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의 권력 지적한 보고서... "화이자, 정부 침묵시킬 권리 가져"
전 세계는 아직도 코로나19 팬데믹에 몸살을 앓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각각 2억 4천만명과 4백 9십만명에 달한다. 각국에서는 봉쇄조치를 내리거나 강력한 방역조치를 취하는 등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해왔지만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적으로 확산되면서 팬데믹 종식은 요원해보였다.
하지만 올해 초, 백신 개발과 보급으로 접종이 시작되면서 접종률을 높이는 노력에 각국은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중 화이자 백신은 미국의 제약사 화이자와 독일의 생명공학기업인 바이오엔테크가 공동개발해 2020년 12월 31일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처음 긴급 사용을 승인받았다.
하지만 10월 19일, 미국의 소비자보호단체인 퍼블릭시티즌(Public Citizen)은 짧지만 충격적인 보고서 <화이자의 권력, Pfizer's Power>를 발표했다. 퍼블릭시티즌은 미국의 비영리소비자보호단체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기업의 권력남용에 저항하며, 정부가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이번에 발표한 보고서는 화이자가 알바니아, 브라질, 콜롬비아, 칠레, 도미니카공화국, 유럽집행위원회, 페루, 미국, 영국과 맺었던 계약서를 입수해 분석했다.
보고서에서는 화이자가 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불공정 계약을 맺어왔으며, 자사에게 유리한 조항을 강압적으로 추가하거나 주권을 침해하는 내용까지 포함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퍼블릭시티즌은 보고서에서 이러한 내용을 6가지로 정리했다.
다음 내용은 보고서에 소개된 내용을 일부 요약한 것이다.
1. 화이자, 정부를 침묵시킬 권리를 갖다
브라질 정부는 올해 초 화이자와의 협상에서 화이자가 "불공정하고 권력을 남용하는" 계약 조건을 주장했다고 비판했지만, 어쩔 수 없이 "주권 면제(한 국가의 국내법원이 타국이나 타국의 재산에 대해 재판관할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국가를 서로의 재판관할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국제법규칙)를 포기할 것, 백신 배송이 늦어도 화이자에 벌금을 부과하지 않을 것, 분쟁이 생길 경우 뉴욕법에 따라 비밀리에 진행되는 민간 중재를 통해 해결할 것, 민사소송에 대해 화이자에 배상할 것" 등의 불공정한 계약 조건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한 계약서에는 브라질 정부가 화이자와의 사전 서면 동의 없이 화이자와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거나 "계약과 계약 조건에 대한 어떠한 내용도 공개적으로 발표할 수 없다"는 추가 조항도 포함되었다. 이러한 조항은 유럽연합과 미국 정부와의 계약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2. 화이자, 기부를 통제하다
브라질 정부와의 계약을 보면 화이자가 백신 공급을 통제한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브라질 정부는 다른 국가로부터 화이자 백신을 기부 받을 수도 없고 화이자의 허가없이는 다른 곳에서 구매할 수도 없다. 또한 브라질 정부는 화이자의 허가 없이 자국 밖으로 백신을 기부할수도, 수출할수도, 반출할 수도 없다. 이 조항을 어길 경우, "중대한 물리적 침해"로 간주해 화이자는 일방적으로 즉시 계약을 종료할 수 있고 받지 못한 백신 계약 물량에 대해서도 브라질 정부는 대금을 지불해야 한다.
3. 화이자, 자체적으로 "지적재산권 포기"를 확보하다
퍼블릭시티즌의 보고서에서는 화이자의 최고경영자인 알버트 불라가 지적재산권의 강력한 옹호자임을 설명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가 백신 생산을 강화하기 위한 지적재산권 공유에 대한 노력을 "말도 안되며", "위험한" 발상이라고 언급했고, 바이든 미대통령이 WTO 무역관련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에서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지적재산권 포기를 지지한다는 결정을 "매우 옳지 않다"고 말하면서 민간부문의 지적재산권을 옹호했다.
하지만 이러한 화이자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입장은 각국과 맺은 계약 조건에서 보여지는 입장과 상반된다. 백신을 개발하고, 제조하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지적재산권과 관련해 생길 수 있는 위험과 책임을 각국 정부에게 떠넘긴 것이다. 예를 들어, 콜롬비아에서 다른 백신 제조사가 화이자를 특허권 침해로 소송할 경우, 계약에 따르면 콜롬비아 정부가 모든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4. 화이자, 공공 법정이 아닌 민간 중재자를 통해서 분쟁을 해결하다
화이자와 정부간의 분쟁이 생길 경우 계약서에 명시된 해결방안을 보자. 예를 들어 영국 정부와 분쟁이 생겼다고 가정했을 때, 분쟁 해결은 영국 정부가 아닌 계약 조건에 따라 권한은 부여받은 3명의 민간 중재자가 최종 결정을 내린다. 이런 중재 과정은 국제상업회의소(ICC)의 중재 규칙에 따라 진행된다. 하지만 민간 중재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중재 과정과 결정된 사항 모두는 비밀에 부쳐진다.
하지만 알바니아의 계약서 초안과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도미니카공화국, 페루 정부가 합의한 계약서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ICC 중재의 대상이 되는 계약상의 분쟁이 일어날 경우 뉴욕법의 적용을 받게 되어 있다. 보고서는 민간 중재는 힘의 불균형을 그대로 반영하며 화이자와 같은 제약기업이 국내의 법적 절차를 우회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기업의 권력은 강화되고 법치주의는 약화되는 결과를 낼 수 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5. 화이자, 국가 자산을 노릴 수 있게 되다
앞서 설명했듯이 화이자는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도미니카공화국, 페루 정부에 주권 면제 포기를 요구했다. 특히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를 예로 들면 정부는 중재 판정을 집행하기 위해서 "정부나 정부 자산이 소유하고 있거나 미래에 획득할 수 있는 모든 면제의 권리를 포기한다." 또한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도미니카공화국과의 계약에는 "국가 자산에 대한 예방적 압류에 대한 면제" 포기도 포함되었다. 화이자는 중재판정 결과 보상 받아야하지만 정부가 지불하지 않을 경우 법원에 요청해 국가 자산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계약 조항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6. 화이자, 주요 의사결정의 결정권을 갖다
마지막으로 백신의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 생길 경우다. 알바니아의 계약 초안과 브라질과 콜롬비아와 합의된 계약서를 보면, 화이자는 자사가 결정권을 갖는다는 원칙에 기반해 배송 일정을 조정할 수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이러한 일방적인 화이자의 결정권에 강력히 반대해 결국 화이자는 문제가 되는 조항을 삭제하기로 동의했지만 다른 국가에서는 이러한 협상이 가능하지 않았다. 콜롬비아 정부의 경우, 합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콜롬비아 정부는 "공급업체의 단독 재량권으로 공급업체와 계열사가 책임 청구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을 수 있음을 공급업체가 만족하는 방식으로 입증"해야 했다. 화이자가 주요 결정권을 갖는다는 것은 백신 협상에서 권력의 불균형을 보여주며, 어떠한 경우에도 해당 기업이 화이자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퍼블릭시티즌은 보고서를 마무리하며 각국 정부는 화이자의 권력 남용에 대항해야 하지만, 특히 미국정부가 화이자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의 지적재산권 면제를 통해 다수의 제약 제조업체가 백신을 생산하면 화이자가 휘두르는 권력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지난 20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화이자는 이번 보고서와 관련해 "우리는 어떤 나라에서도 외교, 군사, 문화적으로 중요한 자산에 간섭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고 한다.
모두에게 공평한 백신 공급을 위해
세계보건기구 통계에 따르면 전세계 47.9%가 백신 접종을 완료했지만 여전히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게 백신을 접종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저소득 국가의 경우 1차 접종을 포함한 접종률은 2.8%밖에 안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퍼블릭시티즌의 보고서는 인간의 생명보다 자사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듯한 화이자의 민낯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모두가 위기에 직면해 있는 지금, 그 어느때 보다도 국제적인 연대가 필요한 때이다.
각국 정부와 시민사회의 연대를 통해 코로나19 백신 지적재산권 면제를 이뤄내야 한다. 모두를 위한 백신이 생산되고 보급되어, 접종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