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주권과 농업] 백남기 농민을 살려내라!

글: 황정은(사무국장, I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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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이 경찰이 직사한 물대포에 쓰러져 위중한 상태이다!” 물과 캡사이신을 섞어 쏘아대는 물대포에 눈물, 콧물을 흘리던 중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2015년 11월 14일 서울 도심에 모인 10만여 민중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노동개혁에 반대하고, 청년실업 문제, 쌀값 폭락, 빈민 문제 등의 해결책 마련을 요구했다. 종로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행진하던 농민들은 대통령이 공약했던 쌀값 21만원으로 인상을 요구하고 밥쌀용 쌀 수입 반대를 외쳤다. 차벽에 가로막힌 시위대는 차벽을 치우려 했고 그 때 한 농민의 머리에 경찰의 물대포가 직사된다. 콘크리트 바닥에 쓰러진 70세 농민의 몸위로 물대포는 멈추지 않고 20초간 발사된다.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을 받았지만 2016년 8월 말 현재까지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최근 신장 기능까지 약화되어  최고단계의 이뇨제와 항생제를 쓰고 있지만, 그마저 듣지 않는다면 더이상 할 수 있는 치료가 없다. 명백한 국가 폭력이지만 책임지는 이는 없고 언론도 외면했다. 그렇게 290여일이 지났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 바로 학생운동부터 농민운동까지 한길을 걸어온 백남기 농민이다. 대학로 백남기 농민이 누워있는 서울대학교병원 앞에 차려진 농성장에서 만난 카톨릭농민회 손영준 사무총장은 백남기 농민을 “평생 생명과 평화의 길을 표본처럼 보여주신 분”이라고 설명한다. 유일하게 마을에서 대학에 입학한 백남기 농민은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면서 투옥 생활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돌아온 고향인 전라남도 보성에서 농사를 지으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우리밀 살리기 운동을 위해 힘써왔다.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와 백민주화도 “주위에 항상 사람이 많았던 분이자 퍼주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으로 아버지를 기억한다. 사람에 대한 정이 많았던 백남기 농민의 집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다.

욕심없이 살아온 백남기 농민은 쌀값 인상과 밥쌀용 쌀 수입반대를 외치며 행진하던 도중 국가 폭력 앞에 무참히 쓰러졌다. 하지만 300일이 다 되도록 아무런 처벌도, 그 누구의 사과도 없다. 오히려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를 벌여 민중총궐기 폭력 시위를 선동하고 경찰버스 등을 파손했다는 혐의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체포했고, 집회 참가자 중 400여명을 수사했다. 반면 민중총궐기 진압의 책임자였던 이중구 경찰청 경비국장은 강원경찰청장으로 조현배 정보국장은 경남청장으로 정용선 수사국장도 경기청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8월 23일 강신명 경찰청장은 명예롭게 퇴임식을 치렀다.

하지만 정작 백남기 농민에게 가해진 폭력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대책위와 가족은 처음부터 우리의 잘못이 있으면 법대로 조사받을 것이니 백남기 농민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으면 그 죄를 물어서 법대로 해달라는 요구였다. 그 요구가 지금까지 한발짝도 진척이 안되고 있고 최소한의 도의적인 사과도 없다”고 손영준 총장은 토로한다. 대책위와 가족은 11월 18일 고발장을 제출했지만 수사는 7개월이 지나서야 시작되었고 그마저도 제대로된 수사가 이루어졌는지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 알 수가 없다. 책임자 처벌, 대통령 사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백남기범국민대책위원회와 가족들, 그리고 많은 시민들이 행동에 나섰다. 16박 17일 간의 도보순례를 하고, 많은 시민이 농성장을 찾아 십만개가 넘는 종이학을 접으면서 백남기 농민 쾌유를 빌었고, 많은 기자회견을 하고 대회를 조직하고 매일 미사도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진행되고 있다. 백도라지는 청와대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하며 계속적으로 알리는 활동을 했고 백민주화는 최근 유엔인권위원회에 참가해 한국 정부의 부당한 대응에 대해 국제 사회에 알리는 활동을 했다.

그렇게 싸워온 290여일. 처음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고 현재는 패악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멈출수가 없다. “304명의 우리 아이들이 죽었는데 진상규명도 안된 상황에서 특별조사위원회를 해체하란다. 말도 안된다. 이런 패악한 상황들이 너무나 많다. 지난 겨울 우리가 농상할 때 기아차 고공 농성장이 있었다. 그 노동자들이 5억의 손배를 당했다. 백남기 농민의 상황도 이런 것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물러설 수 없는 것은 우리가 만약 물러서면 또 이런 상황이 계속 될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창 농성할 때 학생들이  위안부 문제로 추운 겨울천막도 없이 노숙을 했다. 그 아이들의 자녀들이 또 우리와 같은 일을, 행복한 일상을 뺏기는 그런 일이 반복되면 않되기 때문에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손영준 총장은 덧붙였다.

8월 18일부터 25일까지 여성농민회총연합은 새누리당사 앞에서 단식농성을, 25일 416연대와 백남기대책위는 제1야당인 더불어 민주당 당사를 점거해 청문회를 요구했다. 결국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여야3당이 9월 5~7일 중 하루를 정해 백남기 청문회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꼭 싸워서 이기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백남기 농민의 백민주화의 말이 현실이 되도록 우리가 함께 싸워야 한다. 명백한 국가의 폭력에 맞서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