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상처받은 바르셀로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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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정성미(국제팀, ISC)  

* 본 기사는 르몽드(Le Monde)의 “ Dans Barcelone meurtrie: On s’était habitués à vivre paisiblement en Catalogne”를 번역한 글입니다.

바르셀로나와 캄브릴스에서 테러로 14명이 사망했다. 다음날인 8월 18일 금요일에도 카탈루냐[1]의 중심 도시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광장의 거대한 나무 그늘 아래, 철제 벤치에 앉아 친한 친구사이인 두 젊은이가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들은 음악 프로듀서와 마케팅 전문가이다. 그들을 둘러싼 도시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지하철이 다니고, 가게에서는 물건을 판다. 광장 바로 옆에 있는 람블라스 거리[2]에서 흰색 밴이 수십 명을 쓰러뜨리며 달려 적어도 13명이 사망했으며, 캄브릴스에서 벌어진 테러로 14번째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테러는 IS 소행으로 알려졌다. “바르셀로나는 강한 도시예요. 우리는 극복할 겁니다” 음악 프로듀서가 말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이미 다 지나간 일이라는 것처럼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두 청년은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세비야의 베티스 팀과 일요일 축구 경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연하게도 일상은 그대로예요.” 무심한 태도로 다리를 뻗으며 마케팅 전문가가 말했다. 그 모든 일에도 바르셀로나는 정상으로 돌아갔다. 이는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테러에 대한 저항을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8월 18일 금요일 이른 아침, 카탈루냐 광장을 향해 있는 스페인 은행에서 근무하는 피파가 업무를 시작했을 때 비극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8월 17일 오후 5시쯤, 퇴근하려는 순간에 그녀는 우연히 은행 감시 카메라 영상을 보았다. 흰색 밴이 갑자기 화면에 나타났다. 그 차량은 람블라스 거리 중앙 도로로 돌진했고, 삼삼오오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링 핀처럼’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영화의 한 장면일 거라고 생각한 그녀는 밖에서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왜 바르셀로나일까? 왜 도시 중심가에서 바다로 향하는 유명한 거리 람블라스일까? 피파는 이런 의문을 갖지 않는다. 아니,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이런 의문을 갖지 않게 되었다. 왜 여기인가? 그 이유는 유럽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전체가 목표가 되었죠. 이번에는 이 나라, 그 다음은 저 나라.” 광장에 있던 한 간호사가 말했다. 프랑스, 독일, 벨기에……. 테러가 지정학적으로 통일된 하나의 단위를 그려나가는 것처럼 보이고 있어 유럽 조약에 가입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간호사는 흰 종이에 ‘두려워하지도 증오하지도 말자’라고 써 붙였다. 많은 사람들이 뭔가를 종이에 써 붙였다.

밴이 돌진한 람블라스 입구에는 수많은 초, 꽃, 메시지가 위풍당당하게 쌓여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많은 생명을 앗아간 그 길을 따라 걸었다. 그 길에는 차량이 돌진한 곳마다 만들어진 추모 장소가 있다. 첫 번째 추모 장소에는 장난감이 잔뜩 쌓여 있어 눈에 띈다. “여자 아이가 죽은 곳이에요.” 한 관광객이 말했다. 그 아이는 브라질에서 왔다고 했다. 우리는 그 장면을 목격한 상인을 찾았다. 그는 이미 미국 방송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고, 다음에는 포르투갈의 한 채널과 인터뷰하기로 ‘예약되어’ 있었다.

한 노인이 추모 장소에 국기를 올려놓으려고 할 때, 조금 이른 시간에 나온 기타 연주자가 카탈루냐어로 “스페인 정부에게 치욕을!”이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독립!” 몇몇 사람들이 뒤이어 외쳤다. “오늘은 그런 말과 행동은 하지 말아요.”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막았다. 노인은 국기를 거둬들여 접었다.

정오에 스페인 전국에서 희생자를 위해 1분간 묵념할 때, 펠리페 6세, 마리아노 라호이 수상, 카탈루냐 정부의 수반 카를레스 푸지데몬이 바르셀로나에 모여 나란히 섰다. 격한 대립, 특히 10월 1일 분리 독립 투표를 앞두고 있는 카탈루냐 독립에 대해서는 더 격한 대립이 일상화된 이들이 함께 뭔가를 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라고 총리는 스페인어로 카탈루냐 수반에게 말했다. 카탈루냐 수반은 광장을 나오면서 “공공장소를 테러의 상처로부터 회복시킨 (그들) 공동체의 아름다운 대응을 카탈루냐어로 강조해서 말했다. 공식적으로 이 두 사람은 1년 동안 만난 적이 없다. 이날 바르셀로나의 람블라스에서 사람들이 만든 슬로건 중에서 회자되고 있는 것은 “No tinc por”인데, 카탈루냐어로 “나는 두렵지 않다”는 뜻이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스스로를 꺾이지 않는 강한 사람들이라고 믿고 있어요.” 바르셀로나에 체류 중인 프랑스인 피에르-올리비에 부스케가 말했다. 그는 10년 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에게 이메일을 받고 ‘테러가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실감했다. 한 버스 운전기사는 “우리는 카탈루냐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두 관광객이 다투었다. 남편은 밴이 세 번이나 충돌한 키오스크 근처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에 적힌 수천 개의 메모를 사진 찍고 싶었지만, 부인은 여행 일행을 놓치기 전에 가자고 했다. 사람들이 해변의 길 위에 초를 가져다 놓았다.

네 번째 추모장소는 플라타너스 둘레에 촛대들이 놓인 곳이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주님의 기도를 큰 소리로 외우고 있다. 그 맞은편에서는 청년들이 “연대를 위한 포옹, 증오와 공포에 맞서 싸우기 위한 사랑”을 외치고 있다. 시간이 가면서 발코니에 검은 색 리본을 인쇄한 플래카드들이 내걸렸다. 저녁이 가까워오자, 사람들이 사무실에서 나왔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떠나가자 여름날의 람블라스는 관광객들의 차지가 된다. 해가 저문다. 한 가족의 어머니가 추모장소 여섯 곳에 흰 카네이션을 놓았다. “저는 몸이 아픈 소중한 사람을 방문하는 마음으로 여기에 왔어요.” 그녀가 말했다. 한 젊은이는 여자 친구를 끌어안고 “우리는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자유롭고 단순하게 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은 거리에 나붙은 것이 거의 없다고 한다. 모두들 감정표현을 자제하고 있는 것이다. “SNS에서는 감정이 넘쳐흘러요.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거지요.”

밴이 돌진을 멈춘 여섯 번째 추모장소에서 젊은 모로코 청년 4명이 8월 18일 이른 아침에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체포되었다. 그들은 같은 축구팀 소속일 뿐이라며 저항했다. 정오쯤 그들은 경찰서를 나왔고, 마지막 추모장소에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루가 끝나갈 때쯤 약 30명의 남자들이 나타나 ‘친(親)국경, 친(親)국가, 반(反)이슬람(Pro-frontières, pro-nation, anti-islam)’이라고 적힌 깃발을 펼쳤다. 그 중 나무다리를 가진 키가 큰 사람은 ‘스페인 군(軍)’이 적힌 티셔츠와 스페인 국기가 그려진 바지를 입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극우 집단을 의미하는 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람블라스에서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 단호한 태도로 그 남자들을 향해 가며 계속 외쳤다. “파시스트는 떠나라!” 또는 “지하디스트 무장단체 테러에 반대한다. 파시즘적 증오는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점점 수가 많아지고, 결속이 강해졌다. 짧은 머리의 극우주의자들은 한 호텔 앞 벽으로 몰렸다. 그 중 한 명이 모자를 벗고, 두꺼운 손가락에 금속반지들을 끼고 주먹을 높이 휘두르며 위협했다. 친구들도 그를 따라했다. 사람들은 그들과 거의 맞닿을 정도로 그들을 몰아붙였고, 결국은 대학 광장을 향해가는 시위대가 되어 외쳤다. “테러리즘, 이슬람 공포증 반대!” 저녁 8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람블라스에서 사람들이 갑자기 도망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도망친 건 경찰의 사이렌 소리 때문이었을까? 혹은 흰 밴의 악몽이 되살아났기 때문일까? 공포 속에서 다섯 번째 추모 장소 촛불들은 여기저기로 날아가고, 얼룩말 장난감과 보라색 곰 인형은 흰 포석 위에 짓눌려져 있었다. 마치 전날 있었던 비극을 그로테스크하게 재현한 것처럼. 그들은 곧 멈췄다. 여기 저기 흩어진 물건들을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한꺼번에 울음을 터뜨렸다.

 

  1. 스페인 북동부에 있는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하고 공업이 발달한 지방으로 중심도시는 바르셀로나이다. 스페인어와 함께 카탈루냐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스페인으로부터 분리 독립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2. 카탈루냐 광장에서 바르셀로나 해안가에 있는 콜럼버스의 탑까지 이어지는 1.2km의 가로수길이다. 바르셀로나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