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입국금지 행정명령에 대한 반대 운동 확산
사진: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서 진행된 “무슬림 및 이민자 권리 긴급 행동” 뉴욕, 2017.01.25, 사진 출처: CCR
미국 대선 이후, 나는 미국 시민으로서, 그리고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 동포로서 공포를 느꼈다. 이 공포는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시작과 동시에 쏟아져 나온 행정명령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심지어 그가 당선되기 전부터 느껴 왔던 것이다. 이슬람 공포증, 반(反) 이민 정서, 인종차별 등은 현재의 시공을 뛰어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글에서 무슬림 입국 금지로 인해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트럼프 행정부에 맞선 저항 운동을 성공적으로 조직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것이 필요한 지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 동안 미 전역을 돌며 “미국 국회의원들이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파악할 때까지 무슬림이 미국에 입국하는 것을 완전히, 그리고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 우리가 정치적인 올바름을 지키고 바보 행세를 할 수 있지만, 이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우리가 이 문제를 이해하고 이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위협이 계속되는 한, 미국은 지하드(성전)만을 믿는 사람들이 감행하는 끔찍한 공격의 희생양이 될 수 없다[ref]http://www.independent.co.uk/news/world/americas/donald-trump-president-election-muslim-ban-immigrants-website-statement-removed-a7408466.html[/ref]”고 말하며 지지자를 끌어 모았다.
1월 27일에는 이러한 약속을 실천으로 옮겼다. 행정명령을 통해 최소 90일 간 7개 무슬림 국가(이라크, 시리아, 이란, 리비야, 소말리아, 수단, 예멘)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한 것이다. 더 나아가 시리아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미국에 입국하는 것을 영구적으로 금지했다. 이튿날, 위에 언급된 국가의 국적을 지닌 사람들이 공항에 억류되거나 비자가 취소되고, 비자 발급 신청 면담이 취소되거나 추방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메일과 SNS를 통해 JFK 공항 4터미널(델타항공 터미널)로 가서 시위를 하자는 내용이 전파되었고, 수 천명이 모여 그 날 밤까지 시위를 했으며, 그 다음주까지 긴급 법률 지원 서비스가 우선적으로 제공되었다.
나는 SNS를 통해 미국 전역(LA, 더 베이, 시애틀 및 기타 도시)에 있는 활동가 친구들도 공항에 모여 연좌시위를 하고, 억류 또는 구류되어 있는 사람들의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날 이후, 수 많은 도시의 트럼프 타워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위와 더불어 법원을 중심으로 무슬림 입국 금지 행정명령을 무효화하기 위한 일련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주목할 만한 사건으로는 1월 28일 뉴욕시 연방판사가 이 행정명령의 일시 중지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는 행정명령의 일부가 집행정지 된 것이지 완전한 집행 정지가 아니었다[ref] 추방이나 억류와 같이 공항에 있는 사람들에게 즉시 영향을 미치는 조항은 집행정지 되었으나, 비자 및 발급 면담 취소는 계속 되었다.[/ref]. 1월 30일에는 신임 법무부장관이 법정에서 행정명령을 옹호하는 것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파면되었다. 2월 3일에는 워싱턴주 연방지방법원이 7개 국가의 “ “비이민자”와 “이민자”의 여행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의 일부 조항을 연방 정부가 강요하는 것을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일시적 금지명령이 시리아를 포함한 난민들의 입국을 허용했다는 점이다.
이 논쟁은 제9 연방항소법원으로 옮겨갔고, 항소법원의 판사 3명은 2월 9일에 무슬림 입국 금지 행정명령의 집행 금지가 타당하다는 의견을 유지했다. 이에 CCR에서는 환영성명서를 냈다[ref]http://ccrjustice.org/home/press-center/press-releases/ccr-executive-director-applauds-muslim-ban-court-ruling[/ref]. 이 시점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수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고, 그것이 정확히 무엇일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악몽 같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 행정명령은 무슬림과 “소수” 공동체가 지난 수 십 년, 혹은 수 세기 동안 미국 내에서 겪어 온 공격을 더욱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도 볼 수 있다.
전혀 새롭지 않은 이야기
1942년 2월 19일,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내 일본인 포로수용소의 발단이 된 행정명령 9066호에 서명했다. 이 행정명령과 당시의 정서에는 – 특히 일본이 1941년 12월에 미국 진주만을 기습 공격한 이후 – 일본인이라면 누구든지 스파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전제로 깔려 있었다.
9.11 테러 이후,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무슬림 입국 금지 이후에 일본계 미국인 공동체 회원들은 무슬림 공동체에 연대를 표하며 함께 싸웠다. “다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포로수용소를 직접 경험했거나 가족 중에 경험한 사람이 있는 일본계 미국인 공동체가 자신의 역사 속에서 끊임 없이 외쳐왔던 말이다. 2009년에 나는 미니도카(Minidoka) 일본인 포로수용소로 연례 순례를 갔고, 수용소가 1940년대 중반에 폐쇄된 직후, 일본계 미국인들이 가보 등과 같은 일본의 전통과 문화와 단절하고 “미국 시민”이 되는 것을 통해 자신의 “미국인다움”을 증명해야 하는 정서가 매우 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근, CCR이 참여한 뉴욕 시에서 열린 “기억의 날” 행사에서는 이맘[ref]무슬림 지도자[/ref]과 시민권 운동 지도자들과의 패널토론과 전 일본인 포로와 기소나 재판 없이 관타나모 베이 감옥에 15년간 갇혀 있다가 트럼프 대통령 취임 며칠 전에 석방된 남성이 제작한 인터랙티브 미술 전시회가 열렸다.
9.11 테러 이후, CCR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가 만들어 낸 이슬람 공포증을 조장하는 정책과 맞서기 위해 광범위하게 법정 투쟁을 벌였다. 그 중 하나가 지글러 대 아바시 사건으로, 15년이 지난 후에야 대법원까지 올라갔으며, 오바마 행정부에서 다룬 마지막 사건이 되었다. 9.11 테러 이후 무슬림이거나 무슬림처럼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체포, 억류, 추방당했던 무슬림, 아랍, 동남아 이민자들을 대신하여 2002년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 소송의 목표는 부시 정부의 고위 각료들이 인종 및 종교로 프로파일링 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현재, 우리는 법원이 이 사건에 대한 의견을 발표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사건은 하산 대 뉴욕 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뉴저지(뉴욕과는 다른 주) 뉴욕시경 무슬림 부서의 무슬림 감시에 대한 것으로, 뉴욕시경의 감시 프로그램에 대한 언론 보도가 이루어진 뒤 소송이 제기되었다. 우리측 고소인과 미국 전역의 무슬림 공동체 회원 다수가 이렇게 전체 무슬림에 대한 감시가 얼마나 공포효과를 낳는지, 그리고 그들의 종교적 정체성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했다.
이 외에도 9.11 테러 이후, 무슬림 공동체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고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법정 소송과 변호 건수가 수백에 이른다. 이러한 행위는 법정, 체포, 구류, 추방당한 개인을 넘어 더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저항 조직하기
그러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무슬림 입국 금지 행정명령 서명이 이루어 지기 전에도 이미 사람들은 공항에서 억류되거나 심문을 받고, 추가 보안심사 대상이 되고, 근거 없이 비행금지 명단에 오르고, 미국 땅을 밟자마자 추방 대상이 되고, 비자 신청 과정이 지연되는 등의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이전에는 이러한 명령이 은밀하게, 또는 반대진영의 광범위한 시위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뿐이다. 전임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같이 노골적으로 혐오를 선동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중들은 자신의 도시나 공항에서 타인의 삶이 매우 끔찍한 방향으로, 그것도 영구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알지 못한 채 일상을 살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미국 대중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이 이 사실을 인지하고, 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주목하는 시점에 와 있다. 사람들이 주목하는 동안,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맞서 지속가능한 저항을 조직할 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슬림 공동체와 무슬림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서 시작하여 빈민, LGBTIQ[ref]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인터섹스(간성), 퀴어/탐색중[/ref], 흑인, 이민/이주민, 장애인, 그리고 기타 수 많은 공동체를 탄압할 것에 대하여 나는 내 지역 공동체와 함께 행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다음에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 될 지 두려움에 떨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양한 공동체가 두려움에 차 있고, 스스로 추방하며, 서로를 감시하고, 초조해 하며, 공동채 내에서 혼란을 초래하기 위해 공포로 인한 고통과 좌절감을 서로에게 배출하기를 바라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트럼프의 정책을 이용해 자신들의 권한을 더욱 남용하기 위해 이민국 및 세관 요원, 국토안보부 요원, 경찰, 심지어 자경단에게도 권한을 주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과 진실에 기반한 저항운동으로 그들의 혐오에 맞설 수 있다. CCR에 있는 우리들은 헌법과 소송이 우리가 스토리텔링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민중이 모이는 힘에 기반해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실질적인 대화를 하고, 창의적인 미디어, 예술, 캠페인을 만들고, 시민 불복종 운동에 참여하며, 집회에 참여하고 이를 조직하는 등의 활동을 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에도 가장 폭력에 취약했던 공동체가 여전히 남아 있고, 이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공동체에는 흑인, 무슬림, 퀴어, 트랜스 및 젠더 비순응, 성 노동자, 장애인, 이민자, 노숙자, 청년, 빈민 등이 있다. 또한, 이러한 정체성들의 경계에 있어서 취약점이 더욱 복잡하게 얽혀 있고, 그들의 목소리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전문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공동체 구성원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공동체야말로 우리가 지지해야 하고, 자원을 제공하며, 함께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동지애를 보여주어야 하는 곳이다.
동포사회의 일원으로서, 나는 항상 한국에 대해서, 그리고 미국의 문화적 태도와 정책이 내 조국에 수출된 방식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의 투쟁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트럼프 행정부와 그의 모든 지지자들이 보여주는 혐오와 싸우는 것을 통해 나도 고국의 사람들이 이러한 정책으로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다.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들 사이에서 자주 암송되는 자유투사이자 블랙팬더의 일원이었던 아사타 샤쿠르[ref] 원래는 ‘보호’라는 단어 대신 ‘지지’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반(反) 트럼프 운동을 전개하면서, 공동체의 안전이라는 행동을 취했는데, 이는 우리가 경찰과 시위대 중간에 들어가서 우리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행동은 공동체 구성원이 경찰에 잡혀갈 걱정 없이 시위를 할 수 있는 자결권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ref]의 시를 끝으로 글을 마친다.
“우리의 의무는 자유를 위한 투쟁이다.
우리의 의무는 승리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족쇄 빼고는 잃을 것이 없다."
글: 미진 리차르트
헌법권리센터(Center for Constitutional Rights) 활동가 & 행사 기획 담당
한인공동체 발전을 위한 노둣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