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진행형 민주주의 – 근로자이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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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서울시 근로자이사제 제정 기념식에서 노사정 관계자들이 선언문에 서명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원순 시장, 명순필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노동조합협의회 의장, 김태호 서울시 투자출연기관 사용자협의회 의장, 박태주 노사정 서울모델협의회 위원장. (출처: 매일노동신문 Labortoday.co.kr)]

작성: 송대한(The 숲 편집장)

번역: 심태은(The 숲 국문편집장)

지난 1월 6일, 서울연구원에서 국내 최초로 근로자이사(노동이사)가 임명되어 임기를 시작했다. 뒤이어 12개의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에도 근로자이사제가 도입될 예정이다. 비록 이사회 내의 노동 이사 비율은 작지만, 노동자도 다른 이사들과 동일한 권리와 권한을 가지고 기관의 비전과 정책의 수립에 관여하게 된 것이다. 노동 이사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제정한 근로자이사제 조례가 있다. 정부가 경영진에게 유리한 정책[ref]서울시에서는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수십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정부의 성과연봉제 도입 저지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ref]을 양산하면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가 이사회 즉, 가장 높은 형태의 기업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하는 것은 노동자들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합의의 결과물로서 태생적인 한계를 가진 근로자이사제라는 무기는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져야 하고, 이를 사용하는 사용자, 즉 노동자도 이 무기에 숙련될 필요가 있다.

2016년 9월 29일에 제정된 근로자이사제 조례는 노동자가 선출하고, 시장이 임명하는 노동이사가 정원 100명 이상의 서울시 산하 13개 공공기관의 이사회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이 조례는 시정 운영의 투명성, 노사 및 시 정부의 소통 제고를 위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노력의 일환으로 도입되었다[ref]서울시 조례에서는 ‘노동자’라는 단어 대신 ‘근로자’를 사용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제도를 가리킬 때에는 ‘근로자’를 사용하나, 특별한 언급이 없을 시에는 ‘노동자’를 기본 용어로 사용하고자 한다.[/ref]. 노동이사 선출을 위한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해당 기관에 최소 1년 이상 근무해야 한다. 정원 300명 미만의 공공기관의 경우 1명, 정원 300명 이상의 공공기관의 경우에는 2명의 노동이사를 선임해야 하고, 그 수는 전체 이사회 정원의 1/3을 초과할 수 없다[ref] 서울시의 근로자이사제 도입의 모델이 된 유럽의 경우에도 주주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사회 구성원에게 최종 결정권을 주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ref].

3년 임기의 노동이사가 가지는 권리와 권한은 이사회 내에서 소수라는 특성(이사회 정원의 1/3 초과 금지조항, 실제로는 1/3 이하[ref] 공공기관 대부분의 경우 8~11명의 이사가 있다. 이는 2명의 노동이사가 선임 되더라도 노동이사의 비율이 25%를 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ref]) 탓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동이사의 존재 자체야말로 일터의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중요한 무기가 된다. 노동자의 의견, 불만, 피드백을 이사회에 전달하고, 또 이사회에서 논의된 중요한 정보를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노사간의 소통이 더욱 촉진되고,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게 된다. 또한, 노동자의 경험과 피드백이 반영될 수 있어 정책의 효율성과 일관성을 제고할 수 있다. 경영진에서 일선 노동자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것은 효과적인 정책 생산뿐 아니라 경영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결과도 가져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사-정의 합의로 탄생한 이 제도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고, 제도의 운용과 투쟁을 통해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질 필요가 있다. 첫 번째 한계는 노동이사에 선임될 시 노동조합을 탈퇴해야 한다는 조항[ref] 이러한 조항이 삽입된 이유는 현행 노동법에서 경영진의 이해를 대변하는 사람이 노동조합에 가입할 시, 해당 가입조직을 더 이상 노동조합으로 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영진이 노동조합에 들어가 통제하려고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정되었지만, 이 법 조항을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노동이사에게 적용한 것은 법의 원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노동이사가 노동조합에 의해 선임되거나 노동조합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선임된다. 두 경우 모두 노동조합을 탈퇴해야 한다는 강제조항이 없다.[/ref]이다. 또한, 노동자가 직접 선출한 노동이사는 시장의 최종 결재를 받아야 한다[ref] 특별선거위원회에서 노동이사 후보 선출결과에 따라 노동이사 정원의 2배수에 해당하는 후보군을 시장에게 추천한다. 그리고 시장이 이 후보군 중에서 노동이사를 선임하게 된다. 예를 들면, 노동이사 정원이 2명일 시, 선거위원회에서 4명의 후보를 추천하고, 그 중에서 2명을 시장이 임명하는 것이다.[/ref]는 점이 또 하나의 한계점이다. 이 두 가지 한계점을 감안하면, 실제 노동자들의 투표결과를 반영하지 못하고, 노동조합과 연결성이 떨어지는 인물이 이사에 선임될 수 있다. 노동이사가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노동조합과 협력하기보다 경쟁하는 관계가 되지 않도록 이러한 지점을 반드시 해결해야만 한다. 노동이사와 노동조합 간 갈등이 발생할 시, 노동이사가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기보다는 나머지 이사들의 영향을 받아 결정을 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동이사의 이사회 참여가 얼마나 일터의 변화를 이끌어낼지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나, 서울연구원의 사례를 통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작년 12월 12일, 30명의 후보가 벌인 2주 간의 선거운동 끝에 234명의 연구원 노동자가 노동이사 선출을 위한 투표를 시행했고, 상위 2명이 서울시에 추천되어 최종적으로 배준식 연구원(53.4% 득표[ref] 배준식 이사는 서울연구원 도시경영연구실에 근무하고 있다.[/ref])이 노동이사로 임명되었다. 배준식 이사는 노동이사로써 연구원의 직원협의회[ref] 서울연구원에는 노동조합 대신 직원협의회가 있다.[/ref]와 더욱 긴밀하게 협력할 예정이다. 그는 정규직 복지혜택을 전 직원에 확대하는 것[ref] 정규직은 연 단위 계약이 아닌, 정년을 보장 받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정규직이 업무를 추진하는 핵심 인력이 되고, 비정규직은 연 단위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ref], 직원 상호 간 직원과 경영진 간 소통 활성화, 석사급 연구원들의 고용불안 해소, 연구원의 근무환경 개선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노동이사가 된 이후, 경영진에서는 비정규직 인력의 정규직화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TF를 구성했다. 노동이사의 선임, 직원 협의회 및 경영진과의 협력이라는 관점에서 산뜻한 출발이라고 하겠다.

노동자가 존업성과 권리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더 큰 틀의 투쟁에서 노동이사제는 우리에게 막대한 잠재력이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회를 쟁취하지 않으면 승리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면, 노동이사제는 우리가 쟁취해야 하는 기회인 것이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이를 제대로 사용하고, 더욱 정교하게 만들기 위해 투쟁할 때에야 비로소 이 제도가 민주주의를 기능하도록 하는 데에 가치 있게 사용될 것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