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내 독일의 성장과 패권
송대한 (편집국장, ISC)
7월 5일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다수는 트로이카가 제 3차 구제금융의 대가로 요구한 긴축정책에 반대표를 던졌다. 그 후, 민주주의와 국가 주권에 큰 타격이지만 그리스의 급진좌파 시리자는 유로존에 머무르기 위해서 국민의 민주적인 바람에 어긋나는 혹독한 긴축정책 조건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사실상 트로이카의 경제보호국이 되었다. 유럽 내에서 시리자의 후퇴에도 긴축정책과의 투쟁은 계속된다. 이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유로존의 실세인 독일이 긴축정책에 대한 투쟁 행렬에 함께 해야 한다. 긴축정책 반대 투쟁을 위해서 긴축정책 근저에 깔린 경쟁이라는 신자유주의적 논리도 무너뜨려야 한다. 독일의 노동조합, 좌파 정당, 그리고 사회운동 진영은 긴축정책과 싸우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과 연대해야 한다.
독일의 경제 성장
시리자를 상대로 승리한 독일 메르켈 정부의 지지도 상승은 경쟁의 논리 때문이다. 다른 국가들은 경제침체를 겪는 동안 독일 경제가 부상하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 즉, 물가와 임금을 낮게 유지하고 생산성과 무역흑자는 증가시켜야 한다. 인접국가보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연대의 여지는 없어진다. 인접 국가가 독일만큼의 경제성장을 원한다면 긴축정책이라는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 하지만 독일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이 논리가 잘못됐음을 알 수 있고 이는 모든 노동자를 더 착취하고 유럽국가의 통합과 연대를 위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독일은 산업국이었다. 전후복구 기간동안 지원을 많이 받아 유럽에서 수출주도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전쟁 직후 독일은 유럽에서 냉전의 정치적 전장이었다. 이러한 독일의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1953년 미국, 영국, 프랑스로부터 대규모 외채를 탕감받았다. 현재 그리스는 독일에게 과거 독일이 받았던 외채 탕감과 조정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1990년, 독일의 통일로 수출경쟁력이 한층 더 높아졌다. 독일은 경쟁국과는 달리 동독에서 교육 받은 저임금 노동력이 투입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동독의 노동자는 서독 노동자의 임금상승을 막는 압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기업에게 큰 이득이 되었다. 동독의 재개발과 소비증가로 서독 기업에게 드러나지 않았던 케인스주의적 보조금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현재 유로존 내의 재정적자제약으로 가능하지 않다. 서독의 세금이 동독으로 이전되었지만 그 대가는 서독의 건설기업과 상품기업들의 주머니를 채웠다.
1999년 독일은 유로를 채택하면서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 마르크화에서 유로로 전환하면서 화폐 가치가 하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경제력이 약한 남유럽 국가가 단일화폐지역으로 묶이면서 독일에서는 화폐 가치가 하락했고 남유럽국가에서는 화폐 가치가 상승했다. 그 결과 독일 상품이 유로존 내외부 경쟁국의 상품보다 가격이 낮아졌다. 독일의 수출액은 1999년 4,680억 유로에서 2010년 1조유로로 두배 이상 증가했다. 독일은 흑자를 보는 동안 유로존 내의 다른 국가는 무역적자가 늘어났고 부채가 증가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듯 탄탄한 기반과 다양한 경제부양책이 있었던 독일은 2005년 긴축정책을 채택했고 유로존 내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더 많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개혁 이전 독일은 생산성이 높았기 때문에 다른 유로존 국가보다 임금 수준이 높았다.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면서 실질 임금을 삭감하는 긴축정책 채택은 마치 헤비급 권투선수가 웰터급 권투선수와 경기하기 위해 체중을 감량하는 것과 같았다.
긴축정책이 산업이 약하고 유로화로 묶인 남유럽 국가 경기 회복에 “쓴 약”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오히려 긴축정책은 경제성장을 담보로 더 많은 부채를 만들어내는 독이다. 원월드포럼의 아르민 봅시엔은 “2008년 경제위기 직후에 미국처럼 유럽도 대출을 통해서 경제를 부양하고자 했다. 미국은 계속 같은 정책을 썼지만 유럽은 곧 긴축정책으로 전환했다. 그 결과 미국은 GDP 가 성장하지 않았지만 유럽에서는 소폭 성장했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긴축정책은 독일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에게 독이며 유럽의 통합을 위협한다. 경쟁의 논리는 파괴적인 악순환이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노동자는 더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해야 한다. 다른 국가보다 법인세, 임금, 사회복지를 삭감해야지만 이길 수 있다. 노동자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동안 기업은 배를 불린다. 연대는 사라지고 격렬한 경쟁은 늘어난다.
유로존 내 독일 패권
독일은 수출경쟁력으로 세계 최대 무역 흑자국이 되었고 유로화는 안정적인 통화가 되었다. 독일은 안정적인 통화와 자본이 있었기 때문에 총 유럽중앙은행(ECB) 출자금의 단일 최대 금액인 18%를 출자하면서 ECB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되었다. 공동화폐에 참가하는 조건으로 독일은 ECB가 가격안정화에 집중하도록 요구했다. 이는 독일의 마르크화 정책과 일치한다. 또한 독일은 제일 채권국으로 ECB의 통화정책에 계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결과 독일은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유로존 국가 경제에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번영의 대가
독일 경제의 상대적인 번영과 낮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독일 노동자는 긴축정책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독일 내의 불평등은 긴축정책을 채택한 이후로 심화되어 유로존에서 부의 불평등이 가장 높은 국가가 되었다. 2005년 독일의 실업보조금 긴축정책 개혁으로 실업급여가 삭감되고, 고용주는 보조금을 받고 호황기에 노동자를 고용하고 불황기에 쉽게 해고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노동자의 생계와 국민의 세금을 이용해 착취를 더 쉽게 만들었다.
시리자의 반긴축정책을 지지하는 독일 정당인 좌파당의 하인즈 비에르바움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독일은 매우 모순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일부 국민에게는 아주 좋은 상황이다. 특히 자동차 산업의 노동자는 잘 나가고 있다. 하지만 서비스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상황은 좋지 않다.” 노동개혁으로 대부분 서비스 부문에서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가 급속하게 늘어났다. 독일 노동자 5명 중 한명은 한달에 450 유로를 받는 파트타임 일을 하고 있다. 이중 3분의 2는 파트타임이 유일한 일자리이다. 이런 고용 불안정은 높은 이윤을 내는 수출품 생산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이런 기업들도 안정적인 정규직과 호황기에 쉽게 고용하고 불황에는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구성한다. 예를들어, BMW 라이프치히 공장 직원들은 정규직이 있고 경기에 따라 유연하게 쓸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 결과 정규직이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일하면서 노동조합 가입률이 낮아졌고 단체교섭력이 약해져 정규직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불안정이라는 칼을 들이대면서 임금동결이나 노동조건 악화에 순응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 결과 2000년대 초반부터 독일의 실질임금은 정체되었다.
변화의 씨앗
사회운동은 변화의 씨앗을 심을 수 있도록 땅을 고른다. 올해 독일에서 역사적인 시위의 물결이 일었다. 35만일 가량의 작업이 파업으로 진행되지 않았고 이는 2014년에 비해 두 배 2010년에 비해 10배가 증가한 수치이다. 대부분 긴축정책으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공공서비스 부문에서 파업을 했다. 3만 4천명의 조합원이 있는 철도기관사노동조합은 인접국가의 노동자에 비해서 임금이 낮아 독일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파업에 돌입했다. 6백만여명의 승객은 발이 묶였고 60만톤의 원료 수송도 되지 않았다. 철도기관사노동조합은 5%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노동조건 개선, 그리고 기관사가 아닌 노동자를 조직할 권리를 요구했다. 4월에는 만명의 우체국 노동자들이 임금을 끌어내리는 일자리 아웃소싱에 반대해 21년만에 첫총파업을 단행했다. 병원 노동자들도 4일간 독일 역사에 남을 대규모 파업을 했다. 병원 노동자들은 병원 노동자-환자 비율 개선을 요구했다. 유치원 교사도 교육자로 인정 해줄 것과 임금 인상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이런 투쟁은 산별 임금과 노동조건 투쟁 그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노동자의 삶에서 지속적인 승리를 하기 위해서 자본과 공동번영이라는 개념을 깨부서야 한다. 그래야만 세계 경쟁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긴축정책이 필요하다는 자본주의자의 주장에 면역력이 생긴다.
모두를 위한 번영
블록큐파이 운동은 모두를 위한 번영을 목표로 한다. 대부분 청년이 참가하고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그리스와 연대하고 그리스뿐만 아니라 독일, 그리고 모든 유럽인들과의 연대를 표한다. 이 운동은 2012년에 2만명의 사람들이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위해 프랑크푸르트에 모였을 때 처음 등장했다. 2012년 이후 매년 시위를 한다. 하지만 블록큐파이 운동이 보내는 유럽과 연대하고 독일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메시지는 경제파업하는 노동조합에 미치지 못했다. 독일이 다른 유럽국의 절망적인 상황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상황이기 때문에 현재 긴축정책을 이끌고 있는 메르켈 정부의 지지도가 높아 블록큐파이 운동은 난황에 직면했다. 하지만 메르켈 정부의 긴축정책은 유로존 내의 소비자의 구매력을 떨어뜨려 수출주도경제인 독일에게 역효과로 돌아올 것이다. 심지어 긴축정책으로 생겨난 고통이 감내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러 유럽 통합에 대한 열망을 압도하게 되면 독일에게 국제경쟁력을 안겨준 유로도 잃게 될 것이다.
전세계 사회운동이 알고 있듯이, 운동이 소강상태에 있을 때 조직은 함께 모여 교육하고, 조직하고, 사람들을 결속시켜야 한다. 비에르바움 교수는 “경제와 사회 발전을 위한 공공투자 프로그램 도입에 중심을 둔 방향으로 정치변화를 만들기 위해서 노동조합과 사회운동이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현재 경제 침체와 세계화 시대에 유럽은 성장 장려와 부의 분배를 기반으로 한 사회민주주의라는 사회협약으로 돌아갈 수 없다. 자본주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넘어야 한다. 원월드포럼의 아르민 봅시엔은 말했다. “우리는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고 포스트 성장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향해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아래로부터 바꿔나가야 한다. 우리는 현재 불만을 가진 민중에게다가가 지역에서부터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교육하고 함께 일해야 한다. 그러면 민중은 입장을 가지고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즉, 희망을 찾을 수 없다면 만들어야 한다.
이 글을 위해 소중한 시간을 내어 통찰력과 지식을 나눠 주신 독일 좌파당의 하인즈 비에르바움 교수님, 원월드포럼의 아르민 봅시엔님, 한신대학교 이해영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신 그레인지의 까르띠니 사몬, 원월드포럼의 아드리아마 스리 아드히아티님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