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번역: 도씨에 No. 28] 코로나 쇼크: 바이러스와 세계 1부
<코로나 쇼크: 바이러스와 세계>를 위해, 우리는 전 세계 예술가와 활동가를 모아 코로나19로 인한 격리 기간의 단상을 표현한 코로나 쇼크 스케치북을 제작했다. 격리 중에도 노동 유연화와 분절화로 노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특징을 지닌 신자유주의 하의 비인간화를 우리 인간이 겪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거리와 공공장소 또한 비인간화되어 인간다운 삶뿐만 아니라 경제적 삶도 사라졌다. 인도 델리 이주민의 엑소더스를 비롯해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여성 불안정 노동자(Precarious Worker)가 겪는 고통을 보며 ‘필수 서비스란 무엇이며, 그러한 필수 서비스를 유지하는 노동자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또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텅 빈 마요 광장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판자촌 퇴거, 미국 뉴욕의 화재 대피용 비상구에 걸린 현수막에서 브라질 상파울루의 냄비 시위대(panelaços)에 이르는 모습을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 중에도 대중적 저항을 만들어낼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쿠바 의료진과 중국 민중을 그린 그림은 지금과 같은 시기에 인간과 국가 주도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트라이컨티넨탈이 제작한 스케치북은 코로나 시기의 풍경을 보여줌과 동시에 어떻게 하면 우리가 텅 빈 거리와 공공장소를 다시 가득 채우는 동시에 인간화할 수 있을지를 질문하고,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삶은 과연 어떻게 될지를 상상하게 한다.
2019년 12월부터 중국 우한 의료진은 전염성 폐렴을 앓고 있는 환자를 보기 시작했다. 이러한 환자에 대한 조사가 12월 말에 시작되었고, 중국 보건당국은 대중에 경고를 내리는 것과 동시에 세계보건기구(WHO)에 이에 대한 내용을 통지했다. 중국 보건당국은 1월 7일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분리했고, 1월 12일에는 진단 키트 개발을 위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공유했다. 중국 정부, 공산당, 대중은 감염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미스터리에 싸인 이 병원균은 코로나바이러스의 형태를 띠고 있었기 때문에 SARS-CoV-2라고 공식 명명되었다. 그러나 다른 호흡기 바이러스와는 달리 코로나바이러스는 코와 목(전염성이 가장 높은 곳)과 폐(숙주에게 가장 치명적이나 즉각적으로 증상이 발현되지 않는 곳) 모두에서 생존할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전 세계적 거의 모든 국가로 빠르게 퍼졌고, 각국이 취한 봉쇄와 격리 조치는 사람들의 사회적, 경제적 삶에 지속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많은 국가에서 바이러스의 확산이 진정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코로나바이러스의 재활성화와 수천 종의 다른 코로나바이러스의 출현을 예상해야 한다. 이러한 글로벌 팬데믹은 1832년 콜레라와 1918년 독감과 마찬가지로 주기적으로 되풀이될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증가하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으면서 각국은 다양한 형태와 기간의 봉쇄정책을 시행했다. 격리와 고립 명령의 결과, 경제활동이 거의 정지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500만 개의 일자리가 코로나 쇼크로 사라질 것이며, 연말까지 노동자 수입이 3조 4,000억 달러 정도 감소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기업이 코로나 쇼크를 명분으로 사업 구조조정에 나서 직원을 줄이는 ‘효율화’를 추구하면 상황은 이보다 더 악화할 수 있다. 장기적인 실업과 일자리 부족 및 원유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전 세계 경제성장률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하는 바와 같이 1%대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 수치도 중국의 경제성장률에 기반한 것이다. (중국 내에서 코로나19가 통제되는 것으로 보이면서 이전보다는 낮지만 경제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항셍에서 미국 월스트리트에 이르는 주식시장은 부풀려진 가치가 꺼져 막대한 손실을 겪고 있다.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는 막대한 양의 긴급 자금을 조달했다. 유엔 중앙긴급구호기금이 1,500만 달러, 세계은행이 130억 달러, IMF가 1조 달러, 그리고 각국 중앙은행의 금융기관과 기업 대출용 신규 기구 창설 등을 통해 이러한 자금을 모았다. 미국 의회는 2조 2,0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긴급 자금으로 투입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이 중 상당 부분은 기업을 지원하는 용도였다. 이를 보면 2008~2009년 금융위기를 불러왔던 원인 중 하나였던 금융 시장 내 유동성 부족이 [경기둔화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분명했다. 오히려, 문제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불확실성, 유가 급락, 실업과 일자리 부족 장기화가 연쇄적으로 일어난 데 있다. 조성된 자금은 코로나 쇼크를 해결하는 데 쓰여야 하지만, 어떻게 사용할지야 말로 풀어야 할 숙제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금을 은행과 대기업에 줘 버리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수입과 일자리 제공을 포함해 일반 대중의 삶에 구원을 제공하고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장기적 해결책을 제공하는 등, 우리가 겪는 어려움의 해결이라는 중요한 목적을 위해 자금을 지원받은 은행이나 기업이 이 돈을 사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렇기에 트라이컨티넨탈: 사회연구소와 세계민중총회(International Assembly of the Peoples, AIP)는 세계 민중의 관점에서 코로나 쇼크에 대응하기 위한 16개 항목으로 구성된 요구를 공동 작성했고, 이를 2부에 재인용했다.
<코로나 쇼크: 바이러스와 세계>는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현재의 위기를 불러온 구조적 요인을 설명한다. 2부는 트라이컨티넨탈: 사회연구소와 AIP가 공동 작성한 16대 요구안에 관해 다루고 있다. 이 요구안에는 보편적 기본소득이 포함되는데, 많은 토론을 해야 하는 복잡한 개념이다. 3부에서는 보편적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간단히 소개하고, 이에 대한 비판 지점과 우리가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1부. 긴축 바이러스
전 세계적인 팬데믹은 신자유주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자본주의의 파괴적 경향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경제 활동이 둔화하고 주식 시장이 요동치는 지금의 시국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자 지도자와 다자기구를 케인스주의로 선회하게 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엠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세계은행과 IMF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각기 자국의 중앙은행과 재무부의 창문을 열어 민간 부문에 자금을 쏟아부었다(그리고 정부 주도 정책을 확대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등과 같은 급진적인 우파 지도자는 시국을 틈타 외국인 혐오를 비롯해 그 전부터 자행된 저속한 정책을 더욱 강력히 추진했다. 이들에게는 사전에 수많은 경고가 있었음에도 팬데믹 해결에 실패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보다 중국을 비난하는 것이 훨씬 쉬웠다. 이들 북대서양 국가 지도자와 이들이 통제하는 여러 기관은 이번 위기의 조건을 형성했고, 그 결과 전 세계 민중, 특히 남반구의 민중은 지속불가능한 사회적 조건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들은 지금의 위기를 팬데믹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는 여러 상황이 만나서 발생한 것에 불과한 것처럼 취급하고 있다. 뉴스 헤드라인에서 ‘코로나바이러스로 위기 발생’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코로나바이러스는 비슷한 유형의 다른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숲을 점점 더 깊이 침식하는 것과 인간 문명(농업 및 도시)과 야생 간의 균형 등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역사학자 미구엘 팅커 살라스와 빅토르 실버맨이 멕시코 유력 일간지 라호르나다에 기고한 바와 같이, 코로나 바이러스는 자연의 산물이지만 지금의 위기는 신자유주의의 산물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그리고 1991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에는 가장 강력하게) 신자유주의 세계화 프로젝트는 공공 기관에 대한 지출 삭감을 비롯해 사회적 정책을 긴축 대상으로 삼는 등 점점 경악할 수준의 비인간화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비인간화는 여러 위기의 주기 속에서 불안정 일자리 대란, 수요 창출을 위해 소득이 억제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지속 불가능한 신용대출, 산업자본에서 금융자본으로의 변모 등의 요인으로 종종 동요했다. 이들 위기는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대중 투쟁이 증가하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단계에 이른 자본의 비인간화 논리에서 비롯했다. 그리고 질병보다도 훨씬 나쁜 처방전을 통해 해결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출현과 그로 인한 위기는 자본주의 문명의 쇠퇴를 보여준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통제된 이후의 세계는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쇠약해진 신자유주의 국가는 신파시스트 정책을 선호하는 국가 구조나 이윤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공공기관과 공공정책을 건설하는 국가 구조, 둘 중 하나를 통해 보강될 수 있다. 이는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선택이다. 신자유주의 블록에서는 코로나 쇼크 기간 사회적인 성격의 정책이 긴급구호를 명목으로 시행되면 이를 되돌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불안해한다. 따라서 당면한 위기가 종식되어도 이 기간에 쟁취한 성과를 계속 유지하려면 관성 이상의 힘이 필요할 것이다.
글로벌 팬데믹으로 발생한 위기는 보건 영역을 뛰어넘는 문제이다. 현재의 혼란과 불확실성 너머에는 가까운 미래에 새로운 사회 모델과 정치 질서가 가능할지에 관한 질문이 존재한다. 철학가 슬라보예 지젝과 한병철은 대담을 통해 미래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기했다 – 앞으로 나타나게 될 미래 사회는 ‘재건된 공산주의’와 비슷한 형태를 띨 것인가, 아니면 빅데이터에 의존한 경찰국가의 형태로 발전할 것인가?
위의 질문에 대한 연역적인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의 위기는 그 동안 축적된 일련의 경향성의 일부로, 지난 수십 년 간 가속화했으며 글로벌 팬데믹의 결과로 폭발한 것이다. 이해를 위해 지금의 위기가 가진 4개의 구조적 특징(금융화의 심화, 미국 헤게모니의 약화, 기술과 생산성 증가로 인한 노동자 해고, 신자유주의 국가의 위기)을 설명하고자 한다.
금융화의 물결
2009년 신용위기의 출구로 제시된 것은 진정한 출구가 아니었다. 미국과 영국, 유로존 국가가 채택한 투자은행과 대형 비금융 기업 구제정책은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넘쳐나는 과정(즉, 달러의 과잉)을 만들어냈다. 자본은 수익성이 약화할 때마다 투기적이고 허구적인 활동에 나서는 것을 선호했다. 이러한 활동에는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는 것이 있다. 지금 시기의 실제 경제 대비 금융 부문의 양적인 측면은 경악할 수준이며, 이것이 금융 부문을 독특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금융화 과정에는 몇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이 과정은 1980년대부터 생산 부문에서 창출된 대량의 잉여 가치가 금융회사에 흡수되면서 시작된 금융 부문의 비대화를 일컫는다. 일상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다양한 종류의 막대한 부채가 각 가구, 특히 노동계급 가구에 누적되었다. 이 부채는 주식으로 포장되어 금융 세계라는 거대한 카지노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여기서 우리는 생산 활동에서 나오는 수익성의 저하라는 전통적인 위기와 함께 [자본 또는 경제] 순환 영역에 존재하는 금융의 불안정성으로부터 새로운 위기가 발생하는 경제활동의 질적인 변화를 보게 된다.
이러한 과도한 잉여 현금이 전 세계적인 생산 투자 과정을 촉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계 현금의 대부분은 (주식 매매 재활성화 등을 통해) 다시금 국가 부채와 금융 자산을 늘리고 말았고, 그 결과 금융화가 가속했다. 국채와 같은 수단을 통해 새로운 자산 거품이 부풀었고, 금융은 앞다투어 새로운 테크놀로지 부문의 기업에 투자했다.
테크놀로지 기업이 주식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세계 유동성의 상당 부분을 흡수했다. 이러한 유동성 흡수의 일반적인 특징은 자본이 특히 미국 기업(애플, 아마존,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이 가장 시장가치가 높은 기업이다)에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이들 미국 테크놀로지 기업은 중국에서 화웨이 같은 테크놀로지 기업이 성장하면서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5G 영역에서 화웨이가 보여준 진보는 지식재산권 소송을 장악해 지식재산권 임대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미국 기업을 위협한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벌이는 무역 전쟁은 중국 테크놀로지 기업이 강력한 미국 테크놀로지 기업에 가하는 위협에서 직접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북반구와 남반구 모두 자본화의 출현을 경험했다. 북반구의 경우 금융은 새롭게 수익성이 많이 창출되는 부문(예: 플랫폼 자본주의, 테크놀로지)으로 자본을 돌렸지만, 남반구의 금융은 자본 도피가 뒤따르는 부채 동학(부채 증가 요인)의 양상을 띠었다. 2015년 미 연방준비은행은 연방기금 금리(은행 간 자금 거래에 적용되는 단기 금리)를 올려 미국 달러를 강화하는 정책을 도입했고, 전 세계로부터 현금을 끌어모아 미국 경제를 지탱했다. 그러한 정책의 결과, 미국은 ‘신흥 시장’이 세계의 자본을 유인했던 지난 십 수년을 뒤로 하고 다시금 자본 투자 대상으로서의 선도적 지위를 회복했다. 2018년에 순자본 유입이 가장 높았던 3대 국가는 미국(2,580억 달러), 중국(2,030억 달러), 독일(1,050억 달러)이었다. 미국이 세계 유동성의 상당 부분을 유치했는데, 이는 미국 연준의 고금리 정책에 크게 기인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은 자본을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이동시켰다.
금융이 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커지면서 세 가지 결과가 생겨났다. 경제적으로 부채에 허덕이는 남반구 국가의 정치적 의존성, 북반구 경제 내 생산 부문의 정체, 인간의 필요보다 자본의 이해를 우선하는 세계 시스템의 만성적인 불안정성이 그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출현이 이러한 과정을 더욱 가속했다. 중국은 그동안 세계 제조업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중국 내 생산의 중단과 산업 생산의 (작년 성과 대비) 15% 감소는 북반구 국가의 대형 은행 소유의 유동성이 어떻게 세계 공급망뿐만 아니라 세계 총 수요를 되살릴 수 있을지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가속하는 미국의 쇠퇴
이탈리아 정치경제 및 사회학자 조반니 아리기는 2007년에 출간한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 - 21세기의 계보>에서 금융화 과정이 증가하고 가속화 한 것이 미국 헤게모니의 위기를 가늠하는 척도라고 말한다. 미국은 유라시아에서 중국에 대한 지배력을 획득하기 위해 비동맹 국가(이란과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하이브리드 전쟁을 벌였고, 금융화 과정을 위해, 그리고 동맹국에 대한 우세한 지위를 재확립하기 위해 금융 권력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조야말로 미국 일방주의가 약화했음을 보여준다.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팬데믹으로 악화된 보건 및 인도적 위기는 코로나바이러스를 자국 내에서 통제할 수 있고 국경을 뛰어 넘어 고통받는 사람을 돕기 위해 전문성과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국가로서 갖는 중국의 역할을 강화했다. 반면, 인도적 재난보다 경제를 위한 ‘처방’을 우선하는 트럼프의 자국민에 대한 무신경한 태도로 미국은 자신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G20에서조차 대응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미국 리더십의 쇠퇴는 더욱 분명해졌다. 과연 우리가 아시아의 세기(Asian Century), 양극체제 시대, 또는 다극체제 시기에 접어든 것인지 등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에 대해 불확실하지만, 서구 자유주의 문명이 자신의 세계에 사는 민중의 요구에 대응할 능력이 없다는 것만큼은 명확하다.
노동에 불리한 디지털화
테크놀로지 부문에 자본이 집중되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는 적어도 두 가지 중요한 토론 지점을 제기한다. 하나는 자본의 집중이 하이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한 투기 자본 버블을 형성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의 영향력이 전 세계로 확대될 뿐만 아니라 대중을 통제하는 데에 사용되는 정보를 통제한다는 것이다. ‘플랫폼 자본주의’(인터넷 기반의 플랫폼을 활용한 경제활동)의 폭발적인 성장과 빅데이터의 수집과 분석은 새로운 소비주의 논리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소위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다. 이러한 플랫폼 자본주의는 소비자의 요구를 형성하고 유도하며, 새로운 형태의 주관성을 만들어내고, 심지어는 정치적 정체성을 창조하는 데에 개입하기도 한다. 사회 활동의 원자화를 통해 만들어진 개별화는 사람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새로운 방식을 낳는다.
이번 글로벌 팬데믹과 그로 인해 전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 나타난 봉쇄령은 플랫폼 자본주의가 발달하기에 좋은 조건을 형성했다. 인터넷을 활용한 재택근무는 격리 중에도 노동을 계속할 수 있게 한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줌과 같은 기업은 재택근무를 가능하게 만들었고, 재택근무가 전 세계 노동자에 유익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시간을 좀 더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고, 유연한 계약을 통해 더욱 빈번하게 직장을 바꿀 수 있다고 얘기하는 식이다. 물론 이제는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의 종신고용이라는 개념은 구시대적인 것이고, 지금의 신자유주의 시대에서는 유연한 노동이 패러다임이 되었다. 재택으로 수행할 수 있는 직업의 경우, 이러한 모델이 또한 간과하는 것은 무급 가사노동 부담의 증가이다. 코로나19로 학교를 가지 못해 집에 있는 아이들을 돌보는 것과 병에 쉽게 걸릴 위험이 높은 가족을 돌보는 것 등의 노동이 모두 재택근무를 하는 중에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과 같은 봉쇄 기간에 플랫폼 자본주의가 수행하는 중추적인 역할은 신자유주의 어젠다, 특히 노동력의 세분화와 노동자의 분절화를 더욱 촉진해 노동력을 구속받지 않는 자본의 이해에 더욱 종속시킨다.
신자유주의 국가의 위기
신자유주의 국가 체제는 그 자신의 모델이 만들어 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음이 밝혀졌다. 2008년을 예로 들면, 미국을 위시한 신자유주의 국가 체제는 성급하게 막대한 양의 자본을 금융 시스템과 특정 대기업(제너럴 모터스 등)에 쏟아부었다. 이러한 개입은 ‘금융 케인스주의’ 또는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이득을 얻을 목적으로 금융 회사가 설계한 빌딩을 지탱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기저에 깔린 여러 문제, 특히 비싸고 지속 가능하지 않은 신용대출을 끼고 살아가는 수십억 인구의 소득이 충분하지 않은 점 등은 해결되지 않았다.
많은 국가에서 신뢰를 잃은 신자유주의, 그리고 ‘제3의 길’(또는 중도주의) 정치인은 극우와 신파시스트의 프로젝트에 자리를 내주었다.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 전 볼리비아 부통령은 이러한 단계의 자본주의를 좀비 신자유주의라고 칭했다. 증오와 분노를 선호하는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이러한 좀비 신자유주의 하에서 부르주아 국가는 국민의 민주적 요구를 해결하기는커녕 인식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에 위기에 빠진다. 또한 신파시스트적인 권위주의가 이미 너덜너덜해진 자유민주주의 기관의 존재를 무색하게 만들어 ‘예외적 상태’가 우세하게 된다. 정치이론가 윌리엄 데이비스는 긴축과 엄격한 재정 관리 정책을 심화하고, 특히 남반구에 더 많은 채무를 부과하는 것을 통해 위기에 대응하는 신자유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징벌적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이용했다. 데이비스에 따르면 징벌적 신자유주의는 ‘정부와 사회가 구성원에 대한 증오와 폭력을 통제하지 않는 우울한 상태로 이어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