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대항마, 코뮌
글: 정도영(콘텐츠팀, ISC)
번역: 심태은(번역팀, ISC)
지금보다 더 절망적인 세상이 되어버린 가까운 미래. 실업, 파시즘, 계속되는 전쟁은 이제 국가 차원에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전이되었다. 권력 유지가 절실한 미국은 이란을 침공하여 전 세계적인 기아를 야기한다. 그러나 M.E. 오브라이언은 소설 “모든 것은 모두를 위해”(Everything for Everyone) 속 필사적이고 굶주린 뉴요커들은 전 세계 최대 식량 분배의 중심지인 헌츠 포인트 마켓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반란 세력은 헌츠 포인트를 뉴욕 코뮌으로 바꿔버리며 전 세계적인 혁명을 촉발하고, 결국 자본주의를 무너뜨린다.
이러한 오브라이언의 혁명 후 코뮌의 모습은 허구이기는 하지만, 오늘날 현실 세계의 코뮌은 새 세상을 만들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지난 12월에 오브라이언은 뉴욕 피플스 포럼에서 주최한 토론회에 칼리 아쿠노, 존 벨라미 포스터, 크리스 길버트 등과 함께 참석하여 베네수엘라의 코뮌이 급진적인 새 경제 모델로 어떻게 미국의 제재와 국내 모순을 극복하는지를 다룬 “코뮌, 이판사판”(Commune or Nothing)이라는 글에 관해 토론했다. 코뮌 관계자와 한 심층적인 인터뷰와 코뮌 이론에 관한 명확한 분석을 바탕으로 길버트는 베네수엘라가 강력한 미국의 금수 조치와 경제 위기 속에서도 세계 노동자 계급에 끊임없이 영감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코뮌은 노동자와 지역 사회에 생산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권한을 주어 21세기 사회주의 운동을 고민하고 조직하는 데 필요한 반헤게모니 공간이 되고 있다.
볼리바리안 혁명
길버트는 “21세기 사회주의”는 국가가 참여 민주주의적 조직을 추진하는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던 차베스에게서 유래했다고 말했다. 초기에 베네수엘라 정부는 협동조합으로 실험에 나섰으나, 너무나 많은 협동조합이 정부 보조금을 수급하려는 자본주의적 기업이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차베스는 국영기업의 노동자 관리에 의존했지만, 이 역시 곧 관료주의화 되었다. 원주민 역사에 기반한 공동체적 전통과 마룬족의 저항에서 영감을 얻은 차베스는 마침내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화를 위한 수단으로 코뮌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베네수엘라 정부의 주요 전략은 활황이던 석유 경제를 통해 거둔 이익으로 공동체 경제의 확장을 지원하도록 법적 체계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2006년에 베네수엘라 정부는 민주적 심의 위원회인 공동체 위원회를 건설하여 주민들이 직접 공동체의 요구가 무엇인지 토론하여 파악하고, 이를 국가와 공동체의 자원을 동원하여 해결하도록 했다. 2010년에 베네수엘라 국회는 “코뮌 기본법”을 제정하여 공동체 위원회가 모여 사회적 재산인 기업을 설립하고 관리할 권한이 있는 공동체 의회를 구성하도록 했다.
공동체 사회주의 이론은 차베스와 이슈트반 메자로스의 만남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메자로스는 마르크스에 기반한 “자본을 넘어”(Beyond Capital)라는 책에서 상호 연결된 자본의 속성이 경쟁 논리, 영구적인 축적, 노동의 소외를 재생산하는 “대사” 체제가 자본의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소련이 자본주의로 신속하게 붕괴할 수 있었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메자로스는 자본주의와 자본의 논리를 구분했다. 소련은 재산을 사회화하고 이를 국가에서 통제했지만, 자본의 논리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국가 관료가 생산 과정을 통제하기는 했지만, 생산은 여전히 노동자의 잉여를 착취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소련이 붕괴했을 때, 생산 수단을 통제하던 국가 관료들은 이를 소유하는 자본가로 빠르게 변신했다. 이 붕괴를 목도한 메자로스는 단편적인 개혁을 통해 자본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사회주의에서는 전혀 다른 논리를 재생산하는 것이 필요했다.
차베스와 메자로스의 토론 결과 자본의 논리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코뮌이 제시되었다. 두 사람은 공동체의 이해와 요구에 부합하며 노동자가 주도하는 생산의 사회적 조직과 사회적 소유에 기반한 체계를 코뮌이라고 정의했다. 메자로스는 민주적인 계획과 공동체의 이해를 충족하는 방향성을 가진 공동체 체제가 이윤 추구를 동기로 삼는 자본주의와는 정반대의 대사 작용을 만들어 내리라고 생각했다. 메자로스에게서 영감을 받은 차베스도 코뮌을 실현하고 코뮌에 권한을 부여하기 위해 법적 인프라 건설을 추진했다.
그러나 코뮌법이 통과된 지 1년이 지나도 등록된 코뮌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물론 몇 가지 성공 사례가 나중에 나타나기는 하지만, 강력한 상품 주기 때문에 석유로 벌어들인 이윤으로 사회 서비스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코뮌을 건설하는 복잡한 과정보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렇지만 이후 일련의 위기를 겪으며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위기와 기회
유가 하락, 베네수엘라 엘리트 계층의 경제 사보타주, 미국의 금수 조치 등 삼중고로 베네수엘라는 1989년(IMF 긴축 정책으로 카라카소 봉기 발생) 이래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이에 마두로 정부는 일각에서 “중국 모델”이라고 부르는 조치를 채택했다. 민간 분야를 위한 자유경제구역과 대지주와의 협상을 통해 국가 생산력을 높이려 한 것이다. 길버트는 농촌 부르주아지와의 관계 개선이 베네수엘라 정부와 코뮌 간의 긴장도를 높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규모의 위기는 코뮌의 새로운 조직 활동을 불러왔다.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유명한 코뮌인 엘 마이살이 선봉에 섰다. 농장 노동자와 국영 농기업(Corporación Venezolana de Alimentos, CVAL) 간의 토지 투쟁 과정에 건설된 엘 마이살은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전투적이고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코뮌이 되었다. 경제 위기로 석유 보조금이 줄어들자, 엘 마이살은 대중의 힘에 의지했다. 지역 농민들에게 신용과 물질적 지원을 제공하고, 농민들은 이런 빚을 갚기 위해 자기가 키운 작물의 일부를 내놓았다. 이 시기에 엘 마이살은 라라주에 있는 유휴지를 점거하여 버려진 캠퍼스와 국영 돼지 농장을 접수했다. 위기에 맞선 공격적인 대응으로 엘 마이살은 소득을 만회했을 뿐만 아니라 불리한 조건과 결핍 속에서도 코뮌이 성장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성공에 힘입어 엘 마이살은 베네수엘라 통합사회주의당(PSUV) 안팎에서 베네수엘라의 코뮌이 좌파로 집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21년에 앙헬 프라도 엘 마이살 대변인은 PSUV 후보로 시몬 플라나스 시장에 당선되었다. 프라도는 당내 경선에서 부패한 당시 시장을 누르고 올라왔다. 이듬해에 엘 마이살에서는 베네수엘라 코뮌의 전국 회의인 코뮤나즈 유니온의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전국 50개의 코뮌에서 파견된 200여 명의 대의원들이 코뮌을 위한 국가적, 정치적, 경제적 인프라를 건설하고 베네수엘라 정부와 건설적이고 비판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정치 강령을 통과시켰다.
국제적 함의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 경험이 베네수엘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볼리바리안 혁명은 이와 유사한 미국의 코뮌에도 영향을 주었다. 칼리 아쿠노 잭슨 협동조합(미시시피주 잭슨 시) 공동 창립자는 아프리카계 베네수엘라인 공동체를 통해 코뮌 활동가들에 가장 먼저 접촉했다. 잭슨 시의 활동가들은 자본주의의 관리가 아니라 모순을 심화할 목적으로 공동체 의회를 전략으로 삼는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여기에 흑인 급진주의 사상을 결합하여 민중 총회와 패니 루 해머 공동체 토지신탁 등 코뮌 같은 기관을 통해 자본주의 헤게모니에 맞설 것을 촉구하는 잭슨-쿠시 계획을 수립했다.
잭슨 시의 민중 총회는 공동체 의회처럼 공동체 구성원이 공동체에 영향을 주는 문제를 중심으로 스스로 조직하고 공공 계획에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 의회이다. 패니 루 해머 공동체 토지신탁(CLT)에서는 토지의 상당 부분을 사회적 통제에 맡긴다. CLT를 통해 잭슨 협동조합은 사회적 주택 사업, 노동자 협동조합, 자유 농장, 디지털 제작에 특화된 공방을 건설했다. 잭슨 시 활동가들은 잭슨 시의 방치된 공동체의 요구를 해결하는 노동자 협동조합으로 구성된 탈자본주의 사회인 “연대 경제”의 핵심이 민중 총회와 CLT라고 여긴다.
의회와 경제 조직도 좌파가 국가 권력에 도전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연대 경제를 위한 안정적인 시장을 구축하는 데 시 정부가 중요하다는 점을 파악한 잭슨 시 활동가들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이중 권력 기구를 활용하여 지방 선거에 나서고자 한다.
잭슨 협동조합은 현재의 투쟁에서 동떨어진 유토피아 건설 사업이 아니라, 공동체적 관행을 사회 운동에 통합하는 수단이다. 이들은 최근 사업에서 계급 투쟁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집단 소유와 민주적 관리가 임금과 복지를 위한 투쟁과 노동자 관리라는 더 담대한 전략을 연결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협동조합과 노동 운동의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오늘날의 코뮌 건설
베네수엘라의 위기는 좌파 내에서 수단과 목적 간의 관계에 관한 토론을 재점화했다. PSUV를 선도하는 정파에서는 사회 변혁을 이루기 전에 생산력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지만, 코뮌 활동가들은 위기를 활용하여 대중에게 공동체를 향하는 길만이 베네수엘라의 사회경제적 한계와 모순을 해결할 방법이라는 점을 다시금 확신하게 했다. 잭슨 협동조합도 미국의 좌파 및 진보 세력과 유사한 토론을 했으며, 현재의 투쟁을 체제 변화라는 더 큰 전략과 연결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든 국가의 코뮌 활동가들은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만듦으로써 혁명 과정이 자본의 논리에 도전하고 종국에는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유토피아적인 사업, 서구식 사회민주주의, 개발주의는 자본주의에서 공존할 수 있지만, 코뮌은 그렇지 못하다. 공동체의 이해와 요구를 충족하기 위한 일터의 민주적 통제는 이윤 극대화와 노동의 소외라는 자본주의의 핵심 원칙과는 정반대이다. 사회주의로의 전환이 한 번에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이 과정은 현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