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하고도 7개월
매년 5월 15일이 되면 우리는 아랍어로 재앙이라는 뜻의 나크바를 추모합니다. 나크바는 1948년 유대 민족국가 건설을 위한 시온주의자들의 침략으로 인해 75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삶의 터전에서 강제로 추방된 사건입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포하자 시온주의 민병대들이 데이르 야신에서 탄투라까지 팔레스타인의 수많은 마을과 도시에 테러와 파괴, 학살을 자행하여 인종청소를 추진했습니다. 이 폭력을 피해 도망친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난민 인구 중 하나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강제 추방을 당하고 있습니다. 지난 7개월 동안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단학살을 보면 나크바가 끝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명백합니다. 나크바의 폭력은 수십 년간 이스라엘의 침략과 군사점령, 인종청소, 거주지 파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체포와 감금을 비롯하여 팔레스타인의 모든 존엄성과 정의, 자주를 짓밟는 행위로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기에 이런 범죄는 매년 더욱 노골적이고 더욱 과감해지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집단학살은 35,0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목숨을 빼앗았고 이에 더해 수천 명이 잔해 아래 묻혀 있습니다. 수만 명이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장애를 갖게 되었고 수많은 가족들이 대가 끊겼기에 이 집단학살의 여파는 세대를 넘어 오랜 시간 동안 느껴질 것입니다. 나크바를 76년하고도 7개월 동안 생중계로 바라보다 보면 절망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절망할 수 없고,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1948년부터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인들은 굴복하지 않고 해방을 위한 투쟁에 나서 왔기에, 이에 연대하는 우리 역시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단순한 인도적 위기가 아닙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굶주리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의 반입을 차단하고, 불도저로 온실과 농장을 철거하고, 폭격으로 땅을 불태웠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국경 지역에 진을 치고 가자지구로 반입될 구호물자를 파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쉽게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사망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의료 물품의 반입을 차단하고, 가자지구의 병원과 보건 인프라를 파괴하고, 의료지원이 절박하게 필요한 사람들의 이동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집이 무너지는 이유는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끊임없이 폭격하기 때문입니다. 가자지구의 인프라 중 절반 이상이 파괴된 상황이고, 이를 재건하는 것은 아무리 빨라도 2040년까지 걸릴 것입니다. 이 전쟁범죄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려는 의도적인 파괴 행위입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우리의 자선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연대와 행동입니다. 그들을 그저 추모해야 할 피해자로만 보면 안 됩니다. 그들은 이 집단학살이 7개월 동안 계속될 수 있도록 압제의 체제를 지원한 국가들에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요구하는 것은, 자유, 정의, 그리고 이스라엘의 탄압과 폭력에 맞선 그들의 정의로운 투쟁에 대한 우리의 지지입니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희망을 주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참여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지금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세계 각지에서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에 대한 연대 행동이 전례 없는 열기를 보이고 있습니다.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시작되어 북미 전역의 수많은 대학교와 대한민국 서울로도 퍼진 학생 인티파다는 학교 재단이 이스라엘 전쟁범죄에 하는 투자를 철회할 것을 요구함으로서 불매, 투자 철회, 제재(BDS) 운동의 강력한 힘을 불어넣었습니다. 하지만 연대의 힘이 세질수록 현 상태를 유지하려 발악하는 체제의 탄압도 커집니다. 팔레스타인의 정의와 해방은 정부나 국제기구로부터 오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해졌습니다. 해방은 신념을 갖고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팔레스타인과 전 세계 민중이 모인 힘에서 올 것입니다.
나크바와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만행들을 추모하면서, 연대와 행동으로 나서겠다는 우리의 결의를 다시 한번 굳게 다집시다. 자유와 존엄, 정의를 위해 싸우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연대의 큰 목소리와 해방을 향한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답해줍시다.
팔레스타인이 우리 모두를 해방시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