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소모임 통해 퍼즐 조각을 맞추다
글: 줄리아 니콜(열린강좌 운영진, ISC)
번역: 심태은(The 숲 편집장)
나의 여성주의는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여성사 강의, 진보적 온라인 커뮤니티, 그리고 그 나의 경험을 맥락화하는 과정을 통해 여성주의를 “실천”하는 나만의 방식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경험을 통해 세계관을 형성한 내 주변의 다른 여성주의자, 즉 인문학을 전공하고, 온라인 포럼에서 글을 읽는 20대 여성주의자들과 내가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여성주의자 친구들은 많았지만, 나에게는 역사적, 그리고 정치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여성주의는 결국 급진적인 정치적 운동이다. 미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여성주의는 어떤 모습일까?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웠던 자매들에 대해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여성주의의 역사와 내가 현재 살아가는 세계에서 보는 행동과 지지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 국제전략센터의 대표님이 여성주의 소모임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 주셨다. 나는 센터와의 유대를 강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겠다고 했다. 이미 운영위원회에도 참여하고 있었지만, 센터와 더 가까워질 수 있고, 센터 내에서 또 다른 모임을 한다는 사실에 들떴다. 사실, 여성주의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나중에 들었다. 나는 내가 여성주의 이론에 정통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소모임은 내가 가지고 있던 여성주의 운동에 대한 이해를 다시금 맥락화하고 수정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소모임에 참여하면서 여성주의를 좀 더 깊게 탐구하게 되었다. 혼자서는 잘 찾아보지 않을 것 같은 여성주의 책, 활동가, 사상들을 접하게 되었다. ‘여성과 남성이 다르지도 똑같지도 않은 이유’ (캐롤 타브리스)가 우리 공부 모임의 토대가 되었다. 우리는 여성이 종속적인 삶을 살도록, 심지어 그러한 종속을 내면화하고 스스로 강화하도록 훈련되었다는 사실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리고 어떻게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시스템이 지속되도록 하는 문화적 요소에 대해서도 토론했다. 대중문화, 역사, 과학에 이르기까지 가부장제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한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진실 중 많은 부분은 내가 청소년기에 깨닫기 시작하면서 많이 고민하던 부분들이었다. 이러한 문제들이 유려한 문장으로 눈 앞에 펼쳐지자, 나 혼자만 이런 것들을 느낀 것이 아니었고, 나의 여성주의 “정체성”, 즉 여성혐오가 체계적인 현실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소모임 구성원들 간에 여성주의에 대한 지식적인 배경은 다양했지만, 우리 모임에서 서로에 대한 인내, 포용력, 이해심이 느껴져서 좋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여성학 분야에서 정식 교육을 받았고, 누군가는 여성주의 책을 많이 읽었으며, 또 여기저기에서 여성주의에 대해 들어는 보았지만, 아직 자신을 어느 범주에 둘 지 결정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여성주의에 대해 배우기 위해 모였다. 서로가 자신의 우월함을 내세우며 선을 긋기보다는,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질문하는 것이나 논란이 되는 주제를 토론에 부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 예로, 모임 3회차에는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킴벌리 피어스)를 시청했다. 이 영화는 트랜스젠더 남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과 사회가 젠더에 대해 가지는 기대에 거스르는 것에 따른 위험을 다루고 있었는데, 영화를 본 후에 여성 또는 남성으로 살아가는 경험과 젠더 그 자체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우리 모임에서 여성주의의 여러 갈래 사이에서 종종 논란이 되는 이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만약 장소 대여시간에 여유가 있었다면, 서로가 이 주제에 대해 더욱 깊이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장 최근에 했던 모임은 ‘세계여성공동행진 서울’에 참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국제적 연대행사에 참여한 것에 힘을 얻어, 우리는 함박눈이 오는 강남의 거리를 행진했고, 이후에는 한국성적소수자 문화인권센터(KSCRC)의 대표 홀릭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한국사회 내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이슈를 제기하는 것에서부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안전한 장소를 섭외하여 프라이드 하우스를 진행하는 것 등과 같은 국제적 사업을 진행하는 등, KSCRC의 노력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신촌의 한 공원에서 청소년 레즈비언이 주말마다 대규모로 모이는 것을 알게 된 후에 이들과 인터뷰를 한 후, 성인 레즈비언을 만나본 경험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상담사를 공원에 파견하고, 성인 레즈비언과 멘토 관계를 맺도록 해서 결국에는 이것이 청소년 레즈비언 상담소의 설립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성소수자가 주류 사회에 속하기 위한 투쟁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이러한 여성 중심의 풀뿌리 조직이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요즘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세력의 활동이 더욱 거세지고 있지만, 홀릭과 센터에서 국제연대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캔디는 그것이야말로 한국 성소수자 운동이 상승기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점이라고 말했다.
국제전략센터의 여성주의 소모임을 통해 여성주의에 대한 나의 통찰력이 더욱 깊어졌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센터가 표방하는 연대와 토론에 대한 개방성은 이 소모임에서도 구현되고 있고, 그렇기에 나도 나의 견해를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나누고, 또 그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기쁘고, 두렵지 않다. 이 소모임과 다언어, 다문화, 다면적인 모임 구성원이 없었더라면,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여성주의자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문화적 관점에서 여성주의를 살펴보고, 내 관점을 다시금 철저히 돌아보는 기회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여성주의를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면서, 배움에 대한 열망에 다시 불이 붙었다. 앞으로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여성주의자들을 만날 것이다. Jezebel의 댓글이나 술자리에서의 수다와는 별개로, 이제 내가 여성주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 학문적, 역사적, 문화적 현실에 뿌리내리도록 해야 할 때이다. 센터의 여성주의 소모임이야말로 내가 그렇게 하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