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 희망의 증거를 만들기 위해 모이다 -베네수엘라에서 열린 대안 사회 의제를 위한 세계모임 참가기
황정은 국제전략센터 사무처장
4월 18일부터 20일까지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서 대안 사회 의제를 위한 세계 모임(World Gathering for an Alternative Social Agenda)이 개최되었다. 아메리카민중의 볼리바르 동맹-민중무역협정(ALBA-TCP)과 시몬볼리바르 평화연대 연구소(ISB)가 주최한 이번 행사에는 60여 개국에서 500여 명의 사회운동 활동가, 진보정당 활동가, 그리고 지식인이 참가했다. 필자도 한국을 대표해 행사에 참가했다.
ALBA는 2004년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피델 카스트로 쿠바 수상이 만나 공동성명과 이행합의를 통해 수립되었고, 2006년 볼리비아가 동맹에 가입하고 동맹의 원칙을 보강해서 상호보완과 연대, 협력에 기반한 민중무역협정(TCP)를 체결했다. 현재는 베네수엘라를 포함해 쿠바, 볼리비아, 도미니카 공화국 등 10개국이 회원국으로 있다. ISB는 2020년 자본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연대와 평화에 기반한 새로운 모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국제 연대 강화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행사 첫날은 ALBA-TCP의 사무총장인 호르헤 아레아사의 환영사로 시작했다. 아레아사 사무총장은 힘을 잃어가는 제국주의 국가가 발생시키는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은 민중의 힘뿐이며 그 어느 때보다도 세계 민중이 단결해야 할 시기이기 때문에, 사회적 대안 의제를 토론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며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진 4가지 주제 세미나에서는 ▲인류에게 닥친 위험과 위협 ▲부패한 문명 ▲하나의 제국주의와 하나의 적 ▲공통 프로젝트의 필요성에 관한 내용을 다뤘다. 세미나의 패널로는 베네수엘라 부통령 델시 로드리게스, 아르헨티나의 사회학자이자 정치과학자인 아틸리오 보론, 쿠바의 전 문화부장관인 아벨 프레이토, 국제민중총회(IPA) 사무국의 스테파니 웨더비 등이 참가했다.
이튿날 이어진 행사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직접 진행하는 마무리 세션으로 막을 내렸다. 이 세션에는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전 대통령, 멜 셀라야 온두라스 전 대통령, 브라질 무토지노동자운동(MST)의 지도자인 조앙 페드로 스테딜레 그리고 쿠바 대중교육가이자 의원인 야니스카 루고가 함께 했다.
주제 세미나에서는 타락한 문명인 자본주의는 기후위기와 식량위기, 불평등, 인종차별과 파시즘까지 여러 가지 문제를 발생시켰지만, 책임져야 할 북반구 국가들은 책임을 지거나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저항하는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거나 제재를 가하고 있는 현실을 설명했다. 이에 맞서 풀뿌리 운동으로부터 부패한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실행해야 할 때이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해내야 한다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건설하고자하는 사회의 모습을 규정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중심으로 민중의 힘을 모아야 할 것을 제안했다. 중요한 것은 대안이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민중의 단결을 만들기 위해 현재 주류 언론과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싱크탱크에 맞설 수 있는 정치적인 교육을 강화해야 함을 덧붙였다.
행사 이튿날, 호르헤 아레아사 사무총장은 ALBA-TCP의 원칙과 목표, 그리고 지금까지의 성과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발표했다. ABLA-TCP는 서구 강대국이 자유 무역이라는 이름 하에 남반구 국가의 부를 착취하고 국내 산업 기반을 해치는 자유무역협정(FTA)과는 다른 연대에 기반한 협정이다.
국가 간의 연대에 기반한 무역을 통해 회원국 간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문맹률을 낮추고,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ELAM)을 통해 3만 명의 의사를 배출했고, 서구 주류 언론의 담론에 맞서기 위한 회원국 간의 라디오 네트워크와 언론사인 텔레수르를 세우기도 했다.
ALBA-TCP는 현재 10개 회원국이 있지만 지역동맹에서 국한되지 않고 세계로 확장되어야 한다. 인상적인 점은 ALBA-TCP에는 사회, 정치, 경제 위원회 등 국가 부처 장관이 정기적으로 만나 논의하는 장이 있지만, 사회운동위원회가 핵심임을 강조한 부분이었다. 사회운동은 민중과 직접 소통하며 실제 상황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민중에게 필요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트라이컨티넬탈 사회연구소의 비자이 프라샤드는 초제국주의(Hyper-Imperialism)와 세계의 사회적 대안을 제안했다. 비자이 프라샤드는 '팔레스타인에서는 이미 5만 명이 사망했고 미국과 나토 동맹국이 전세계 국방비의 75%를 차지하면서도 부상하는 중국을 최대 위협이라고 규정하는 위선, 그리고 현재 서구 국가의 지도자들은 실제로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렇게 야만적이며, 부패한 제국주의를 이전과 같은 제국주의라는 용어 설명하기 부족하기 때문에 초제국주의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시대에 민중이 지지하고 적극적인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프로젝트가 필요함을 강조하며, 다른 세계가 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며 공통의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이 대안은 민주주의와 세계 질서, 환경, 금융, 보건의료, 주거, 식량, 교육, 노동, 돌봄, 여성 및 성소수자, 문화와 디지털 세상의 영역에서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대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2편 참조). 하지만 이러한 대안 의제가 문서로만 남아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추진할 사회운동, 진보정당 활동가가 직접 토론을 통해 구체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혁명세력이 집권한 베네수엘라에서 대중의 힘을 계속적으로 모아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볼리바리안 혁명의 핵심이다. 단결한 민중이 있어야 우리가 앞으로 하려는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베네수엘라는 현재 미국이 주도한 여러 가지 경제 제재와 봉쇄 때문에 여전히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1999년 우고 차베스의 집권으로 시작해 민중에게 권력을 부여하며 만들어온 볼리바리안 혁명을 25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번 행사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지속 가능하지 않은 사회, 경제적 모델이 아닌 민중이 주체가 되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통의 의제를 제안하고 논의하는 자리였으며, 한 자리에 모인 세계 사회운동, 진보정당, 그리고 지식인들이 서로 교류하며 구체적인 연대의 힘을 모으는 자리였다. 정부가 나서서 민중의 힘을 만들려고 하는 베네수엘라와 이를 확산하고자 전 세계에서 모인 참가자들이 보여준 대안 사회를 위한 열망과 의지를 볼 수 있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