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ilding Bridges ] 미국흑인동성애자남성: 두려움 속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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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의 정체성은 내가 속한 공동체와 교차점에 놓여있다.그리고 이 때문에 나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안전하지 못한 사람이 된 것 같다다. 흑인과 LGBTQ[1]를 향한 지속적인 위협이 지난 몇 주간 중대한 국면을 맞이한 것 같고, 이는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줬다. 흑인 남성 알톤 스털링과 필란도 캐스틸이 공공장소에서 경찰에 사살된 사건은 흑인이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국가차원의 폭력을 부각시켰고 미국 내에서 흑인이 끊임없이 받는 차별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플로리다주 올랜도 펄스 나이트클럽 대량학살 사건은 비참한 학살이었고 미국의 LGBTQ에게 어디를 가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달라스와 배턴루지에서 경찰이 저지른 살인은 미국에서 경찰 의 조직적인 인종차별 문제를 처리하는데 실패했다는 것과 그에 대한 절망적인 반응을 보여준다. 이는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다. 이 전쟁은 인종차별주의와 동성애혐오에 아주 깊은 곳부터 뿌리 뻗고 있으며, 내가 사는 곳의 나이트클럽과 편의점은 전쟁터가 되었다.

알톤 스털링은 37살의 흑인 남성으로 편의점 앞에서 CD를 팔다가 경찰을 마주쳤다. 경찰이 주장하기를 스털링을 제압하면서총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스털링은 총을 만지지도 않았는데 경찰이 그 자리에서 바로 사살을 해도 괜찮다는 구실이 되었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이 사건이 녹화되어 소셜미디어나 주요 TV에 방송되어  모두가 볼 수 있었고, 그 광경은 오로지 오늘 날의 린치 사건 [2]이었다. 뉴스사는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이 장면을 틀고 또 틀었으며, 대중들은 이를 소셜미디어에 계속 공유하면서 흑인의 생생한 죽음의 장면은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흑인 공동체에서는 우리 안의 누군가의 죽음을 다시 체험하도록 강요받았고 언론사는 우리의 죽음을 가지고 돈을 벌었다. 뉴스 앵커가 경찰의 행동을 정당화는 동안 당신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의 살해 장면을 전국 TV에서 보면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두렵다.

이것만으로 흑인 공동체가 공포에 빠지지충분하지않았다는 듯, 그 다음날 또 다른 흑인 남성인 필란도 캐스틸이 경찰에게 살해당하는 동영상이 나왔다. 경찰은 교통위반으로 필란도를 길가에 세우고는 그가 신분증을 꺼내려고 하자  총을 여러 발 쏘았다. 그는 분명히 무장하고 있음을 밝혔고, 경찰이 신분증을 즉각 보여달라고 압박하고 있다는 말을 한 직후 임에도 그랬다. 캐스틸의 여자친구 다이아몬드 레이놀즈는 조수석에 앉아 스털링의 사건과 같은 영상을 찍었고 바로 온라인에 공유했다. 흑인 공동체에서는 두 번째로 우리 형제 중 한 명이 살해당하는 것을 보아야만 했고, 이를 통해 우리는 이런 일들이 계속 된다면 책임이 있는 경찰 절대로  법의 심판을 받지 않을것임을 알게되었다. 내가 속한 공동체의  일원이 아무런 처벌 없이 공공연히 살해 당하는 나라에서 사는 것은 끊임없는 죽음의 공포가 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비극적이면서 용서할 수 없는 일인 반면에, 이런 사건은 미국 전역의 흑인 사회에서 흔한 일이며 여러 해에 걸쳐 일어나고 있다. 이제서야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3])”운동이나 광범위하게 소셜 미디어가 퍼졌기 때문에 이러한 부당함이 널리 또 분명히 보이게 되었다. 이러한 사건은 국가와 지역 경찰, 기업의 이익에 의해 흑인사회에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전쟁의 일부일 뿐이다. 국회의원은 흑인사회에 불공평하게 적용되는 법을 만들어 내고, 기업은 흑인의 죽음과 대규모 투옥으로 돈을 벌고, 뉴스는 “최상위포식자”란 신화를 만들어 흑인 사회의 특징을 의도적으로 비난한다. 그래서 더 많은 사회 구성원이 죄 없는 흑인의 죽음을 정당화 한다. 오늘날 미국에서 흑인 살해가 는 괜찮다고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국가가 흑인의 생명이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우리의 죽음을 이용해먹거나 사설 교도소 기업은 정부 보조금을 받으면서도 우리를 노예처럼 부리며 나와 같은 사람들은 그저 이윤으로만 보여진다.

흑인 사회에 대한 공격만 아니라 LGBTQ에 대한 공격도 나를 공포로 밀어 넣었다. 6월 12일, 무장한 살인자들이 펄스에 들어왔다. 펄스는 올랜도 게이 클럽으로 그들이 총을 난사해 시민 50명이 죽고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 이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으로 불리지만, 미국 역사상 최악의 혐오 범죄임을 알지 못한다. 범인의 친구와 가족은 그 범인이 아들과 함께 만난 게이 커플에 분노를 느낀 뒤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언론에서는 범인이 911 통화에서 ISIS에 충성을 맹세했다고 말한 것을 토대로 진정한 원인인 동성애혐오증 대신 이슬람 테러주의로 화제를 돌렸다. 50명 사망자가 났음에도 국가는 여전히 제도적인 부당함을양산하고, 진실을 말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우리는 혐오를 길러내고 있다.

미국에서 트랜스젠더가 어떤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고, 없는지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 왜 트랜스젠더가 한 쪽 탈의실만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지 또는 부적절한지를 논의한다. 보수적인 정치가는 언제나 LGBTQ를 미국의 도덕적 오염 사례로 들어 우리를 공개적으로 차별하는 법을 지속적으로 제정한다. 최근 주요 스포츠 행사인 NBA 올스타 주간은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서 열리지 않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 지역에서 통과된 법안에 음식점, 호텔, 직장에서 인종차별 반대 보호에서 성적 취향이나 성정체성을 제외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고, 이는 모든 지역 법령에 선행되는 것에 반대하기 위함이었다. 더 큰 사회에서 특정인을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이유로 악으로 만들어버리고 [h4] 소모품으로 대한 다면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이 폭력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은 허용되기 마련이다.

LGBTQ 공동체는 혐오나 폭력에 항상 피해자였음에도, 올랜도 펄스 공격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안전한 공간이었던 곳이 파괴되고, 그 사건에 원인이 된 동성애혐오에 대해 거부했기 때문에 특히 더 심각하게 느껴졌다. 여러 해 동안 LGBTQ 공동체가 자신임을 드러내고, 자랑스러워하고, 바깥 세상의 학대가 없는 피난처가 되어준 곳들이 있다. 대부분 대도시에 그저 작은 공간일뿐이지만 , LGBTQ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진정 안전하다고 느끼던 게이들이 운영하는 게이바와 가게들이 있었다. 올랜도 총기난사범이 이런에 와서 50명을 죽였을 때 나와 LGBTQ 모두에게 우리는 어느 곳에서도 진정 안전하지 못하다는분명한 메시지를 주었다. 이 사건의 중심에서 동성애혐오를 빼버리고 이 사회에서 LGBTQ 에 대한 폭력을 관대하게 봐주는 사상이 만연한 것에 대해 진정한 대화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첫 번째 공격으로 말미암아 생긴 두려움을 영원히 짊어져야 할 것이다.

어느 집단에서라도 폭력과 두려움의 분위기가 실제 상황이 되는 것은 가장 불운하고 슬픈 방법으로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지금 돌아왔다 7월 7일, 달라스에서 알톤 스털링과 필란도 캐스틸의 죽음을 위한 시위에 배치된 경찰이 저격수 공격을 받아 5명이 죽고 9명이 다쳤다. 7월 17일, 배턴루지 경찰 3명은 잠복을 받아 공격 살해당했다. 배턴루지의 경찰을 향한 총격이 보복 행동이었다고 공식적으로 여겨지지는 않지만 달라스 공격자는 분명히 정의롭지 못한 백인 경찰을 죽이기 위한 의도로 했음을 밝혔다. 미국에서는 억압받는 시민이 길에서 죽지않으려면 총알을 되돌려주는 것만이 대안이라는 것을 믿을 수 밖에 없는 공포분위기가  생겼다. 나는 생명을 앗아가는 것은 찬성할 수 없지만 여전히 의문을 가질 것이다. 국가는 사람들이 정의에 대한 기회도 없이 계속 살해당하도록 내버려두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폭력을 줄이기 위한 진정한 해결책이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한 것일까?  이는 국가 구성원의 일부가  환멸을 느끼고 정의를 스스로 실현하기 위해 직접 무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미국에서 폭력은 엄청난 수준에 다다랐고 폭력은 백인우월주의 가부장제의 억압적인 체제에서 기인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즉 백인과 남성에 속하지 않는 사람의 삶은 끊임없이 제도적으로 가치가 평가절하된다. 국가가 흑인에게 가하는 폭력은 미국 건국 초기 수준에 달했으며 우리가 집단적으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것을 보장하지 않으면 국내의 불안이 확장되는 것을 계속 보게 될 것이다. LGBTQ 공동체에 가해지는 폭력은 수십 년간 다른 방식으로 사랑한다는 이유로 한 공동체 전체가 받는 고통을 못본체 한 결과이다. 모든 종류의 폭력은 인종차별주의와 동성애혐오 체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가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태어났다”라는 말이 성립되는 국가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인종차별주의와 동성애혐오는 뿌리뽑아야 한다. 이러한 폭력의 교차점에서 나는 미국의 흑인동성애자남성으로 살아가고 있다.

로날드 콜린스(해외통신원, 미국)

번역: 김경민(번역팀, ISC)

** 본 글은 국제전략센터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 성소수자를 통칭하는 단어로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 성적 지향에 의문을 가진 사람(Questioner)의 줄임말
  2. 린치는 흑인에게 가해지는 공개적인 폭력과 살해 행위로 보통 흑인들을 살해한 후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공개해두는 방식이었다.
  3. 미국에서 흑인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운동 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