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평화, 오키나와를 통하다
글: 송대한(네트워크팀장, ISC)
번역: 심태은(번역팀장, ISC)
동북아시아에서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함에 따라, 북한은 러시아에 군수품을 제공하는 대신 러시아의 미사일 기술을 입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5년마다 열리는 군사 퍼레이드를 부활시켰다. 대만 정부는 첫 자국산 잠수함을 선보였다. 일본 정부는 대만을 둘러싼 갈등에 대비하여 민간 공항과 항구를 군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다. 미국과 미국의 동맹이 북한, 중국, 러시아를 억제하려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북-중-러는 이러한 경제 제재와 군사 위협에 맞서 힘을 모으고 있다. 양측은 역내 안정성의 힘과 회복력을 시험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은 북한을 삼각동맹의 이유로 댔지만, 지금 전쟁이 발발한다면 그 중심지는 대만일 것이며, 역내 각국이 저마다의 동맹으로 얽히고설키게 될 것이다.
한국의 진보 운동 세력도 평화를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평화 운동이 성공하려면 이미 지정학적 단층선에서 투쟁하고 있는 이들과 연대하는 것을 시작으로 역내 평화 동맹을 구축해야 한다. 이런 연대를 맺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오키나와이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태평양의 중심(Keystone of the Pacific)’이라는 취약한 입장인 데다 일본 정부의 희생양으로 피해를 받았던 경험이 있기에 평화 투쟁의 동맹으로서 적격이다.
불씨
중국은 안보가 모두의 안보에 좌우된다는 ‘안보 불가분의 원칙’을 주장했지만, 미국의 담론은 중국 억제와 전쟁 준비를 통한 전쟁 억제를 중심으로 한다. 미국의 군사력과 동맹을 대규모로 급격하게 늘리는 목적이 대만 공격 시 큰 대가를 치르고 실패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일명 ‘고슴도치 전략’)이라고 해 보자. 그렇다면 대만과 평화로운 통일을 원한다고 선언했지만 무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은 중국이 미국의 억제력이 기정사실로 되기 전에 공격하면 이를 무엇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양대 강국은 아슬아슬하게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선에서 공방을 주고받겠지만, 그 과정에서 실수 하나가 이 지역의 전쟁으로 비화하는 일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미국 중심의 세계 너머를 상상하지 못하는 서구 주도의 언론에서는 미국 일방주의의 폐허에서 등장한 다극 세계로의 평화로운 전환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따라서 담론을 평화로 바꾸기 위해서는 진보 세력이 전쟁 및 갈등에 반대하고 평화와 공존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한국에서 삼각동맹을 반대하는 진보 세력도 여기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날이 강화되는 일본의 군사화에 반대하려면 한국에서도 미국이 말하는 ‘태평양의 중심’인 오키나와 진보 세력과 적극적으로 힘을 합쳐야 한다.
‘태평양의 중심’
미군정 시기, 오키나와의 군용 번호판(일본이 ‘주권’을 회복한 20년 후인 1972년까지도 사용됨)에는 ‘태평양의 중심’이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이는 오키나와가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함을 의미했다. 오늘날 오키나와는 미국의 대만 전략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카데나 공군기지(‘[미]공군 최대 공중전 부대’ 보유) 같은 미군기지는 침몰시킬 수 없는 항공모함의 역할을 한다.
오키나와가 미국의 대중국 전략의 전략적 요충지인 이상, 중국의 반격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지정학적인 현실 외에도 오키나와 주민은 희생양이 될까 봐 우려하는데, 이는 이들의 역사의식에 깊게 새겨져 있다. 오키나와 환경정의 프로젝트의 요시카와 히데키 대표는 2차 세계대전 중 오키나와 전투를 겪은 사람들은 “군인, 특히 일본 군인이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점을 학습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사실상 “군대 기지를 보유한다는 것은… 군사 공격을 유도하게 되는 것”이다. 2022년에 있었던 한 연구 결과에서 83%의 오키나와 주민이 군사 충돌 시 오키나와 미군 기지가 공격 대상이 될 것으로 보았다는 점은 그리 놀랍지도 않다.
희생양
2차 세계대전이 종반으로 치닫던 때 벌어진 오키나와 전투는 태평양에서 벌어진 전투 중 가장 잔혹했으며, 일본 영토에서 벌어진 유일한 전투이다.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피스필로소피센터의 사토코 오카 노리마츠 대표에 따르면, 당시 미군이 일본 본토로 진격하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12만 명이 넘는 오키나와 주민(오키나와 인구의 1/4~1/3에 해당)이 희생되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남학생과 여학생은 각각 군인과 간호사로 동원되었다. 노리마츠 대표는 1879년에 일본이 오키나와의 류큐 왕국을 강제로 병합하고 문화적 동화 정책을 추구했던 것을 감안하면, 일본 제국군이 “왕이 있는 본토를 보호하기 위해 남쪽 식민지”를 희생시킨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오키나와는 전쟁이 끝나고 또다시 희생양이 되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통해 미국이 일본에 ‘주권’을 돌려주는 대신,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미군이 오키나와에 주둔하게 된 것이다. 이후 20년간 오키나와 주민은 미국법의 적용을 받으며 살아왔다. 본토로 건너가려면 여권이 필요하고, 외국군 주둔으로 인한 수모와 위험에 시달려야 했다. 1955년에 6세 여아가 성폭행 후 살해되었고, 그 일주일 뒤에 또 다른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1972년에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되면서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주둔 미군을 본토 수준에 비례하게 감축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감축은커녕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미군은 오히려 늘었다. ‘오키나와 주둔 미군 덕분에 국방비 지출이 감소’한 것이 일본의 전후 경제 부흥을 이끌었지만, 오키나와는 여전히 일본에서 가장 가난한 현이었다.
일본 정부가 관리하는 가운데에도 미군의 끔찍한 범죄는 계속되었다. 1995년에 세 명의 미군이 12세 여아를 납치하여 성폭행했고, 2016년에는 미군 군무원이 20세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2017년부터 2019년 사이 (최소) 8건의 성범죄 수사가 이루어졌고 미군에 의해 은폐되었다.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국 국방성 장관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기지”라고 했던 후텐마 해병대 비행장 때문에 오키나와 주민은 인구 밀집도가 높은 도심 지역에서 주거 위험과 수모에 시달린다. 2017년에 날아가던 헬리콥터가 초등학교 창문으로 추락하여 한 명의 아동이 다친 사건이 있었다. 2004년에는 헬리콥터가 오키나와 국제대학교와 충돌했다. 이 외에도 주거 지역 위로 저공비행을 하는 항공기 소음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평화를 향한 투쟁
2019년에 실시된 주민투표(구속력은 없음)에서 오키나와 주민 72%가 헤노코 오우라 만에 후텐마 기지를 대체할 새로운 기지 건설에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요시카와 대표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언론을 장악하고 ‘중국 위협, 대만 상황, 북한 위협 선전’을 벌여 미국 주둔군을 늘리는 데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했다. 오키나와섬과는 달리, 전쟁이나 미 점령군을 겪어보지 못한 오키나와현 남부 지역의 섬들은 일본 자위대 주둔에 더 우호적이다.
이에 대하여 요시카와 대표는 평화 운동 세력은 함께 ‘규모가 더 크고 더 일관적인 평화 운동을 건설’하기 위해 일본 본토와 해외 평화 단체를 초청하여 여러 행사와 집회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일 삼각동맹의 강화는 각국의 ‘평화 운동 세력이 이에 맞서기 위한 연대를 촉발’했다. 오키나와는 한편으로 보면 침몰시킬 수 없는 미국의 항공모함이지만, 평화 운동 관점에서 보면 평화를 위한 보루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의 진보 운동 세력은 이런 역내 평화 운동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평화로 향하는 길은 오키나와뿐만 아니라 평화를 위해 최전선에서 싸우는 이들과도 함께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내어 귀중한 통찰을 제시해 준 피스필로소피센터의 사토코 오카 노리마츠 대표와 오키나와 환경정의 프로젝트의 요시카와 히데키 대표에 감사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