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누구도 베네수엘라에서 새로운 혁명 주체가 창조되었다는 것을 부정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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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홍정희(번역팀, ISC)

* 본 기사는 사회주의자 재건을 위한 국제저널 링크스(International Journal of Socialist Renewal)의 “Marta Harnecker: 'Nobody can deny that a new revolutionary subject has been created in Venezuela' (http://links.org.au/marta-harnecker-marx-capital-venezuela-brazil)”를 번역한 글입니다.

다음은 마르타 하네커가 2017년 1월 14일과 15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국제회의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150년 : 21세기를 위한 고찰"에 참가하기 전에 그리스 신문사 에파이머리다 톤 신탁톤[ref] Efimerida Ton Syntakton[/ref]의 타쏘스 사커로글로우[ref] Tassos Tsakiroglou[/ref] 기자와 가진 인터뷰이다. 링크스에서 영어 인터뷰 원본을 볼 수 있다.

당신은 마르크스 이론 체계의 실제에 관한 회의 차 그리스를 방문할 것이다. 심각한 국제 금융 위기 속에서 우리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생산 방식의 발전과 관련해서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예견한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적중했다. 예를 들면, 마르크스는 소수에게 오늘날의 초국적 기업처럼 소수에게 더 많은 부가 점점 더 집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전반적인 생산 과정과 특히 토양 착취(자동 기계 장치와 유전자 변형 농업)에 과학을 의식적으로 적용하는 것, 세계 시장이라는 그물망에 얽히고설킨 사람들, 그리고 이것과 함께 자본주의 체제의 국제성(세계화) 등을 이야기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논리를 꿰뚫고 있었기에 이 모든 것을 예견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노동자들에게 해방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려고 했다.

우리는 이론적 추상화 객체로써의 자본주의 생산 방식 연구와 사회 형성과 그에 따른 계급투쟁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 연구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치 150년 동안 현실이 변하지 않은 것처럼, 많은 라틴 아메리카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와 활동가들이 서로 다른 차원의 추상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마르크스 개념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우리 현실을 고전적 개념에 끼워 맞추려 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매개 변수를 벗어난 지역에서 일어났던 새로운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관한 이벤트를 통해 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라틴 아메리카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현상을 탐구하고자 한다. 또한, 이 새로운 현상이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지와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설명한 것과는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할 것이다.

마르크스 시대와 비교했을 때 현재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세계의 산업 노동 계급의 상황, 특히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이다. 거대한 노동 계급이 모인 곳에서 대규모 노동자 집단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는 대체로 불안정한 노동 조건과 하도급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조치의 이행과 노동 계급을 내부에서부터 분열시키는 사회적 분열 책동 전략 때문이다.

산업 노동 계급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라틴 아메리카 정당들은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적 사회 주체의 구체적인 특성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오랫동안 라틴 아메리카 혁명에서 원주민과 기독교인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인식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현재 99%와 1% 간의 분열과 불평등 확대로 수십 년 동안 사장되었던 계급투쟁의 개념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좌파는 이 현실을 제대로 이용도 못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정교하게 발전시키지도 못하고 있다.

계급투쟁 개념이 죽었는가, 아니면 이를 공유한 사람들이 역사발전 단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것인가? 계급투쟁이 사라진 것처럼 보여 평온한 시절도 있지만, 억압받는 많은 사회 계층이 행동으로 나서기 시작하는 시기도 있다. 우리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거대한 물결을 목격한 것처럼 말이다.

당신은 이 현실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좌파의 무능력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너무 일반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라틴 아메리카 좌파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신자유주의와 그로 인한 굶주림과 불행의 확대, 점점 더 불평등해지는 부의 분배, 환경 파괴, 주권의 상실 증가와 같은 공포로 사람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저항도 하고, 더 나아가 반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좌파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한 공세를 취했다.

이 지역에 새로운 힘의 상관관계가 형성되어 미국은 이 지역에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더 어려워졌다. 그러나 예상한 대로 미국은 우리의 전진을 멈추려는 의도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전 세계 자본주의 위기, 특히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인한 큰 경제적 난관을 이용하여 작년에 몇 가지 중요한 일시적 성공을 거뒀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서 초 신자유주의 통치자를 내세워 베네수엘라에서의 볼리바르 혁명의 완수를 막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 지역에 다소 난관이 있다고 해서 우고 차베스[ref] Hugo Chavez[/ref]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물려받은 라틴아메리카와 그가 남긴 라틴아메리카 간에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시몬 로드리게스[ref]Simón Rodríguez[/ref]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것을 시도해 온" 진보 국가 중 일부에서 매우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 주제에 관련해서 발표할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볼리비아, 니카라과, 에콰도르는 좌파가 통치하고 있으면서도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도 경제적으로 성공한 나라이다. 이들은 중요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

당신은 많은 저서에서 자본주의의 대안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 여러 진보적인 라틴 아메리카 정부의 궤적을 살펴보고 있다. 이 실천 과정 특히,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난 일 이후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가?

우선, 브라질 룰라[ref] Lula[/ref] 및 지우마[ref]Dilma[/ref] 정부 시절에 일어난 일과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난 일을 구분해야 한다. 두 나라 모두 사회 평등, 정치 민주화, 국가 주권, 지역 통합을 위한 투쟁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브라질의 세력 간 상관관계는 진보적 헌법을 제정한 베네수엘라와 달리 제도권 법률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브라질 노동자당(PT) 정부가 사회 문제를 강조했지만 신자유주의 의제를 깰 수는 없었다.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 정부는 자본주의의 대안인 21세기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국가 변혁을 필두로 해야만 했다. 그래서 첫 번째 단계로 차베스는 제도권 법률을 바꿨다. 그 결과 민중의 주체성이 필수적인 새로운 헌법이 탄생했다.

민중이 주체적으로 나서야 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제안했다는 점은 차베스의 계획이 국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이고 국민들은 단순히 혜택만을 받는 수동적인 기존 사회주의적 경험과 대비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브라질의 저소득층 생계비 지원 프로그램인 '볼사 파밀리아[ref]Bolsa Familia[/ref]'를 예로 들어보자. 수백만 명의 가난한 가족들이 정부에서 주는 혜택을 수동적으로 받았다. 일단 기본 욕구가 해결되자 새로운 요구가 대두되었지만, 정부는 유가 하락으로 이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야당은 이 상황을 이용하여 반정부 시위를 조직하고 궁극적으로는 의회에서 세력을 규합하여 제도적 쿠데타를 성공시켰다.

차베스 정부의 방향은 완전히 달랐다. 차베스는 사회주의는 위에서 명령한다고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민중에 의해 건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민중을 조직했다. 즉, 공동체 평의회, 노동자 평의회, 코뮌 등 다양한 논의기구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요구에 대해 토론하고 이를 정부와 함께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모색한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거지들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로 변모했다.

그리고 이러한 대중 부문이 차베스와 오늘날 후계자 마두로에게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차베스가 뿌려놓은 씨앗은 대중 부문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성숙하게 만들었다. 내가 베네수엘라에 살았던 경험을 토대로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인간으로서 자존감의 높이고 성숙할 수 있도록 공부하고, 생각하고, 참여하고, 설립하고, 결정할 기회를 얻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 과정을 지지하고 나설 것이라고 믿는다.

이 과정에 과오를 저지를 수도 있고 많은 약점이 있을 수 있지만, 베네수엘라에서 새로운 혁명 주체가 출현한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데 베네수엘라의 이 혼란한 경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차베스의 사망으로 인한 엄청난 리더십 공백을 틈타 국내외에서 볼리바르 혁명 과정에 대한 공격이 점차 확대되었다. 차베스의 유산을 계승하려고 노력하는 마두로에 대한 또 다른 쿠데타 시도가 매우 어렵게 되자 야당은 이전에 시작된 경제 전쟁에 열을 올렸다. 그래서 차베스가 14년 동안 받았던 수준의 공격을 마두로 정부는 출범 3년 만에 다 받았다. 이러한 공격의 목적 중 하나는 2003년부터 미션 메르칼[ref]Mission Mercal[/ref]을 통해 식량권 보장에 기여한 기본 식료품 보조금 지급 정책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칠레에서 달러화 암시장, 특정 산업 마비, 외국인 투자자와 현지 기업인들에 사이에 두려움을 조장하려는 고의적 시도와 국제적으로 파산 국가라는 이미지를 확산시켜 살바도르 아옌데[ref]Salvador Allende[/ref] 정부를 불안정하게 만들려 했던 것과 매우 유사하다.

베네수엘라 경제학자 파스퀄리나 쿠르시오[ref] Pasqualina Curcio[/ref]에 따르면, 국민들의 불만을 조장하기 위해서 인플레이션 유발과 불균형 조작이라는 두 가지 주요 전략을 베네수엘라에 적용하였다. 한편으로는 암거래 시장과 불법 시장에서의 환율 조작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선거 이전 수개월 동안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위적으로 필수품을 부족하게 만들기 위해 사재기와 국경을 통한 밀수입으로 유통 방식을 조작하였다.

독점 기업과 은행가는 상품을 생산하지도 않으면서 해외에서 물건을 사서 국내에 판매하여 대규모의 이익을 창출하고, 그들이 수입한 상품(기본 필수품, 그중 식료품과 생산과 운송에 필요한 품목)의 가격을 독과점 식으로 정하고 실제 통화 가치보다 훨씬 높은 비공식 환율(14.5배)을 사용한다.

필수품 가격의 상승이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해를 끼치지만 일용품을 생산하는 부르주아지 부문에도 해가 된다.

또한, 대중의 불만을 조장하기 위해 이들은 정기적으로 적당한 때를 선택해서 상점 선반에 필수 품목을 충분하게 채워 넣지 않고 일부러 부족한 상태로 내버려둔다.

이러한 공격은 급격한 유가 하락뿐만 아니라 정부가 부실한 경제 정책 채택으로 인해 유가의 하락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조건이 갖춰진 상태에서 전개되었다. 게다가 국가 생산을 저해하고 수입에 점점 의존하게 만든 방대한 수입 친화 정책과 환율 정책이라는 토대 위에서 공격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부르주아지와 부패한 관료 체계가 실제 위기를 심화시키고 마두로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이러한 객관적 상황을 이용하고 있음을 어느 누구도 부정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베네수엘라의 오늘날 경제 위기가 차베스의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대안 구축의 실패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너무 온도가 높아서 타버린 파이에 대해 요리법이 잘못되었다고 비난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정부가 잘하지 못했던 점과 반복해서는 안 되는 것을 진지하게 분석해야 한다.

최근 소식들은 긍정적이다. 최근 베네수엘라 정부는 석유 가격을 높이기 위한 광범위한 국제 협정에서 쾌거를 거두었다. 또한 이 국가적 노력에 참여하기 위해 정부와 협력하고자 하는 모든 민간 산업 부문을 소집하여 국내 생산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부패한 관료주의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너무 낙관적인 것 아닌가? 보수 세력이 날이 갈수록 진영을 넓혀가고 있지 않은가?

역사는 보수 세력에 대항해왔기 때문에 나는 낙관적으로 본다. 보수는 지키지도 않을 약속들로 민중을 속이지만 이러한 사기와 기만은 현실과 상충되기 때문에 영원할 수 없다.

역사는 우리 편이다. 보수와의 싸움에서 우리가 유리한 이유는 우리가 제안해서 세우려는 사회가 객관적으로 대다수 국민들의 이익에 부합하고, 보수는 그저 지배층의 이익만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이익에 부합하는 계획이 있는데도 왜 이것이 사회와 선거에서 지지로 이어지지 않는가?

주로 보수가 미디어를 이용하여 우리 계획을 왜곡해서 유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도 이 왜곡에 책임이 있다. 우리는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계획의 실질적 측면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삶이 우리 계획과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말하지만 행동은 독재적이며,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사회 건설을 원하면서 우리 자신은 이기적이다. 또한 환경 보호를 외치면서 우리는 소비주의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