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죽이는 총탄보다 값싼 이름 없는 사람들 (2024년 9호 뉴스레터)

* 본 기사는 Tricontinental: Institute for Social Research의 “The Nobodies Are Worth More Than the Bullet That Kills Them: The Ninth Newsletter (2024)”를 번역한 글입니다.

번역: 이재오(번역팀, ISC)

감수: 심태은(번역팀, ISC)

아마르 부라스 (알제리), 24°3′55″N 5°3′23″E #2, 2012

안녕하세요

트라이컨티넨탈: 사회연구소에서 인사드립니다.

2월 20일,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알제리가 제기한 가자지구 휴전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끔찍한 일을 맡았습니다. 아마르 벤자마 유엔 주재 알제리 대사는 이번 결의안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15개 이사국 모두의 대화를 통해 작성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의안을 연기하도록 요구받았고, 알제리는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벤자마 대사는 “침묵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지금은 행동의 순간이자 진실의 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ICJ)가 1월 26일 명령에서 가자지구를 향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집단 학살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하자, 알제리는 UN 안보리를 통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스라엘은 10월 7일부터 가자지구에서 30,0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했으며, 이 중 13,000명이 아이들입니다. 집단 학살을 중단하라는 ICJ 명령이 발표된 1월 26일 이후 이스라엘은 3,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을 더 살해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지정하는 소위 안전 구역으로 피난했다가 다시 폭격당하기를 수개월 동안 반복한 나머지 가자지구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150만 명이 현재 라파에 봉쇄되어 있습니다. 라파는 가자지구 최남단 지역이며 10월 7일 이전 인구는 27만 5,000명이었으나, 현재는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 되었고, 지금도 이스라엘의 폭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절박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토머스 그린필드 대사는 휴전 결의안이 하마스를 규탄하지 않으며 인질 석방 교섭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주장하며, 미국은 이를 지지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장준 유엔 주재 중국 대사는 이에 대해 거부권은 “계속되는 학살에 청신호나 다름없다”고 말하며 “가자지구에서 전쟁의 불길을 꺼야만 지역 전체가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알라 알바바 (팔레스타인), 난민촌 21호, 2021

토머스 그린필드 대사가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함과 동시에 미국은 이스라엘에 140억 달러 규모의 군사 원조를 제공하고자 하였습니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래로 미국은 매년 40억 달러의 군사 원조를 포함하여 총 3,000억 달러가 넘는 원조를 제공했고, 2023년 10월 7일 이래로 수백억 달러를 추가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2월 1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회담에서 집단 학살을 규탄하기는커녕 “하마스를 격퇴하고 이스라엘의 안보를 장기적으로 보장하는 공동의 목표”를 다짐했습니다. 토마스 그린필드의 거부권 행사에는 이유가 있던 것입니다. 

마츠이 후유코(일본),  종말에 흩어진 왜곡, 2007 

거부권은 안보리에서 지금까지 300회 가까이 사용되었습니다. 1970년부터 미국은 다른 상임이사국(중국, 프랑스, 러시아, 영국)보다 거부권을 훨씬 더 자주 사용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건국되었을 즈음, 미국은 처음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을 비호하기 위해 거부권을 자주 행사했고, 이후에는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행위에 대한 그 어떤 비판도 틀어막기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1988년부터 지금까지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 33번이며, 그중 27번이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0월 7일 이래로 미국은 이스라엘이 집단 학살을 중단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세 차례 거부(10월 18일, 12월 8일, 2월 20일)하였습니다.

미국이 이렇게 자주 행사하는 ‘거부권’은 사실 유엔 헌장(1945)에 없습니다. 그러나 헌장 27조 3항에서 안보리에서 의사결정이 “상임이사국의 동의 투표를 포함한 9개 이사국의 찬성투표로 이루어진다”고 명시합니다. 여기서 “동의 투표” 부분이 “거부권”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수십 년간 수많은 유엔 회원국이 안보리가 비민주적이며, 거부권 때문에 더욱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상임이사국에는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 국가가 존재하지 않으며,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인 인도 역시 상임이사국이 아닙니다. P5(5개 상임이사국)는 안보리를 지배해왔을 뿐만 아니라, 결의안에 강제력이 없는 유엔 총회의 중요성을 약화시켰습니다. 

아나 소피아 트리스탄(코스타리카), CO-VIDA, 2020 

세계 질서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평가하기 위해 유엔이 2005년 개최한 세계정상회의에서 리네스 사보리오 차베리 당시 코스타리카 부통령은 “집단 학살, 전쟁 범죄, 인류에 대한 범죄와 심각한 인권 유린에 대해서는 거부권이 폐지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코스타리카는 요르단, 리히텐슈타인, 싱가포르, 스위스와 함께 스몰 파이브(S5)라는 그룹을 만들어 유엔 안보리 개혁을 주장했습니다. S5는 “상임이사국은 집단 학살, 인류에 대한 범죄, 심각한 국제법 위반 행위에 있어서 헌장 27조 3항에 의거한 거부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성명문을 유엔 총회에 제출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성명문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습니다. S5가 2012년에 해체한 이후 27개 국가가 모여 거부권 개혁을 위한 책임, 일관성, 투명성(ACT)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2015년 ACT 그룹은 인도주의 국제법 위반에 대한 유엔 행동 규범을 발표하였고, 2022년까지 123개국이 이에 서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거부권을 가장 자주 사용했던 3개국(중국, 러시아, 미국)은 이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계속해서 긴장을 고조시켰고, 이제는 직접적인 공격의 위협을 보이는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포기할 가능성은 작아보입니다.

유엔 헌장은 전쟁을 막고 모든 인간 생명의 존귀함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조약입니다. 그러나 세계와 인류는 갈라져 있고, 한쪽의 생명이 다른 쪽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차별은 유엔 인권 선언의 위반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평등이라는 인류 공통의 본능을 거스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팔레스타인 아동의 보호는 우크라이나 아동의 보호보다 훨씬 덜 중요한 일로 여겨집니다(NBC 뉴스의 런던 특파원 켈리 코비엘라가 우크라이나 난민이 단순한 난민이 아니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기독교인이고 백인”이라고 보도했던 것처럼요). 인류를 이렇게 국가에 따라 차별하는 행위는 세대와 세대를 건너 대중의 의식에 뿌리를 내립니다.

베니 앤드류스(미국), 눈물의 길, 2005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동지는 포옹의 책(1992)에서 세상을 괴롭히고 우리의 인간적인 마음에 대못을 박는 끔찍한 분단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글의 제목은 “이름 없는 자들”입니다. 

벼룩은 개 한 마리 갖기를 꿈꾸고, 이름 없는 자들은 가난에서 탈출하기를 꿈꾼다. 어느 마법 같은 날에 하늘에서 양동이를 가득 채울 듯 행운이 비처럼 내리기를 말이다. 하지만 행운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하늘에서 내리지 않는다. 이름 없는 자들이 아무리 기우제를 지내고 노력해도, 행운은 이슬조차 내리지 않는다. 왼손이 간지러운 날에도, 오른발로 하루를 시작하는 날에도, 새 빗자루로 시작하는 한 해에도 오지 않는다.

이름 없는 자들은 이름 없는 자들의 아이들이며 아무것도 없는 이들이다. 이름 없는 자들은 아무도 아닌 이들, 이름을 빼앗긴 자들로, 토끼처럼 도망치며 삶 속에서 죽어 나가며 모든 면에서 일그러진 이들이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무언가 될 수 있는 사람들.
언어가 아니라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
종교가 아니라 미신을 믿는 사람들.
예술이 아니라 손재주가 있는 사람들.
문화가 아니라 전설이 있는 사람들.
인간이 아니라 자원인 사람들.
얼굴이 없고 손발뿐인 사람들.
이름이 없고 번호뿐인 사람들.
역사에는 나타나지 않고 지역 신문의 경찰 보도에만 나타나는 사람들.
그들을 죽이는 총탄보다 값싼 이름 없는 사람들.

따뜻한 연대의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 

비자이 프라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