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치적 사고방식과 미국 유권자의 소외
글: 엘리스 문(정치 분석가)
번역: 심태은(번역팀, ISC)
미국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는 이 시점에서 미국의 정치 지형에 관한 고찰을 심화하고, 미국인 사이에서 지배적인 사고방식을 이해하며, 이 지역의 정치적 사고방식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세 가지 이데올로기적 조류는 사회적 보수주의, 재정적 보수주의, 자유주의이다. 이 중에서 자유주의를 더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진보 또는 좌파로 잘못 여겨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의 위기를 해결하려면 이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 진정한 진보라면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라는 체계와 단절해야 한다. 그렇지만 자유주의는 그렇지 않다.
우선, 사회적 보수주의는 ‘국가’ 등의 도덕적 가치와 주제에 더 천착한다. 자기 전통을 유지하는 것을 지상 목표로 삼으며, 이를 위해서는 다양성을 저버리는 경우도 많다. 마이크 펜스와 같은 인사들은 기독교 가족이라는 가치를 강조하면서 낙태를 반대하는 정책을 지지하고 동성혼을 반대한다. 그들의 정치적 신념은 진화하는 사회적 규범에 위협받는다고 여기는 삶의 방식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다음으로, 재정적 보수주의, 즉 신자유주의, 무정부주의 자본주의, 우파 자유주의는 시장 또는 기업 행위를 국가가 규제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들은 개인과 사적인 부의 축적을 우선하고, 작은 정부, 조세 감면, 자유 시장, 민영화를 지지한다. 또한 빈곤을 개인의 책임으로 보지, 이를 유발하고 유지하는 체제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일론 머스크와 빌 게이츠 같은 인물들은 규제 완화와 공공재의 민영화를 추구한다. 머스크의 하이퍼루프 같은 민영화된 대중교통 사업은 공공 인프라 투자를 방해하는 폭넓은 경향성을 반영한다. 한편, 게이츠의 차터스쿨(미국식 자율형 공립고 - 옮긴이) 지지는 민영화된 모델을 위해 공공 교육 재원을 전용하게 만든다. 신자유주의는 정부 규제를 해체할 뿐만 아니라, 이윤을 위해 공공재를 민간의 손에 넘겨준다(‘양도’). 미국의 노동자계급조차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는 여러 가정을 받아들이게 되어, 억만장자들의 성공은 당연한 일이고, 실제로는 중요한 사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더 떨어지게 됨에도 민영화가 효율성을 더 높인다고 믿게 되었다.
이런 차이가 있지만, 사회적 보수주의와 재정적 보수주의는 도덕적이든 물질적이든, 해당 집단의 생활방식이든 간에 개인의 이해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단결한다. 이들이 각자의 가정, 교회, 공동체, 국가의 번영을 진심으로 바랄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편협한 사고방식 때문에 경제 불평등 같은 문제에 관한 폭넓은 접근 방식을 수용한다거나 타인의 다양한 경험과 요구를 더 깊이 이해하지는 못한다. 이 두 집단은 보통 공화당 지지자로 나타나며, 미국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사회적 보수주의와 재정적 보수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같은 개인에게서 중첩되어 나타날 수 있으며, 반동적, 혹은 신보수주의적 유권자를 형성한다. 이 스펙트럼의 극단에는 인종차별주의, 민족주의, 군국주의를 신봉하는 극우 지지자가 있다. 이들은 보수 집단에서도 급진적인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이데올로기적 현상은 사회적 또는 재정적 보수주의가 아니라, 바로 세 번째 이데올로기 범주에 해당하는 자유주의다. 보수 비평가들이 일명 “워크”(Woke,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는 것을 비꼬는 의미로 보수에서 많이 사용함 - 옮긴이)라고 불리는 자유주의 세력은 민주당의 기반을 형성하고 있으며, 현재 선거에서 카멀라 해리스를 열정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그들은 다양성, 인권, 민주주의, 환경보호, 과학적 지식을 지지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의 진보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사실 자유주의는 진보와 거리가 멀다. 그들은 스스로 반대한다고 말하는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뿌리 깊은 사회 체제에 문제를 제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엘리트주의와 기득권에 대한 애착으로 인해 자유주의 세력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선전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많은 경우 이는 수많은 모순으로 이어진다. 일부는 보여주기식 활동에 치중한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이 벌어질 때, 사회 전체적인 변화는 옹호하지 않으면서 SNS 프로필에 검은색 상자를 포스팅한다든지, 성소수자의 달에는 무지개 로고를 달면서 착취적인 기업을 계속해서 지지하는 식이다. 또한, 인권을 수호한다고 주장하지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 학살에서 미 제국이 자행한 인권 침해에는 눈을 감는다. 비거니즘(동물권을 옹호하며 종 차별에 반대하는 사상과 철학 - 옮긴이)을 설파하지만,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살육에는 맞서지 않는다. 인종 평등에 관심을 쏟는다고 하지만, 캘리포니아주 검사장으로서 무단결석과 마약법에 따라 유색인종을 엄청나게 감옥에 보내고 대선 후보로서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를 “흔들림 없이” 지지하겠다고 한 해리스에 투표하는 것의 모순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환경 문제를 걱정한다고 하지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을 폭격하는 일이나 미국이 유럽에서 노르트스트림 가스 수송관을 사보타주한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이 두 사건이 현재 엄청나게 온실가스를 배출하는데도 말이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비난을 거부함으로써, 자유주의는 위선적으로 현 상황 유지에 동조하는 것이다.
다양한 자유주의 집단 가운데, 진심으로 진보적 가치를 옹호하는 이들은 인권, 민주주의, 지속 가능한 환경, 사회 정의에 관해 말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미국이 자유민주주의를 수출한다’는 등의 거짓된 내러티브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실제로는 미국이 쿠데타, 독재, 폭력을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와 외교를 진정으로 옹호하는 이들이라면 군사 개입과 독재 지원 등 미국 외교정책의 잔재에 맞서야 한다. 또한 환경 파괴 요인과 불평등 및 탄압을 영속화하는 체제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평등, 사회 정의, 환경적 지속 가능성을 달성하려면 착취와 고통을 유지하는 사회 구조를 해체하지 못하는 보여주기식 행동을 뛰어넘어야 한다.
유권자의 압도적 다수가 이런 자유주의자와 앞서 설명한 두 가지 유형의 보수주의자로 구성된 상황에서, 사회주의(사회적 민주주의와 혼동하지 말자)라는 영향력 있는 집단을 찾아볼 수 있는 다른 나라와 달리 미국 정치의 스펙트럼은 다양하지 못하다. 브라질을 예로 들면, 사회주의에는 노동자당(PT), 브라질 사회주의당(PSB), 사회주의해방당(PSOL) 등 다양한 세력이 있다. 반면에 미국 사회주의 세력은 정치적 대표성이 거의 없다.
사회주의적인 아이디어는 매카시 시대의 탄압과 반자본주의 운동의 배척 등 역사적인 요인으로 관심을 얻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미국 외교 정책에 관한 비판을 제기하면 매국노라던가 이적 세력이라는 딱지가 붙었고, 이는 제대로 된 토론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이분법적이고 공포를 조장하는 내러티브를 강화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의 개입을 비난하고 외교적 해법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장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러시아의 선전을 읊어댄다는 비난을 받는다. 한반도와 대만 문제에서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이들은 친중 세력으로 여겨진다. 이 모든 계략은 좌파를 적국과 관련 있다고 폄훼하던 냉전 시기의 전략을 답습한다. 마찬가지로, 보이콧, 투자 철회, 제재(BDS) 같은 운동을 통해 미국의 이스라엘 지지에 맞서는 활동가들은 많은 주에서 송사에 휘말리고, ‘반유대주의자’라는 딱지가 붙는다. FBI가 좌파와 사회주의 활동가를 겨냥하여 벌이는 감시는 체제 비판의 여지를 더 없앤다. 일례로 안티파(파시즘·백인우월주의·신나치주의(네오나치) 등의 극우세력에 대항하는 급진 좌파 집단 - 옮긴이),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등의 집단과 연관된 활동가들은 소위 ‘국내 테러’ 위협 분자로 감시당하고 조사받았다.
날로 늘어나는 불평등과 집이 없는 인구수 등 명백한 사회적 문제가 있어도 미국 정치계에서 사회주의는 국민을 아주 교묘하게 소외시키는 국가 선전으로 매우 약화한, 여전히 소외된 이데올로기이다. 철학가이자 이번 대선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한 코넬 웨스트는 최근 미국 좌파가 약하다는 점을 한탄했다. 웨스트를 비롯하여 질 스타인, 클라우디아 데 라 크루즈 등 자본주의적 현 상황에 대안을 제시하는 다른 대선 후보들은 엄청난 정치적, 법적 장해물에 직면하고 있다. 한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O.C) 같은 유명한 자유주의 인사들은 질 스타인의 제3 정당 후보 출마를 두고 공화당을 이기기 위한 민주당의 노력을 저해할 수 있다며 “약탈적”이라고 비난한다.
자유주의 세력과는 달리 사회주의 세력은 체제 변화를 주장하지만, 한 세기가 넘게 미국 정치 토론에서 사회주의가 배제당하면서 자유주의가 ‘진보’를 대변한다는 잘못된 관념이 생겼다. 그러나 이렇게 뿌리 깊은 왜곡된 시각에서는 자유주의의 한계, 즉 특정 사회 문제는 해결하지만 경제 불평등이나 세계 권력 역학의 체제적인 속성은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은 간과한다. 일부 진보적 대의를 지지하기는 하지만, 자유주의는 자본과 제국주의 세력과 타협한다. 사회주의 세력은 사회 구조를 불평등, 고통, 갈등의 주된 요인으로 보지만, 자유주의 세력은 개인 소비자의 선택, 재활용, 억만장자의 자선 활동, 부자 증세 등 더 많은 피상적인 해법에만 초점을 맞춘다. 물론 이런 아이디어가 일정하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는 하겠지만, 사회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한다. 지정학적인 문제에서 사회주의 세력은 현재 상황을 형성하는 물질적인 조건을 보지만, 자유주의 세력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별개의 사건으로 보고, 식민주의, 시온주의적 우월주의, 제국주의적 야망, NATO의 공격과 도발이라는 맥락은 무시한다.
미국 양당 체제 외의 대안을 가로막는 장해물 때문에 미국은 더욱더 우파와 파시즘으로 표류하며 진정한 대중적 대의에 무감각해지고 있다. 조르자 멜로니가 이끄는 이탈리아가 이스라엘에 무기 금수조치를 시작한 가운데 미국이 이스라엘의 집단 학살을 계속해서 지원한다는 점은 파시스트를 자처한 이탈리아보다 미국이 더 오른쪽에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양당 체제는 군산복합체라는 단 하나의 파시스트 정당을 가리는 가면일 뿐이다. 트럼프와 해리스 모두 친이스라엘 로비 그룹으로 유명하며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에 로비를 벌이는 AIPAC으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기부금을 받았다. 그동안 양당 출신의 역대 미국 대통령은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폭격을 자행했다. 자본주의는 여전히 주춧돌로 남아 있고,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줄이고 인프라, 보건의료, 기타 노동자계급을 위한 사회적 사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등 진보적 변화를 위한 진정한 노력은 교묘한 선전으로 질식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선전으로 미국인들은 그들의 논리에 순종하고, 잘못된 정보를 믿으며, 진실에서 눈을 돌리고 있다. 미국에서 정치인들의 아전인수와 유권자 조종이 얼마나 성공적인지는 자명하게 보인다.
최근 수십 년간 미국 정치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 눈에 띄는 재편성이 일어났다. 역사적으로 공화당은 대기업 정당으로, 민주당은 노동조합과 노동자계급 정당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세계화와 경제적 변화로 미국 정치계가 재정의됨에 따라, 민주당은 한때 공화당을 지지했던 기술, 금융, 엔터테인먼트 등의 산업에서 점점 지지를 얻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민주당이 CIA를 비롯하여 17개 미국 정보기관 등 국가 안보기구와 협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나타났다. 냉전 시기에 공화당은 미군의 해외 개입을 강력하게 옹호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리비아, 시리아, 우크라이나 개입을 지지한 것처럼 민주당이 더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자유주의 세력이 자본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체제를 강화하면서 대중을 소외시킨다는 점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2024년 선거에는 코넬 웨스트, 질 스타인, 클라우디아 데 라 크루즈라는 제3의 대안이 있다. 각 후보는 거대 양당이 지지하는 자본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체제에서 벗어나겠다는 열망을 각자의 방식으로 대변한다. 이제 문제는 미국 대중이 군산복합체, 대기업, 정보기관이라는 집단이 만든 편협하고 인공적인 선거판을 뛰어넘어 제3 정당이나 무소속 후보를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미 국방성, 월가, 억만장자 계급이 만든 정치적 환상에 갇혀 그들에게 순종하고 굴복한 채로 남을 것인가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제3 정당을 지지하는 민주당 유권자의 비율이 2023년 46%에서 2024년에는 53%로 늘었다.
이제는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 피상적인 수준의 구분을 넘어 불평등과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정치 말이다. 그래야만 기득권과 개인주의자의 만족을 위한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 평화,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진정한 대안이 만들어질 수 있다. 무기 대신 공공선을 위한 공공 재원의 할당, 이스라엘에 대한 즉각적인 무기 금수조치와 휴전, 제3 정당의 대표성을 위한 결선투표제, 선거인단 제도의 종식 등 수많은 가치 있는 목표가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