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테러와 유럽 내 종교적, 종족민족주의 과격화의 (재)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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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럽소식을 전하면서 129명의 사망자와 200여명의 부상자를 낸 파리 테러소식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현재 이를 둘러싼 이야기는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IS와 이들이 테러 계획과 수행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프랑스 정부와 IS 양쪽 모두 시리아 내 IS가 이번 공격을 감행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적어도 한 명을 제외하고는 이번 공격의 범인은 모두 프랑스와 벨기에 태생이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유럽 언론과 대중은 IS 동조자와 유럽 내 무슬림의 정치적 과격화를 안정성과 민주주의에 새로운 위협으로 인식하고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그러나 파리 테러는 유럽 내 이슬람교의 과격화보다 훨씬 광범위한 문제이다. 유럽 정치의 과격화와 종교, 인종, 문화적 순수성을 통해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극단주의적 전체주의 사상의 (재)등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언론이 파리 테러를 다루는 방식을 보면, 이슬람교 극단주의자들의 잔혹하고 냉혹한 면을 다시금 강조한다. 파리 테러범은 반자동 소총을 이용했다. 목격자 진술에 따르면, 적어도 범인 중 한 명은 반자동 소총을 들고 거의 조준사격에 가깝게 총을 발사하여 카페에 앉아 있던 11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바타클랑 극장에서는 폭탄이 아니라 소총을 이용해 인명을 살상했다. 파리 테러는 유럽 내에서 이슬람 무장단체가 공격을 감행한 첫 사례이며, 따라서 알카에다 연계조직이 폭탄을 이용했던 주요 테러(2004년 마드리드, 2005년 런던)와는 다르다.

사실 이번 테러는 이전의 유럽 내 이슬람주의자들의 테러행위보다는 2011년 노르웨이에서 극우주의자 아르네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저질렀던 테러 공격과 더 유사하다. 더 중요하게는, 공격 대상이 브레이비크가 의도했던 공격대상과도 유사하다는 점이다.

2008년에 브레이비크는 노르웨이가 2차 세계대전 이후 겪었던 가장 폭력적인 공격을 주도했다. 2011년 7월 22일에는 오슬로 정부청사에서 폭탄을 터뜨려 8명이 사망하고 209명이 부상당했다. 그리고 38킬로미터를 달려 수백 여명의 학생들이 참가한 노르웨이 노동당 청소년 캠프가 열린 우퇴위아 섬으로 이동했다. 경찰복을 입고 현장에 들어간 그는 자동 소총을 발사, 이로 인해 69명이 사망하고 110명이 부상 당했다. 브레이비크의 매니페스토 (선언문)에 따르면, 그는 ‘유라비아 (Eurabia)’[1]의 소멸을 원하고, 유럽의 다문화주의를 부정하며, 유럽 내 무슬림의 추방을 원했다. 그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 우퇴위아 섬에 모인 진보적 좌파 청소년을 공격한 것이다. 이들은 브레이비크가 생각하는 기독교 교리를 따르고 보수적이며 가부장적 윤리가치와 민족적, 문화적 동질성을 표방하는 이상적인 노르웨이에 최대의 위협이 되는 성, 성적 지향, 다문화주의에 대하여 진보적인 시각을 지녔다. 공격의 잔인함은 제쳐놓고라도 그의 공격과 관련해 놀라운 점 한가지는, 그가 추방하고자 하는 이민자들을 살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상을 배신했다고 여겨지는 ‘동족’을 살해한 점이다.

파리 테러의 공격 대상이 무작위라는 최초 관측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무작위 공격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테러범은 무슬림을 프랑스의 위협으로 인식하는 우파 국민전선을 공격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부유한 엘리트 계급 또한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오히려 민족적 다양성 정도가 높고, 진보적 좌파의 시각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있는 곳을 공격했다.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2]의 논설위원 디디에 페론은 파리 테러가 주요 관광지나 기존의 부촌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놀랍다고 평했다. 테러범은 터키인구 밀도가 높은 파리 10구와 진보적 젊은층이 많이 모이는 11구를 공격했다. 페론의 묘사에 따르면 파리 10구와 11구는 “부르주아적이고, 진보적이며 국제적인” 곳이다. 또 다른 논설위원 마누 사디아는 이 두 지역을 “최신 사회주의의 땅”이라 부르기도 했다. 스타드 드 프랑스 축구장에 대한 공격도 비슷한 상징성을 가진다.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스타팅 멤버의 3분의 2가 이민가정에서 태어났고, 국가대표 팀이야 말로 “통합된 프랑스라는 약속이 실현되는 몇 안 되는 곳”[3]이다. 이러한 평가들이 옳다면, 이번 테러 공격은 무작위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다. 프랑스 내에서 특정한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하는 장소를 공격한 것이다. 즉, 반 무슬림 및 외국인 혐오를 내세우는 국민전선을 지지한 사람들이 아니라 유럽 내 다문화를 지향하고, 이를 수용한 사람들을 공격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테러로 정치적 이득을 얻는 것은 브레이비크의 관점과는 (대체로 비슷하면서도) 아주 약간의 차이만을 보이는 국민전선과 같은 우파일 것이다.

북유럽 및 동유럽에서 선거에 승리하고 있는 우파 민족주의 정당은 파리 테러를 계기로 중동 난민행렬을 완전 차단하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새로 집권한 폴란드의 우파 민족주의 정부는 며칠 전, 파리 테러로 인해 EU 난민 분배수용안에 따른 난민 수용을 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난민과 테러 공격의 증가율 사이에 연관성이 떨어지는 데에도, 덴마크 역시 난민에 더 엄격한 제한을 가해 폴란드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번 테러는 유럽 전역에 있는 극우파의 반 무슬림, 반 이민자 정서에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그러한 정서는 이제 주류 정치로 유입되고 있다. 파리와 노르웨이에서 벌어졌던 테러 공격과 매년 유럽으로 유입되는 수백만의 난민과 이민자는 이들 정서에서 비롯된 ‘무슬림, 기독교인, 무신론자 간의 공존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강화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이는 우파 정당과 이슬람교 근본주의자들의 득세를 도울 뿐이다. 다문화주의와 진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설 공간은 줄어들고 있다. 인간의 책임의 일환으로서 난민 수용을 주장했던 독일 정치인은 살해 위협을 받았다. 몇 주 전, 쾰른 시장 후보는 난민수용 찬성 입장 때문에 흉기에 목을 찔리는 중상을 입었다[4].

프랑소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이번 파리 테러가 프랑스가 추구하는 가치와 삶의 방식에 대한 공격이라고 강조했다. 다양성, 관용, 문화 간의 평화적 공존이 딱히 프랑스 만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파리와 노르웨이에서 감행된 테러를 유럽 내 관용과 정의에 대한 공격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우파 민족주의자와 이슬람교 근본주의자들 모두 자유, 평등, 형제애를 중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는 그들이 생각하는 사회의 민족적, 문화적, 종교적 순수성에 위협이 되고, 평등은 그들 사전에 존재하지 않으며, 자신들이 우월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형제애는 같은 사상을 공유한 사람에게만 한정될 뿐 사회나 인류 전체로 확장되지 않는다. 우파 민족주의 덴마크인민당의 한 국회의원은 최근 인터뷰에서, 기독교의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는 구절은 협의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시리아 난민은 이웃이 아니며, 따라서 이들에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5]. 이러한 견해는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는 종교가 기독교인 난민만 수용하겠다고 하는 상황이다[6]. “타인”이 (사회를) 오염시키는 요인이라는 관점은 우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IS가 유럽에서 사용하는 공식적인 전략은 소수의 무슬림과 다수의 세속적 기독교인 사이를 갈라 놓는 것이다[7].  IS 연계조직의 테러는 유럽인 및 유럽 정부의 과잉 반응을 유도하기 위함이고, 이는 유럽 내 무슬림을 더욱 소외시키고 주변화시키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결국 “회색지대 (다문화적 관용 및 공존)”을 파괴, 유럽 내 무슬림이 이슬람교를 부정하거나 IS로 넘어올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자와 유럽의 우파 민족주의자 모두 기본적으로는 같은 것을 추구한다. 바로 순수성이다. 그것이 민족이 되었든, 문화, 종교, 이념이 되었든지 간에 말이다. 따라서 회색지대에 있는 사람이 공격대상이 되는 것이다. 양 극단의 근본주의자가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적 극단을 선택하게 만들고 공존을 부정하도록 만든다. 이는 왜 사회에서 진보적 생각을 가지고 다양성과 관용을 주장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사람이 파리와 노르웨이 테러 공격 대상이 되는지를 설명한다. 브레이비크, 그리고 파리 테러범의 관점에서 보면, 서로의 존재를 최소한 인정하거나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순수한 유토피아적 사회에서 주요한 방해물이기 때문이다.

이제 과격화가 얼마나 유럽(또는 프랑스)의 자유, 평등, 형제애라는 가치를 갉아먹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만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유토피아적 사회질서를 달성하기 위해 무고한 생명의 희생을 요구하는 전체주의적 이념이 왜 유럽에서 지속적으로 확산되는가’하는 것이다. 유럽 사람들은 자신을 평화, 민주주의, 인권의 수호자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인종학살이나 인종적-종교적 정화를 통해 정치적,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았던 전체주의를 조장했던 추악한 역사 또한 가지고 있다. 파시즘에서 나치즘, 스탈린주의, 유고슬라비아의 밀로셰비치 등에 이르기까지 과격화된 정권과 집단 학살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전체주의 이념이 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현재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민족주의의 과격화에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제는 왜 위기의 상황에서 유럽이 유럽 가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성과 관용을 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과격한 이념에 의존하는지를 고민해 봐야 할 때이다.

앤더스 리엘 뮬러(ISC 해외통신원, 덴마크)

번역: 심태은

[1] 유럽과 아라비아의 합성어. 유럽 내 강력한 아랍 영향을 일컫는다.

[2] http://www.standard.co.uk/lifestyle/london-life/paris-attacks-city-mourns-the-lost-youth-of-its-generation-bataclan-a3115676.html

[3] http://fusion.net/story/233036/paris-attack-young-progressive-core/

[4] http://bigstory.ap.org/article/5a0c9837e1a949028f8ff57caab815f3/cologne-mayoral-candidate-wounded-stabbing

[5] http://www.kristendom.dk/hvem-er-min-naeste/den-syriske-flygtning-er-ikke-min-naeste

[6] http://www.bloombergview.com/articles/2015-09-02/hungary-s-xenophobia-europe-s-crisis

[7] https://www.washingtonpost.com/opinions/hating-muslim-refugees-is-exactly-what-the-islamic-state-wants-europe-to-do/2015/11/15/dfe0ca84-87d1-11e5-be39-0034bb576eee_story.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