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주 69시간인가?
손종필(정책연구팀장)
2021년 7월 당시 윤석열 후보는 “---필요한 경우 주 120시간 일을 해야 된다는 거야. 그리고 2주 바짝 일하고 그 다음엔 노는 거지”라고 주장했었다. 매일경제와 한 인터뷰 중 ‘주 52시간제, 최저임금 등 기업의 불만’에 대한 질의에 답변 과정이었다.
그리고 윤석열 후보는 당선이 되었고, 이러한 생각을 구체화 한 것이 이번에 발표된 고용노동부의 근로시간 개편 방안이었다. ‘주 69시간’으로 불리는 근로시간제도 개편 방안이 발표한 후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고, 대통령의 보완 지시로 고용노동부는 소위 ‘멘붕’에 빠지며 수습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노동부는 MZ세대와의 대화를 통해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MZ 세대를 포함해서 노동계 전반에서 ‘과로를 조장하는 악법’이라는 주장이다.
노동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이 법으로 보장된 권리도 행사하기 어려운데 몰아서 쉬는 게 가능하냐며 탁상행정을 비판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경제계와 재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느라 정작 노동의 당사자 목소리는 외면하는 편향적인 정책을 지적하기도 한다. 반발이 거세어지자 손바닥 뒤집듯 태세를 전환하는 대통령의 모습에서 정책이 얼마나 졸속으로 진행되었는지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윤대통령의 갑작스런 태세 전환은 유치하다.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추진되던 정책이 여론의 반발에 직면하자 마치 자신과 상관없이 추진되던 정책인양 주 60시간 이상은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의 말을 따라 정책을 입안했던 사람들은 뭐가 되는가?
우리나라의 장시간 노동시간은 이미 악명이 자자하다. 국가통계자료(KOSIS)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체 노동자 연평균 근로시간은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2021년 기준 1,915시간이다. 표면상 몰아서 일하고, 그 다음에 푹 쉬니 문제가 없을 듯하지만 눈가리고 아웅이다. 지금도 연차를 다 사용하지 못하는 노동자가 부지기수라는 점에서 결국 노동시간의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명백하다. 직장갑질 119 조사에 따르면 20대 사회 초년생의 휴가 사용 횟수가 충격적인데 6일 미만이 55%다.
OECD 주요국 노동자 연간 근로시간
(단위: 시간)
70년대 산업화 시절 정부는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법으로 빼앗았다. 하루 18시간 노동을 통해 노동력을 착취했다. 국가가 노사 관계에 개입하고, 자본가들의 불법적인 노동착취에 눈감았다. 노동집약적인 산업구조에서 장시간 노동시간과 낮은 인건비를 기반으로 오로지 수출, 성장제일주의가 판을 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사회의 민주화와 함께 노동조건의 개선이 아주 천천히 발전해 왔는데 이것을 한 번에 되돌리려는 시도가 이번 근로시간 개편 방안인 것이다. 경제계, 재계의 요구에 정부가 화답한 것이다.
결국 자본가의 이해를 반영하는 과정에서 나온 정책이다.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이 가뜩이나 많으니 공식적으로 추가적인 노동시간을 늘릴 수 없다. 그러니 꼼수로 노동시간의 유연화를 주장한 것이다. 말이 좋아 ‘당사자 합의와 근로조건 선택을 조건’으로 내세웠지만, 노동조합 등 사용자에 대응할 힘이 있는 곳 말고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합의 아닌 합의가 이루어질게 뻔하다. 고용노동부가 작년 12월에 발표한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고작 14.2% 수준으로 293만명이 가입되어 있을 뿐이다. 노조가 없는 중소·영세사업장의 경우 허울뿐인 합의에 의해 노동시간이 연장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렇게 늘어난 노동시간은 자본가들의 이윤 획득에 활용된다. 기존 노동시간으로부터 획득하는 이윤은 한정되어 있고, 치열한 자본 간의 경쟁에서 추가적인 노동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자본에게 천군만마와 같을 것이다.
이번 근로시간 체계 개편방안은 비니지스 프렌들리로 가는 여러 가지 방안 중 하나 라고 봐야 한다. 노동시간의 유연화 합리화라는 미명아래 노동자들을 싼값에 더 부리도록 법적으로 열어주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회귀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노동자들은 영민해졌고, 전진된 노동조건을 후퇴시킬 수 있을 만큼 국민들이 우매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