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를 구축하기에는 하룻밤 밖에 남지 않았다(2024년 38호 뉴스레터)

* 본 기사는 Tricontinental: Institute for Social Research의 “There Is Only One Night Left to Build Fortifications: The Thirty-Eighth Newsletter (2024)”를 번역한 글입니다.

번역: 이재오(번역팀, ISC)

감수: 심태은(번역팀, ISC)

니니코 모르베다드제(조지아), 경계선의 주황색 구름, 2018

안녕하세요.

트라이컨티넨탈: 사회연구소에서 인사드립니다.

9월 13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우크라이나가 서방이 제공하는 미사일로 러시아 영토를 공격하는 것을 용인할 것을 시사했습니다. 아직 공식 결정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간의 대화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분명합니다. 지지율이 22% 밖에 되지 않는 스타머가 런던으로 돌아간 후 그의 외무부장관 데이비드 래미는 우크라이나가 영국이 제공하는 스톰쉐도우 미사일로 러시아를 공격하는 것에 대한 제한을 해제하겠다고 언론에 발표했습니다. 퇴역한 영국군 고위 장교 존 맥콜 경은 이보다 더 나아가 미사일이 러시아를 대상으로 사용되겠지만 그래도 우크라이나가 승리하게 만들지는 못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이 사람들(바이든, 스타머, 맥콜)은 미사일이 전쟁의 흐름을 바꾸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분쟁을 더 깊게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서방 미사일의 사용을 세계 지도자들과의 대화에서 주된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그는 영국이 제공하는 스톰쉐도우 미사일, 프랑스가 제공하는 SCALP, 미국이 제공하는 ATACMS를 사용하면 러시아 영토 내에 위치한 러시아군 기지를 타격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미 NATO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로 제공한 이 세 미사일 체계를 사용하는 것을 NATO가 허용한다면 사태는 매우 악화할 것입니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이런 미사일을 사용해서 러시아를 공격하고 러시아가 미사일을 제공한 국가들에게 반격을 가한다면 NATO 헌장(1949) 5조가 발동되어 모든 NATO 회원국이 직접적으로 참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여러 핵보유국(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이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를 할 테고 지구는 파멸의 불길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이온 그리고레스쿠와 아루티운 아바키안 (루마니아/아르메니아), 천재와 시대, 1990/1950년대

2021년 12월 러시아와 미국은 여러 차례에 걸친 회담을 했고, 마지막 순간에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시작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습니다. 전쟁을 관통하는 주요 이슈들을 조명하려면 이 회담들을 종합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1. 2021년 12월 7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시간에 걸쳐 영상으로 회담했습니다. 백악관의 성명문은 한 문단 길이 밖에 되지 않았고,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 러시아군 병력 이동에 집중했습니다. 러시아 측의 성명은 약간 더 길었고, 미국이 무시한 요점을 제시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NATO가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 거점을 구축하고 러시아 국경에 대해 군사력을 증강하는 위험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에 비추어 책임을 러시아에 전가하지 말도록 경고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는 NATO 동진과 러시아 인접국에 대한 공격용 무기 배치를 금지하는 신뢰할 수 있고 법적 구속력이 있는 보장을 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2. 2021년 12월 15일.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이 모스크바에서 카렌 돈프리드 미국 유럽 및 유라시아 담당 차관보를 만났습니다. 회담 후 발표된 러시아 측 보도자료에 의하면 “미국과 NATO가 유럽의 군사적 정치적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변경하고자 하는 맥락 가운데 양측은 안보 보장에 대한 심도 있는 담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마리아 칸(파키스탄), 사랑에 대한 갈망, 2012

3. 2021년 12월 17일. 러시아는 미국과의 조약 초안과 NATO와의 협정 초안을 제시했습니다. 양 문서 모두 러시아가 서방과의 상황이 불안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확고한 안보 보장을 원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이 문서에는 미사일과 핵무기에 대한 분명하고 중요한 성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약 초안은 미국과 러시아 양국이 “자국 영토 바깥에 지상 발사 중거리 및 단거리 미사일을 배치하지 말 것, 그리고 상대국 영토를 공격할 수 있는 자국 내 위치에도 배치하지 말 것”(6조)과 양국이 “자국 영토 바깥에 핵무기를 배치하지 말 것”(7조)을 명시했습니다. NATO와의 협정 초안은 NATO 회원국이 “상대국 영토에 사거리가 닿는 위치에 지상 발사 중거리 및 단거리 미사일을 배치하지 말 것”(5조)을 명시했습니다.

4. 2021년 12월 23일. 연례 기자 회견에서 푸틴은 다시 한번 NATO의 동진과 러시아 국경 인근에 배치되는 무기 체계의 위협에 대한 러시아의 우려를 시사했습니다. “우리는 내가 여러 번 말했고 당신들도 잘 알다시피 1990년대에 NATO가 동쪽으로 1인치도 움직이지 않을 거라 당신들이 약속한 것을 기억한다. 당신들은 파렴치하게 우리를 속였다. NATO는 다섯 번이나 동쪽으로 확장했다. 내가 언급한 무기체계들이 루마니아에 배치되었고 폴란드에도 최근 배치를 시작했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르겠는가? 우리는 아무도 위협하고 있지 않다. 우리가 미국 국경에 접근했는가? 아니면 영국이든 다른 어떤 나라에? 당신들이 우리 국경에 온 것이다. 이제 당신들은 우크라이나까지 NATO 회원국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NATO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양자협약을 통해 우크라이나 영토에 군사기지와 공격 무기 체계가 배치될 것이다.”

5. 2021년 12월 30일. 바이든과 푸틴은 악화되는 상황에 대해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러시아 측의 성명은 미국 측 성명보다 더 내용이 많기에 상황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됩니다. 성명에 의하면 푸틴은 “협상은 NATO의 동진과 러시아 국경 인근을 위협하는 무기의 배치를 막기 위한 확고하고 구속력 있는 보장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 진입했습니다.

루에이 카얄리(시리아), 그리고 뭐?, 1965

러시아는 섬세하게 구성되었던 무기 제한 체제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탈퇴했을 때부터 안보 보장에 대한 우려를 표했습니다. 이 과정은 1972년 체결된 탄도탄 요격미사일 조약에서 미국이 2001년 탈퇴한 것과 1987년 체결된 중거리 핵전력 조약을 2019년 취소한 것으로 수미상관을 이룹니다. 미국이 이 조약들을 무효화하고 안보 보장에 대한 러시아의 요구를 인정하지 않음과 동시에, NATO가 유고슬라비아,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등을 침략하자 서방이 우크라이나나 발트해 국가에 단거리 핵 미사일을 배치하여 러시아 서부 대도시들을 무방비로 공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러시아 내에서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러시아가 서방에 제시하는 주된 논점입니다. 만약 서방이 러시아가 2021년 12월 제시한 조약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우리는 서방 국가들이 NATO 미사일로 러시아를 공격하는 것을 논의하는 상황에 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컨설팅 회사 애큐러시의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의 무기 제조사들은 2022년 2월 이래 시가총액이 59.7% 증가하는 등 전쟁으로 막대한 이득을 누리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득을 본 기업으로는 허니웰(미국), 라인메탈(독일), 레오나르도(이탈리아), BAE 시스템(영국), 다쏘 항공(프랑스), 탈레스(프랑스), 콩스베르그 그루펜(노르웨이), 사프란(프랑스)이 있습니다. 미국 기업 헌팅턴 잉걸스, 록히드 마틴, 제너럴 다이내믹스, 노스롭 그루먼도 증가세를 보였지만 이미 순이익이 끔찍할 정도로 막대한 수준이었기에 퍼센트로 보면 크지 않은 추세였습니다. NATO의 저 죽음의 상인들이 엄청난 이익을 누리는 동안 민중들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연료와 식량 가격 급등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아스캇 아흐메댜로프(카자흐스탄), 지정학적 군인, 2014

이 모든 담론에서 가장 잔혹한 아이러니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공격하도록 허용한다고 군사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첫째로, 러시아 공군 기지들은 앞서 언급한 미사일의 사거리 바깥으로 이동하였고, 둘째로 우크라이나의 미사일 보유량이 적습니다. 미국은 최근 두 번에 걸쳐 다가오는 핵전쟁의 위협을 고조시켰습니다. 미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8월에 바이든 정권은 미국 핵전력을 중국, 북한, 러시아를 대상으로 사용할 준비를 한다는 내용의 비밀문서를 작성했습니다. 이것이 밝혀지기 바로 전 6월에는 미국이 핵전력 확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 모든 것을 배경으로 79차 UN 총회가 이번달 개최되고, 회원국들은 새로운 세계 협약을 논의할 것입니다. 협약 초안에서는 “평화”라는 단어가 백 번 넘게 나오지만, 정작 우리 귀에 들리는 소리는 전쟁, 전쟁, 전쟁뿐입니다.

투브슈 (몽골), 기쁨의 눈물, 2013

제가 인도 캘커타에서 10대 소년이었을 때 저는 고르키 사단 극장으로 달려가 소련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보곤 했습니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인생과 변화발전을 향한 인간의 갈망에 대해 사색하곤 합니다. 그중 하나인 거울(1975)은 감독의 아버지 아르세니 타르코프스키의 시를 기반으로 전쟁의 부조리를 그립니다. 우크라이나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 1일 전을 그린 아르세니 타르코프스키의 시 “6월 21일 토요일”은 다가오는 전쟁의 위협에 대한 경고를 던집니다. 

진지를 구축하기에는 하룻밤 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 구원의 희망이 내 손에 달렸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길 갈망한다, 그러면
이 전쟁으로 죽을 이들에게 경고할 수 있을 테니.

길 건너 남자는 나의 외침을 들을 것이다,
‘당장 이쪽으로 오시오, 죽음이 당신을 지나칠 것이오’.


나는 전쟁이 내리칠 시간을 알 것이다.
수용소에서 누가 죽고 살지도 알 것이다.

누가 영웅이 되어 훈장을 받을지
누가 총살형으로 죽을지도 알 것이다.

눈 덮인 스탈린그라드에 적의
시체가 널려 있는 것이 보인다.

공습 아래 베를린이 보인다.
러시아 보병이 진군한다.

나는 그 어떤 정보보다 먼저
적의 모든 음모를 알아챈다.

그렇게 나는 계속 빌지만, 듣는 이는 아무도 없다
거리의 사람들은 상쾌한 공기를 들이쉬고

6월의 여름 꽃을 즐기며,
다가오는 파멸을 알지 못한다.


한 순간이 지나자 나의 예지는 사라진다.
언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른다.


생각은 텅 비었고, 밝은 하늘을 바라본다.
내 창문은 아직 테이프로 붙이지 않았다. 

따뜻한 연대의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 

비자이 프라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