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번역] 여성 살해는 격리되지 않는다
게시일: 2020년 4월 9일
번역: 안소연, 이재오(ISC, 번역팀)
며칠, 몇 주, 몇 개월, 기한 없는 시간 동안 전 세계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마비된 것처럼 보인다. 불확실성은 불안을 증폭시킨다. 아룬다티 로이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윤이 아닌 증식을 추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어느 정도는 (자본이) 흐르는 방향을 뒤집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민통제국, 생체인식 기술, 디지털 감시 및 모든 종류의 데이터 분석 기술을 비웃고, - 현재까지는 –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들에 가장 강력한 타격을 입히며, 자본주의의 동력에 급제동을 걸고 있다’고 표현했다. 이제 봉쇄정책은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었고, 지구는 더 한산해졌고, 새소리는 더욱 커졌다. 아룬다티 로이가 조심스럽게 사용한 ‘현재까지’라는 표현이 중요성을 갖는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빈곤층, 인도 다라비와 브라질 시다지 지 데우스의 빈민가까지 깊숙하게 침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유하는 책임, 글로벌 연대’란 희망찬 제목의 국제연합(UN)의 주요 보고서는 전 세계적 유행병인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회의 중심부를 공격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전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사회와 국가 기관들의 공동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그야말로 보건, 사회 또는 경제 위기 관리 능력을 상실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2021년이 되기 전에는 경제가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지금은 2020년 4월이지만 이미 2020년도의 모든 연간 일정이 취소되고 있는 것 같다.
광범위한 계층의 사람들을 결집시키고 있는 한 가지는 바로 부르주아의 질서의 실패와 ‘자유 시장’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한다는 신념에 가해진 큰 변화에 대한 당혹스러움이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마저 이와 같은 관점을 내놓았다.
지난 40년간의 기조 정책 방향과 역행하는 급진적인 개혁이 회의 의제로 상정되어야 한다. 각국 정부는 경제에서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함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정부는 공공 서비스를 부채가 아닌 투자의 개념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을 줄여나갈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재분배가 또다시 의제로 다뤄지며 노인층과 부유층이 가지는 특권을 문제 삼을 것이다. 기본 소득과 부유세 등 최근까지도 비정상적으로 여겨졌던 정책들을 이제 정책 패키지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최근 품자일 맘보 낵쿠카 UN 사무부총장 겸 여성기구 상임이사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 사회와 경제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여성이 다양한 역할을 무급으로 맡고 있을 때만 제 기능을 하는 현재의 공공 및 민간 분야의 취약점이 드러났다’”고 언급하였다. 이 촌철살인의 한 마디를 진지하게 성찰해봐야 한다.
의료 노동자
의료진부터 병원 세탁실 직원까지 최전선 필수 노동자 중 4분의 3을 여성이 차지한다. 이러한 노동자에게 경의를 표한다며 난리법석을 떠는 것과 실제로 이들이 오랫동안 요구해왔던 노조 결성, 임금 인상과 노동 환경 개선, 그리고 자기 노동 분야에서의 자주 통제권을 수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전 세계 병원의 관리직은 거의 모두 남성이 독식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공공보건위기의 부담은 990,000명의 공인사회보건활동(ASHA) 노동자들과 안간와디(인도 농촌 지역에서 기초 의료 지원과 유치원 교육 제공) 보육 노동자, 그리고 간호 보조 산파에게 지워진다. 이러한 노동자는 거의 모두가 여성이며 매우 낮은 임금을 받고 (그나마도 체불되며)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며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지 못한다. (기가 막히게도 정부는 이들을 “명예 봉사자”로 분류하고 있다) 작년 ASHA 노동자가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투쟁을 거듭했을 때 사소한 성과밖에 내지 못하고 무시되었다. (2019년 7월 도씨에 No. 18의 인도 인도중앙노동조합 본부장 K. 헤말라타 인터뷰 참조) 현재의 팬데믹 상황에서 (마스크와 손 소독제와 같은) 최소한의 보호 장비도 없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각 가구 구성원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ASHA와 안간와디 노동자이다. 모두가 입에 발린 말로 찬양하는 이들은 노조, 고용 보장 및 충분한 임금과 같은 기초적인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최전선 공공보건 노동자들이다.
강화된 성역할
2년 전, 국제노동기구(ILO)는 여성이 남성보다 3배나 많이 무상 돌봄 노동을 수행(76.2%)한다는 연구를 발표하였다. ILO는 “유/무상 돌봄 노동의 성별 분업에 대한 태도는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회에서 “남성이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족 구조가 깊게 뿌리내리고 있고, 여성의 역할은 주로 가족을 돌보는 것으로 인식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는 ‘정상적인’ 시기에도 당연한 상황이지만, 팬데믹 시대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불평등과 문화적 차별은 고문과도 같아진다.
돌봄 노동 중 사회 기관과 구조가 부담했던 부분들이 중단되고 있다. 학교가 문을 닫자 어린이들은 집에서 공부해야 하는 압박을 받으며 노인들이 공원에서 서로 만나지 못하니 집에서 돌봄 받으며 여흥 거리를 찾아야 한다. 장 보는 일은 더욱 힘들어지며 청소는 더욱 중요해진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여성의 어깨에 지워진다.
여성에 대한 폭력
코로나 쇼크 이전에는 하루 평균 137명의 여성이 친족에게 살해당하였다. 이것만으로도 충격적인 숫자이다. 리타 세가토에 의하면 코로나 쇼크 이후 여성에 대한 폭력의 빈도가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순종적인 여성상에 대한 신파시스트적인 관념이 여성해방에 대한 계몽적인 사상을 짓누르면서 폭력이 더욱 가혹해지기도 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여성살해는 격리되지 않는다(el femicido no se toma cuarentena)’라는 슬로건이 전 세계적 봉쇄 조치로 심화하는 폭력을 부각시키고 있다. 모든 나라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증가한다는 보고가 속출하고 있다. 상담전화는 포화되고 있으며 보호소에는 갈 수 없다.
이탈리아 트렌토에서는 산드로 라이몬디라는 검사가 여성에 대한 폭력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집을 떠나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이탈리아 노동연맹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자가격리는 모두에게 힘든 일이지만, 젠더 기반 폭력의 피해 여성에게는 실질적인 악몽이 된다”고 발표하였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창의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칠레의 여성주의 협조기구 8M은 코로나 바이러스 위기를 위한 여성주의 비상 계획을 개발하였다. 세계민중총회와 트라이컨티넨탈 사회연구소의 강령과도 유사한 부분이 있는 이 계획은 4개의 주요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주의적 집단 상호원조를 위한 전략 개발. 개인주의를 타파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할 수 있는 연대 및 상호원조 네트워크 수립. 첫째, 각 지역에 대한 조사를 실시. 둘째, 어린이를 돌보기 위한 팀을 구성. 셋째, 지역사회 지원을 위한 의료 전문가 동원.
가부장적 폭력에 맞서 투쟁. 여성에 대한 폭력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구 수립. 여성과 아이들이 위험한 상황에서 대피할 수 있도록 긴급 핫라인 개설, 보호소 운영 등 각 지역별 비상 계획 개발.
“삶을 위한 총파업” 조직. 보건의료와 연관되지 않은 모든 생산활동에서 파업 실시, 팬데믹 기간 중 집에 머무를 권리 수호, 필수 노동과 자주 무시되는 돌봄 노동 등 다양한 노동을 수행하는 이들을 위한 보상 체계 수립. 보건의료 및 운수 등 분야에 종사하는 필수 노동자를 위한 안전한 노동환경 요구.
이익보다 사람에 대한 돌봄을 우선시하는 비상 대책 요구. 생명은 소중하므로 유급 병가, 무료 보육, 수감자의 가택 연금, 기본 생필품 및 위생 용품 가격 동결, (이익보다) 사회적 요구에 따른 계획적 생산, (공식/비공식) 모든 돌봄 노동 종사자에 대한 보상, 모두를 위한 양질의 무상의료, 부채 및 배당금 동결, 수도 및 전기 무상 공급, 노동자 해고 금지 요구.
명시된 각 항목들은 매우 직관적이고 라틴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제리 시인 라비아 잘티가 ‘조현병’이라는 시에서 말하듯 이러한 비상 계획은 하나의 길의 불과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반대쪽 길도 존재한다.
나는 두개의 길이 되었다
하나는 살구 나무와 수선화를,
시의 아침을 바라본다.
언어의 바다로 이어진다.
반대쪽 길
그 이름은 지평선과 빵의 색채에 걸려있고,
그 얼굴은 철망에 에워싸였으며
그 숨결은 봉인되어 갇혔다.
나의 목을 조른다.
그 목을 조르는 길을 따라 더반(남아공) 지자체는 판자촌 거주자를 강제 퇴거시켰다. 그러나 우리는 반대쪽 길을 생각하고 있기에 아룬다티 로이, 노엄 촘스키, 나오미 클라인,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고 나는 이 규탄 성명서를 작성하였다. 이 반대쪽 길을 따라 사람들은 집을 지을 뿐만 아니라 농사를 지을 땅을 갈구한다. 남아공에서 인도에서 브라질까지 배고픔은 땅을 요구한다.
우리의 최신 도씨에 No. 27 (2020년 4월), ’민중 농지 개혁과 토지를 위한 브라질의 토지 투쟁’에서 어떻게 땅에 대한 갈망이 땅을 넘어 사회 변혁을 위한 투쟁의 동력이 되는지를 밝혔다. 트라이컨티넨탈 상파울루 지부는 이 투쟁의 핵심이 “젠더 관계의 재구성과 남성우월주의 및 호모포비아에 맞선 투쟁 등을 포함한 사회적 관계의 전반적인 변혁과 농촌 지역에도 모든 단계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다음 주 뉴스레터에서 땅을 위한 투쟁에 대하여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뉴스레터는 우리 연구소의 웹사이트에서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힌디어, 프랑스어, 중국어, 러시아어 및 독일어로 구독이 가능하다.
코로나 쇼크 이전에는 당신이 이 뉴스레터를 읽는 동안 세계 어딘가에서 두 명의 여성이 살해당했을 것이다. 코로나 쇼크 중에는 그 숫자는 더 많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만행은 이제 끝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