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기행] 서울에서 평양까지
글: 제시 로버트 에드워드(Jesse Robert Edwards)
편집: 케이틀린 헤믹(Katelyn Hemmeke)
번역: 예선희, 지민경(번역팀, ISC)
작년 9월3일, 북한에서 소규모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지진은 북한 핵실험의 성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그 유명한 “화염과 분노”를 운운하며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을 도발하는 것에 대해 경고를 날렸다. 미국 정가에서 논리와 이성은 사라진 듯 보였고, 나도 그것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그러한 백악관의 재앙적인 대응에 안절부절 못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날 나는 서울에 볼일을 보러 갔었는데, 가족이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거나, 삼삼오오 친구와 함께 쇼핑 센터를 거닐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카페에도 핸드폰 게임을 하거나 드라마를 몰아서 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평화가 너무나 멀리 있고, 이 교착상태가 언제든 전쟁으로 점화될 수도 있다는 암울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한 친구는 미국이 최고의 미사일 기술을 가지고 있다며 나를 안심시키려 했다. 마치 군사력이 눈 앞의 재앙에 위안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듯이.
사실 한반도의 분단을 초래한 것은 미국의 제국주의다. 그리고 갈라진 남북한은 크나큰 고통을 겪었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끝난 후, 미국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기는커녕,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한반도 이남을 점령하겠다고 주장했다. 냉전 후, 남한과 북한은 각각의 정부를 세우기 위한 분리 선거를 실시했다. 남한에서의 반공 정서는 1949년 제주 4.3사건, 1950년 보도연맹 학살사건, 그리고 1980년 5월 광주에서의 학살 등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북한은 소련 붕괴 후 점점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었고, 1990년대에는 수 년간 끔찍한 기근을 겪었다. 한국전쟁으로 200만명가량이 목숨을 잃었으며, 남북한은 통일은 둘째치고 평화적인 해결방식조차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서로 철저히 다른 발전 과정을 거쳤다. 내가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2017년 9월 3일 사건의 해법을 찾고자 하는 차원에서가 아니다. 다행히 그 이후 정세는 냉정을 되찾았고, 남북한의 지도자는 함께 살아갈 길을 찾기 위해 주도적으로 나섰다.
10월 14일, 함께서울(준)과 국제전략센터가 주관하는 통일기행의 일정에 따라 서울에서 DMZ로 향했다. 나는 판문점 선언과 평양선언 이행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며 사람들이 자기소개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밝은 에너지를 느꼈다. 몇몇은 북한으로 여행가는 것이 곧 실현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만약 내가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 간의 평화회담의 미래에 일말의 의구심을 가졌었다면, 그러한 의구심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제 희망을 이야기할 때였던 것이다.
함께 같은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꽤 의미가 있었다. 임진각 같은 장소에 그 희망을 가져와 민중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우리 일행이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평화와 진보에 대한 바람을 품고 온, 꼭 필요한 존재였다. 임진강을 가로 지르는 자유의 다리는 가장 눈에 띄는 역사적 장소였다. 현재 다리는 통행이 막혀있고, 그 가로막힌 곳에서 사진을 찍는 배경이 되는 것이 이 다리의 유일한 기능이었다. 기행 중 제공된 설명과 소책자에서는 이 다리를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는 다리’라고 표현했다. 이는 앞으로 해 나가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를 말해주었다.
도라 전망대를 돌아보면서 나는 망원경을 통해 보는 것이 내키지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의 어딘가(DMZ)에 가기 위해 기행에 참가하는 것은 가벼운 호기심에 망원경을 보는 것과 그 무게감이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나중에 들은 다른 사람들의 소감은 매우 달랐다. 그들은 친척이 살던 고향을 보기 위해 최대한 먼 곳까지 보고 싶었다고 했다.
도라산 기차역은 나에게 가장 큰 인상을 남겼다. 나는 차를 가져 본 적도, 가지고 싶었던 적도 없었지만, 기차는 나를 항상 매료시켰다. 기차를 타는 것과 기차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고, 심지어 기차를 기다리는 것조차도 나에게는 즐거움이다. 제대로 된 대중교통수단이 없는 곳에서 자란 오하이오 출신인 나에게, 기차는 사회적인 힘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교통수단이다. 그래서 개성행 표지판이 있는 도라산역 승강장은 나에게 매우 강력한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언젠가 이 승강장에 서 있을 나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나는 목적지를 정할 수도 있고, 사람들이 기차에서 질서 있게 내리고 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차 노선도를 보거나 창문 밖을 내다볼 수 있을 것이다. 도라산 역은 이것이 모두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였다.
그리고 승강장을 둘러보다 보면 21세기 미국 제국주의를 대표하는 조지 W. 부시의 큰 사진이 보인다. 이 기차역이 완공되었을 때 그가 무슨 역할을 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지금 그 사진은 색이 많이 바랬다. 이 사진이 계속 태양에 의해 그 색이 바래 괴상한 호기심거리가 되어 결국 교체되어 버리기를. 한반도가 통일이 되고 치유될 수 있도록 미국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한반도를 떠나기를. 그리고 도라산역이 서울에서 평양까지, 그리고 더 멀리 이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