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의회, 동성 결혼 합법화 법안 통과
글 : 케이트 코놀리
번역 : 지민경, 예선희 (번역팀, ISC), 황정은 (사무국장, ISC)
* 본 기사는 더 던 뉴스(The Dawn News)의 “German parliament votes to legalise same-sex marriage”를 번역한 글입니다.
독일 연방 하원이 동성결혼 합법화[1]를 가결함과 동시에 녹색당 소속 의원들은 의회에서 반짝이 종이꽃가루를 뿌렸고 방청석에 앉아 있던 동성 커플들은 키스를 하며 껴안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동성 결혼에 대한 수십 년 간의 광범위한 논쟁이 반영된 40분간의 열띤, 때로는 매우 감정적인 토론 후 진행된 표결 결과는 찬성 393명, 반대 226명, 기권 4명이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의원들에게 양심에 따라 투표할 것을 촉구하며 법안 통과의 길을 텄지만, 정작 자신은 반대표를 던졌다.
지난 월요일, 메르켈 총리는 “동성 파트너십[2]과 이성간의 결혼은 같은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고 밝히며 그 동안의 동성 결혼에 대한 반대 입장에서 선회하는 것처럼 보였다. 연방 하원 투표함에 빨간색의 “반대” 카드를 넣으며 메르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법으로 정의된 결혼은 남성과 여성 간의 결합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논의는 오랜 시간 동안 격렬하게 이루어졌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감정적인 것이었으며, 나에게도 개인적으로 다가온다. 이를 계기로 양측의 의견에 대한 존중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더 큰 평화와 결속력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다.”
지난 2001년부터 독일 내 동성 커플은 합법적으로 시민결합[3]의 형태로 동거를 할 수는 있었으나, 결혼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법안으로 이번 해가 지나기 전에 동성 커플도 이성애자 커플처럼 결혼을 하고 입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표결 결과는 6월 30일에 23년의 정치 인생을 마감하는 베테랑 동성애 인권운동가 폴커 벡(Volker Beck)(56세) 녹색당 의원에게는 깜짝 선물과도 같은 승리였다. 독일 DPA 통신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오늘 (동성 결혼을 가로막았던) 장벽이 비로소 사라졌다”고 말했다.
1990년부터 법 개정을 추진했던 독일 레즈비언 게이 연맹(LSVD)은 표결 결과를 환영하며 발표한 성명서에서 “독일이 사랑에 표를 던진 것,”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 “레즈비언과 게이뿐만 아니라 더욱 정의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메르켈 총리가 영리한 책사로써 이번 표결 결과를 의도적으로 유도한 것인지, 아니면 법안 가결에 하원의 다른 의원들과 마찬가지로 놀랐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난 수십 년 간 메르켈 총리와 그의 연합 세력이 동성 결혼을 반대해 왔음에도, 메르켈 총리가 이번 표결을 이끌어낸 것에 대한 공을 인정받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메르켈 총리는 연정 파트너이자 9월 선거를 준비하면서 동성 결혼을 주요 선거운동 이슈로 다루어 온 사회민주당(SPD)을 효과적으로 앞지르게 되었다.
메르켈 총리가 소속된 기독민주연합당(CDU)의 일부는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표결을 강행한 것에 대해 분노했지만, 메르켈 총리는 표결에서 반대 입장을 취한 것을 통해 불만이 있는 의원들에게도 당당하게 얼굴을 들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의회 토론에서 수많은 비판에 직면했는데, 그 중 가장 날이 선 것은 사회민주당 요하네스 카스(Johannes Kahrs)의원의 비판이었다. 그는 메르켈 총리가 수년간 동성 결혼 합법화를 막았던 것에 대해 “솔직히 말해서 메르켈 총리에게 하나도 안 고맙다”고 말했다.
유럽의 동성결혼/시민결합 현황
지난 6월 26일 저녁, 베를린의 막심 고리키 극장에서 열린 여성잡지 브리기테가 주최한 좌담회가 이번 표결의 도화선이 되었다. 언론인이자 행사기획자인 울리 코페(Ulli Köppe)가 청중석서 메르켈 총리에게 “나의 남자친구를 남편으로 부를 수 있는 날이 언제 올까요?”라고 질문하자, 메르켈 총리는 질의응답 시간 막바지에 8분 동안 동성 결혼에 대해 이야기 했다.
메르켈 총리는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이 사안에 대해서 많은 시간 동안 고민 했고, 동성 파트너십은 이성간 결혼과 “동등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신실한 사람들에게는” 이 문제가 더욱 복잡하고 궁극적으로 개인의 양심에 따른 문제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성 결혼 법안에 대한 정당별 투표 결과
이어서 메르켈 총리는 독일 발트해 연안 지역 내 자신의 선거구에서 레즈비언 커플을 만나면서 겪은 “인생이 바뀌는 경험”에 대해 설명했다. 메르켈 총리는 동성 결혼에 대한 개인적인 “난제”가 아이들의 복지 문제임을 그 커플에게 이야기 했다.
파트너인 크리스틴과 오랫동안 함께 살며 다섯 명의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군둘라 침(Gundula Zilm)은 메르켈 총리를 집으로 초대해 아이들이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 볼 수 있도록 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 만남으로 마음이 변했다고 말한다. 당국이 이 커플이 충분히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폭력이 일반화된 남녀 부모로 구성된 가정에서 아이들이 자라는 것보다 동성 커플 가정에서 더 잘 자랄 수 있다고 국가가 간주한다면 나는 이를 인정하고, 동성결혼에 대해 판단할 때 이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메르켈 총리는 박수를 받으며 말했다.
사회민주당은 이번 메르켈 총리의 180도 입장 변화를 하계 휴회기간과 9월 24일 선거를 앞두고 동성 결혼 법안을 빠르게 표결에 부칠 기회로 보았다. 메르켈 총리의 보수 연합 의원들은 이러한 행보를 무시했고, 표결 이후에는 사회민주당이 이 안건을 하원에 밀어붙였다고 비난했다.
브리기타 좌담회에서 메르켈 총리에게 동성 결혼에 대해 질문을 했던 코페(28세)는 사실상 그가 일으킨 논쟁의 결과를 기다리며 하원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내 질문은 즉흥적이었고,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청중들이 질문을 하지 않아서 마이크를 잡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코페는 메르켈 총리가 “전에 그랬던 것처럼 모호한 답”을 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오히려 상세한 답변에 놀랐다. 그는 “적절한 때에 적절한 질문을 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제 코페는 12년 간 함께한 파트너와 결혼한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는 시민결합만이 가능했지만 우리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고 말했다.
군둘라 침은 하원 토론을 TV로 시청했고, 메르켈 총리가 반대표를 던진 것에 “매우 실망”했지만, 그럼에도 결과를 보고 축하했다. 군둘라 침은 “메르켈 총리가 반대표를 던져 매우 유감이었지만 아이들이 집에 돌아왔을 때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나갔다”고 말했다. 군둘라 침과 크리스틴은 이미 시민 결합 상태였고, 이제 결혼식을 올릴 계획이다. 그들은 결혼식에 메르켈 총리를 초대할 것이라고 한다.
이 법안은 상원에서 통과 되고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을 하면 올해가 가기 전 발효될 것이다. 녹색당 레나테 퀴나스트(Renate Künast) 의원은 전국 등기소에 몰려드는 혼인신고 부부를 수용할 수 있도록 “인원을 충원할 것”을 요구했다.
- 동성 결혼을 ‘합법화’ 또는 ‘법제화’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본 기사에는 과거에는 금지되었던 것을 법으로 인정하는 ‘합법화’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독일에서는 1871년에 형법 175조에 따라 동성 간의 성행위를 금지했고, 1994년 통일 독일에서 완전히 삭제될 때까지 유효했다. 이후 2001년에 시민결합(동성 커플의 동거)을 인정하는 법안이 시행되었다.
- 동성 간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지만 동거는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동성 파트너십이라고 표현
- Civil union : 시민결합 또는 생활동반자관계로 불리며, 결혼과 유사한 가족제도이다. 혼인 관계에 준하여 배우자로서의 권리와 상속, 세제, 보험, 의료, 입양, 양육 등의 법적 이익이 일부 혹은 온전히 보장된다. 시민결합 제도는 국제적으로 확고히 정해진 기준과 규격이 없기 때문에 명칭 또한 언어, 국가, 지역, 법안별로 상이하다. 본래 20세기 말 LGBT인권의 신장과 함께 사회의 동성결혼 허용 요구에 대한 정치적 대체제로서 탄생하였으며, 지금은 종종 동성결혼 제도로 발전하기 위한 일종의 디딤돌 또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