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주의 좌파의 위기] 라틴아메리카 민중주의 좌파와 국민-국가의 재건
글: 김은중(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1. ‘역사의 종언’이 의미하는 것
신자유주의는 현실사회주의가 붕괴되고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론으로 대표되는 대의민주주의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의 세계화의 낙천적인 전망으로 제시되었다. ‘역사의 종언’이라는 후쿠야마의 선언이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선언하는 것이었다면 그의 선언은 잘못된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세계경제의 구조적 불황과 대의제 기능의 불완전함이기 때문이다. 좌파의 등장은, 좌파라는 개념의 함의가 무엇이든지 간에, 신자유주의와의 밀월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다. 짧은 기간 신자유주의와의 밀월이 남긴 결과는 심각한 사회적 양극화이다. 옥스팜(Oxfam)의 신뢰할만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의 최상위 부자 85명의 재산이 빈곤층 35억 명의 재산과 동일하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결과는 다수의 희생을 통해 얻어진 소수의 혜택이라는 점을 은폐하지 않고서는 역사의 종언을 계속해서 주장할 수 없다.
그러나 ‘역사의 종언’이 근대적 사회구성체인 자본-네이션-국가의 형성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보면 후쿠야마의 선언은 옳았다. 사회구성체(Gesellschaftsformation/Social Formation)는 사회를 구성되어 가는 것, 형성되어 가는 과정 중에 있는 것으로 본다. 사회를 구성되어 가는 것으로 본다는 것은 두 가지 상반되는 측면을 함축하는데, 하나는 사회란 완성된 어떤 형태(form)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형태로 귀속될 수 없는 이질적인 지대들이 여전히 뒤섞여 공존하고 있음을 뜻한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은 근대 사회가 더 이상 형성되어 가는 과정이 아니라 자본-네이션-국가(Capital-Nation-State)라는 형태로 완결되었음을 선언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우리가 통상 국가라고 부르는 것은 국민-국가를 의미한다. 국민-국가는 이질적인 국민(nation)과 국가(state)가 하이픈으로 결합된 것이다. 그러나 근대적 사회구성체는 국민과 국가가 결합되기 이전에 자본과 국가가 먼저 결합되었다. 따라서 근대적 사회구성체는 자본-네이션-국가로 인식해야 한다. 자본-네이션-국가는 상호보완적인 장치이다. 자본과 네이션과 국가는 서로 다른 것이고, 서로 다른 원리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자본-네이션-국가는 어느 것 하나라도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 보로메오의 매듭으로 결합되어 있다. 근대적 사회구성체 자본-네이션-국가는 삼위일체로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중 어떤 것을 부정하더라도 결국 이 매듭 안으로 회수될 수밖에 없다. 자본에의 대항이 동시에 국가와 네이션에의 대항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라틴아메리카의 ‘좌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난 20-30년 동안 라틴아메리카가 좌측으로 선회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부와 칠레의 미첼레 바첼렛 정부는 확연히 다르고, 아르헨티나 피케테로스운동과 멕시코 사파티스타 원주민운동을 동일시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좌파’라는 개념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조차도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적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 ‘좌파’라는 용어에 의지한다. ‘핑크빛 조류’(pink tide)라는 표현은 어쩔 수 없이 좌파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도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사회적 변화가 지난 세기의 좌파와 다를 뿐만 아니라, 좌파라는 일반적 개념에는 다양한 차이와 이질성이 포함되어 있음을 주장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세계경제의 구조적 불황과 대의제 기능의 불완전함이라는 문제는 좌파만의 문제의식이 아니라 우파의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사회적 양극화의 문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공식적 의제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좌우를 가리지 않고 정치적 수사들은 점점 더 진보적인 색채를 띠고 ‘더 공평하고 더 다원적인’ 질서를 제시한다. 멕시코의 우파 대통령 펠리페 칼데론은 혼혈성(mestizaje)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라는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빈곤 없는 다종족적 사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극좌파로 분류되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내세운 21세기 사회주의는 국가 자본과 다국적 자본의 혼합 자본으로 이루어진 보수적인 석유생산 모델을 바탕으로 하며 세계시장를 무대로 한다. 그런가 하면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마르코스는 좌우의 논쟁을 떠나 민중이 원하는 것을 보고 민중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기를 요구했다. 원주민운동, 무토지농민운동, 여성운동, 도시빈민운동 등 라틴아메리카의 다양한 사회운동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전지구적 자본주의 세계체제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라틴아메리카 좌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일련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 좌파운동에 대해서, 좌파운동의 근본적인 공통 프로젝트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가? 좌파에 대해서 말하기보다는 지배 질서에 대항하고 그것을 개혁하려는 다양한 좌파운동에 대해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라틴아메리카 좌파운동은 서구적 질서에 바탕을 둔 평등을 실천하려는 시도인가, 아니면 다른 문화적 전통에 뿌리를 둔 다른 이상향의 실천인가? 프롤레타리아가 좌파운동의 주체가 아니라면 변화의 주체는 누구인가? 좌파운동은 정치권력을 획득하려는 투쟁인가, 아니면 누군가 제안한 것처럼 반권력적 투쟁인가? 좌파가 투쟁하고 있다면 좌파운동의 공통의 적은 누구인가―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인가, 제국주의인가, 가부장주의인가, 유럽인가, 서구인가, 백인문명인가, 근대적 에스피테메인가? 좌파의 공통의 적을 어떻게 부르든지 간에 중요한 것은 좌파는 좌파의 적과 어떻게 다른가? 라는 질문이다.
3. 라틴아메리카 좌파가 직면한 두 가지 딜레마
이러한 일련의 질문은 20세기 후반 이후 라틴아메리카 좌파가 직면하고 있는 두 가지의 심각한 딜레마와 관련이 있다. 첫 번째 딜레마는 자본주의에 관한 것으로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도 어렵다는 사실이다. 딜레마에 부딪힌 좌파 진영은 두 개의 정치적 선택으로 갈라졌다. 첫 번째 선택은 개인주의와 경쟁의 원리, 이윤율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축적 원리의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자본주의와 타협하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 케인즈주의, 복지국가, 1960년대의 발전주의 국가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룰라의 정치적 선택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룰라의 사회정책은 민중의 보편적 권리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취약 집단에게 조건부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새로운 유형의 사회민주주의였다. 경제민족주의와 신자유주의 강령을 혼합한 신발전주의 국가의 경우도 첫 번째 정치적 선택에 포함된다. 딜레마에 부딪힌 좌파 진영의 두 번째 정치적 선택은,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post-capitalist alternative)을, 다른 한편으로는 아메리카 정복과 식민주의 이전 시기의 ‘전-자본주의적 대안’(pre-capitalist alternative)을 상상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주의라는 개념을 사용하지만 20세기의 실패한 현실사회주의와 거리를 두기 위해 사회주의를 다른 방식으로 규정한다. 베네수엘라의 ‘21세기 사회주의’(el socialismo del siglo XXI),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의 ‘공동체 사회주의’(el socialismo comunitario)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과 ‘전-자본주의적 대안’은 정치권력의 영역에서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예들 들자면, 에보 모랄레스 정부와 라파엘 코레아 정부는 자본주의로부터 자본주의 이후를 상상하는 반면에, 원주민운동단체들은 전-자본주의로부터 자본주의 이후를 상상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의 정치적 선택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의 좌파의 정세이다.
라틴아메리카 좌파가 부딪힌 두 번째 딜레마는 식민주의에 대한 인식이다. 식민주의가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식민주의가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딜레마처럼 식민주의의 딜레마도 진보 진영을 분열시켰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순간부터 식민주의가 종식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진보 정치의 유일한 목표는 계급투쟁을 통한 반자본주의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종족적-인종적 투쟁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대신에 혼혈성을 라틴아메리카 문화의 특유성으로 내세우고 정치적으로도 인종민주주의를 지지한다. 그러나 독립 이후에도 세습주의(el patrimonialismo)와 내적 식민주의(el colonialismo interno)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심지어 악화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반자본주의 투쟁과 더불어 반식민주의 투쟁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생각하기에 계급 지배와 종족적-인종적 지배는 되먹임(feedback)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에 평등을 위한 투쟁과 차이에 대한 인정 투쟁은 분리될 수 없다. 내적 식민주의가 사회적 관계,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 문화, 사고방식과 주체성을 가로지르는 대단히 광범위한 사회적 문법이라는 점에서 반자본주의보다 더 중요한 진보 진영의 과제는 탈식민주의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라틴아메리카 좌파가 부딪힌 두 가지의 딜레마는 오늘날 라틴아메리카 좌파가 직면한 위기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좌파의 미래’ 혹은 ‘미래의 좌파’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칼 슈미트가 주장한 것처럼, 선과 악의 구별이 도덕적인 것의 고유의 영역이고, 아름다움과 추함의 구별이 미적인 것의 고유의 영역이며, 이익과 손해의 구별이 경제적인 것의 고유의 영역이라면,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것은 정치적 것의 고유의 영역이다. 라틴아메리카 좌파의 위기와 관련해서 칼 슈미트의 주장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좌파의 비판적 성향이 끊임없이 내적 분열(internal divergencies)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 민중주의 좌파는 자본주의와 식민주의와 적대한다. 적대의 형성은 라클라우가 제시한 것처럼 다양하고 이질적 상태로 분리되어 있는 사회적 집단의 민주주의적 요구(democratic demands)를 등가 연쇄를 통해 민중적 요구(popular demands)로 접합하는 것이다.
4. 라틴아메리카에 국민-국가가 존재하는가
라틴아메리카 민중주의 좌파의 노선은 국가의 재건, 더 정확히 말하면 국민-국가의 재건이다. 좌우 진영을 가리지 않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이론에는 국가가 누락(from statelessness to statelessness)되었다고 말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근대화 이론(modernization theory)은 정치에 맹목적이었고, 특히 국가에 대해 맹목성을 드러냈다(blind to politics and especially blind vis-à-vis the state). 근대화 이론은 발전도상 국가들이 시간적 격차를 두고 산업화된 국가의 뒤를 따라간다고 주장했다. 경제적 발전과 사회적 근대화, 정치적 민주화의 과정은 자연의 원리로 받아들여졌다. 모든 사회는 선진국으로부터 후진국으로 확산되는 근대적 가치와 신념, 제도를 받아들여 ‘자연스럽게’(naturally) 산업화되고 근대화된 세계로 발전되어 간다는 것이 근대화 이론의 핵심이다. 근대화 이론은 전후 세계의 시대정신(Zeitgeist)이었고 모든 사회과학의 토대가 되었다. 1950년대 후반에 출간된 로스토우(Walt W. Rostow)의 저서 『경제성장의 제단계The Stages of Economic Growth』의 부제인 ‘비공산당 선언’(A Non-Communist Manifests)은 이러한 시대정신을 표현한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에 근대화 이론을 소개한 중요한 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이탈리아 태생의 아르헨티나 사회학자 지노 제르마니(Gino Germani)의 저작에는 국가, 국가 기구, 관료제 등에 대한 언급이 없다. 제르마니는 라틴아메리카, 특히 아르헨티나의 고전적 포퓰리즘(classical populism) 연구에 괄목할만한 업적을 남겼지만 그의 연구에는 국가 이론, 지배 계급과 정치 제도의 관련에 대한 성찰이 공백으로 남아 있다. 제르마니는 고전적 포퓰리즘에 사회주의에 대한 요구, 강한 민족주의적 요소, 계급주의에 대한 거부 등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러한 것들이 근대화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출현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제르마니는 전후의 라틴아메리카에서 군부 쿠데타와 권위주의 정권이 지속적으로 출현하는 사태를 설명하지 못했다. 또한 경제적 발전과 풍요를 약속한 근대화 이론에 바탕을 둔 경제 정책의 실패를 설명할 수도 없었고, 사회적 배제와 빈곤 계층의 증가로 인한 라틴아메리카 사회구조의 점진적인 붕괴를 설명하지도 못했다. 요약하면, 근대화 이론은 라틴아메리카의 지속적인 저발전, 외부적 종속의 심화, 정치적 위기, 사회적 해체를 설명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다.
종속이론(Dependency Theory)은 근대화 이론에 대한 비판이었고 라틴아메리카에서 오랫동안 무시되었던 근대 국가와 제국주의 문제에 대한 최초의 성찰이었다. 종속이론은 ‘국가라는 현상의 다차원성’(the multidimensionality of the state phenomenon)을 드러내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종속이론이 포착하는 국가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정리된다. (1) 국가는 국가의 부와 다른 권력의 원천을 통제하는 계급과 집단 간의 합의를 감추고 있는 ‘지배 계약’이다. (2) 국가는 권력 투쟁의 특권적 장(場)이고 좀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현존하는 모든 사회적 갈등의 장이다. (3) 국가는 관료제도에 의해 유지되는 복합적 기구와 제도이다. (4) 국가는 사민사회의 분파적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국가 간 체제에서 국민의 통합’(unity of the nation)을 상징적으로 대표한다. 요약하자면, 종속이론은 자본-네이션-국가라는 근대적 사회구성체에 대한 성찰이었다.
기예르모 오도넬(Guillermo O’Donnell)은 국가를 논쟁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브라질의 군부 쿠데타(1964년)로부터 시작되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끊임없이 괴롭혀온 독재와 권위주의를 분석했다. 권위주의적-관료주의적 체제에 대한 오도넬의 성찰은 라틴아메리카의 사회과학에 이정표를 제시하는 중요한 작업이었다. 오도넬은 근대화 패러다임이 간과한 경제적 발전과 정치적 관련성을 부각시켰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의 새로운 국면이 정치적 권위주의나 그것의 반작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오도넬의 후기 작업은 “정치는 정치로 설명된다‘는 주류 정치학의 모토를 충실하게 받아들였고, 그 결과 분과 학문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페르난도 엔리케 카르도주(Fernando Enrique Cardoso)는 엔소 팔레토(Enzo Faletto)와의 공동 저작에서 종속의 문제를 경제주의(economicism)로만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했다. 그는 종속이 외재적 의존의 문제이면서 세계시장과 국가 간 체제와 관련된 국내의 요인과 행위자가 복합적으로 배치된 결과라고 보았다. 이러한 복합적 배치에서 국가는 절대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국가는 국내적이고 국제적으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카르도주는 국가와 정치 조직이 자본주의적 축적 과정의 필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양자의 관련이 복합적이고 다양하기 때문에 결코 환원주의적 방식(reductionist fashion)으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종속이론의 영향력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칠레의 군부 쿠데타 기간 사이에 발생한 민주적이고 발전주의적 체제의 급속한 붕괴는 종속이론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던 사회적이고 학문적인 배경을 급속하게 위축시켰다. 그러나 더 중요한 요인은 1970년대 말부터 라틴아메리카에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적용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였다. 정치적 민주화와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의 이중적 과정은 라틴아메리카 대륙이 겪은 커다란 패러독스였다. 외세와 세계시장에 의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종속이 점진적으로 강화되는 과정에서 종속에 대한 이론화는 학문적 토론과 공적 아젠다에서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종속(dependence)은 상호의존(inter-dependence)으로, 제국주의는 제국으로 논쟁의 주도권이 넘어갔다. 국가는 시장원리주의의 공격의 대상이 되었고 지적 반동의 분위기 속에서 정치는 평온한 시장 기능을 어지럽히는 소음으로 간주되었다. 종속이론이 활력을 불어넣었던 국가에 대한 이론화는 민주주의 이행론 연구로 대체되었고 자본-네이션-국가의 보로메오의 매듭은 완성되지 못했다.
5. 라틴아메리카 민중주의 좌파와 국민-국가의 재건
1980년에 들어서서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목격된 것은 앞선 시기보다 눈에 잘 띠지 않고 때로는 수면 아래 가라앉았을지라도 많은 전선에서 전개된 저항과 집단적 투쟁이었다. 1980년대에 대중동원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고 1990년대도 마찬가지였다. 흔히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1980년대는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수확의 10년’이었다. 여러 가지 형태가 뒤섞인 집단행동은 매우 다양해서 그것들을 한꺼번에 지칭할 표식을 찾기 곤란했다. 이러한 집단행동들은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변화된 사회적·문화적·정치적·경제적 현실을 대변했다. 2000년대에 들어와 라틴아메리카 정치지형을 변화시킨 동력은 1980년대부터 시작된 집단행동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다양한 집단의 민주주의 요구가 등가 연쇄를 통해 접합되면서 민중적 요구가 되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적 요구가 민중적 요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러한 민중적 요구는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민주주의의 민주화가 될 것이다. 오늘날 경험하고 있는 세계경제의 구조적 불황과 대의제의 불완전함은 연성 독재(dictablanda) 혹은 강성 민주주의(democradura)로 표현될 수 있다. 1980년대에 경험했던 민주화는 민중이 주도하는 민주화 요구를 사전에 흡수하고 무력화하기 위한 자본의 ‘선제 개혁’이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스피노자의 말을 빌리면, 두려움과 희망의 변증법이 될 것이다. 개인이든 사회든 두려움과 희망이라는 두 개의 기본적인 감정에 의해 지배된다. 미래의 대한 기대가 부정적일 때 두려움이 지배한다. 반대로 미래에 대한 기대가 긍정적일 때 혹은 미래에 대한 부정적 기대를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반체제주의가 광범위하게 공유될 때 희망이 지배한다. 신자유주의는 미래에 대한 부정적 기대를 생산하는 거대 기계이다.
민중주의 좌파로 분류되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는 민중적 요구를 국민-국가의 재건을 통해 구체화한다. 국민-국가 재건의 두 개의 축은 헌법과 헤게모니 구축이다. 헌법은 민주주의를 민주화하기 위해 정치 체제와 제도를 재구조화하는 법적 개혁이다. 국가에 따라 개혁의 상황도 다르며 개혁의 메커니즘도 다르다. 의회를 통해 헌법 개혁이 가능할 수도 있고 의회가 헌법 개혁의 장애가 되는 경우에는 제헌의회를 소집해야 한다. 헌법 개혁의 공통점은 좀더 대의적이고 좀더 투명한 선거 체제를 확보하는 것이며 참여민주주의를 통해 대의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다. 자유주의 이론가들이 인정하는 것처럼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두 개의 이념은 정치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개입하는 시민의 능력에 대한 믿음과 통치 엘리트에 대한 신뢰를 통해서 시민의 능력을 대표하는 기능이다. 국민-국가 재건의 또 하나의 축은 헤게모니의 구축이다. 헤게모니가 강제가 아니라 동의에 의한 지배라는 점에서 헤게모니 구축은 민중주의 좌파가 지속될 수 있는 밑바탕이다. 헤게모니 구축은 단순히 정치적인 영역이 아니라 공교육과 민중 교육, 언론 매체, 문화 활동, 사회운동 등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진다.
1990년대 말부터 에콰도르와 볼리비아, 베네수엘라의 경험―사회운동의 활성화, 진보 정권의 등장, 제헌의회의 소집 등―은 좌파의 근본적인 혁신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대의민주주의와 결합된 참여민주주의, 세계사회포럼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회운동의 주체화, 정당과 사회운동의 새로운 관계 정립, 지금까지 잉여로 취급되어 온 사회집단들(무토지농민, 원주민과 아프리카계 후손 등)의 정치 참여,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에서 진행되는 다민족국민국가(Estado plurinacional) 건설, 끊임없이 지속되는 식민적 유산에서 벗어나려는 탈식민적 기획(projecto de-colonial) 등은 이러한 혁신의 구체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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