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안정을 위한 대한민국 사회주택제도의 미래, 네덜란드 사회주택제도를 살펴보며 그 실마리를 찾아본다.
글: 홍승현(정책연구팀)
필자는 어린 시절 거의 매년 이사를 다녔다. 이사할 때마다 집이 점점 작아지고, 학교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야하는 등 많은 불편함을 감수했다. 그리고 마침내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부모님이 작은 빌라 하나를 구입하면서부터 이사라는 지긋지긋한 불편함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만약 주택을 소유하지 않아도 저렴한 비용으로 해마다 이사 할 필요 없이 원하는 기간만큼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면 이런 불편함을 겪지 않았을 것이고 수 년 동안 힘들게 돈을 모아서 주택을 구매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총 24번의 부동산정책 조정이 있었다. 하지만 치솟는 아파트값은 진정되지 않고 그에 발맞추어 전세보증금과 월임대료가 상승하며 국민들의 경제적 부담은 점점 더 가중되고 있다. 급기야 대규모 3기 신도시 개발을 선언하며 아파트 공급량을 늘려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계획을 시행하고 있지만, 분양가상한제 등의 제도적 개선 없이 주택 공급만 늘리겠다는 것은 시공사에게 막대한 이익만 남겨주고 더 많은 투기수요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봐야 될 것이 주택 가격은 공급을 늘려야만 안정시킬 수 있냐는 것이다. 그리고 주거의 안정을 꼭 주택을 소유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인가?
현재 대한민국의 주택보급률은 104.8%(2019년 기준)이다. 그런데 주택 자가점유비율은 2015년도 기준 56.8%(2022년 9월 새로운 통계 입력 예정)이며 국토부가 전국 5만1500여 가구를 대상을 조사해 공개한 '2020년 주거실태조사'에서 확인된 자가점유비율은 57.9% 수준으로 주택보급률은 100%를 초과하여 계속 증가하는 반면 주택 자가점유비율은 거의 제자리걸음이다. 주택 자가점유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루마니아 95.8%, 19위인 일본 80.5%, 37위인 네덜란드 69%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이다.
결국 주택 공급을 늘려도 다주택 소유자들의 소유만 증가하고 다시 그 공급량은 민간 임대 시장으로 흘러간다는 것인데 여기서의 관건은 정부가 민간임대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주택 공공임대비율은 7.2%이다.(2019년 OECD 통계), OECD 평균 8%와 비교해도 낮은 수치이고 35%인 네덜란드와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민간 임대가 대부분인 주택 임대시장에서 가격을 통제하기란 쉽지가 않은 일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주택 임대 시장에서 공공임대비율이 최소한 15%이상은 되어야 임대시장에서 조금이나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그 동안 재개발 및 신도시 개발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공공임대 물량을 확보하고 유지를 했다면 지금의 공공임대비율의 수치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주택시장과 주거 안정을 위해 주택 임대 시장의 통제가 가능할 정도로 공공임대를 획기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지금부터라도 세금을 투입하여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공공주택 소유를 확대, 공공임대 공급을 늘리고 신도시 개발이나 재개발에 있어 사회주택 관련 비영리단체를 참여시켜 공공의 성격을 지닌 사회주택 공급을 늘림으로써 공공임대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민간 임대 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주택 현황을 살펴보면 2015년 사회주택협회가 처음 창립되어 현재까지 수도권과 전북, 부산에 총 4,389호(서울 3316호 / 경기 883호)의 사회주택을 공급하며 운영하고 있다. 협동조합, 학교, 중소기업, 비영리 법인들이 참여하며 국내 상황에 맞는 다양한 형태(빈집 살리기, 공동체 주택 등)의 사회주택 공급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시행 초기이고 대부분의 재원을 지자체 지원에 의존하다보니 공급량 자체가 미미한 상태이다. 표출된 수치만 놓고 보면 향 후 계속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지 심히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고 심각하게 발전 방향을 모색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그렇다면 사회주택 보급률이 높은 네덜란드의 사회주택 제도는 어떻게 발전해 왔고 운영되어 온 것인가?
네덜란드 사회주택은 19세기 말 도시로 밀려드는 노동자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 시작되었다. 그리고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도시의 주택난이 심각해지면서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주택이 공급되면서 활성화 되었다. 네덜란드의 사회주택의 가장 큰 특징은 대한민국의 공공임대처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적인 주거 형태가 아니라 일생에 있어서 누구나 한 번 정도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거 형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사회주택제도는 정부 주도가 아닌 사회주택협회라는 민간(비영리 80% / 영리 20%) 주도로 사업이 이루어진다. 현재 네덜란드 내 사회주택의 수는 약 225만호이다. 그리고 현재 네덜란드의 수도인 암스테르담의 경우 9개 사회주택협회 조직이 총 19만호의 주택을 소유하고 암스테르담주택협회연맹(AFWC) 하에서 운영 중이다.
네덜란드 사회주택은 2차 세계대전이후 전후 복구 과정을 거치며 정부주도의 사업이 이루어지다가 1960년 주택협회연합 - 민간 건설업자 - 지방정부 - 중앙정부 등 다양한 이해집단들이 참여하는 드 로오스 위원회가 설립되면서 사회주택에 대한 발전적인 제안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1965년 정부 주도가 아닌 사회주택협회를 통한 민간 주도의 건설방식을 채택하며 사회주택협회에 건설 사업의 우선권이 주어지게 되는데, 1970년대 중반까지 사회주택협회에 도시 재개발의 우선권이 주어지게 되면서 사회주택의 질과 양적인 부분에 있어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다. 현재 대한민국의 재개발과 신도시 개발은 서민에게 주는 혜택은 미미하고 기업과 투기세력에게 막대한 이윤을 제공한다. 공공을 위한 것이 아닌 특정 계층을 위한 공공개발의 모습과 비교해 볼 때 사회주택협회에 도시 재개발의 우선권을 주는 네덜란드의 정책 시행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네덜란드의 사회주택이 순탄하고 밝은 면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네덜란드 사회주택 역시 EU를 등에 업은 신자유주의(선별적 복지를 지향하고 시장에서의 경쟁을 지향하는)의 공세로 인해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지 못하며 재원확보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그리고 원래의 취지와 다르게 개인의 소득에 따라 사회주택 지원이 제한되고(연소득 38,000유로), 암스테르담에서는 사회주택을 신청했을 때 9년 동안 입주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고 한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직 네덜란드 주택 임대 시장을 주도하는 힘을 잃지 않고 있다.
네덜란드 사회주택제도에 있어서 눈여겨 봐야할 것 중의 하나가 상태와 입지에 따른 등급을 매겨 사회주택을 관리하는 것인데(임대료 역시 등급에 따라 정해진다.) 이런 점들은 사람들에게 높은 신뢰성을 제공하며 임대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신자유주의의 공세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힘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과연 신자유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주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국내 사회주택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네덜란드 사회주택제도와 운영방식을 모니터링하면서 대한민국 상황과 맞지 않는다고 말을 하며 국내 상황에 맞는 사회주택제도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토대가 없는 곳에 벽돌을 쌓을 수가 없듯 현재의 상황 속에서 사회주택의 활로를 모색할 것이 아니라 상황과 여건의 변화를 시도하며 사회주택 공급의 토대를 구축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도시 재개발의 우선권을 획득하며 사회주택제도 발전의 토대를 구축한 네덜란드 사회주택협회의 모습 속에서 대한민국 사회주택의 미래를 찾아보는 것은 어떤가?
아무쪼록 대한민국 사회에도 사회주택제도가 자리를 잡고 깊게 뿌리를 내려 주거 안정의 한 축을 담당해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