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 전쟁, 기아, 죽음은 바로 심장으로 파고든다 (2024년 11호 뉴스레터)
* 본 기사는 Tricontinental: Institute for Social Research의 “Conquest, War, Famine, and Death Hit You Straight in the Heart: The Eleventh Newsletter (2024)”를 번역한 글입니다.
번역: 이재오(번역팀, ISC)
감수: 심태은(번역팀, ISC
안녕하세요
트라이컨티넨탈: 사회연구소에서 인사드립니다.
3월 4일, UN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필립 라자리니 사무총장은 UN 총회에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현 상황에 대한 놀라운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라자리니 사무총장은 150일 만에 이스라엘군이 30,0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했고 그중 절반 정도가 아이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생존자들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공격을 견디며 전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립니다. 성경에 나오는 묵시록의 네 기수(정복, 전쟁, 기아, 죽음)는 가자지구를 가로질러 사납게 달리고 있습니다.
라자리니 사무총장은 “모두가 굶주렸고, 인간이 만들어낸 기아가 도사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라자리니 사무총장의 단도직입적인 보고가 있고 며칠 후, 가자지구 보건부에서는 가자지구 북부의 아동 영양실조 비율이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고했습니다. 제이미 맥골드릭 UN 팔레스타인 인도주의 조정관은 “기아가 재앙 수준에 달했으며 아이들이 굶어 죽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3월 첫째주에만 이미 20명의 아동이 기아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중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 하눈 출신의 야잔 알카파르나(10세)는 라자리니 사무총장이 UN에서 연설하던 날 가자 남부 라파에서 사망했습니다. 야잔의 수척한 모습은 이미 무너져가는 우리의 마음을 또 한 번 찢어놓았습니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폐허가 쌓여가는 가자지구에는 비극 역시 쌓여만 갑니다. 야잔이 숨진 알아우다 병원의 모하메드 살라 박사는 영양실조 상태의 많은 임신부가 유산하거나 마취도 없이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휴전의 조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에 더해 가자지구로 구호물자를 반입하려는 실질적인 노력 또한 보이지 않습니다. 가자지구 북부는 현재 기아로 가장 큰 위협을 받고 있으며, UN 세계식량계획 칼 스카우 사무차장은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에서 “다가오는 위협을 막지 않는다면 5월이면 가자지구 북부의 50만 명이 실질적인 기아 상태에 놓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매일 구호물자를 실은 트럭 155대가 가자지구로 진입하고 있는데, 이는 통로의 최대 수용 규모인 500대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며, 가자지구 북부로 가는 트럭의 수는 훨씬 더 적습니다. 이스라엘군이 무자비하게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2월 29일, 가자지구 북부의 가자시티 남서쪽 알나불시 교차로에 구호물자 트럭이 도착하여 수많은 굶주린 사람들이 몰리자, 이스라엘군은 무차별 발포하여 118명의 민간인을 살해했습니다. 이 사건은 ‘밀가루 대학살’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공중에서 투하하는 식량은 그 규모가 심각하게 부족할 뿐만 아니라, 지중해로 떨어지거나 사람들 위로 떨어져 5명이 목숨을 잃는 등 또 다른 비극을 불러오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3월 7일 국정연설에서 가자 남부에 “임시 항구”를 건설하여 해상으로 구호물자를 반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바이든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결정의 맥락은 명백합니다. 2006년에 다하니야 가자 공항을 파괴하고 10월 10일에 가자 항구를 파괴한 이후, 이스라엘이 최소한의 구호물자조차 육로 반입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미국이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대선후보 경선에서 “지지 후보 없음”을 선택하는 움직임이 점점 커지면서, 바이든의 재선하지 못할 위험에 처하자 이를 막기 위한 결정이기도 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야 빵 한 쪽이라도 있는 편이 낫지만, 가자지구로 반입되는 빵은 피 묻은 빵이 될 것입니다.
바이든의 발표는 허무하게만 느껴집니다. 구호물자가 “임시 항구”에 도착하고 나서는 어떻게 분배될 수 있을까요? 가자지구에서 대규모 물자 분배가 가능한 조직은 현재 대부분 서방 국가에서 지원을 끊은 UNRWA와 서방 국가들이 제거하려는 하마스 정부뿐입니다. 두 조직 모두 현장에서 구호물자를 분배할 여건이 안 되고, 바이든은 미군 병력을 투입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구호물자는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요?
UNRWA는 1949년에 UN 결의안 302호(IV)가 통과되고 나서 팔레스타인 난민을 위한 구호 활동을 하는 주요 단체가 되었습니다. UNRWA가 활동을 시작했을 때, 75만 명의 난민이 있었지만, 그 수는 이제 590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UNRWA의 임무는 분명합니다. 팔레스타인 난민의 안위를 위해 활동해야 하지만, 팔레스타인 바깥에 영구적으로 정착하는 것을 도울 수는 없습니다. UN 결의안 194호로 인해 이스라엘이 추방한 팔레스타인인은 고향으로 귀환할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3만 명의 직원 중 3분의 2가 학교에서 일하는 만큼 UNRWA의 활동은 주로 교육을 중심으로 하지만, UNRWA는 구호물자를 분배할 능력이 가장 잘 구비된 조직이기도 합니다.
서방은 팔레스타인인의 안위를 걱정해서 UNRWA의 창설을 허용한 것이 아니라, 미 국무부가 1949년에 인지했듯이 “불안과 절망은 공산주의가 주입되기 가장 쉬운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66년부터는 심각하게 제한되긴 했지만, 서방이 UNRWA에 자금을 지원했던 것입니다. 2024년 초, 대부분 서방 국가는 UNRWA 직원이 10월 7일 공격에 연루되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들며 UNRWA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였습니다. 이스라엘군이 물고문과 폭행 등을 통해 UNRWA 직원으로부터 거짓 증언을 받아낸 것이 최근 밝혀졌지만, 캐나다와 스웨덴을 제외한 대부분 서방 국가는 지원을 재개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다수의 남반구 국가는 브라질의 주도로 UNRWA 지원 규모를 확대했습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UNRWA를 이끈 필리포 그란디 UN 난민 고등판무관은 최근 “UNRWA의 운영이 허용되지 않거나 지원금이 축소될 경우, 이를 대체할 것을 상상하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을 위한 인도적 구호 사업은 UNRWA와의 완전한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선전을 위한 허풍에 불과합니다.
가자지구 기근에 대해 읽다가, 비슬라바 쉼보르스카(1923-2012)가 폴란드 남부 야스워에 위치한 쉐브네 강제 수용소에 대해 쓴 시가 생각났습니다. 쉐브네 강제 수용소는 1941년부터 소련군이 수용소를 해방한 1944년까지 폴란드의 유대인과 로마니인, 그리고 소련군 전쟁 포로를 감금하던 곳입니다. 나치 독일은 쉐브네에서 수천 명의 유대인을 집단 학살하는 등 끔찍한 폭력을 자행했습니다. 쉼보르스카의 시 “야스워 인근 기아 수용소”(1962)는 절망적인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않으며 동시에 인간성에 대한 열망을 똑똑히 보여줍니다.
써라, 써라, 평범한 잉크로
평범한 종이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고,
모두 굶어 죽었다고. 모두. 얼마나 많았나?
넓은 들판이다. 잔디가 몇 잎일까
한 사람마다? 써라: 나는 모른다.
역사는 유골을 제로로 반올림한다.
천 명하고 하나는 천 명일 뿐이다.
그 한 명은 존재한 적도 없는 듯하다:
상상 속의 태아, 텅 빈 요람,
아무도 열지 않은 교과서,
웃고, 울고, 자라는 공기,
공허에서 정원으로 나아가는 계단,
줄지어 선 곳에 아무도 없는 자리.
여기 이곳에서 살이 되었다, 이 들판에서.
하지만 들판은 조용하다, 매수된 증인처럼.
화창하다. 울창하다. 숲이 멀지 않고,
씹을 나무와 마실 이슬이 있다 –
끊임 없이 볼 수 있는 풍경,
눈이 멀 때까지 보인다. 하늘에는 새 한 마리가
그 영양가 넘치는 날개의 그림자를
그들의 입술에 드리웠다. 입이 열리고,
이가 부딪혔다.
밤 하늘에는 반짝이는 낫이
어둠 속에서 빵을 꿈꾸는 이들을 거두어 갔다.
검은 우상에서 손이 떨어졌다,
텅 빈 잔을 잡은 채.
사람이 흔들렸다
석쇠 같은 철조망에 걸린 채.
몇몇은 흙을 삼키고 노래했다. 그 사랑스러운 노래
심장으로 파고드는 전쟁의 노래.
얼마나 조용한지 써라.
그래.
이번 뉴스레터에 첨부된 그림과 사진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 학살로 목숨을 잃은 팔레스타인 예술가들의 작품입니다. 그들은 숨졌지만, 우리는 살아서 계속 그들의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따뜻한 연대의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
비자이 프라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