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희망을 실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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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정은(사무국장, ISC)

국제전략센터는 지난해까지 다양한 투쟁 현장을 방문해 이슈에 대해 알리고 연대하기 위한 활동을 해왔으며, 올해도 그 노력은 멈추지 않는다. 그에 더해 2017년에는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사회 문제에 대안이 될 수 있는 국내 사례를 찾아 알리는 활동을 하기 위해 대안 발굴 사업을 시작했다. 첫번째 대안발굴 사업 주제를 “노동자, 주인이 되다”로 정하고 현재 노동자가 주인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동자가 주인이 되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며 노동하고 있는 사례 연구를 진행했다. 구체적인 대안 사례로 노동자 자주관리에 대해 살펴보고 13년간 노동자자주관리 기업으로 운영하고 있는 청주버스회사인 우진교통을 직접 방문해 취재를 진행했다. 연구내용과 취재 내용은 추후에 영문 보고서로 작성해 공유할 예정이지만 이번 호에서 노동자 자주관리와 방문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생 110명을 대상으로 ‘노동’과 ‘노동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연상되는 단어를 조사한 결과에 대한 기사[1]를 본 적이 있다. 약 절반 정도가 ‘힘듦’을 떠올렸고, 일부는 ‘노예’가 생각난다는 결과가 매우 충격적이었다. 유일하게 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인 ‘노동’이, 가치를 생산해 내는 일을 하는 ‘노동자’가 사회에서 어떻게 대우받고 있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몇가지 통계만 보아도 현재 한국 사회 노동자 현실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840만 명(2016.03)으로 전체 노동자의 50%에 육박한다. 또한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이 약 25%로 높고, 고용이 가장 불안정한 국가로 초단기근속나라(평균 5.8년)이다. 하지만 노동조합 조직률은 약 12%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고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기에는 역부족이다[2]. 현재 노동자의 현실은 힘들고 풀어나가야 할 문제도 많지만 노동자는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각자의 현장에서 싸우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여러가지 노력 중 하나가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다. 노동자 자주관리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전제로 전체구성원인 노동자가 경영, 노동, 분배에 대해 스스로 관리, 운영하는 기업의 형태이다.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에서 노동자는 얼마나 생산할지와 생산의 우선순위, 분배 방식을 결정할 수 있고, 노동자의 고용이 보장된다[3]. 한국에서는 해방 이후 일본인이 경영하던 공장이나 광산을 노동자들이 직접 경영을 맞아 노동자 자주관리 방식으로 운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군정이 들어와 경영권을 빼앗겨 노동자자주관리는 이어지지 못했다. 이 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노동자자주관리 기업이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청주의 버스 회사 중 하나인 우진교통이다. 우진교통은 2004년 임금체불 등의 이유로 약 6개월간 파업한 후 경영권을 인수받아 노동자자주관리 기업으로 전환했다. 올해로 13년째 노동자자주관리로 기업을 운영한 우진교통은 초기 내부 갈등으로 노동자 간의 분열을 겪었지만, 힘들었던 시간을 자주관리에 대한 노동자 교육과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극복하고 노동자를 주인으로 세우는 과정을 거쳐 현재는 안정기에 들어섰다. 하지만 여전히  섬처럼 존재하는 노동자자주관리 기업은 청주의 다른 버스회사의 공격을 받고 있고, 안정기에 들어선 현재 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책임감이 낮아지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 과정을 고민하고 있고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을 확산시키기 위한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대안발굴팀은 6월 22일 우진교통을 방문해 우진교통 대표와 노동조합 지부장을 만나 터뷰를 진행했다. 오전에 도착해 인터뷰를 진행하고 사내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인터뷰는 오후까지 계속되었다. 13년간의 역사와 앞으로 쓰여질 역사에 대한 전망과 고민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함께 취재를 다녀온 대안발굴팀 팀원의 취재 소감을 나누고자 한다.

우진 교통 인터뷰로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으로 전환하고 나서 노동자 사이에서 내부 갈등을 겪었음을 알게 되었다. 일부는 노동자 자주관리 모델을 지지했지만 일부는 아니었던 것이다. 우진교통 대표는 취재 내내 겸손한 태도였고, 취재 질문에 대한 답변의 준비도 잘 되어있었다. 이전 내부 갈등을 겪을 당시 노동자들이 그에 대해 퍼뜨렸던 소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현재 우진교통 노동자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내부 갈등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그만두고 남아있는 노동자들은 몇달동안 임금을 받지 않는 것으로 결정하면서 회사를 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우진교통은 노동자들이 노동책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여러가지 교육 과정이 있지만 6개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노동자들이 노동자 자주관리에 대해 필요한 내용을 교육하고 있다.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매년 위원회를 통해서 대표를 포함한 319명의 임금과 예산 초안을 작성해 모두가 모인 총회에서 투표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민주적인 일터의 모습임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완벽한 기업은 없다. 향후 우진교통의 노동자의 다양성이 생기길 바란다. 현재 319명의 노동자 중 8명만이 여성이며 외국인은 없다. 더구나 차별금지 정책과 불만사항을 접수할 수 있는 독립적인 체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익보다는 인간을 우선시하는 기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감동적이었고 새로운 시대의 기업이라는 면에서 한가지 대안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드레아 슈니처

회사 정문에서부터 풍겨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기업의 희망을 실천하라’도 아니고 ‘노동자의 희망을 실천하라.’라니. 대한민국에서 도저히 쉽게 찾아보기 힘든 문구였다. 이렇게 강렬한 첫 인상을 뒤로한 채 인터뷰를 하기 위해 대표님을 뵈러 갔다. 이 때, 대표님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가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저랑 인터뷰를 하실 게 아니라 일하시는 분들하고 인터뷰를 하셔야 하는데, 일은 그 분들이 다 하십니다.”

회사 대표에게서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이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도 직원들을 존중하는 대표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회사 직원분들과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분은 이 회사에서 일하게 된 게 영광이라고 하셨다. 또 다른 분은 회사에 있는 탁구동아리 회원이셨는데 행복한 표정으로 프로들이 쓸 법하게 생긴 탁구채 가방을 들고 탁구를 치러 가셨다. 보통 회사에 다니면 그만 두고 싶거나, 집에 일찍 가고 싶거나 하는 줄 알았는데, 이곳은 아니었다. 뭔가 사람들이 다들 만족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처음 우진교통이라는 회사에 와 본 나도 뭔가 이 회사에 입사하면 존중 받으면서 즐겁게 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게 정말 ‘사람이 먼저인 회사’가 아닐까?                                                                 

- 배경진

** 노동자자주관리 보고서는 8월 이후 국제전략센터 홈페이지(한글, 영문)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국제전략센터 이메일로 보고서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1. [노동이 부끄러워요?]“노동 생각하면 노예 떠올라···내 꿈은 노동자가 아니에요”, 경향 신문, 2016.04.28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4281745001
  2.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2016.3)결과), 김유선(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노동시장연구센터 소장)
  3. http://www.workerscontrol.net/authors/worker-self-management-historical-perspect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