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사회주의 컨퍼런스] 이안 앵거스: 인류세를 맞이하며
https://youtu.be/A9NrXfZHU4Y 고맙습니다. 크리스토퍼에게도 감사드려요. 여러분이 크리스토퍼 책도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유발할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생각하고 결론을 내리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사이먼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책의부제는 “창의적인 자멸 과정”으로 아주 잘 지었습니다. 저는 “창의적인 자멸”이라는 용어는 우리들에게 그리고 극좌파에서 유행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호주에 올 수 있도록 초대해 준 사회주의연합에 감사합니다. 특히 여기서 제 책을 소개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이것이 제 책의 첫 출시임을, 국제적인 출시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공식적인 출시일은 사실 9월입니다. 이번 컨퍼런스에 초청받았을 때 먼슬리 리뷰 출판사에 책 출시를 앞당길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이유를 물어 “그린레프트위클리에서 컨퍼런스를 개최하거든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출판사에서 “그린레프트위클리요! 그럼 그래야죠.”라고 하더군요. 먼슬리리뷰는 그린레프트위클리와 사회주의연합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책을 출시할 수 있도록 정말 많이 노력했습니다. 사실 수잔이 제 책이 도착했다고 말했을 때 저는 받아보기 전이어서 좀 약이 올랐지만 여기서 책을 소개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류 언론만 본다면 사회주의자 회의에서는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허황된 이야기를 하거나 기분에 따라 문명을 파괴하고 전체주의적인 독재 정권을 세우기 위한 음모를 꾸미는데 시간을 쏟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들은 오늘 제가 여기서 최근 과학발전에 대해서 논할 것을 알면 놀랄 것입니다.
사실 맑스주의 중심은 자연과학에 있습니다. 맑스와 엥겔스도 진화, 토양 과학, 지질학, 물리학을 연구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았습니다. 맑스와 엥겔스가 이런 주제에 대해서 쓴 노트의 양은 실로 방대합니다. 그들의 사회주의는 추상적이지도 허황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즉 실제 사회에 철저하고 깊게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맑스와 엥겔스에게 자연과학은 정치, 경제, 계급투쟁과 분리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맑스가 “자본론”을 쓸 때, 엥겔스에게 보내는 편지에 독일 농업화학에서 배운것이 “모든 경제학자들에게서 배운것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썼습니다. 이는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맑스주의임을 보여줍니다. 근본적인 맑스주의에 입각해 인류세에 직면한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변화의 원인은 무엇인지를 포괄적으로, 구체적인 유물론적 입장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정치적 관점은 공중에 뜨게 되고 실제 세계에 기반하지 않아 연결성을 잃게 됩니다. 인류세에 직면해 지구시스템과학과 생태사회주의간의 간극을 메우려고 했습니다. 이는 사회주의자가 왜 과학적으로 인류세를 이해해야 하며 지구시스템과학자가 왜 생태주의적 맑스주의를 이해해야 하는지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금은 사회주의자 컨퍼런스이니 먼저 과학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책에서 나오는 부분이지만 과학은 생태사회주의 정책과 21세기 사회운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필수적인 기반입니다. 지구과학자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과학혁명의 한가운에 있다는 것을 모를 것입니다. 현재 과학혁명의 영향은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태양을 공전한 것을 발견한 것과 다윈의 진화론과 버금갑니다. 과학자는 지구가 운영되는 방식을 오랫동안 연구해왔습니다. 과학자는 지질학, 생물학, 생태학, 물리학과 다른 학문을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20년전 지구시스템과학이 출현했고 이는 지구를 분리해서 보기 보다는 통합적인 시스템으로, 즉 종합적으로 기능하는 시스템으로 보고 연구했습니다.
이렇게 특별한 과학 연구의 중요한 결과는 새로운 용어 “인류세”입니다. 물론 단어 자체가 아니라 단어의개념이 중요합니다. 단어의 개념이 중요하지만 이번에 호주에 와서 본 결과 누구도 이 단어를 들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혹은 들어봤더라도 최근이었거나 무슨 뜻인지 잘 몰랐습니다. 이 단어는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단어는 2000년 과학 문헌에 처음 나왔지만 최근까지도 지구과학 전문가들의 전유물로 남아있었습니다. 이 단어는 5~6년 전에야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인류세는 3개의 학술지와 수백개의 논문뿐만 아니라 웹사이트, 동영상, 블로그와 셀 수 없는 신문과 잡지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입니다. 인류세의 건축에 대한 전시와 인류와 인류세에 대한 컨퍼런스도 있습니다. 몇주 전에는 블로그에서 “인류세의 몰몬경전”이라는 제목의 글도 봤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책들도 있습니다. 이번 발표를 준비하면서 다양한 사례를 뽑아 봤습니다. 30~40개정도를 더 보여드릴 수 있지만 서점에서 제 책이 이런 책들과 격렬한 경쟁을 하게 될까 걱정이 됩니다.
물론 우리는 진지한 정치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개념의 중요성을 책이나 기사의 수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일간지 만화에 이 개념이 나오는지로 판단하죠.그런 관점에서 인류세는 2014년 12월 미국에서 유명한 만화인 딜버트에 나옵니다. 공룡인 밥이 스마트시계에게 시간을 묻자 시계는 “지금은 인류세 시대야”라고 답합니다. 여기 만화의 마지막 부분도 있습니다. 모호하고 전문적인 과학 용어가 문화적으로 넓게 쓰이는 일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류세의 경우,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용어가 널리 쓰이면서 용어의 개념이 혼동되고 잘못된 정보가 첨가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인류세에 대해 출판된 책이나 기사를 읽어봤다면 개념을 잘못 이해했을 확률이 상당히 높습니다. 보통 인류세가 잘못 쓰이는 경우는 현대의 유행어로 보는 것입니다. 인류세가 광란의 20년대나 재즈시대처럼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류세의 예술”이나 “인류세와 시”와 같은 컨퍼런스를 볼 수 있습니다. 모두 실제 컨퍼런스입니다. 이 컨퍼런스에서 예술과 시에 대한 가치 있는 논의가 되겠지만 지구 미래에 대한 급진적인 영향이나 최근 과학 연구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을 것입니다.
인류세에 대해 흔히 잘못 생각하는 것은 대중 잡지뿐만 아니라 정치 논평과 학술지에서 인간이 처음으로 생태계를 바꾼 시점, 환경에 처음 영향을 미친 시점을 인류세로 언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개념이 맞다면 인류세는 새로운 용어가 아닙니다. 인간은 언제나 세계를 변화시켜왔기 때문입니다. 50만년 전에 선조가 석기를 발명했을 때부터 우리는 세계를 변화시켜왔습니다. 이것이 인류세라면 우리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것에 새로운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세번째로 인류세는 인간 본성이 아닌 것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자연 세계를 통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인간 활동도 세계를 변화시키지 않는다.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분명히 통제하고 있지 않습니다. 반대로 우리는 자연을 관리하지도, 통제하지도 못하고 혼란과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예를 들어 폭풍, 홍수, 가뭄, 치명적인 폭염, 멸종, 식수 오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인류세의 특징이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나 통제가 아닙니다. 지구 위기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오래 전 프레데릭 엥겔스가 말한 것입니다. “자연을 정복했다고 잘난척 하지 말자. 정복에는 보복이 따른다.”
인류세는 유행어가 아닙니다. 인간이 영향을 미치는 시대도, 인간이 통제하고 있는 시대도 아닙니다.인류세는 인간 활동이 지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방해해 예측불가능하고 위험한 궤도에 들어선 시기를 의미합니다. 인류세의 개념 정의를 위해 세가지 중요한 근거에서 뽑은 발췌문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인류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지구는 현재 자연적인 지질 시대가 끝나고 완신세라고 불리는 간빙기 시대이다. 인간의 활동이 활발하고 깊어졌으며 자연의 거대한 힘과 겨루고 지구를 미개척의 영역으로 밀어붙인다. 지구는 생물종다양성과 숲이줄고, 훨신 따뜻해지고 습해지고 폭풍이 빈번해지는상태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겠지만 이정도 표현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야기를 더 할 수 있겠지만 책에 나와있고 이는 그들의 말이 아닙니다. 21세기 말까지 현재와 같은 세계적인 변화가 계속된다면 지구의 상당 부분이 너무 뜨거워 살 수 없는 곳이 될 것입니다. 모든 대륙의 해안 지역이나 섬국가는 해수면 상승으로 물에 잠길 것이며, 엄청난 수의 동식물이 멸종될 것입니다. 장기적으로는 공룡 멸종에 버금가는 대규모 멸종이 일어날 것입니다. 즉, 인류세는 단지 단어가 아니라 세계적인 긴급상황입니다.
인류세라는 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제가 인류세 단어를 자꾸 다르게 발음하는데 이유는 미국식과 영국식 발음이 다른데, 저는 캐나다인어서 그 중간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미국식으로 발음하려고 합니다. 제가 그 발음을 좋아하지만 항상 그런것은 아니거든요. 어쨋든, 인류세라는 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존경하는 미국의 맑스주의자 조지 노박의 역사의 장기적 관점을 알아야 합니다. 즉 역사의 일반적인 시야를 넘어선 시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시각을 몇십년 혹은 몇백년에 제한한다면 변화의 혁명적인 중요성을 알 수 없습니다.
지질학자는 지구의 45옥년 역사를 시간 간격의 계층을 나눠 지질연대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신생대의 제 4기의 완신세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완신세는 11,700년전에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완신세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연대 구분은 임의적이거나 대략적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은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한 연대는 지구의 지배적인 조건이나 생명의 형태에 주요한 변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신생대는 공룡 멸종 이후에 포유류의 등장이 특징입니다. 홍적세는 흔히 빙하기라고 불리는 대륙 빙하의 수축과 팽창의 반복이 특징입니다. 홍적세는 오늘날 보다 단치 추운 시대가 아니라 훨씬 더 혼란스런 시대입니다. 이 슬라이드에서는 지난 10만년간 세계 평균 기온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지난 20년간 지구과학 연구의 혁명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이 시기의 대부분은 단지 춥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점으로 표시된 부분이 현재를 대충 보여주고 있습니다.전혀 안정적이거나 일관적이지 않았습니다.11,000년전, 정확히는 11,700년 전 빙하가 물러가면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완신세는 지속적으로 따뜻하고 안정적인 기후가 특징입니다.완신세동안 평균 세계기온은 섭씨 1도 이상 오르고 내림이 없었습니다.분명히 그 사이에서 극과 극은 있었지만 거의 12,000년 동안 평균은 지속적으로 1도 정도의 변화만 있었습니다.
현대 인간은 16만년 전에 진화했습니다. 이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일어난 것입니다.하지만 인간은 지구에서 보낸 시간의 95% 를 따로 떨어진 작은 단위의 유목 생활, 그리고 사냥과 채집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 중 일부는 식물을 재배하는 실험을 했다는 증거가 있지만 실험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선조가 식물을 다루는 지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기후가 극단적이고 예층불가능하게 바뀌어 상시적인 농업이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12,000년 전에야 따뜻하고 안정된 기후조건이 조성되기 시작해 농업이 가능해졌고, 영구적으로 정착하고, 복잡한 문명이 발전되고 번영될 수 있었습니다. 사냥-채집 생활을 했던 약 16만년과 완신세 초기의 몇천년 후에, 전세계적으로 서로 떨어진 11개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농업이 발명되었습니다. 이로써 공동체가 정착했고 지난 6천년 간의 대문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완신세는 “유일하게 호모 사피엔스인 인간이 건설한 복잡하고 큰 규모의 문명을 위한 ‘안전한 장소’로 확신할 수 있는 세계 환경”이었다고 합니다.
1980년대 후반 과학계는 세계적인 변화를 우려하면서 전례 없는 규모와 복잡성을 가진 국제사회협력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언제 머독 언론에서 이것에 대해 읽어봤나요? 국제 지구물리학-생물물리학 프로그램(IGBP)은 1990년 시작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의 과학자가 참가해 지구가 어떻게 현재 상태에 이르게 되었는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조사했습니다.IGBP의 연구로 지구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아주 높아졌습니다. 2004년 IGBP는 “세계 변화와 지구시스템”이라는 종합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이 보고서에서 과학과 인류세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보고서는 절판되었지만 보고 싶다면 IGBP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PDF 버전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수년 간 지구시스템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결과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현재 지구는 인간의 활동으로 점철되어 있다. 인간은 지구시스템을 다양하고, 복잡하고, 상호작용하며 기하급수적으로 빠르게, 세계적으로 상당한 규모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런 변화는 지구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 토양, 해안 지대, 대기, 해양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변화에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인간의 원동력은 동일하게 복잡하고, 상호작용하고 주로 전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규모, 공간 규모, 인간이 만드는변화의 속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다. 오늘날 인류는 자연의 거대한 힘의 일부와 견주거나 넘어서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생물권을 변화시키고 지구시스템의 다른 측면의 기능에 영향을 준다.”
“근본적인 요소 주기와 일부 기후 매개변수에 대해 인간은 지구시스템의 정상적인 운영 범주를 벗어나게 한다. 또한 육지와 해양 생물권 구조는 인간 활동으로 인해 상당히 많이 변화했다. 지구시스템이 이전에 이러한 종류와 규모, 변화의 속도를 경험한 적이 있는지에 대한 증거는 없다. 현재 지구시스템은 기존 상황과 유사한 점이 없어 인류세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이러한 변화로 가장 잘 알려져 가장 많이 들어보기도 했지만 가장 위험한 것은 인간이 지구시스템을 무너뜨려 세계적으로 탄소의 순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1800년대부터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지구 기온을 조정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IGBP가 지구시스템에서 이 과정이 얼마나 엄격하게 통제되는지, 온실효과가 지구 탄소 순환에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미세하게 맞춰져 있는지 보여주는 연구를 보여주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북극 깊은 곳에서 추출한 고대의 눈에 포획된 가스는 수십만 년 동안 온실 가스인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 농도가 탄소 순환으로 규정된 제한 내에서 유지되었다는놀라운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래프를 보면 빙하기 동안 얼마나 큰 변화가 있었는지, 홍적세의 빙하기에 기후 변화가 얼마나다 극단적이 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이산화탄소는 180ppm 이하로 한번도 내려가지 않았고 따뜻한 시기에는 300ppm 이상으로 오르지 않았습니다. 아주 안정적인 시기인 완신세 12,000년 동안 이산화탄소 수준은 260ppm에서 280ppm 이었습니다. 이 그래프는 지난 45만년 동안 대기중 이산화탄소 양을 보여줍니다. 최근 이산화탄소는 400ppm을 넘어섰습니다. 기후변화가 극심했던 홍적세의 최대 수치보다 33% , 완신세보다 42% 높습니다.
기후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월리스 브로커는, 사실 기후학의 할아버지로 알려진 월리스 브로커는 지구시스템은 살짝만 건드려도 과민반응하는 성미 고약한 야수 같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 그래프에서는 우리가 지구를 살짝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뾰족한 막대기로 쿡 찌르고 있기 때문에 지구시스템이 난폭하게 반복적으로 반격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또한 그 결과, 인류가 지금까지 살았던 것과 전혀 다를 것이라는 점도 놀랍지 않습니다. 올 해 평균 세계 기온은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섭씨 1도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위험한 변화와 극도로 위험한 변화의 경계지점인 1.5도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지구는 빙하기 이전부터 이렇게 기온이 높은 적이 없었으며 기온은 기후 모형으로 예측한 것보다 빠르게 끊임없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그저 따뜻한 날씨가 아니라 극단적이고 변화무쌍한 날씨가 된다는 것입니다. 빙하기 홍적세의 무질서한 기후 조건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차이가 있다면 춥지 않고 더워진다는 것입니다. 많은 변화가 있자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첸은 2000년 2월선언했습니다.
“완신세는 끝났다. 지구시스템이 빙하기에서 완신세로 이행했던 것처럼 다른 시스템이 되었다.”
폴 크루첸은 이 새로운 시대를 인류세로가 부르자고 제안했습니다. 인류세는 ‘인간’이라는 그리스어와 ‘시대’를 뜻하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즉 최근 인간 영향의 시대라는 의미입니다.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반대로 크루첸은 이 용어를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비난하기 위해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크루첸이 이 주제로 처음 썼던 글에서 변화는 소수 때문에 생겼다고 분명히 설명했습니다. 인류세라고 부르는 것은 인류 모두가 똑같이 책임져야하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크루첸은 원래 산업혁명 시대부터 새로운 시대가 시작했을 것이라고 제기했습니다. 산업혁명 시대에 엄청난 석탄을 태워 장기적으로 대기 중의 온실가스 농도가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통찰력이었습니다.
IGBP가 산업혁명 이후로 지구시스템의 다양한 변화를 수량화시키면서 놀라운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이 그래프는 1750년부터 2010년까지 12가지 지구시스템 동향을 보여줍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의 수준, 해양 산성화, 어류 자원 고갈, 멸종, 숲의 손실 등입니다. 모든 추세선은 산업혁명 시기에 점차적으로 오르기 시작하고 1950년에 눈에 띄게 큰 폭으로 올라 갑니다.그 결과 과학자들은 1950년대 이후의 시기를 위대한 가속도라고 봅니다.IGBP의 2004년 종합보고서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분명히 지난 50년은 종의 역사에서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에서 가장 급격한 변화를 보였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2015년 이 그래프를 업데이트 하던 과학자들은 2010년까지 12개지표 중에서 9개가 “완신세 변수의 경계를 분명하게 넘었다”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인간문명이 존재했던 전시기동안 운영된 체계를 분명히 벗어난 것입니다. “전례 없는”, “미개척의 영역”, “유사성이 없는 상태”라는 말이 과학 문헌에서 현재 지구 상태를 설명하는데 자주 쓰였습니다. 이전 어떤 시대에서도 지금과 같은 변화는 없었습니다. 지금은 틀림없이 지구의 응급상황 입니다. 유엔개발계획은 21세기 말까지 최악의 생태학적 영향의 망령이 가능성의 경계에서 개연성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유명한 기후학자 제임스 한센은 우리의 상황을 극적인 용어로 설명합니다.
“문명이 발전한 세계, 우리가 아는 기후 패턴과 안정된 해안선을 가진 세계가 있는 일촉즉발의 위험에 처해 있다”
사회주의자는 이러한 규모의 위기를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맑스는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지만 스스로 선택한 상황에서 만드는 것은 아니다”라고 썼습니다.인류세는 이러한 사실을 아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맑스도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사회주의자의 과제에 직면한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임박한 환경 재난 속에서 세상을 바꾸려합니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현실입니다. 우리가 건설하려는 사회주의, 우리가 건설할 수 있는 사회주의는 근본적으로 지구의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필요한 변화를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변혁은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브라질 생태사회주의자이자 대기과학자인 알렉산드레 코스타는 썼습니다.
“자본주의로 발생한 위기의 끔찍한결과를 피하기 위한 투쟁은 인류의 존엄성을 가지고 생존을 위한 물리적인 조건을 지키기위한 투쟁이다. 사회주의는 초토화된 지구에서는 불가능하다. ”
하키스틱처럼 생긴 곡선은 위대한 가속화를 보여주며 모든 경우 거의 직선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는 전세계로 퍼지고 있는 공격적인 자본주의의 중요한 영향을 보여줍니다. 자본주의는 자본 축적이라는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 어느때보다도 많은 화석 연료를 태우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자본주의의 무자비한 주행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추세선은 계속 오르고 위기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위대한 가속도는 지난 60년 과정에 딱 맞는 이름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구스타브 스페스가 그의 저서 “자본주의를 넘어선 상상”에서 제안한 더 좋은 말이 있습니다. 구스타브는 이 그래프가 거대한 충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즉 세계 경제가 지구와 충돌하는 시기라는 것입니다. 사실 170년 전에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20대에 이 거대한 충돌을 예측했습니다. 맑스와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생산력 발전에서 생산력과 교류 형태가 구체화되는 단계가 온다. 이는 이미 존해하는 관계 내에서 피해만을 유발하며 더이상 생산적이지 않고 오히려 파괴적이다.”
이는 21세기 자본주의가 한때는 창의력과 인류 운동의 큰근원이었지만 계속적으로 문제를 심각하게 만들고 있음을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자본주의는 지구시스템을 인류와 자연 간에 위기 상태까지 몰아붙여 왔습니다. 현상태가 계속된다면 인류세의 첫 100년은 물리적, 사회적, 경제적인 환경의 급속한 파괴가 특징일 될 것입니다. 지구온난화와 심각한 기후로 생물권이 쇠퇴하고, 해수면이 상승하고, 섬과 해안 도시에서는 홍수가 난무하고, 어업이 무너지고, 강은 오염될 것입니다. 모든 세계의 주기는 위기에 처하고 다양한 시스템 장애는 치명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가 이런 상황을 발생하게 내버려 둔다면 인류세는 가장 짧은 시대가 될 것입니다. 완신세에서 바뀌어 훨씬 더 심각한 시대로 가는 것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은 자본주의 배척이며 이는 자본주의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방법입니다. 인간 사회 발전에서 이윤을 고려하지 않아야 합니다. 변화는 민주적으로 만들어지고 법적 구속력있는 전세계적 계획이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하고, 무기 생산, 광고, 공장식 농업과 같은 산업을 빠르게 제거하는 것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산업들은 부를 생산하기 보다는 19세기 예술가이자 사회비평가인 조나단 존 러스킨이 말한 “쓸모없는 일용품”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물리적 변화는 심각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스스로 인류세가 어떨지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행동과 무대책만이 그것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과 손주들이 물려받을 세계는 우리 세대가 현재 지구의 응급상황을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규정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환경파괴를 늦춰야 하며 크리스토퍼가 인용한 제 책의 인용문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본주의의 환경 파괴 주행을 가능한 한 느리게 만들고 방향을 바꿔 파괴력에 맞서 가능한 모든 승리를 이뤄내야 합니다.
지배층은 스스로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중의 반대는 그들이 원하지 않더라도 행동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모든 사회주의자, 자유주의자, 환경을 중시하는 노동조합운동가, 여성주의자, 원주민활동가가 규합해야 합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겠다는 단호한 행동을 위해 모두가 기꺼이 싸워야 합니다. 의식 있는 생태사회주의자는 단결해야 하며 자본주의에 대항한 운동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자의 파괴에 맞서 즉각적인 개선를 위해 싸우는 것과 생태주의적 미래를 위해 싸우는 것은 분리된 일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로 통합된 과정의 다른 측면일 뿐입니다. 즉각적인 개선과 환경 개혁을 위해 단결한 투쟁으로 노동자와 농민, 원주민은 단체와 집단 지식을 세우고, 그들 스스로를 지키고 그들의 이익을 증진시켜야 합니다. 부분적 투쟁에서 우리가 이기는 승리와 그들이 이기는 승리로 더 큰 대상과 싸우기 위해 필요한 자신감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재 보장된 것은 없습니다. 생태사회주의혁명이 불가피한 것은 아닙니다. 민중이 의식적으로 필요하다고 결정하고 혁명을 달성하기 위한 단계를 밟아나갈 때에만 일어날 것입니다.맑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대안을 제시할 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결국 계급투쟁은 사회 전체가 혁명적으로 개조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투쟁하는 계급들이 함께 몰락한다”
맑스와 엥겔스가 오래전에 한 말입니다. 인류세에서는 모든 계급의 몰락이, 문명의 파괴가 사실 가능합니다. 맑스는 우리는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 전체, 국가 또는 공존하는 모든 사회를 다 합치더라도 이 지구의 소유주일 수 없다. 그들은 단지 지구의 점유자이고, 지구에게서 이익을 얻는 이들이며, 뒤를 이을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상태로 물려줘야 할 책임이 있다.”
사람들은 맑스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을 알지 못하지만 정말 중요한 말입니다.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기고 훌륭한 미국 시인인 드류 델링거에게 편지를 쓸 용기를 냈습니다. 델링거가 수상했던 시에서 한 구절을 제 책에 넣고 싶어 허락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델링거가 정말 빠르고 긍정적인 답을 보내주어 너무나 기뻤습니다.드류 델링거의 “은하수로 보내는 러브레터”의 책에 실린 “거대한 신성 계단”이라는 시입니다. 시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침 3시 23분 나의 귀한 손자 손녀들이 나를 자도록 내버려 두지 않아 잠에서 깬다. 나의 귀한 손자 손녀들이 꿈속에서 내게 질문을 한다 지구가 약탈당하는 동안 할아버지는 무엇을 했나요? 지구가 위태로울 때 할아버지는 무엇을 했나요? 계절이 바뀌지 못할 때 포유동물, 파충류, 새들이 모두 죽어갈 때 민주주의가 짓밟힐 때 할아버지는 거리에서 저항했나요? 이전에 알고 있었을 때 할아버지는 무엇을 했나요?
이 시가 너무나 와 닿았습니다. 제 손주 애비와 샘이 시에 나온 질문을 저에게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들은 최악의 인류세로 가는 일방통행로인 세상에 살아야 합니다. 전 이 책을 쓰는 동안 드류 델링거의 시를 컴퓨터 옆에 붙여두었습니다. 지금이 진짜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뛰어난 기후과학자 제임스 한센은 최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과 손주, 그리고 미래 세대에게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인 위치에 있다”
한센의 말이 맞지만 한센의 말에서 단어 하나를 바꾸고 싶습니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과 손주, 미래 세대에게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진 위치에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완신세는 끝났고 인류세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향후 몇 십년간 할 일은 인류세가 어떻게 진행될지를 결정할 것이며 우리 손주들이 어떤 지구에서 살지를 결정할 것입니다.
저는 책을 쓸 때 델링거의 시 옆에 안토니오 그람시의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에 나온 유명한 경구를 붙여두었습니다. 이것이 생태사회주의자의 삶과 인류세에 대한 태도를 규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재난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절망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싸우면 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싸우지 않으면 질것이며 우리의 자손이 그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운이 따를 수도 있지만 자본주의의 지옥행 기차를 멈추기 위한 의식적이고 집단적인 투쟁이야 말로 더 나은 세계를 위한 유일한 희망입니다.
크리스토퍼는 제가 책에서 인용한 그람시의 말을 인용했고 저는 그 구절로 제 발표를 마치고 싶습니다.
“문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강한 정신과 양심이 필요하다. 인간 사회의 뿌리를 좀먹고 부패시키는 파경을 멈춰야 한다. 헐벗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다시 푸르러질 수 있다. 당신은 준비되었는가?”
저는 여러분이 그람시의 질문에 우리가 “그렇다”고 대답하며 우리는 세상을 다시 푸르르게 만들 수 있으며 그 도전에 맞설 준비가 되었다는 것에 동의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번역: 황정은(사무국장, IS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