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통합의 가속화와 ‘차베스없는 차베스주의’의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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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국제동향 창간 2주년을 맞이해 특집 기획 일환으로 국제전략센터 자문위원인 허석렬 충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를 김혜숙 대표가 만나 인터뷰하였다. 허석렬 교수로부터 차베스 이후의 남미 통합에 대한 현재 사안과 내년 전망에 대해 들었다.

김혜숙: 남미의 정치경제적 상황은 국내외적 요인들로 대단히 역동적이라 미래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2015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주요 사안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허석렬: 내일 결선투표를 치르게 되는 아르헨티나 대선과 12월 6일 있는 베네수엘라 총선 정도가 있을 것 같다. 아르헨티나 헌법상 선거 결과 최고특표자가 45% 이상 득표하고 차순위 득표자와 득표율 차이가 10% 이상 날 때 결선투표없이 최고득표자가 당선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1차 선거가 10월 25일 치러졌는데, 야당 ‘변화시키자 동맹’ 후보인 마우리찌오 마끄리(Mauricio Macri)가 36.2%, 집권당인 ‘승리를 위한 전선(Frente para la Victoria, FPV)의 다니엘 시올리(Daniel Scioli) 대선 후보가 34.7%를 얻어 결선투표가 진행되게 된다.

대선투표결과 마우리찌오 마끄리가 51.3%의 득표를 얻음으로써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 결과는 국제적 좌파세력에게는 큰 실망을 가져다 준 반면 남아메리카의 우익세력은 아르헨티나에서의 승리로 크게 고무되어 있다. 마끄리는 기업가 출신으로 아르헨티나의 베를루스코니로 불릴 만한 인물이다. 그는 전임 대통령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와 페르난데스가 추진해왔던 정책들을 뒤집고 다시 대규모의 사유화와 해외자본 유입을 위한 탈규제정책 등 1990년대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메르코수르에서 베네수엘라를 축출하려 시도하는 등 남미 통합 경향을 역행하고 친미, 친유럽적 대외정책을 펼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지금의 시점이 볼리바리안 혁명의 변곡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제야 말로 차베스없는 차베스주의를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차베스 대통령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차베스의 카리스마에 크게 의존하면서 실제 시스템을 통해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 1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하지 않는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그것이 볼리바리안 혁명 세력들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차베스 사후에 서구의 많은 이들이 국회의장인 까베오가 마두로 대통령과 권력투쟁을 벌일 것을 예상했으나, 오히려 원칙주의자인 까베오 국회의장은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근본적 지지를 표현하고 보완관계를 형성하면서 권력관계가 정리되었다. 다만 베네수엘라 경제 문제에 대해서도 이견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제부 장관과 국립은행장이 마두로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며 사직했다. 마두로의 현실주의적 선택이 좌파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많은 이들이 낮은 유가가 베네수엘라 경제 문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걱정한다. 원유가격의 하락이 문제가 아니다. 실질적으로 허약한 베네수엘라의 경제 문제가 대외적으로 드러나 우파들의 공격의 빌미가 되는 것이 문제이다. 예를 들어 베네수엘라의 낮은 유가를 이윤추구의 기회로 활동하는 이들이 있다. 즉 베네수엘라에서 낮은 가격으로 기름을 사서 콜롬비아로 밀수출 한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이를 못하게 하자 콜롬비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쏟아내었다. 사재기, 밀수, 금융권 비리 등 이러한 경제적 비리들을 민중들을 동원하여 근절해야만 한다.   

참고로 베네수엘라에서 21세기 사회주의의 주요내용으로 추진되고 있는 자주관리운동은  베네수엘라의 경제의 세 부문에서 추진되고 있다. 첫 번째는 전략적 사업, 두 번째는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경제, 세 번째는 사기업 중 “회복된 기업”이라 부르는 것( fabricas recuperadas, recovered factories)이다. ‘회복된 기업’이라 함은 파산한 기업들을 노동자들이 점거하여 회복시킨 기업으로 흔히 남미에서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들이 이에 속한다. 그런데 이러한 기업들의 다수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노동자들이 주식의 일부를 소유함으로써 소소유자 의식을 가지게 만들고  또 수익을 높이기 위해 전문 CEO 영입으로 이어져 사회주의적 변화의 싹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어긋나게 되었다. 노동자들의 자주관리가 21세기 사회주의의 핵심 내용이라면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그들이 스스로 관리에 관한 지식과 노하우를 배울 필요가 있다. 베네수엘라도 석유와 같은 전략 기업에서는 아직 노동자들의 자주관리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만들어내는가가 관건이라고 본다. 처음에 차베스가 당선되었을 때, ‘제3의 길’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후 사회주의를 이야기하고, 베네수엘라는 사회주의 체제로 이행해가고 있다. 제국주의 모순 속에서 제3의 길은 가능하지 않음을 체감한 것이라고 본다.   

김혜숙: 2016년 남미의 전반 정세는 어떠할 것이라고 보나요? 허석렬: 2000년 이후의 남미대륙은 탈신자유주의의 큰 추세 속에서 작은 부침(ebb and tide)을 겪어 왔다. 탈신자유주의 흐름에 가장 선도적인 국가가 베네수엘라고 이어서 에콰도르, 볼리비아,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탈신자유주의 정권은 과도기로, 탈자본주의로 가지 않으면 정세는 언제든 역전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이른 채취경제를 통해서 국가 수입에 의존하는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볼리비아는 초국적 기업들에게 많이 양보하여 그들의 이해 관계에 합의하는 과정에서 많은 신자유주의 요소들이 재도입 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탈신자유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나아가고 있지만, 석유추출에 의존하는 경제를 다변화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아직 토지개혁과 농업부문에서의 개혁에서 미흡한 점이 많고 공업생산력의 내생적 발전도 지체되고 있다. 세계적 저유가와 경제불황은 경제관리에 큰 어려움을 일으키고 있다.

남미 각국이 겪고 있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남미의 정치, 경제적 통합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 브라질과의 연대, 우루과이,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등 메르꼬수르(MERCOSUR, 남미공동시장)나 알바(ALBA, 우리 아메리카 민중들을 위한 볼리바르 동맹) 내에서 어떻게 보완적 협력관계를 형성해 나갈 것인가가 관건이다. 또한 베네수엘라는 내부 투쟁을 통해서 혁명 세력이 더욱 강고해지고 있다. 그리고 혁명적 민중세력이 살아있다. 부르주아 세력들이 구체제로 돌아가려고 해도 더 이상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12월 6일 총선은 동원력이 관건이기 때문에 결과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다행히 우익은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통합사회당이 다수당의 상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50%는 되지 않을까?

숙: 미국은 쿠바의 관계 개선을 하면서 베네수엘라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과 쿠바의 관계 개선이 남미 전역에 미치는 긍정적 내지 부정적 영향력은 없을까요? 허석렬: 전혀 없다고 본다. 미국은 OAS(미주기구, 1948년에 창설된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국제 기구로, 현재 아메리카 대륙의 35개국이 가입해 있음)내에서 고립되어 있는 처지이다. 그 동안 쿠바에 대해 봉쇄, 고립 정책을 펼쳐왔는데, 남미 국가들의 지속적인 쿠바와의 관계 개선에 대한 요구를 미국이 수용한 것이라 봐야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측면은 변하지 않았다. 베네수엘라는 물론이고 볼리비아, 에콰도르에 대해서도 우익 쿠데타를 계속 사주하여 왔고, 온두라스, 파라과이에서는 이 시도가 성공했다.  

오늘 발표된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미국은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인 PDVSA의 전화, 이메일을 100% 감청했고, 브라질 국영석유회사에 대해서 똑같은 행위를 벌였다고 한다.

이러한 미국의 행위에 대한 대륙적 차원의 대응이 바로 남미통합이다. 남미통합을 위한 노력으로 베네수엘라가 메르꼬수르에도 가입한 것이다. 원래 야당이 다수당인 브라질 상원과 파라과이에서 반대했는데, 브라질은 노동당이 의석을 늘려 상원을 변화시켰고, 파라과이는 당시 징계상태로 회의에 참석을 못하면서 베네수엘라의 가입이 승인되었다. 실제 메르꼬수르는 신자유주의 경제통합모델이지만, 들어가서 변화시키자는 것이 차베스 전대통령의 전략이었다. 전미주 자유무역협정(FTAA)이 베네수엘라와 브라질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된 상황에서 에콰도르, 페루 등 남미의 일부 국가들은 미국과 개별적으로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였다. 미국의 이런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메르꼬수르도 그 기능을 확대하면서 더 많은 회원국 확보에 나서면서 볼리비아 등도 준회원국으로 가입하게 되었다.

우나수르(UNASUR, 남미국가연합)도 미국에 대해 공통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온두라스나 파라과이에서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회원국들은 한 목소리로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파라과이의 루고 전 대통령은 실각했지만 새로운 좌파연합이 그 세력을 강화하고 있다.  남미 좌파 정당들의 모임인 상파울루 포럼도 주목할 만하다. 제국주의 세력들은 브라질의 룰라와 베네수엘라 차베스의 갈등을 부추겼다. 그러나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각 여건이 다른 속에서도 차이를 인정한 좌파 동지간 협력이라는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남미의 통합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고 있다.

숙: 총선 선거 과정에서 우파의 후보가 괴한의 피격으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것이 총선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요? 허석렬: 11월 26일 야당인 민주연합 원탁회의(MUD) 후보가 선거유세 도중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우익 야당은 증거도 없이 차비스타 깡패가 이 일을 저질렀고 마두로 정부가 모든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사건으로 선거를 유리하게 끌어가려 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대기업 미디어들과 미국 국무부도 이런 움직임에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정부는 사망한 후보 만이 아니라 최근 그 지역에서 일어난 몇 건의 암살 사건이 불법 상거래와 연관된 폭력조직 간의 다툼으로 발생하였다고 추측하면서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 이 사건은 결국 선거 때까지 야당의 선전전에 활용될 것이며 정권 반대파의 표를 결집시키겠지만 차비스타 진영 역시 위기를 느끼면서 결집할 것이다.

인터뷰/편집: 김혜숙(ISC 대표)

허석렬,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

2015년 11월 21일(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