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번역: 도씨에 No. 28] 코로나 쇼크: 바이러스와 세계 2-3부
도씨에 No. 28: 코로나 쇼크: 바이러스와 세계 1부 보러가기
2부. 글로벌 팬데믹 상황에서 민중의 요구에 주목하라
체제 내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은 위기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할 메커니즘을 가장 먼저 설계한다. 금융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위기의 실제 원인은 해결되지 않고, 정작 급하게 의제로 다뤄지는 것은 애초에 위기를 조장한 이들을 위한 어마어마한 금융구제안이다. 코로나19 글로벌 팬데믹이 발생하자, 각국 정부는 자신을 보호하고자 또다시 자본의 이해를 위한 막대한 금액을 확보했다. 대중의 건강보다는 부자들이 한 투자의 안정성을 확보하고자 미국 연준을 필두로 한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해 주식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한 것이다. 요즘에는 공익을 위해 사용되는 일이 거의 없는 공공 자원이 민간 부문을 구제하는 데에는 신속하게 활용되었다.
(중국과 같은 국가 정부에서부터 인도 케랄라주 정부에 이르는) 사회주의 지향을 가진 국가들은 경제적 손실을 불사하면서도 팬데믹을 억제하기 위해 모든 가용 자원을 끌어모았다. WHO는 중국의 노력을 ‘아마도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기민하며 공격적인 질병 억제 노력일 것’이라고 칭했다. 반면, 부르주아 사회질서는 그들이 가진 막대한 자원을 활용하는 데에 완전히 실패했고, 자원 활용을 위한 합리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그 결과 이탈리아에서 미국에 이르는 국가의 사망률은 재앙이라 할 만큼 높았다. 이것은 인류에 대한 정치적 범죄이다.
소련이 붕괴되고 세계 좌파가 처한 조건이 약화된 이후 30여 년의 세월 동안, 좌파 세력은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정부는 적극적으로 부유한 계층의 이해를 만족시키기 위해 세금을 감면하고 긴축 정책을 실시했으며, 소중한 공공재를 민영화하고 산업과 상업 규제를 완화했다. 부르주아 국가는 효율성이라는 미명 하에 좌파를 머금고 있는 곳을 분열시킬 목적으로 노동조합과 좌파 단체를 공격하면서 계급투쟁을 심화했다. 종종 재벌이 설립한 재단으로부터 후원을 받는 비정부기구(NGO)의 성장은 사람들의 관심을 자신이 겪는 문제의 총체성이 아닌 개별 이슈에 대한 캠페인으로 돌리면서 정치적 좌파를 방해했다. 그래서 개인은 각자 물 분배 또는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지만, 시스템 전체(대표적으로는 자본주의)에 맞서 정면 공격을 감행하는 것으로 대중을 끌어들이는 조직은 없다.
전면적인 계급투쟁이 벌어지는 시기에 나타난 좌파의 약화와 상품을 꿈인양 판매하는 미디어 공격의 전개로 좌파는 단기 투쟁에 상당한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었다. 점점 증가하는 자본주의 생산 과정과 국가 폭력의 잔인성에 대항하는 투쟁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탈긴축이 동반되어 나타났다. 지출 삭감과 국가 폭력에 반대하는 대중 정서에 부합해 역할을 수행하는 좌파 세력이 없었다면, 노동 과정의 야만화, 노동자의 빈곤화, 신자유주의의 영향, 그리고 세계화가 소외된 사람들과 노동 계급에 미치는 영향 등은 더욱 심각해졌을 것이다. 단기 투쟁에 집중하는 현실로 인해 좌파가 약화하기는 했으나, 여러 위기에 대응해 사회주의 방식을 채택해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어냈고, 여기에는 우리가 연구해야 할 여러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좌파가 집권한 곳에서는 정부가 자본주의 특유의 위기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실험했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자원을 동원했으며, 사회를 변혁하고 계급투쟁을 진전시킬 공공 행동을 만들고자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팬데믹이 중국을 넘어 세계로 확산되면서, 공공 기관을 축소한 사회일수록 코로나바이러스로 매우 큰 타격을 받았음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중국 정부는 자국민을 검사하고, 감염자의 접촉자를 찾아내며, 환자를 치료 및 모니터 하고, 봉쇄된 도시에 필요한 것을 지원하고, 사회가 분열로 불필요하게 고통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상당한 자원을 활용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인도, 브라질에 이르는 국가들은 공공 기관, 특히 공공 의료 기관의 핵심 기능을 축소해 사회를 취약하게 만들었다. 의대 민영화로 의대 졸업생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여러 의학 부문 중에서도 고소득이 보장된 곳으로 몰려들었고, 병원 민영화는 과잉 또는 급증한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역량의 삭감을 주도했다. 민간 병원에서는 모든 병상과 기기를 일종의 부동산으로 취급하며 임대료 징수를 극대화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사적 이익을 위한 적시(Just-In-Time) 치료가 일반 공식이 되었다.
긴축 보건 체계의 실패는 매우 분명하게 드러났다. 비상 시기에 취약계층을 돌보기 위한 기관의 설립도, 위기 시 지역 공동체의 유지를 돕기 위해 노동자 조직과 사회단체를 발달시킬 것이 기대되었던 대중 행동 문화를 양성하고자 하는 시도도 완전히 실패했음 역시 자명하다. 신자유주의와 긴축 정책이 공공 자원을 잠식한 것을 목도한 여러 국가의 정부와 사회가 겪은 실패는 코로나바이러스의 복수라는 것만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강력한 중앙정부와 대중 행동 전통이 있는 국가에서 코로나바이러스를 더욱 효과적으로 진압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부자 계급이 거둔 주요한 성과 중 하나가 바로 국가 기구라는 개념의 위상을 떨어뜨린 것이다. 서구에서는 정부를 진보의 적으로 규정하고 공격하는 것이 일반적인 태도였다. 그래서 군을 제외한 정부 기구를 축소하는 것이 목표였다. 강력한 정부와 국가 구조를 가진 국가는 ‘권위주의’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그러한 관점을 흔들어 놓았다. 중국 같이 국가 기구를 그대로 유지해 팬데믹에 대처할 수 있었던 국가를 단순하게 권위주의라고 치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정부와 국가 기구가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일반화되었다. 그리고 시행착오를 거쳐 효율적으로 만들어진 국가 기구의 시스템보다 정체되고 공허해진 부르주아 국가 형태가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중국, 쿠바, 베네수엘라, 인도 케랄라 주에서 얻은 교훈은 민중 조직(노동조합, 여성, 학생, 청소년 단체, 협동조합)이 사회를 조직하면 그 사회는 대중 행동을 실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조직된 사회란 사람들이 정상 시기에, 그리고 위기 시에 어떻게 집단적으로 행동할지를 학습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사회이다. 사회주의 프로젝트 개발에 국가 기관이 기여하는 것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부분, 즉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한 사회 건설 노력을 위해 사회가 조직되고, 활발해지며 준비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글로벌 팬데믹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트라이컨티넨탈: 사회연구소와 100여 개 국가의 200개 이상의 단체가 함께하는 플랫폼인 세계민중총회는 이번 위기와 전 세계 노동계급의 가장 절박하고 시급한 요구에 관한 토론을 실시했다. 그리고 여러 운동세력, 노동조합, 정당에서 나타난 투쟁과 거버넌스 경험을 바탕으로 16개의 프로그램을 도출해 결과 문서에 포함했다. 이 프로그램은 개별 정책과 항목에 대한 토론 외에도, 국가와 국가 기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토론을 제기한다.
필수 의료 및 물류 인력과 식량 및 생필품 생산 및 배달에 필요한 인력을 제외하고 모든 노동을 즉시 중지하되 임금을 보장한다. 격리 기간 소요되는 인건비는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
의료, 식량 공급, 공공 안전은 조직적인 방식으로 유지해야 한다. 비상 곡물 비축분을 즉시 빈곤층에 배급해야 한다.
학교 출석을 모두 중단해야 한다.
병원과 의료센터를 즉시 사회화하여 위기 발생 시 병원이 이윤 문제로 고민할 일이 없도록 한다. 의료기관을 정부의 보건 캠페인 통제 하에 두어야 한다.
제약회사를 즉시 국유화하고, 즉시 제약회사 간 국제 협력을 실시해 백신과 더욱 쉬운 검사 장비를 개발하도록 한다. 의료 부문에서 지적재산 개념을 폐지한다.
즉시 모든 사람을 검사한다. 즉시 팬데믹의 최전방에 있는 의료진을 검사하고 지원한다.
즉시 위기 대처에 필요한 물자(검사 키트, 마스크, 산소호흡기) 생산 속도를 높인다.
세계 금융시장을 즉시 폐장한다.
정부 파산을 막기 위한 자금을 즉시 조달한다.
모든 비기업 부채를 탕감한다.
모든 월세 및 모기지 상환, 퇴거를 즉시 종료한다. 여기에는 기본 인권으로서 적절한 주택을 즉시 제공하는 것을 포함한다. 양질의 주택은 국가가 보장하는 모든 시민의 권리가 되어야 한다.
즉시 국가가 인권의 일부로 간주되는 모든 공과금(수도, 전기, 인터넷)을 지불하도록 한다. 만약 이러한 서비스를 모든 국민이 이용하지 못할 경우, 즉시 모든 국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촉구한다.
쿠바, 이란, 베네수엘라와 같은 국가에 영향을 미치고 필수 의약품 수입을 막는 일방적이고 부당한 제재 체제와 경제봉쇄를 즉각 종료한다.
농민에 긴급 지원을 제공해 건강한 먹거리의 생산을 증대하고 이를 정부에 공급해 직접 분배가 이루어지도록 한다.
국제 통화로서 달러의 기능을 중지하고 유엔에 국제 공통 통화를 제안하는 회의를 새로 열 것을 긴급하게 촉구한다.
모든 국가에서 보편적 기본소득을 보장한다. 이를 통해 실직자, 극도로 불안정한 직업을 가진 노동자, 또는 자영업자의 가족 수백만 명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담보할 수 있다.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수백만의 노동자가 공식 직업을 갖지 못하고 배제된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일자리와 존엄 있는 삶을 제공해야 한다. 보편적 기본소득의 재원은 국방비, 특히 무기 조달 비용으로 충당될 수 있다.
이상의 16개항은 탈자본주의의 미래를 향한 투쟁과 정책에 관심을 집중하기 위한 논의와 토론을 위한 선언이다.
3부. 보편적 기본소득
지난 반 세기를 거치며 전체적인 고용 시스템이 고장이 났다는 점은 명확해졌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정 비율의 실업은 수용 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심지어 ‘자연실업률’이라는 이름으로 이론화되었다). 국가는 다양한 형태의 사회 복지를 통해 부족한 임금을 보충한다. 노동의 세계화와 기술로 인한 생산성 증가 때문에 이제 수십억 명의 노동자는 실업 상태이거나 능력 이하의 일을 하거나, 또는 일자리가 매우 불안정한(단기 계약직, 일용직 노동) 상황에 처해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2억 5,800만 명의 이주민 중 최소 1억 5,700만 명이 이주 노동자이며, 종종 사회보장제도에서 소외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불안정한 상황이 토론 의제로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회적 불평등은 급격하게 증가했고, 빈곤의 바다가 세계 인구 대다수의 현관문 밖까지 밀려오고 있다.
일정 비율의 노동자(노동 예비군)는 자본주의가 가장 호황인 시기에도 실업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장기적인 수익성 위기에 직면하는 경우가 늘면서 대부분의 노동자가 극단적인 불안정성을 경험한다. 이들은 자본주의 논리 하에서 매우 심하게 착취당하거나 과잉 인구(surplus population,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을 팔 수 없어 실업에 처한 인구)로 전락한다. 이러한 노동자의 생존은 절박한 상태에 놓여 있다.
자본주의 사회관계 내에서 나타나는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편적 기본소득’ 개념이 등장했다. 자본가가 자신의 금융 자원을 일자리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과잉 인구는 다른 곳, 예를 들면 국가로부터 생계비를 받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국가가 지원하는 금액이 보편적 기본소득인 것이다. 이는 앞서 소개한 16개 항에도 포함되어 있다.
다만 우리는 보편적 기본소득의 한계를 명확히 짚고 가야 한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수많은 과잉 인구를 실업과 빈곤에서 벗어나게 만들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을 돈 또는 자본주의 국가 권력으로부터 해방시켜주지는 못한다. 현금을 지급한다는 것은 필수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에 여전히 현금이 필요할 것임을 의미한다. 현금 교환 없이도 필요에 따라 이러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예: 공교육, 공적 식량 배급 시스템)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신자유주의 진영이 보편적 기본소득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현금을 과잉 인구에 쥐여줌으로써 이전에는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구매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규범 내에서의 사회복지 사업에 불과한 보편적 기본소득은 자본주의 사회관계를 위협하지 않는다. 기아와 절망이 만연한 상황에서는 이 사업이 그 범위와 시행 측면에서 수많은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비웃고 넘길 수만은 없다.
지난 수십여 년 간, 맑스주의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사회적 재생산이라는 강력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노동력의 생산과 재생산이다. 사회적 재생산 또는 인간의 삶을 회복시키는 돌봄 영역은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존재에 필수적인 부분이지만, 복지급여와 임금 관련 토론에서는 무시되는 경우가 잦다.
사회적 재생산 분석은 자본주의적 축적의 순환과 인간 노동력의 회복과 재생산을 위한 가부장제 체제 간의 연결고리를 설명하고자 한다. 사회적 재생산 노동 자체가 상품화되는 것(가정부 파견 서비스, 식품 생산 및 배달 서비스)이 아닌 이상, 이러한 노동을 담당하는 사람(주로 여성)에 대한 보상은 거의 없다. 노동계급의 재생산은 자본주의 생산에 매우 중요한 조건이지만, 정작 노동계급을 재생산하는 사람들은 상품화된(금전적인) 형태로 보상을 받지 못한다.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한 토론은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과 임금을 대체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으로써의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다. 보편적 기본소득 또는 이와 유사한 형태로 사회적 재생산 노동 및 장애인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생계를 위해 주어지는 보상과 관련한 주장은 강력하고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와 엔젤라 데이비스 같은 맑스주의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돌봄 노동에 대한 보상 그 자체만으로는 돌봄 노동을 비하해 온 기나긴 역사와 이러한 논리를 지지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극복할 수 없다. 오히려 성별 노동분업이라는 개념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강력한 반(反)가부장제 투쟁이 필요할 것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은 사회주의부터 극우에 이르기까지 놀라울 정도로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각 진영이 서로 다른 비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차이점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대체재 VS 보충재. 신자유주의(및 극우) 진영은 보편적 기본소득이 다른 모든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대체한다면 이를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보편적 기본소득을 공공의료, 공교육, 대중교통, 공적 식량 배급 등의 다양한 정책의 대체재로 바라본다. 공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 현금을 지급함으로써 공공 서비스 영역을 상품화하고, 결국에는 사유화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과잉 인구에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것을 통해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이는 사회복지망을 해체하고 사유화하기 위한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사회주의 진영은 보편적 기본소득이 사회복지 정책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충재로서 기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교육이나 공적 식량 배급 등과 같은 사회적 임금을 개선하고 적절하게 관리해야 하며, 보편적 기본소득은 그 외의 다른 목적(예: 레저 활동)에 추가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소득 조사 VS 보편 지급. 신자유주의 진영은 보편적 기본소득을 수용하면서도 그 정신을 깎아내린다. 그들은 보편적 기본소득은 보편적으로, 즉 모두에게 지급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대신, 소득 조사를 실시해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보편적 기본소득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득 조사는 ‘수급자’과 ‘비수급자’로 인구를 분열시키는 것으로, 사회 통합을 추구하는 보편적 소득의 목적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특히 복지급여를 모든 사람에게 제공한다는 것이 특이한 지점이다. 왜 매우 부유한 사람에게도 복지급여를 제공해야 하는가? 복지급여든 현물이든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것에 대한 몇 가지 주장은 다음과 같다.
‘수급자’ 또는 ‘지원이 시급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도덕적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이러한 구분은 사회를 분열시킬 뿐만 아니라 복지급여 수급자에 낙인을 찍게 된다.
제도적 시스템이 매번 민주적으로 도덕적 판단(수급자 선정)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매번 기금이나 상품을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도 아니며 그나마도 ‘급여’가 현금이냐 현물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도적 시스템이 내리는 도덕적 판단에 따라 발생하는 막대한 시행상의 문제를 피하기 위함이다.
부자에게까지 지급되는 현금이 부의 재분배라는 목표를 저해하지는 않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보편적 기본소득과 같은 사업의 재원 조달에 활용되는 부유세를 납부하고, 부유층이 부담하는 세금은 그들이 받는 복지급여보다 훨씬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이 사회적 임금의 대체재가 아니고 보충재라면, 그리고 진정 보편적인 성격을 가진다면, 자본주의 체제의 폐지를 위해 계속 노력하는 와중에도 보편적 기본소득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다수가 겪는 고통을 경감하기 위한 가치 있는 요구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보편적 기본소득이 사회적 임금의 대체재로 기능하고, 특정 대상자에게 지급되는 성격을 가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보편적 기본소득이 아니라, 사회 복지를 상품화하고 사유화하며, 노동계급 분열을 악화하는 위험한 메커니즘이다.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한 여러 질문 중 하나가 바로 국가가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이고, 나아가 노동 가능 연령 인구 1인당 실제 수급액은 얼마나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해법은 다른 사회적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해당 프로그램에 투입되던 돈을 한 곳으로 모아 보편적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관점에서는 이를 수용할 수 없다.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다뤄져야 할 사회적 재화를 사유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사회주의적 관점에서의 보편적 기본소득은 최소 4가지 방법으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부유세
세무관할의 개선, 조세회피처/피난처 해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부문(예: 무기산업)에 대한 증세
이윤에 대한 증세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세금을 징수하지 않으면 조세회피처로 흘러갈 돈을 국고로 거둬들이기 위해서는 국가가 자본 통제를 실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통제가 경제적 주권을 발전시키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시행되지 않는다면, 보편적 기본소득 계획은 비용이 많이 들 것이고, 결국 (재원을 확보하지 못할 시) 지급액이 불충분하거나 (세금을 신설하지 않을 시) 기존 예산에 지나친 부담을 주어 실패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코로나 쇼크는 실업, 불안정성, 기아 문제를 더욱 심화했다. 자본주의 하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실업 위기에 대한 해법으로 여겨졌던 보편적 기본소득은 이제 코로나19가 야기한 긴급 위기에 대한 조치로 부상했다. 다시금 신자유주의와 극우 세력은 일회성 현금 지급을 통해 불안정한 일자리에 고용된 노동자와 실업자의 분노를 잠재우고 정체된 기업을 위해 수요를 자극하고자 했다. 노동계급을 지지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보편적 기본소득을 향한 욕구는 조금도 없는 것이다.
전 세계 많은 곳에서 실업 위기가 곧 더욱 큰 기근과 기아의 위기로 변모할 중대한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럴수록 현금 지급과 공적 식량 배급을 포함한 긴급 구호 조치가 매우 중요하다. 비상시에는 모든 조치를 활용해 피할 수 있는 고통을 예방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