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권 외교의 수준을 보다
손종필(이슈브리핑 팀장)
#1. 미국의 군사기밀 문서 유출에서 드러난 CIA의 도청 정황
2023년 4월 8일, 방대한 양의 미군 기밀 문건이 미군에 의해 유출되는 사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다. 매우 민감한 정보를 담고 있는 문서의 유출로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논란이 진행되던 중 유출된 문건에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대한 한국 정부 내부의 논의가 공개되었는데, 뉴욕 타임스에서는 해당 정보가 도청으로 수집된 것이라 보도했다.
미국 CIA에 의해 우리나라의 국가안보실에 대한 도청이 일어났다는 의혹은 점점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이번 도청 의혹은 국내 정치권을 비롯해 국내적으로 큰 논란이 일어났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4월 11일 공지문을 통해 “미 정부의 도·감청 의혹 관련 공식 입장을 알려드린다. 용산 대통령실은 군사시설로, 과거 청와대보다 훨씬 강화된 도·감청 방지 시스템을 구축‧운용 중에 있다”며 미국에 의한 도청 의혹을 일축했다. 한발 더 나가 대통령실은 이번 도청 의혹에 대해 “터무니없는 거짓 의혹임을 명백히 밝힌다”고 했다. 한미 동맹을 최고의 선이라 생각하는 이들에게 미국의 도청은 가능한 일이고 있을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정권의 사대주의성을 이야기 하기 전에 주권 국가로서 정당한 확인 요청조차 공식적으로 없었다.
# 2. 좁아지는 외교 전략, 시선의 끝은 미국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9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살상무기 지원 불가’라는 기존 입장을 바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수 있다는 언급을 했다. “만약에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라든지, 국제사회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 학살이라든지”라는 전제조건을 달고 “인도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내용이다. 당연히 러시아는 이에 대해 반발했다. 이 날 같은 인터뷰에서 대만 해협의 군사적 긴장 고조에 대해서는 “이런 긴장은 힘으로 현상을 바꾸려는 시도 때문에 벌어진 일이며, 우리는 국제 사회와 함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대만의 문제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것이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중국의 반발은 예상대로 격했고, 양국 외교 당국간 거친 발언들이 오고 가고 있다.
무엇을 위한 방일 방미인가? 윤석열대통령은 한일·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고 있나?
대통령실은 지난 한일 정상회담의 성과를 “역대 최악으로 치달아 온 양국관계 개선의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또한, 다가오는 한미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북핵 대응을 위한 확장억제 강화 논의와 반도체법, 인플레이션 방지법 등’ 이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에 의해 사전 조율되고 있다고 한국일보에서 보도했다.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나라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일본에게 준 것은 무엇인가? 외교 관계에서 상호간 받고 주는 것은 등가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퍼주기 논란, 굴욕외교라는 비판에 직면한다. 지난 한일정상회담의 성과 여부와 별개로 논란은 일본종군위안부 제3자 배상 문제와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지소미아) 재개, 그리고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철회하는 것을 골자로 한 수출규제의 완화다. 모두 민감한 사안들이다. 지소미아의 문제는 협정을 체결하던 박근혜 정부 당시에도 논란이 되었던 사안이었고, 일본종군위안부 배상 문제는 일본이 식민지배에 대한 분명한 사과조차 없이 여전히 책임을 인정하지 않아 한일 관계의 중요한 의제로 작용한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완화는 첨단 산업의 핵심적인 소재 부품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를 해제하는 것이다.
과연 우리나라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양국간의 관계 개선은 신뢰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한일정상회담 이후 일본이 보이는 모습에서 정권이 이야기하는 성과가 실제 있을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미국과의 정상회담 의제는 북핵 억제를 최우선으로 두는 순간, 나머지 의제는 모두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의 측면이 강하다.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이나, 미국의 대 동북아 정책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외교적 경제적 비용이 수반될 수 밖에 없다. 미국의 도청 의혹에 대해 자주적인 국가로서의 사실 확인과 문제 제기조차 못하는 현실에서 미국의 다양한 요구에 얼마나 입장을 펼칠지는 걱정스럽다.
한일, 한미 정상회담의 의도를 보려면 다양한 배경을 살펴야 한다. 하지만 다양한 배경의 가장 우선순위는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 특히 동아시아 전략 구상이라 본다. 한국 사회에서 일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여전히 반일 성향이 강하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일 양국 간의 관계 개선 또는 미래의 동반자적 관계를 더 강조하는 행태를 보인 것은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잇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중국 포위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미국의 1차 파트너는 일본이다. 일본도 이러한 위치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북아에서 일본과 한국의 관계 개선은 미국의 동북아 전략을 중심으로 강고한 연대체 구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의 반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곧 한미정상회담이 열린다. 집권 후 외교 정책에서 커다란 성과를 내지 못했던 윤석열 정부의 입장에서 한미정상회담은 그래서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핵 억제라는 명분만 얻고 실익은 없는 외교의 민낯을 또 보여주는 것이 아니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