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미대선 들여다보기: 대선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들
송대한(국제전략센터 컨텐츠팀 기획단)
선거를 며칠 앞두고 전자투표용지를 개봉해 여러 후보와 조례에 투표하고, 마지막으로 도널드 트럼프냐 조 바이든이냐하는 선택만 남겨두고 있었다. 조 바이든 후보의 이름을 보니 진절머리가 났다. 트럼프가 끔찍한 대통령이라는 사실에 확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대부분의 진보주의자와 마찬가지로 조 바이든에게 투표하고 싶은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었기 때문이다. 올해 초, 버니 샌더스가 도널드 트럼프의 상대 후보가 되어 우리가 진심으로 호응할 수 있는 대선을 치를 수도 있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우리 중 몇몇은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패배한 후 민주당이 또 다른 친기업 후보를 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월가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슈퍼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등의 대중적 대책을 내놓은)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될 일말의 가능성이 있었다면, 도널드 트럼프 같은 신파시스트에 맞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전력적으로 지난 대선과 똑같은 플레이를 하며 일치단결해 버니 샌더스에 맞섰고 조 바이든이라는 평범한 친기업 인사를 후보로 지명했다. 또한,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던 피트 부티지지와 에이미 클로버샤는 경선 포기 후바이든을 지지하고 선거 운동을 벌이는 전례 없는 움직임을 보였다.
어떻게 투표할지 고민하면서, 어쩌면 민주당이 국민과 국가, 지구의 미래를 저버린 것에 대해 본때를 보여주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당이 선거에서 연거푸 패배하면 (경미하더라도) 내부에서부터 야기된 정체성 위기가 양당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21세기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장기적인 투쟁의 길을 걷고 있는 미국 좌파 모임인 레프트루츠가 내놓은 '2020년 트럼프를 꺾고 해방 전략을 추진하자'라는 글을 읽고 트럼프의 파시즘에 맞서는 연합 전선을 납득하게 되었다. 글에서 (별다른 감흥은 없지만) 냉철하게 서술하듯, 트럼프에 반대한다는 것은 바이든에게 투표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21세기 사회주의 건설을 향한 첫 걸음은 광범위한 연합 전선을 구축해 트럼프의 우파 운동을 저지하고, 그 과정에서 바이든과 주변의 신자유주의자에 맞서 투쟁할 수 있는 독립적인 좌파 운동을 모아내고 강화하는 것이다.
레프트루츠의 전략 문서는 트럼프가 신파시스트이고, 바이든은 진보주의자가 아닌 신자유주의자라는 점을 처음부터 분명히 한다. 그렇기에 (트럼프가 강화시킨) 신파시스트 운동의 전진부터 먼저 막고, 그 다음에 신자유주의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다. 물론 트럼프에게 투표한 7,400만 명 모두가 신파시스트는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의 반이민, 배타적 애국주의, 인종주의적 언사는 사람들의 고통을 대가로 이윤을 얻는 기업과 엘리트 대신 이민자와 무슬림, 흑인, 다른 국가를 탓하는 프라우드 보이즈 같은 인종차별주의 우파 운동을 가능하게 할뿐만 아니라 더 부추긴다. 트럼프의 패배가 이런 운동을 자극할 수도 있지만, 트럼프가 승리했더라면 우파는 더욱 대담하게 행동에 나서 좌파 운동을 좌절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은 평범한 친기업 민주당원이다. 월가에서 나온 돈이 대부분 바이든의 선거캠프로 들어갔다는 사실부터, 사만다 파워(정권교체론을 지지하는 군사 휴머니스트)와 같은 오바마의 외교 정책 매파와 세스 해리스(우버·리프트·도어대쉬가 긱(Gig)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데 일조함)와 같은 국내 정책 신자유주의자들로 구성된 대외 정책 인수위원회를 보면 바이든은 신자유주의 매파임이 분명하다.
다행히, 오바마 때와는 다르게 좌파와 진보 진영은 바이든에 대한 환상이 거의 없다. 여러 사회운동 세력이 바이든 선거 운동을 했지만, 바이든을 지지하거나 그의 당선을 최종 목표의 달성으로 축하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보다 일관성 있고 좌파 성향이 강한 사회 운동을 준비하기 위한 더 나은 여건을 마련해서 바이든에게 책임을 묻고 그를 넘어선 세력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제 3 세력인 진보주의자에게 매우 불리한 조건에서) 힘의 균형을 바꾸려면, 결국은 더 많은 대중을 참여시키고 독립적인 좌파 프로젝트를 확대하기 위해 (선거를 포함한) 모든 정치적 순간을 활용해야 한다.
바이든이 당선된 지금, 미국 국내외 좌파가 새로운 행정부에 맞선 투쟁을 시작하려면 바이든 행정부의 성격과 약점을 이해해야 한다. 민주당이 상원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2021년 1월 조지아주에서 두명의 상원 결선투표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면 50석 확보하며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 상원 의장을 맡게되어 과반을 넘게됨) 환경규제 부활에서부터 학자금 대출 탕감, 대북관계까지 바이든이 행정명령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의 초기 공보팀과 국내외 정책 인수위원회 구성원을 보면 바이든 정부가 기존의 입장보다 우경화해 지금의 상태를 유지할 것임을 명확하게 예고하고 있다. 바이든의 승리는 (40%의 지역에서 1,500~2,600만 명이 참여한)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 등 사회변혁을 요구하는 반트럼프 투쟁의 여파와 진보운동 진영의 활발한 유권자 조직 및 동원으로 조지아주와 펜실베이니아주와 같은 주요 경합주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덕분이었는데도 말이다. 따라서 바이든은 코로나 팬데믹 동안 일반 미국 국민을 돕는 국내 정책이나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한 대외 정책을 추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회 운동 진영과 조직된 민중은 외부에서 바이든 정부에 전면적으로 개입하고 투쟁해 그러한 정책을 위한 길을 만들고 실현할 수 있다. 민주당 내 민주적 사회주의자이자 ‘Bigger than Bernie(버니 샌더스 너머에)’의 저자인 메건 데이는 바이든과 민주당의 역사를 보면, 민주당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같은 당내 좌파가 아닌 공화당과 연합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런 만큼 좌파는 권력의 뒷방이 아니라 거리에서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세력을 만들어 바이든을 압박하고 그가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다행히, 바이든은 오바마와는 달리 환상을 거의 일으키지 못하는 매우 약한 인물로, 바이든을 지지했던 유권자의 충성도는 트럼프에 대한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다.
이렇게 바이든에 전술적으로 개입하고 투쟁하는 것을 통해 사회운동 진영은 바이든을 압박하면서 기층을 공고화하고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최근 큰 표차로 재선에 성공한 하원의원 ‘사단’(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일한 오마, 아야나 프레슬리, 러시다 털리브)은 바이든에게 압력을 가해 노동가족당 같이 바이든의 당선에 일조한 다양한 단체가 지지하는 ‘민중헌장’에 포함된 진보적 정책을 실시하도록 여론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전국 진보 풀뿌리단체인 그래스루츠 글로벌 저스티스 얼라이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조 바이든과 카말라 해리스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책과 체제 변화를 대표한다고 착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우리의 요구를 과감하게 해야 할 때이다. 정부가 과감하게 우리 운동이 만들고 있는 정책을 통과시키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한반도 문제에서, 바이든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폭군이라고 부르고 대외 정책 인수위원회가 인권 매파들로 구성된 점을 보면, 오바마의 비효율적이고 위험하며 악의적인 전략적 인내 즉, 북한이 붕괴되기를 기다리는 것 이외의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미국이 한반도 평화에 있어 핵심 주체이지만, 트럼프의 기회주의적인 화해를 포함해 미국이 먼저 합의를 깨버린 역사를 돌아보면 미국이 한반도 평화보다 지정학적 지배를 우선한다는 점이 자명해진다. 따라서 바이든의 대외 정책 인수위원회와 앞으로의 행정부 인선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남북한 정부와 사회운동의 주된 관심사나 활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한반도 평화를 향한 우리만의 길을 만들고 주도해야 한다.
우리는 트럼프를 상대로 한 1차전에서 승리했다. 레프트루츠의 전략 문건이 분명히 말하듯, 미국의 좌파가 버락 오바마 때 범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고 그를 넘어설 수 있는 독립적인 세력 기반을 계속 조직하고 동원해야 한다. 이제 바이든을 상대로 2차전을 시작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