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과 희망의 세계화

정도영(콘텐츠팀, ISC)

심태은(번역팀, ISC)

“연대를 구축하자! 집단 학살, 퇴거, 폭력은 이제 그만!” (비아캄페시나)

마르크스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친 지 2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국제주의는 대부분 좌파에서 부차적인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그저 노동조합 지도자끼리 악수를 하거나 진보정당에서 성명서를 내는 데 그칠 뿐이다. 그러니 고루하고 후진적이라고 폄하되던 농민 계급이 21세기에 국제 운동을 가장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라 비아 캄페시나(농민의 길)는 31개 농민단체의 성명서에서 출발하여 이제는 182개 단체, 2천만 명의 회원 수를 자랑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아네트 오렐리 데스마레이즈는 저서 ⟪비아캄페시나: 세계화에 맞서는 소농의 힘⟫에서 농민 활동가들이 국제 연대로 각 지역과 국가 간 투쟁을 저해하지 않고 더 강화했다고 설명한다.

농민에 대한 전 세계적인 전쟁

“각자의 여건은 서로 다르지만, 부유한 국가의 정부들이 초국적 대기업을 위해 움직이는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 알베르트 고메스 UNORCA 사무처장


20세기 후반에 농업의 역할은 식량 제공에서 세계적 규모의 자본 축적으로 대전환을 이루었다. 세계무역기구(WTO)와 국제통화금융(IMF) 등의 다국적 기구는 부채로 허덕이는 국가를 압박하여 자유무역 협정을 받아들이게 했고, 그 결과 전 세계 농민은 존재의 위기를 맞이했다. 공유재산, 토지, 전통적인 농법은 기업형 농업에 밀려났다. 2000년 기준 빈곤선 이하에 해당하는 세계 인구 12억 명 중 75%가 농촌에 거주했다.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도 남반구와 북반구의 신식민주의적 관계를 심화했다. 북미와 유럽 국가에서는 여전히 자국 농가에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개발도상국의 보호 정책은 폐지하도록 하고 있다. 일례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미국과 캐나다에서 농가 보조금으로 재배한 작물이 수입되자 곡물가가 폭락하여 200만 명의 멕시코 농민이 농업을 포기해야 했다. 미국에서는 농업 시장이 공장형 농장 중심으로 빠르게 통합되면서 가족형 농장의 파산율이 급증했다.

세계화는 정부가 식량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을 제한하면서 급속하게 농업의 지형을 바꿨다. 이제 각국의 법과 정책은 WTO 세션이라는 밀실에서 이뤄진 국제 합의에 따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비아캄페시나는 농업 정책이 세계적인 차원에서 결정된다면 농민도 전 세계적인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1996년 멕시코 틀락스칼라에서 열린 비아캄페시나 2차 국제총회(비아캄페시나)

지역에서 뿌리 내리고 투쟁은 세계적으로 

“비아캄페시나가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비아캄페시나의 국제적인 활동이 각 지역의 현실에 굳건하게 기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제 무대에서 비아캄페시나가 대변하는 소농과 농장 조직과의 관련성이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아캄페시나의 국제적인 노력을 각 지역 차원에서 실현하는 것도 중요하다.”

전체적으로 비아캄페시나는 각 지역과 국가에서 투쟁에 활발하게 나서는 농민 지도자가 이끄는 민주적인 조직이다. 최고 의사결정 단위는 국제 총회인데, 전 세계의 회원 단체에서 파견한 대표단이 모여 비아캄페시나의 전략적 방향성을 제안, 토론, 표결을 통해 정하고 국제조정위원회(ICC)의 위원을 선출한다. ICC는 국제 총회 의결 사항을 집행하고, 전 세계 공동 행동을 조직하며, 다른 국제기구와 협상에 나서고, 각국 회원 단체에 조언이나 정보를 제공한다.

비아캄페시나가 회원의 일상과 동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국제적인 활동은 국제 사무국이나 각국 농민 운동 지도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캐나다의 전국농민연합(NFU)은 북미 지역 코디네이터 기관으로, NFU의 국제 프로그램 위원회에 각국 지부를 포함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6개월 만에 국제 프로그램 위원회에서는 리더십 교환 연수, 지역별 워크숍, 멕시코 소농 단체인 UNORCA와 대안 무역 관계 수립 등 여러 성과를 거두었다.

농민을 위해 국제적인 공간을 만든 것은 각국 회원 단체가 악화하는 각국 상황에 따라 자신들의 정치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예방하기도 했다. 데스마레이즈는 NFU가 처음에는 GMO 투쟁에 나서기 꺼렸다는 점을 설명했다. 이미 15년간 식물육종가의 권리를 둘러싼 투쟁에서 패배했고, 일부 NFU 회원이 유전자 변형 종자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아캄페시나가 이 문제에 관해 합의를 이끌어냈고, NFU도 GMO 반대 입장을 확실히 할 수 있었다.


식량주권

“미국 내 가족 규모의 소농이 직면한 현실과 조건은 우리가 원하는 그들의 미래가 아니라는 중요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우리의 상황을 되돌아보니, 그것도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 페드로 마가나, UNORCA


이렇게 길고 신중한 과정은 연대를 촉진했을 뿐만 아니라 농민들이 자기 나라에서 직면한 문제를 공동의 적과 마주한 세계의 위기로 재정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인도의 GMO, 멕시코의 가격 덤핑, 캐나다의 “대규모 농기업”을 연결하면서 농민 활동가들은 개혁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계화에는 전 세계 농민을 강탈하는 것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빌바오에서 열린 식량주권 행진(비아캄페시나 TV)

비아캄페시나는 과거로 되돌아 갈 것을 요구하기보다는 지역에서 건강하고 문화적으로 적합한 식량을 주민에게 제공할 농민의 권리를 말하는 식량주권이라는 대안을 수립했다. 자본 축적이 아닌 지역 사회의 요구에 맞추어 식량을 생산함으로써 식량주권은 시장자본주의적이지 않은 사회 관계의 국제적인 틀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브라질의 무토지 노동자 운동(MST)은 식량주권을 활용하여 유기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식량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는 브라질의 수출 중심, 단일 작물 기반의 농업에 대한 공동체적인 대안이다.

구호를 넘어

“농사짓는 우리들은 우리가 살면서 농사짓는 곳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기업들은 전 세계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우리의 접근 방식은 우리를 전 세계적으로 움직이게 만들 수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세계 어디든 있음을 깨닫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구조와 조직만으로 국제적인 운동이 성립하지는 않는다. 국가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공동의 문화와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MST에서 영감을 받은 비아캄페시나는 “미스티카”(일종의 민중 의례 - 옮긴이)를 굉장히 중시한다. 이를 통해 전 세계 농민이 직면한 공동의 투쟁에 관해 강렬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농민들이 비아캄페시나의 로고가 들어간 녹색 깃발, 손수건, 대나무 모자 등을 들고 나오기 때문에 비아캄페시나 집회는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농민들은 문화 활동이 여러 지역 공동체를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정체성에 어우러지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국제회의에서 각 지역 농민은 연극, 춤, 노래를 통해 자국의 역사, 문화적 기원, 투쟁을 표현한다. 

2005년 홍콩 WTO 투쟁 당시 경찰의 탄압에 직면한 한국 농민들(Felix Wong/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그러나 국제 연대는 결국 투쟁을 통해 만들어진다. 비아캄페시나는 이를 WTO 회의, 국제 행사,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국제 행동의 날 등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집회를 여는 것으로 달성했다. 비아캄페시나는 여러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농민 투쟁을 기념하는 날을 지정하여 전 세계 농민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 세계 농민 투쟁의 날로, 엘도라도 학살 당시 브라질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19명의 MST 회원을 기린다.

국제 행동의 날에 각 회원국에서는 각자 집회를 조직하고, 식량주권이라는 틀 안에서 각 지역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문제에 집중한다. 그러나 2001년에 비아캄페시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수입 덤핑과 GMO에 반대하는 국제 캠페인을 조직했다. 또한 다른 나라의 집회 현장에 농민 지도자를 파견하기도 했다.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농민 지도자들은 네덜란드 농민들과 함께 GMO 시험장을 생물다양성 시험장으로 “바꾸자”는 목소리를 냈다. 국가별 다양성을 추구하고 세계적인 행동을 조직함으로써 각국의 농민은 스스로 국제적인 투쟁의 일원이라는 점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세계의 투쟁을 국내로

“각국에 법적 구속력이 없는 선언이기는 하지만, 그 내용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 인권 규약을 반영하고 있다. 이는 국제 사회가 농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충족하며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강조하는 것이다.”

- UN 총회에서 UNDROP이 통과된 것에 관한 비아캄페시나의 반응

비아캄페시나는 조직과 국제적인 의식 제고 활동을 통해 국제기구에 영향을 미친다. WTO와 달리, 비아캄페시나는 UN 인권위원회와 식량농업기구(FAO) 등 국제기구에 효과적으로 로비를 펼쳤다. 2018년 UN 총회에서는 역사적인 UN 농민권리선언(UNDROP)이 통과되었다. 이 선언은 농민을 권리가 있는 정치적 주체로 정의했다. 국가, NGO, 학계에서 수십 년간 지우려 했던 농민의 권리가 인정된 UNDROP은 농민 운동의 큰 승리이다.

UNDROP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방법에 관한 5부작 회원 교육자료(비아캄페시나)

비아캄페시나는 상징적인 승리에만 그치지 않고 신속하게 UNDROP에서 제공하는 도구를 각 회원국에 전달하여 지역 캠페인을 지원했다. 2020년에 아르헨티나 법원에서는 결정문에 UNDROP을 인용하며 원주민 공동체의 토지에 관한 권리를 인정했다. 대규모 팜유 플랜테이션에 반대하는 집회를 했다는 이유로 인도네시아 정부가 인도네시아 농민조합(SPI) 회원 5명을 체포했을 때, 비아캄페시나와 SPI는 UNDROP에 보장된 권리를 활용하여 인도네시아 정부가 구류된 4명의 농민을 석방하도록 압박했다. 그리고 네팔 농민들이 그러했듯이, UNDROP으로 농민들이 각국 정부에서 새 입법에 나설 수 있는 문이 열렸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30년이 지나도 계속되는 투쟁

“대규모 자본가들이 경제를 세계화한 것처럼, 우리도 가장 가난한 공동체의 투쟁을 세계화해야 한다.”

2023년에 비아캄페시나는 8차 국제회의를 개최했다. 농민에 대한 전 세계적인 공격이 심화하고 있지만, 농민 운동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이제 비아캄페시나에는 새로운 지역이 가입했고, 청년 모임, 가부장제에 반대하는 남성 모임, 다양성과 지지자를 위한 국제회의 등 내부적인 모임이 있다. 또한 민중 교육론을 바탕으로 하는 농생태학교 70곳에서 다양한 국가의 유기농법에 관해 회원들을 교육하는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비아캄페시나 8차 국제회의(문화적 성장을 통한 비아캄페시나)

이 회의의 백미는 팔레스타인 해방에 관한 자발적인 구호를 외치는 순간이었다. 비아캄페시나는 팔레스타인 회원기구인 농업 노동자 위원회 연맹과 함께 이스라엘의 식량 무기화와 수십 년에 이르는 팔레스타인 영토 강탈을 규탄했으며, 이후 가자지구 민중과 연대하는 전 세계 단식의 날을 진행했다. 비아캄페시나의 농민 투쟁은 언제나 인류를 위한 투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