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자본주의의 전환기: 맑시즘과 “기후가 아니라 시스템 변화를”
오늘날 인류는 소위 거대한 자본주의 전환기에 직면해 있다. ‘전환기(그리스어로 사다리의 가로대) ’의 기본 개념은 결정적 변화의 시기 또는 개인이나 전체 사회 구성원의 삶의 전환점을 의미한다. 사회 입장에서 보면, 변하는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역사적인 변혁의 문제를 제기한다. 1980년대 환경 지리학자인 이반 버튼과 로버트 케이트는 1798년(토마스 멜서스의 ‘인구론’이 출판된 해)부터 250년 후 인2048년까지 이어지는 성장을 제한하는 심화되는 전 지구적 생태 문제로서 그들이 살펴본 것들을 주장하기 위해 “거대한 전환기”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그들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인구와 자원, 환경에 적용되는 ‘거대한 전환기’는 결정적 시기에 대한 아이디어와 악화된 상황으로 인해 얼마나 심각한 변화가 발생할지를 포착한 개념이다. 심상치 않은 위험의 시대를 말한다”
나는 여기에서 현재의 지구적인 긴급성과 관련해서 획기적인 사회변화의 요구를 강조하기 위해 ‘거대한 자본주의 전환기’라는 용어를 사용하려 한다. ‘거대한 자본주의 전환기’란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목적의식적 변화의 필요성과 자본 축적의 논리가 계속해서 사회 전반에 지시를 내리게 될 경우 (무수한 다른 종들을 비롯하여) 호모 사피엔스의 존재도 위협 함을 나타낸다. 변함없는 지금의 세계는 급속한 기후변화 뿐 아니라 ‘인류의 안전운행공간’을 규정하는 수많은 지구의 한계를 넘었거나 넘기 직전의 상태이다. 이것이 현재에 대한 인정이자, 최근 과학자들이 ‘인류세 시대(인류로 인해 지구온난화 및 생태계 침범을 특징으로 하는 현재의 지질학적 시기_역주)’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된 사회역사적 요소로 인한 유례없이 빠른 지구 체계의 변화에 대한 인정이다. 미국의 저명한 기후학자 제임스 한센은 “인류가 만들어낸 긍정적 (기후) 강제력으로 인한 빠른 속도는 지구 역사상 지극히 유례가 없는 일이다. 따라서 인류가 초래하고 있는 기후 강제력이 계속해서 가속화할 경우, 그 결과를 예견하기는 대단히 어렵다”고 설명한다.
현재 탄소배출 속도를 보면 세계는 엄청난 양의 연소된 탄소를 배출하고, 지구 평균온도를 2℃ 상승시키고 한 세대가 배출할 수 있는 최대치를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2℃가 상승하면 문명이 발전한 홀로세 시대(지질시대의 최후 시대로 충적세, 완신세 또는 현세라고도 _역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세계로 진입하게 될 것이 두려울 뿐이다. 공식적으로 각국 정부가 2009년 코펜하겐에서 채택한 2℃ “가드레일”은 기후변화 틴달 센터의 저명한 영국 기후학자 케빈 앤더슨이 “극히 위험한” 기후변화라고 명명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줌을 의미한다. 그러나 앤더슨이 말해듯 현 시점에서 2℃ 상승 전 탄소배출을 막기 위해 자본주의 시스템을 규정하는 자본의 축적 내지 경제 성장의 특징에 역행하는 “정치 경제적 헤게모니에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 보다 구체적으로, 탄소 할당 내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현재 세계적 탄소 배출을 연3%로 내외로 삭감해야 함을 의미하며, 선진국의 경우 약 연10%까지 감축해서 조속히 제로 순방출로 가야 한다. 앤더슨에 따르면, 2℃ 이하로 머무르는 “예외적 경우”를 위해서는 부유한 나라들(OECD, 부속국 I)은 탄소배출을 2020년까지 70%, 2030년까지 90%를 줄여야 한다.
이미 지구 온난화로 대표되는 지구의 위급한 상황을 잘 알고 있음에도 탄소 배출은 세계적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필요한 탄소 삭감에 실패했는데 이는 자본축적이라고 하는 자본주의의 존재 법칙에 가해지는 위협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류 문명은 자멸의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이는 장기적으로 완전한 원자력으로의 대체로 인한 위협에 맞먹는 것으로 어쩌면 보다 납득하기 어려운 과정이기도 하다. 현 자본주의의 현실은 ‘기후가 아니라 시스템을 변화시켜라’라는 혁명적 전략 구호가 유토피아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기후변화를 멈추기 위해 전세계가 빠르게 결단을 내리고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을 피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지거나 불가능할 수 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현재 전반적인 사회현실이나 기후협상 실패를 고려하면 2℃ 기온 상승은 불가피하기 때문에, 온도가 3~4℃ 높아지기 전에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목표를 수정하여 실질적으로 기후변화를 막아야 한다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이들도 있다. 이는 세계은행이 교묘하게 퍼뜨리는 논리이다. 그러나 전체 지구 시스템에서 지구온난화의 비선형적 효과들을 고려해야만 한다. 2℃가 넘으면 불확실성의 수준이나 “느린 피드백”으로 인해 지구 온난화의 위협은 통제할 수 없고 잇다른 티핑포인트(작은 변화들이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쌓여, 이제 작은 변화가 하나만 더 일어나도 갑자기 큰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상태가 된 단계_역주)를 넘어서 위협은 아주 높아진다. 그때가 되면 극단적인 기후, 해수면의 상승과 같은 재앙이 증가할 뿐 아니라 인류는 기후(그리고 문명)를 안정화시킬 수 있는 힘을 상실하게 되는데 이때 온실 가스 배출을 줄이려는 인간의 행동은 너무 늦다. 이같은 티핑포인트에 언제, 어디서 도달할지는 모르지만 오늘날의 기후 과학은 2℃가 처음 제안되었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그 경계가 2℃ 증가에 훨씬 근접하다고 말한다. 2℃가 상승하면 예전에는 “위험한 기후” 변화로 생각되었는데, 지금은 “매우 위험한” 상태로 여겨진다. 알베도 효과(지구의 반사율)가 줄어들고, 영구 동토층에서 메탕이 방출되고, 그외 느린 피드백으로 인해 통제할 수 없는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면, 인류는 어떤 방법이든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 심지어 우리의 미래 세대가 우리의 눈 앞에서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한센은 실제 2℃ 가드레일은 대단히 보수적인 접근이라고 주장한다. 주요 해수면 상승으로 섬나라들이 잠기고 세계적으로 해안 도시들을 위협하고 수십억 인구의 이주가 불가피한 상황이 되면 2100년까지 대기 탄소 (현재의 400ppm에서 낮춘) 수준을 350 ppm으로 낮춰야 하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연 약 6%까지 순탄소 배출을 삭감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 모든 상황만큼이나 나쁜 것은 기후변화가 21세기 전세계가 직면해야 할 ‘거대한 자본주의의 전환기’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이 다른 것과 상호 연관되어 있더라도 말이다. 세계 경제는 지구의 한계를 이미 넘었거나 넘으려고 하고 있으며, 해양 산성화, 종다양성의 손실, 질소와 인 순환 구조의 단절, 담수 부족, 표토 변화(특히 삼림 벌채), 합성 화학물로 인한 오염증가(살아있는 생물체 내에 독소의 농축과 축적) 등 각각은 지구의 응급 상황을 대표한다. 지구의 생물지구화학적 순환에 나타나는 이 모든 균열 현상의 기저에 있는 공통 분모는 전 지구적인 자본 축적 시스템이다. 이 자본축적 시스템은 규모 면에서 과거의 엄청난 사회혁명 뿐 아니라 농업혁명이나 산업혁명에 이어진 21세기 생태혁명으로 표현되는 대규모 생산 혁명을 능가하는 실제 많은 사회의 변화를 요구한다.
자연 과학은 지금까지 이러한 이슈들만을 다룰 수 있다. 거대한 자본주의적 전환은 인간 사회의 역사적 구성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사회 혁명을 하고자 하는 우리는 사회과학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이미 주류 사회과학에는 전체 분석 틀을 잡는데 있어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논외라고 하는 전제가 깔려있다. 이러한 사례는 아주 많은데,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캐나다 몬타리오주 출생의 미국 경제학자_역주)는 ‘경제의 진실(원제:결백한 사기의 경제학)’에서 “자본주의”라는 말 조차 1980년대 “시장 시스템”이라는 “무의미한 명칭”으로 점차 대체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주류에서 자본주의를 지칭할 때는, 인간사회의 마지막 단계인 ‘경쟁적인 시장 사회’라는 약화된 개념의 동의어일 뿐으로, 그런 의미에서 두 단어 모두 모든 인류역사가 시장자본주의로 향하고 있다는 자연스런 경향성을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자본주의 그 자체가 “역사의 마지막”인 것처럼 보이게끔 한다.
이 같은 역사관의 결과, 소수 예외만을 인정하는 기존 사고가 지금의 거대한 자본주의적 전환에 대응하는데 필요한 궁극적으로 진지한 사회 과학적 분석에 전혀 근거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미래는 없다는 전반 개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많은 사실관계를 무시하고) 기후위기는 현재의 시스템 내에서 완화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기 쉽다. 이것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자유주의적 좌파와 사회과학 주류의 사회적 ‘부인주의(불편한 진실을 회피하기 위하여 과학적 근거가 충분한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_역주)’로, 이 때문에 나오미 클레인은 저서 <이것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에서 기후변화를 자본주의의 위협으로 바라보면서 “옳은 것은 옳은 것이다”라고 선언하였다. 나오미의 주장에 따르면, 가장 큰 장애물은 극우파의 과학에 대한 노골적인 부인주의가 아니라, 지배적인 자유주의적 담화에 녹아있는 사회적 부인주의로, 사회적 부인주의는 과학에 립서비스하면서 자본주의가 처하게 될 현실에 직면하여 이를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기존의 사회과학이 지배계급현실에 집착하는 부패로 인해 모든 점에서 손상되었다면, 지난 몇 세기에 걸친 포스트모던니즘은 거대한 자본주의 전환을 맞이하기에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좌파의 담론을 만들었다. 역사적 분석(거대 서사)과 부정의 부정(즉 혁명적인 전진 운동에 대한 생각)을 포기한 좌파는 극단적인 회의주의와 존재하는 모든 것의 해체에 굴복하여, 깊은 “패배의 변증법”이 되었다. 환경운동을 배경으로 등장한 녹색 이론 또는 “생태주의”에서 일종의 희망이 보이지만, 지구와 생물종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생태중심적 세계관의 요구에 초점을 둔 추상적인 윤리적 집중과 결합된 신멜서스 가정에 의지하기 때문에 그 같은 견해는 전형적으로 사회(또는 자연) 과학 내에서 안전장치가 전혀 없다. 이 새로운 생태적 양심의 주요 약점은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자본주의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비판이나 생태적 비판의 측면에서 “현실과 이성의 대치” 와 유사한 어떤 것도 없다는데 있다. 성장, 산업주의, 소비와 같은 추상적 개념은 경제, 사회적 질서로서 자본주의 행동 규칙과 이러한 행동 규칙들이 어떻게 지구 시스템과 충돌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연구를 대신하고 있다.
따라서 거대한 자본주의의 전환과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주요한 결정적 도구를 찾아내기 위해서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역사적 유물론의 토대를 건설하는(또한 근본적 토대에 다시 돌아가 그 자체를 재건설하고 재혁명화시키는) 사회주의적 전통이다. 1960년대에 시작해 수 십 년간 발전해 온 맑스주의 이론에서 자기 비판기는 궁극적으로 사회생태적 조건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혁명을 발생시킨다. 변화되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지난 해석의 재발견과 재건설을 바탕으로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최고의 지식 혁명과 같은 새로운 통찰이 이미 등장했다. 맑스주의 생태학의 전진은 자본주의 사회를 사회생태적으로 폭넓게 비판하고, 유물론적 역사 개념과 유물론적 자연 개념의 관계를 훨씬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맑스의 사상에 과학적 토대를 둔 커다란 인류학적 발굴이다.
지난 세기말까지 맑스주의 생태학으로의 귀환은 세 가지 결정적인 과학적 돌파구를 만들어 내었는데, 그것은 1) 맑스의 “생태적 가치 형성 분석”의 재발견, 2) 맑스의 신진대사 균열의 회복과 재건, 3) 맑스주의 분석에서 제외된 두 가지 생태학적 분석 이론의 복구이다. 이 세 가지 결정적 돌파구는 인류세의 혁명적 실천에 있어서 새로운 전략적 이해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