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동하는 놀라운 나라, 베네수엘라(2024년 32호 뉴스레터)

* 본 기사는 Tricontinental: Institute for Social Research의 “Venezuela Is a Marvellous Country in Motion: The Thirty-Second Newsletter (2024)”를 번역한 글입니다.

번역: 심태은(번역팀, ISC)

안녕하세요.

트라이컨티넨탈: 사회연구소에서 인사드립니다.

저는 7월 28일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 전후 2주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다녀왔습니다. 대선이 가까워지자 두 가지가 명확하게 보였습니다. 하나는 차비스타(우고 차베스를 비롯하여 이제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이끄는 볼리바리안 혁명 지지자)가 어마어마하게 유리한 조직적 대중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극우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와 미국 정부가 주도하는 야당 세력이 선거에 이길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실제 투표가 진행되기 전부터 부정 선거를 주장하면서 패배의 신호를 일찌감치 보내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야당 세력이 차베스 대통령을 축출하려 했던 2004년 불신임 국민투표 이후, 베네수엘라 선거 제도가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은 우파의 클리셰로 자리 잡았습니다.

선거일인 7월 28일(차베스의 70번째 생일) 밤, 자정이 조금 지나서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CNE) 개표율이 80%인 상황에서 마두로 대통령의 재선을 뒤집을 만한 추세는 보이지 않는다고 발표했습니다. 며칠 뒤 CNE는 이 결과를 재확인(개표율 96.87%)하면서, 마두로 후보(51.95%)가 극우 에드문도 곤살레스 후보(43.18%)를 1,082,740표 차로 이겼다고 했습니다(다른 야당 후보는 다 합쳐서 600,936표를 얻었는데, 이 표가 곤살레스에게 갔더라도 곤살레스는 이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즉, 투표율 59.97%를 기록한 대선에서 마두로 대통령은 과반이 약간 넘는 지지를 확보한 것입니다.

저는 익명을 요구한 야당의 고위급 관계자에게 선거 결과에 관해 물었습니다. 그는 야당의 좌절을 이해하지만, 최종 결과가 정확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2013년에 차베스 대통령 서거 한 달 뒤에 치러진 대선에서 마두로 대통령이 50.62%의 지지율로 엔리케 카프릴레스(49.12%) 후보를 이겼습니다. 당시는 유가가 폭락하기 전이었고, 제재가 강화되기 전이었죠. 차베스가 서거한 상황에서 야당 세력은 기회를 노렸지만, 우위를 점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차베스의 강령과 지지자를 투표하게 만드는 동원력이 있기 때문에 차비스타를 이길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극우 세력이 사회 변화를 약속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국영 석유 기업을 민영화하고, 몰수한 재산을 기득권에 되돌려주며, 민간 자본을 도입해 베네수엘라를 먹어 치우겠다는 게 약속이죠. 다만, 그들의 사회 변화 공약이 다수가 꿈꾸는 사회와 일치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파 세력이 승리하지 못하는 것이고, 부정 선거 주장이 2004년부터 중요한 전선으로 대두된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선거 당일에 투표소가 마감되고 공식 결과가 발표되기도 전에, 마차도와 미국은 일제히 부정 선거를 부르짖으며 수개월간 공들인 전선에 불을 지폈습니다. 마차도 지지자들은 그 즉시 거리로 쏟아져 나와 차베스주의의 상징을 공격했습니다. 공격 대상은 노동자계급이 사는 지역의 학교와 보건 시설, 공공 버스 정류장 및 버스, 차비스타 코뮨 및 정당 사무실, 볼리바리안 혁명을 시작한 인물의 동상(차베스 및 원주민 지도자 코로모토 동상 포함) 등이었습니다. 대선 이후 최소 두 명(볼리바르주의 이사벨 시릴라 길, 아라구아주의 마야우리 코로모토 실바 빌마)의 베네수엘라 연합 사회당(PSUV) 활동가가 암살당했고, 두 명의 병장이 사망했으며, 이 외에도 많은 차비스타, 경찰, 공무원들이 잔인하게 폭행당하거나 사로잡혔습니다.

이 특수한 극우 세력이라는 집단이 벌인 공격은 베네수엘라 원주민잠보(흑인과 아메리칸 원주민 혼혈),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역사를 지워버리고자 한 것임이 분명했습니다. 대선 이후로 매일같이 수만 명의 차비스타가 카라카스를 비롯하여 전국에서 거리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 인용된 사진은 프란치스코 트리아스가 8월 2일 여성 행진에서, 조이 알렉산드라(피플스 디스패치)가 7월 31일 고국을 수호하는 노동자계급 행진에서, 그리고 제가 선거 전날인 7월 27일에 열린 집회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이런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계속해서 노 볼베란(그들은 돌아올 수 없다)이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그들은 기득권이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외친 것입니다.

출처: 비자이 프라샤드

볼리바리안 혁명은 1999년에 차베스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헌법을 바꾸고 기득권의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 일련의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이는 또한 미국의 저항을 극복하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2002년에 차베스를 몰아내려고 쿠데타를 시도했고, 마두로를 끌어내리기 위해 현재까지도 제재를 이용하여 정권 교체를 시도하거나 베네수엘라 국경을 침입하기도 했습니다. 차베스 정부는 석유 산업을 국유화하고, (2001년 탄화수소법을 통해) 임대료를 재협상했으며, 국부 관리 부문에서 부패 관리를 일소했습니다.

베네수엘라 국고는 다국적 석유 기업으로부터 더 많은 로열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국영 베네수엘라 석유공사(PDVSA)는 사회경제개발펀드(Fondespa)를 조성하여 석유 노동자, 이들이 사는 지역 사회, 기타 정부 프로젝트를 위한 재정 지원 사업을 펼쳤습니다. 석유로 창출된 부는 베네수엘라의 산업을 발전시키고, 베네수엘라가 석유 판매와 수입품에만 의존하는 상황을 타개하는 데 쓰였습니다. 경제 다변화는 볼리바리안 의제의 핵심 요소였습니다. 여기에는 베네수엘라 농업의 부흥이 포함되었는데, 이를 통해 베네수엘라 개발 계획의 다섯 번째 전략 목표인 ‘지구 생명체의 보호와 인류의 구원’을 달성하려 했습니다.

바로 이 오일 머니 덕분에 차베스 정부가 사회 지출을 61%(7,720억 달러) 늘릴 수 있었습니다. 이 돈은 1999년 헌법에 명시된 권리를 현실화하기 위해 시행된 다양한 미션 등 대규모 사업을 통해 베네수엘라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쓰였습니다. 2003년에 베네수엘라 정부는 3개 미션(로빈슨, 리바스, 수크레)을 통해 교육자들을 저소득층 거주 지역으로 파견하여 무상으로 문해력 증진 및 고등교육 과정을 제공했습니다. 미션 자모라는 토지 개혁 과정을 관장했고, 미션 뷰엘타 알 캄포에서는 도심 슬럼가를 벗어나 농촌으로 되돌아갈 것을 장려했습니다. 미션 메르칼을 통해 저비용의 고품질 식량을 제공함으로써 베네수엘라 국민이 수입 가공식품에 지나친 의존도를 낮추고자 했고, 미션 바리오 아덴트로에서는 저비용의 고품질 의료 서비스를 노동자계급과 빈민에게 제공했으며, 미션 비비엔다로 500만 채가 넘는 주택이 새로 지어졌습니다.

이러한 미션의 결과로 베네수엘라의 빈곤율은 1999년부터 현재까지 37.6% 감소했습니다. 극빈곤율의 감소는 정말 놀랍습니다. 1999년에 16.6%였던 것에서 2011년에는 7%로, 57.8%포인트 감소했습니다. 이를 미션의 영향력이 발휘되기 시작한 2004년부터 살펴보면, 극빈곤율은 70% 줄었습니다. 1999년 이전에는 매우 불평등한 사회 질서를 보유했던 베네수엘라는 이제 불평등 지수가 상당히 낮은 국가로 손꼽힙니다. 지니 계수가 54%(역내 최저치)로 떨어졌는데, 이는 기본 사회 정책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줍니다.

지난 20년간 베네수엘라를 자주 왕래하면서 수백 명의 노동자계급 차비스타(대부분 흑인 여성)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제재가 심해지고 나서 베네수엘라인들은 극심한 궁핍에 직면했고, 혁명의 방향성에 관한 불만을 자유롭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문제가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야당 세력과는 달리 이 위기의 원인이 미국의 하이브리드 전쟁임을 이해했습니다. 사회 불평등과 빈곤이 증가했어도, (이제 워싱턴포스트인정하는) 제재 정책이라는 폭력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입니다.

대선 이후 정부를 수호하기 위해 벌어진 대규모 행진에서 사람들은 두 가지 선택지에 관해 솔직하게 설명했습니다. 마두로 정부를 통해 볼리바리안 혁명을 계속 시도하고 혁명의 전진을 꾀하거나,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대통령이 파퀘타소(패킷)라는 IMF 경제 정책을 추진한 1989년 2월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말이죠. 페레스 대통령은 자기 선거 공약과 자기 당(민주행동당)에 반하여 이 정책을 시행했고, 카라카소라는 도심 폭동을 야기했습니다. 카라카소로 하루에만 정부 군대에 목숨을 잃은 사람이 5,000명가량 되었습니다만, 사망자 수는 추정치마다 다릅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마차도가 상황을 더 안 좋게 만들 것으로 생각합니다. 페레스만큼 사회민주적인 입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자기 계급의 이익을 위해 베네수엘라에 충격 요법을 실시할 거라고 봅니다. ‘염소가 뒤를 돌아보면 목이 부러진다’(염소가 가파른 경사면에서 뒤를 돌아보다가 떨어져 목이 부러진다는 우화에서 유래 - 옮긴이)는 유명한 베네수엘라 속담이 핵심을 잘 설명합니다.

바릭골드를 소유한 캐나다 재벌 피터 멍크는 차베스를 히틀러에 비유하며 “위험한 독재자”이므로 축출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이는 2007년에 차베스가 베네수엘라 금 수출을 통제하려 하자 멍크의 심기가 불편해진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차베스 정부의 전반적인 방향성은 세계 경제로부터 ‘연결을 끊는 것’이었습니다. 즉, 북반구의 다국적 기업과 강대국이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의 정책을 좌우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었죠.

이 ‘연결을 끊는다’는 개념은 저희의 최근 도시에 라틴아메리카가 제국주의와 연결을 끊을 방법의 핵심입니다. 볼리바르 동맹-민중무역협정(ALBA-TCP)의 2030 전략 아젠다를 바탕으로 한 이 도시에에서는 자주적인 개발 전략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연결을 끊어야 할 네 가지 핵심 영역(금융, 무역, 전략 자원, 물류 인프라)을 제시합니다. 이것이 바로 볼리바리안 혁명이 목표하는 바이며, 미 제국주의와 바릭골드 같은 다국적 기업이 베네수엘라 정부를 그토록 공격하는 이유입니다.

선거 다음 날에는 비가 왔습니다. 이날 벌어진 볼리바리안 혁명 수호 행진에서, 한 차비스타는 베네수엘라 시인 빅토르 ‘엘 치노’ 발레라 모라(1935년~1984년)의 1961년 시인 ‘약동하는 놀라운 나라’라는 시를 읊었습니다.

약동하는 놀라운 나라여

모든 것이 전진하다가도 후퇴하는 곳

어제 앞으로 나아가다가도 끝이 나는 곳.

그대를 모르는 이들은

구제 불능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하겠지.

수없이 조롱당하지만

언제나 환희에 차 똑바로 서 있네.

그대는 자유로워지리라.

비난받는 이들이 그대의 해안에 다다르지 않으면

다른 날에 그대가 그들을 찾아가리라.

나는 계속해서 그대를 믿네.
약동하는 놀라운 나라여.

따뜻한 연대의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 

비자이 프라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