야기시킨다. 제국주의가 어떻게 국제적으로 원자재의 가격을 낮게 유지하면서 자본 축적을 촉진시키는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맑스의 생태학적 위기 이론 혹은 지속가능한 인간 발전의 위기에서 신진대사 균열 이론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시스템 자체의 가치 계산을 넘어선다는 것이 발견된다. 리비히와 맑스의 관점에서 단순히 자본주의가 착취적인 시스템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자본가의 이익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자연에 대한 환경-사회적인 질적 저하의 비용을 대부분 외부화한다. 그래서 맑스가 말한 사막화와 산림 파괴와 같은 현상이 지속적인 인간발전에 대한 시사점이 있지만 상품 체제의 가치 계산으로 직접 들어가지는 않는다. 생물지구화학의 주기를 방해하는 신진대사 균열은 지속적인 축적과 완전히 양립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곳에서나 시스템적으로 생기는 환경 파괴로부터의 상대적으로 단절시키는 생산양식은 자본주의가 유일하다.
버켓은 “자본축적은 환경 위기를 통해 스스로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 사실 이것이 자본주의가 다른 이전의 사회와 다른 점이다. 자본주의는 자연 조건에 가하는 피해에도 불구하고 경쟁적이고 이윤 추구 방식의 축적을 계속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라고 쓰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전지구적인 생물지구화확 주기를 방해하면서 경제 성장을 계속해 나가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지구는 모든 생물의 존재가 의존하고 있는 곳인데도 계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사실 이러한 방해와 균열은 비료와 농약과 같은 농화학 산업이나 탄소시장처럼 자본에게는 새로운 이윤 추구의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최근 생태위기의 맑스주의 이론에서 영감을 받는 구체적인 연구의 대다수는 신진대사 균열 이론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 이유는 신진대사의 균열이 현재 세계적인 긴급상황을 규정하는 지속적인 인간발전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진대사 균열 관점은 단순하게 규모나 체제의 경제학으로 축소시킬 수 없는 시스템적인 환경 변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그래서 문제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게 해준다. 맑스의 신진대사 균열 분석은 축적이론에서 나온 생산의 질곡 분석과 교차하고 동시에 자연 과학의 발전과 관련되어 가장 발전된 생태학적 관점과 연결시킨다. 이는 자본의 노동 분화와 함께 자본 분화와 연계된 깊은 모순을 지적한다.
예를 들면 신진대사 균열로 - 이미 19세기에 맑스가 비판적으로 생각했던 - 동물을 생태계에서 몰아내고 먹이 섭취와 번식 방법 등을 바꿔 공장 생산 방식으로 동물 성장률을 가속화시키는 시스템의 도전이 가지는 시사점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동물은 분해되고, 다양한 부위로 나눠지고, 상품화되기 위해 생산과정으로 전화된다.
맑스와 엥겔스는 신진대사 균열 분석을 열역학 열린계의 차원에서도 보았다. 그러한 맥락에서 1882년 엥겔스가 인류는 “과거의 태양 에너지”와 관계있는 화석연료를 “낭비”하고 현재의 태양 에너지를 유용하게 사용하는데는 실패하고 있다고 관찰했다.
작성: 존 벨라미 포스터
번역: 김혜숙(ISC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