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loring Korea] 땅으로 돌아가다
문을 열자 비닐 하우스에서 키우는 작물의 강한 과즙 향이 밀려왔다. 오후 햇빛이 투명한 비닐 하우스를 뚫고 들어와 따뜻한 빛으로 가득 채웠다. 길에 늘어선 딸기 작물들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서울을 떠나 남쪽을 향해 두 시간 만에 도착한 농촌인 논산이지만 바삐 돌아가는 대도시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논산은 고층 빌딩이 아닌 산으로 둘러쌓였고 사람이 아닌 녹음이 넘쳐났다. 사실 논산은 말 그대로 “논의 산”이다.
토요일 오후 우리가 할 일은 딸기 어미모에서 새끼모를 잘라내는 일이었다. 논산 현지에서 우리를 맞이해준 배형택 농민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보여주었고 3동의 비닐하우스에서 새끼모 자르는 일을 저녁까지 마쳐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딸기가 많아 일이 힘들었지만 고어가 말해주듯이 “뿌린대로 거두리라.”
이 농장에서는 딸기를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에게 개당 350원에 판매될 모종을 수확한다. 배형택 농민은 딸기 농사를 잘 짓는 농민은 딸기모 1개당 3,000원을 벌수 있다고 한다.
딸기 농사를 짓는 농민은 각 모종 가격의 10배의 이익을 볼 수 있지만 사실은 모종 농장은 정치적인 사업이기 때문에 모종을 구매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모종을 판매한 돈은 지역의 소농단체에서 조직사업에 필요한 자금으로 쓰인다.
우리는 짝을 지어 배형택 농민이 가르쳐준대로 한 명이 낫으로 모종을 자르면 다른 한명은 자루에 담았다. 일을 시작한지 6시간 동안 모종을 수확하기 위해서 허리를 숙이고, 쭈그려 앉기도 하고, 낮은 비닐하우스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여러 고랑을 끝낼 수 있었다. 일이 끝나고 많은 농민들이 계속 쭈그리고 앉아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시설 농사를 짓고 싶어 하지 않지만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살아남기 위해 육체적으로 힘든 일도 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배형택 농민은 아내와 함께 서울에 살다가 논산으로 귀농했다. 귀농은 말그대로 “농촌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실제로 귀농하는 사람들의 바로 전세대가 농촌 생활 양식으로 살았다.
배형택 부부 부모님도 농민이었고 예외가 아니다. 서울에서 조직가로 활동했던 부부는 귀농한 논산에서 소농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중앙 정부에서 내는 정책들 중에는 나쁜 정책들이 많아요. 딸기 모종 사업은 투쟁 기금과 다른 정치 사업에서 쓸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하는데 도움이 됩니다”라고 배형택 농민은 말한다.
배형택 농민의 트럭 뒤에는 “쌀시장 개방 반대”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입고 있는 조끼에는 “NO WTO”라는 문구가 수놓아져 있어 한국의 쌀시장 개방을 추진하는 무역 기구에 반대하는 입장을 알 수 있었다. 한국 소농에게는 자유무역협정으로 쌀수입이 쉬워진 것이 가증 큰 걱정이다. 쌀이 곡물 생산의 9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농산물 가격을 계속 낮게 유지시키기 때문에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힘듭니다. 쌀 가격이 올라가면 정부는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 쌀을 수입하는 겁니다.” 배형택 농민이 회원으로 있는 논산 농민회 최영철 회장은 말한다.
토요일 저녁, 배형택 농민 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최영철 회장으로부터 쌀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려고 농민회 농민들과 함께 고속도로를 점거한 이야기를 들었다. 경찰과 충돌해서 생긴 멍자국을 자랑스러워 한다.
소농이 쌀을 지키기 위해 그러한 길을 가는 이유는결국 기본 경제학으로 귀결된다. 최영철 회장은 쌀 가격이 떨어지면 쌀 농사를 지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힘들어져 농민이 한국에서 수요가 그리 많지 않은 작물로 전환할 수 밖에 없고 결국 농민끼리 경쟁하게 되어 파산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한다.
그래서 농민끼리 싸우지 않기 위해 세계무역기구와 같은 거대한 힘에 맞서 싸운다.
“농민으로 살기 힘듭니다.” 소주잔을 비우기 전 최영철 회장은 반복한다. 배형택 농민도 그 말에 동감하며 잔을 들어 비운다.
배형택 농민은 농민회가 운영하는 주유소에 있는 집에 살고 있다. 원래 주유소 사업은 지금 딸기 모종을 키우는 일과 같은 이유에서 시작했다. 농민회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공정한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주유소 사업으로는 많은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다른 수익 사업을 모색했고, 현재 딸기 모종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배형택 농민은 집단적으로 운영하는 주유소가 큰 경제적인 혜택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가격 경쟁이 되기 때문에 주변 주유소도 정당한 가격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의 소농은 값싼 수입 농산물에 맞서 변화하는 경제적 조건에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물었을 때 류화영 농민은 내 질문의 전제조건에 문제를 제기했다.
“먹거리는 생존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경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다음날 아침 류화영 농민이 다양한 작물을 실험하고 있는 작은 밭으로 향했다. 크지 않은 밭은 산 아래 있었고 뜻밖의 자연의 선물처럼 산에서부터 흐르는 물줄기가 닿아 있었다.
밭을 둘러보면서 작물이 심어진 부분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류화영 농민은 우리가 전날 먹었던 상추가 심어진 부분을 보여주었다. 류화영 농민은 매년 철에 맞춰 심는 허브와 채소 냄새를 맡아보도록 했다.
류화영 농민은 매년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종자를 보존하기 위해 활동하기 하고 있다. 이는 매년 종자 기업이 파는 종자를 사지 않아도 되고 토종 종자를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은 보통 여성 농민들이 하고 있다고 한다.
농활 일정에서 마지막으로 한 일은 류화영 농민을 도와 밭에 작물을 심는 일이었다. 류화영 농민은 우리에게 콩을 나누어 주고 한 구멍에 4-5알 정도를 심고 흙으로 덮어주면 된다고 직접 보여주었다.
나도 따라서 내 손바닥에 씨앗 몇 개를 놓고는 허리를 숙여 땅속에 씨앗을 심었다. 잠시 쉬려고 허리를 펴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내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주었다.
아침 햇살 아래서 다시 무릎을 굽혀 흙을 만지며 부드러운 흙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 씨앗을 덮는 순간을 음미했다. 이 씨앗은 가을에 수확물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가빈 후앙(열린강좌 참가자) 번역: 황정은(사무국장, ISC)
** 본 글은 국제전략센터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