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loring Korea] 음악과 투쟁은 공명해야 한다: 콜트/콜텍 노동자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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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추운 겨울 아침에, 나는 소모임 멤버들을 만나러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로 나왔다. 우리는 노동자이자 순교자였던 전태일 평전을 읽어왔고, 오늘 장기 노동조합 투쟁에 대해 듣기 위해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을 만나러 왔다. 2009년, 한국에 오기 직전에 음악가이면서 사회운동가인 한국계 미국인이 내게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어떻게 외부하청으로 부당하게 일자리를 잃었는지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다. 6년 반이 지나서야 나는 133일 전에 새누리당 당사 앞에 세워진 천막으로 발을 옮겼다.콜트/콜텍 노동자 투쟁은 133일보다 더 오래 되었고, 2009년보다도 더 이전에 시작되었다. 투쟁은 2007년 사전통보 없이 인천 콜트 공장과 대전 콜텍 공장을 닫고, 중국과 인도네시아에 콜트 공장들을 세우면서 일시 해고한 뒤 이어져온 것이다. 공장폐쇄는 매출액과 순이익 감소로 정당화 되었다. 하지만, 노조의 조사에 따르면 꾸준한 이익을 내고 있었고 오직 2006, 2007년에만 급락했을 뿐이었다. 한국신용평가에서 2006년 가장 높은 AA0등급을 받았음에도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경영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콜트/콜텍 노동자 복직 투쟁은 수년간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즉, 장기 천막 점거, 고공 시위, 단식 투쟁, 문화 연대, 도보 순례, 소송, 국제연대 콘서트 등이 있다. 천막을 향해 가면서 그들이 어떻게 투쟁을 이토록 오래 지속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우리는 4명의 노동자들과 함께 천막에 모였다. 노동조합의 방종운지부장은 그들의 법정 투쟁을 기록한 서류들을 넘기며 투쟁에 대해 설명했다. 얼마나 더 그들의 이야기가 반복되어야 할까?

2009년 서울고등법원은 2007년 콜트/콜텍 해고를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노동자 해고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한 재정난에 대한 주장과는 반대로 회사는 이익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2년 대법원은 미래의 재정난 가능성으로 해고가 정당화될 수 있다고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집었다. 법원의 논리는 분명하고 위험한 메시지를 준다. 회사와 법인은 노동자 해고를 추측만으로도 정당화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남겨질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공장을 해외로 이전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된다. 일부 호의적인 판결에도 불구하고[1], 대법원은 또다시 노동자들의 복직은 콜트 악기제조사에 유의미한는 수익을 창출하지 못할 것이라는 회사측의 해고를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다. 젊음을 바쳐 회사를 일군 노동자들은 사용 뒤 버려졌다. 그들은 대법원 판결에 항소하고 있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회사를 상대로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대중적 이미지를 훼손한 언론과 정치인들과도 투쟁하고 있다. 동아일보와 한국경제 신문은 2008년과 2014년에 각각 노조 파업과 시위가 콜트/콜텍 공장 폐쇄의 원인이라고 보도했다. 비슷하게도 작년 가을,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 의원은 국회에서 높은 이윤을 창출하는 건강한  콜트/콜텍과 같은 기업이 노조 때문에 공장 문을 닫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보도기사와 당대표 둘 다 회사의 불법 해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노동자들이 행동을 취하게 만든 착취 중심의 근로환경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더욱이 노동자들의 부당해고에 맞선 시위와 복직 요구는 공장 폐쇄를 원했다는 논리에 어긋난다.

이토록 편향적이고 잘못된 언론 보도는 콜트/콜텍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를 상처 입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기사를 읽고 받아들이면, 시민 의식 속에 노조활동은 열심히 일하는 회사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개념이 심어진다. 노조측에서는 동아일보에 대한 판결에서 승소했고 한국경제에서도 항의한 후에 허위보고 사실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허위보도 정정을 동아일보로부터 3년, 한국경제로부터 1년 뒤에 받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노동자들은 대형 매스컴과 고위 공무원들에 의한 허위보도와 거짓정보에 대한 피해를 알리기 위해 힘든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쉽지 않은 일임에도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그들의 입장을 고수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김무성 의원이 발언에 사과할 때까지 133일간 진행해온 농성을 계속할 것이다.

결국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반드시 법원 너머에서 승리해야 함을 보고 있다. 방종운 조합장은 한국 정부조차도 노동자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줄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해결책은 전세계의 음악가들이 함께 나서야 만들어질 수 있다. 정말로 자본의 힘이 법에 의해 보호되고, 인권과 인간 존엄을 대체하는 사회에서, 회사가 법을 어겼을 때, 회사는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해고한 뒤 벌어들인 막대한 이익 중의 아주 작은 일부만을 벌금으로 내면 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세계로 나아갔다.

2010년 1월, LA의 사회운동가들은 콜트/콜텍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위해 ‘기타의 밤’을 준비했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톰 모렐로, 더쿠의 부츠 라일리, 그리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여러 음악가들이 연대와 이익 극대화를 위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체제를  비판하기 위해 연주했다. 비슷한 연대 행동이 일본에도 있었다. 콜트는 콜트 기타만을 파는 것이 아니라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깁슨과 같은 세계적인 대표 기타 제조사의 기타를 생산하고 수출하고 있다. 한국으로부터 시작된 이 일과 국제적인 운동을 지속해야 한다. 그리고 음악가와 음악을 사랑하는 세계인들에게 그들이 연주하고 듣고 있는 기타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제조사들로부터 만들어진 것임을 알려줘야 한다. 음악에 감명을 받는 사람들은 그 음악을 가능하게 만든 노동자들의 인권을 고려해 선택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 진실은 현악기 소리가 공명하듯, 그 소리가 세계에 펼쳐지듯 널리 알려져야만 한다. 하지만 지금으로썬 그들의 투쟁은 집으로 돌아왔다.

tuesday concert

tuesday concert

콜트/콜텍 노동자의 여의도 투쟁 135일이 되는 그 다음 화요일에 모임 멤버는 매주 열리는 노동자들의 ‘문화의 밤’에 참석했다. 그들의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은 그들의 삶을 바쳐 만들어온 기타를 잡고 콜밴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그들은 투쟁과 사회 부조리, 사람보다 이익을 중시하는 체제, 그리고 그런 것들을 가능하게 한 법 제도에 대해 연주한다. 두 멤버가 기타를 둘러메고, 30년 동안 콜텍에서 일했던 다른 노동자가 노란 울림통으로 규칙적인 리듬을 만든다. 연주에 뒤이어 GM 군산공장 해고 노동자가 연대 메시지를 전하고 그들의 투쟁에 대해 말한다. 해고가 주는 충격에 대한 그의 말을 듣다 보니 내 마음에는 우리 안의 연결고리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아버지이고 어머니이며 배우자요 형제자매들이다. 그들의 자식들은 우리의 학생들이고, 우리가 버스를 탈 때 옆에 앉는 아이들인 것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10여년 간을 싸워왔다. 그리고 그들의 투쟁은 개인적인 것으로부터 전국 노동자들을 대신하는 것으로 진화했다. 그들은 악덕 기업과 위험한 노동 개혁에 대항해 싸우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혼자가 아니다. 우리가 콜트/콜텍 노동자 연대에 함께하기 때문이다.

작성: 조이스 김

번역: 김경민(번역팀, ISC)

  1. 2010년 인천지방검찰청은 콜트 악기사의 CEO 박영호를 회사 노조와의 소통을 무시한 죄로 벌금을 부과했으며 7건의 폭력적인 노조 활동 방해를 한 용역 대장에도 벌금형을 내렸다. 2013년 대법원은 박영호를 노조 활동 방해에 대해 유죄 판결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