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세계 속 세 가지 새로운 유형의 난민(2024년 36호 뉴스레터)
* 본 기사는 Tricontinental: Institute for Social Research의 “Three New Kinds of Refugees in a World of Migrants: The Thirty-Sixth Newsletter (2024)”를 번역한 글입니다.
번역: 심태은(번역팀, ISC)
안녕하세요.
트라이컨티넨탈: 사회연구소에서 인사드립니다.
어느 여름날 저녁, 니제르를 비추는 가차 없는 태양은 수평선 너머로 저물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가데즈에 있는 투바 오 파라디스라는 조용한 소규모 식당에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세 명의 남성과 함께 그늘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세 사람은 나이지리아 사람으로, 니제르 북부의 아사마카를 지나 알제리로 가려고 했지만, 국경에 철조망이 쳐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지중해 건너 유럽이지만, 우선은 알제리로 넘어가서 엄청난 사하라 사막을 건너가야만 했습니다. 제가 이들을 만났을 때, 이 모든 경로가 막혀버렸습니다.
알제리는 국경을 폐쇄했고, 아사마카는 오도 가도 못 하는 절박한 사람들로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물리적인 위협이 아니라 고향에서 제대로 먹고살 수가 없기 때문에 나이지리아를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높은 인플레와 실업률은 나이지리아에서 살아가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그대로 고향에 남아서 살겠습니까.”라면서, “학교를 졸업했어도 식구들에게 얹혀사는 지경이 됐는데 말이죠.”라고 한탄했습니다. 학력을 갖춘 세 명의 나이지리아인은 절실하게 일하기를 원했지만 고국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여정에 어쩔 수 없이 나서게 된 겁니다.
제가 여러 대륙에서 이주민들과 나눈 이야기는 대체로 동일합니다. 전 세계 이주민 인구 전체(2020년 추산 2억 8,100만 명)를 하나의 국가로 본다면, 중국, 인도, 미국에 이어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국가가 될 것입니다. 물론 이주민들에게 저마다의 사연이 다 있지만, 비슷하게 나타나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 이주민은 ‘인종, 종교, 민족, 특정 사회 집단 소속이거나 정치적 견해’에 따른 박해를 피해 망명을 신청했던 이전 시대의 난민이라는 범주에는 들어맞지 않습니다. 이전의 난민에 관한 정의는 냉전 초기에 작성된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및 의정서를 바탕으로 합니다. 당시는 유엔 회원국 대부분이 서구권 국가였기 때문에 긴장이 매우 고조되었던 때였습니다. 1950년 1월부터 8월까지 소련은 유엔의 다양한 기구를 보이콧했습니다. 유엔이 중국에 안전보장이사회 의석을 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 협약은 ‘부자유’(아마도 소련)에서 ‘자유’(아마도 서구 세계)를 찾아 도망친 사람을 난민으로 보는 서구의 개념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세계 경제의 신식민주의 구조 때문에 경제적으로 지독한 궁핍에 시달려 어쩔 수 없이 터전을 떠난 이들에 관한 조항은 없었습니다.
‘난민’이라는 용어를 재정의하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지만, 국제법에서 이 용어는 여전히 박해와 연관되지 기아와 연관되지는 않습니다. 일례로 아가데즈의 세 남성은 1951년 협약에서 말하는 박해를 받고 있지는 않지만, 오랜 경제 위기로 파탄난 나라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 위기는 식민 지배국이었던 영국으로부터 물려받은 초기 부채, 식민지 시절 방치된 인프라를 건설(니제르 댐 사업 등)하기 위해 파리 클럽 채권국들로부터 받은 차관, 나이지리아의 막대한 원유 판매액에 매긴 로열티로 인한 강탈 등의 요소로 촉발되었습니다. 나이지리아의 원유 매장량은 세계에서 열 번째로 많지만, 빈곤율은 약 40%에 달합니다. 이렇게 끔찍한 상황은 극도로 불평등한 사회 때문이기도 합니다. 나이지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알리코 단고테는 42년 동안 매일 백만 달러를 쓸 수 있을 정도의 부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가데즈에서 만난 세 사람이 가진 돈으로는 사하라 사막은 건널 수 있지만 지중해까지는 건너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그들과 이야기하던 중에 첫 번째 허들을 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그들 앞에는 실패한 여정을 위해 모든 자산을 처분해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고난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왜 유럽으로 가려고 할까요? 나머지 세계를 상대로 유럽이 부유한 기회의 땅이라는 이미지를 확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이 점을 계속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이전 식민 지배국들은 강탈한 부로 세운 도시로 오라며 이주민에게 유혹적인 손길을 내밉니다. 그리고 이런 이전 식민 지배국들은 계속해서 개발도상국을 약탈하고 있습니다. 나이지리아의 5대 석유 기업은 쉘(영국), 쉐브론(미국), 토털에너지(프랑스), 엑손모빌(미국), 에니(이탈리아)입니다. 또한 이전 식민 지배국들은 과거 식민지를 상대로 무기를 판매하고, 자주권을 행사하려고 하면 폭격을 가합니다.
1996년에 인도 작가 아미타바 쿠마르는 ‘이라크 식당’이라는 시에서 이번 뉴스레터의 주제가 된 현실을 묘사했습니다.
미국인들은 바그다드의 모든 집을
오븐으로 만들고
기다렸다
그전에 베트남인들이 그랬듯이
이라크인들을 미국에서
음식이나 하게 하려고.
‘난민’이라는 용어를 재정의하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지만, 국제법에서 이 용어는 여전히 박해와 연관되지 기아와 연관되지는 않습니다. 일례로 아가데즈의 세 남성은 1951년 협약에서 말하는 박해를 받고 있지는 않지만, 오랜 경제 위기로 파탄난 나라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 위기는 식민 지배국이었던 영국으로부터 물려받은 초기 부채, 식민지 시절 방치된 인프라를 건설(니제르 댐 사업 등)하기 위해 파리 클럽 채권국들로부터 받은 차관, 나이지리아의 막대한 원유 판매액에 매긴 로열티로 인한 강탈 등의 요소로 촉발되었습니다. 나이지리아의 원유 매장량은 세계에서 열 번째로 많지만, 빈곤율은 약 40%에 달합니다. 이렇게 끔찍한 상황은 극도로 불평등한 사회 때문이기도 합니다. 나이지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알리코 단고테는 42년 동안 매일 백만 달러를 쓸 수 있을 정도의 부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가데즈에서 만난 세 사람이 가진 돈으로는 사하라 사막은 건널 수 있지만 지중해까지는 건너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그들과 이야기하던 중에 첫 번째 허들을 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그들 앞에는 실패한 여정을 위해 모든 자산을 처분해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고난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왜 유럽으로 가려고 할까요? 나머지 세계를 상대로 유럽이 부유한 기회의 땅이라는 이미지를 확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이 점을 계속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이전 식민 지배국들은 강탈한 부로 세운 도시로 오라며 이주민에게 유혹적인 손길을 내밉니다. 그리고 이런 이전 식민 지배국들은 계속해서 개발도상국을 약탈하고 있습니다. 나이지리아의 5대 석유 기업은 쉘(영국), 쉐브론(미국), 토털에너지(프랑스), 엑손모빌(미국), 에니(이탈리아)입니다. 또한 이전 식민 지배국들은 과거 식민지를 상대로 무기를 판매하고, 자주권을 행사하려고 하면 폭격을 가합니다.
1996년에 인도 작가 아미타바 쿠마르는 ‘이라크 식당’이라는 시에서 이번 뉴스레터의 주제가 된 현실을 묘사했습니다.
미국인들은 바그다드의 모든 집을
오븐으로 만들고
기다렸다
그전에 베트남인들이 그랬듯이
이라크인들을 미국에서
음식이나 하게 하려고.
최근에 모로코와 스페인 사이에 있는 멜리야 국경 펜스를 오르거나 콜롬비아와 파나마 사이의 다리엔 갭을 통과하려는 이주민들, 파푸아뉴기니의 마누스 난민 수용소나 엘패소 델 노르테 난민 수용소 등에 억류된 이들에 관해 생각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IMF 난민’ 또는 ‘정권 교체 난민’이거나 기후 난민입니다. 이런 용어는 1951년 협약에는 없었던 어휘입니다. 새로운 협약에서는 이들의 존재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숫자로 기록된 총 2억 8,100만 명의 이주민 중에 등록 난민은 2.640만 명이고 410만 명은 등록 망명 신청자입니다. 이는 나머지 2억 5,050만 명의 이주민 대부분이 IMF, 정권 교체, 또는 기후 변화로 인한 난민임을 의미합니다. 유엔 세계 이주 보고서 2024에서는 ‘충돌, 폭력, 재난, 기타 사유로 터전을 떠난 개인의 숫자는 현대에서 사상 최고 수준으로 급증했다’고 서술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 말한 이들은 제가 앞서 말한 유형의 이주민으로, 탄압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전에는 난민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이들이 생기게 된 상황을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IMF 난민
거의 모든 개발도상국이 제3세계 부채 위기를 맞았습니다. 1982년 멕시코 파산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당시 유일한 해법은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 조건을 수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개발도상국은 보건과 교육 보조금을 삭감하고 경제를 개방하여 수출을 통해 착취당했습니다.
그 결과 인구 대다수의 삶이 무너졌습니다. 국내 일자리는 불안정해졌고, 이에 사람들은 위험하지만 해외 이주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개발은행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농업에 대한 공격 때문에 서아프리카에서 농민들이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하여 생산성이 낮은 비공식 서비스 부문에 취업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서구와 걸프 지역으로 더 높은 임금이라는 유혹에 못 이겨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일례로 2020년에 이주민이 많이 향한 국가는 미국, 독일, 사우디아라비아였는데, 이들 국가에서는 이주민을 형편없이 대우하기 일쑤입니다. 이는 희망적이 아니라 엄청나게 절박한 이주 패턴입니다.
2. 정권 교체 난민
소련이 붕괴한 뒤, 미국은 자기 영토에서 주권을 행사하려는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군사력과 경제력을 증강했습니다. 현재 전 세계 모든 국가 중 1/3, 특히 개발도상국이 미국의 징벌적 제재 대상입니다. 이런 제재에서는 보통 국제 금융 시스템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제재 정책은 경제 혼란과 광범위한 고통을 초래합니다. 610만 명의 베네수엘라 이주민은 주로 베네수엘라 경제의 활력을 앗아간 미국의 불법적인 제재 때문에 나라를 등졌습니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 정권 교체 정책을 매우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나라들이 그런 전쟁을 피해 온 사람들에게 제일 박정하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독일의 경우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추방하기 시작했고, 미국은 절박한 마음에 멕시코 후아레스에 정착촌을 건설한 베네수엘라인들을 쫓아내고 있습니다.
3. 기후 변화 난민
2015년 파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회의(COP21)에서 각국 지도자들은 이동에 관한 태스크포스(Task Force on Displacement)를 설립하기로 했습니다. 3년 뒤인 2018년에 유엔 글로벌 콤팩트에서는 기후 악화로 이동하는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기후 변화 난민 개념은 아직도 정립되지 않았습니다.
2021년에 세계은행 보고서에서는 2050년이 되면 기후 난민이 2억 1,600만 명 이상이 될 것이라고 추산했습니다. 수면이 높아지고 작은 섬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해당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가 초래하지도 않은 재앙의 생존자가 될 것입니다. 탄소 배출량이 제일 많은 국가들이 해수면 상승으로 영토가 유린당한 이들을 책임져야 합니다.
(사회 연구에 관한 제트킨 포럼의 보고서 강제 추방의 수입: 위기의 시기, 유럽 이주의 시대에서 나타나듯이) 애초에 자기 고향을 떠나 이주민이 되도록 만든 나라에서 이등 시민으로 살고 싶은 사람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여성의 경우 특히나 원거리 이동을 원하지 않습니다. 젠더 폭력이라는 위협이 큰 위험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기가 살기로 선택한 곳에서 인간답게 살기를 바랍니다. 가난한 나라의 새로운 개발 정책, 전쟁과 파괴를 불러오는 강제적인 정권 교체의 종식, 기후 재앙에 관한 더 적극적인 행동 등은 확대된 난민 위기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안입니다.
10년 전에 팔레스타인 시인 파디 주다는 ‘모방’이라는 시에 이와 연장선상에 있는 고찰을 담았습니다.
우리 딸은
자전거 핸들 사이에
거미줄을 친
거미 한 마리를 죽이지 못하고
2주 동안
기다리며
자연히 떠나기를 바랐다
나는 거미줄을 치우면
더 이상 집이라고 부를 수 없음을
거미도 알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너는 자전거를 타러 갈 거라고
아이는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난민이 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따뜻한 연대의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
비자이 프라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