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진보포럼] 헌법 개정안 국민투표 부결 이후 칠레의 미래는?
인터뷰: 송대한(ISC, 네트워크팀장)
편집: 매튜 필립스(ISC, 네트워크팀)
지난 9월 4일, 칠레 국민투표에서 피노체트 시절의 헌법을 대체할 새로운 헌법이 62%의 반대로 부결되었다. 부결의 이유는 무엇이며, 칠레 좌파의 향후 과제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국제전략센터는 10월 27일 칠레의 활동가이자 정치인, 언론인인 타로아 수니가 실바를 초청하여 진보포럼을 진행했다. 이날 인터뷰는 국제전략센터 송대한 네트워크팀장이 진행했다.
타로아 수니가 실바는 글로벌트로터의 기자로 활동 중이다. 또한 “21세기 전쟁의 소용돌이 베네수엘라”의 공동 편집인이자 아르고스 - 이주 및 인권 감시기구의 코디네이팅 위원회 소속 활동가이다. 그리고 팔다스-R이라는 여성의 성적 권리와 재생산권을 다루는 공동체의 공동 설립인이기도 하다. 인터뷰는 내용의 명확성과 글의 간결함을 위해 편집했다.
송대한: 미국이 지원한 쿠데타를 일으킨 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1973년부터 1990년까지 칠레를 통치했으며, 현행 헌법은 그가 재임 중이던 1980년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2019년에 들어서 시위대가 새로운 헌법 제정을 사회적 의제로 만들었다. 그리고 2020년 10월에 있었던 국민투표에서 78%의 국민이 새로운 헌법의 초안을 작성하는 국가 기구의 설립에 동의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헌법 초안은 올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고 말았다. 2021년 5월에 155명 정원의 제헌의회가 구성되었고, 학생운동 지도자 출신의 후보가 56%의 지지율로 칠레 대선에서 당선되면서 진보 쪽으로의 흐름이 강해졌다. 그렇지만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피노체트를 지지하던 후보가 1차 투표에서 44%(365만 표)를 득표했다는 사실이다. 현재 칠레 사회를 간략하게 소개해 줄 수 있는가? 칠레 사람들은 피노체트가 남긴 유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타로아: 일단 피노체트의 독재정권이 어떻게 끝났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선거로 독재정권을 끝냈다. 그런데 사실 독재정권은 거리의 투쟁 없이는 절대 끝낼 수가 없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그 선거에서 약 56%의 국민이 피노체트 세력에 반대하는 표를 던졌다. 반대로 말하면 44% 정도가 독재 세력을 옹호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피노체트식의 정책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44%는 세바스티안 카스트(2021년 대선 1차 투표에서 승리한 친피노체트 극우 인사로, 결선 투표에서 가브리엘 보리치에게 패했다. 카스트는 2002년부터 2018년까지 칠레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의 득표수와 비슷하다.
따라서 칠레 사회정치 세력의 구성이 크게 변하지 않았고, 우파도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말 그 수가 예전과 다름이 없다. 이는 우파의 행동에 면죄부가 주어진 것의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자신이 우파임을 거리낌 없이 밝히고, 우파에 표를 던진다. 독일의 경우 나치에 가담했던 가족이 있으면 이를 매우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우파는 좌파를 상대로 피노체트 시절에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을 쓴다. 그러다 보니 캠페인도 예전과 같다. 이것이 피노체트가 남긴 유산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극우파여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1970년대처럼 좌파에 대한 망상을 품고 있다. 냉전 시기의 좌파와 우파에 관한 생각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70년대처럼 공산주의자를 혐오하고 두려워한다.
송대한: 새로운 헌법 초안은 170페이지로 380개의 조항이 있다. 여기에는 주거, 교육, 맑은 공기, 물, 식량, 위생, 인터넷 접근성, 연금 수당, 무료 법률 자문 및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돌봄 등 100여 개의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또한 기후변화에 맞서고, 삶의 모든 측면에서 칠레 국민이 자신의 정체성을 선택할 권리를 보호하며, 칠레 상원을 폐지하고 다민족 국가로 거듭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우선 새로운 헌법 초안을 전체적으로 이야기하고 구체적인 요소를 다뤄보고자 한다. 피노체트의 1980년 헌법의 경우 54페이지로 129개 조항밖에 없었다. 그런데 새로운 헌법 초안은 이보다 조항이 훨씬 많아졌다. 이렇게 헌법 조항이 늘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타로아: 국정 운영을 효과적으로 쇄신하고, 운에 맡기기보다는 새로운 구조를 구체적으로 만들려면 이렇게 조항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정의 빈 곳을 국가가 채우지 않으면 민간 부문이 이를 채우게 된다. 그래서 새 헌법 초안에서는 국가의 책임과 존재가 더 커졌고, 이를 요구하기 위해서도 헌법을 더 구체적으로 작성했다.
송대한: 다민족 국가 관련 제안이 상당히 논란이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원주민과 광산 기업 간 갈등이 심한 남부 지역에서 새 헌법에 반대했다. 칠레를 다민족 국가로 재지정하자는 제안의 배경과 동기를 더 설명해 달라.
타로아: 좌파 진영에서 새 헌법에 관해 제대로 캠페인하지 못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새 헌법 초안의 다민족 국가 조항으로 인해 생기는 변화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대중의 이해를 돕고자 했던 조항 중 하나가 바로 원주민 정의(Indigenous Justice) 관련 조항이었다. 특히 원주민 정의를 존중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지만 이 지점을 이해하기보다는 원주민 정의가 국가적인 정의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라고만 받아들였다. 좌파 진영은 이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방법을 몰랐다.
또한 칠레 사회는 인종차별적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성이 마푸체(Mapuche)인 사람들은 성을 아예 바꿨다.
마푸체족은 아라우카니아 지역에 포함된다. 스페인 식민지이던 시절, 이 지역은 마푸체족의 영토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칠레가 독립하고 나서는 이것이 더 이상 인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마푸체족 영토에서는 언제나 우파가 승리한다. 이번에 새 헌법 초안이 통과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다민족 국가를 둘러싼 갈등이었다.
송대한: 국민의 78%가 새로운 헌법을 원한다고 했고, 이를 현실화하겠다고 공약했던 보리치 대통령이 당선된 상황에서, 새로운 헌법이 부결된 이유에 관해 좌파 진영은 어떤 입장인가? 임신 후반기 낙태와 관련된 오해를 비롯해 새 헌법이 주택 소유를 금지할 것이라는 뉴스 등 가짜 뉴스가 국민투표의 부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다. 이런 가짜 뉴스가 판을 치게 된 요인은 무엇인가?
타로아: 칠레 언론은 우파가 장악하고 있다. 그들은 새 헌법 제정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이를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리고 좌파는 새 헌법 초안이 마련되고 6개월이 지나서야 캠페인을 시작했다.
송대한: 그렇다면 새 헌법의 부결에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무엇이었는가? 헌법의 성향이 왼쪽으로 치우쳤는가, 아니면 이 자체가 시기상조였는가? 그것도 아니면 그저 정보 전달이 불완전하여 오해가 발생한 결과인가? 가짜 뉴스도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번 일로 칠레 좌파는 어떤 교훈을 얻었는가?
타로아: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새 헌법에 반대표를 던진 사람들은 칠레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유권자이다. 몇 년 전, 칠레에서 자발적으로 유권자로 등록한 사람만이 투표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다가 선거법이 바뀌어서 유권자 등록이 자동으로 되고, 투표를 자발적으로 하는 것으로 되었다. 그랬는데 이번 국민투표와 관련하여 정부는 투표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등록된 유권자가 의무적으로 투표를 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칠레 역사상 처음으로 선거권이 있는 모든 유권자가 투표에 나서게 되었다. 그래서 이전에는 투표를 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참여했다. 상황이 이러했기에 새롭게 등장한 유권자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가짜 뉴스가 투표 결과에 미친 영향보다는 새롭게 등장한 유권자층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이 (부결의)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칠레 좌파는 자신들의 진보적 아이디어가 칠레 대중을 대변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과정에서 칠레 사회 전반이 생각보다 더 보수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정도로 많은 사람이 국민투표에 참여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높은 투표율은 좌파 진영이 이를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그렇기에 나는 새 헌법을 “진보”한다고 부르는 것이다.
송대한: 이번에 새 헌법 초안이 부결되었지만, 많은 칠레 국민은 여전히 피노체트 시절 헌법을 대체할 새로운 헌법을 원한다. 보리치 대통령은 정부가 이 과정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헌법 제정 과정은 어떨 것으로 보는가? 새로운 헌법의 제정과 관련하여 칠레 좌파는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타로아: 다시 새로운 헌법 제정이 언제 시작될지 명확히 정해진 것은 없다. 그러나 정부에서 특히 강조한 것이 성평등과 민주적 선거이다. 일단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칠레 좌파는 깜짝 패배를 당했고, 그에 대비가 되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국민투표가 부결되었을 때 대안을 세우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칠레 대중은 이 문제를 계속 토론할 것이다. 우리는 칠레 공산당과 손을 잡았고, 이는 프렌테 앰플리오(칠레의 범좌파 연합)와는 다르다. 현재 많은 것이 시작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출발선에 선 것이며 진심으로 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