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사이클이 끝난 것인가, 아니면 혁명적 물결의 과정인가?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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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볼리비아 부통령)
번역 : 심태은(The 숲 한글판 편집장, ISC)

* 본 기사는 더 던 뉴스(The Dawn News)의 “The end of the Progressive Cycle? Or a process that goes through Revolutionary Waves? Part 1”를 번역한 글입니다.

본 기사는 총 2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2부는 추후 더 던 뉴스에 게재할 예정이다. 또한, 본 글은 요약본으로, 스페인어 원문으로 된 전문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라틴아메리카 대륙은 역사적인 변곡점을 지나는 시기를 살고 있다. 지난 10년 간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파라과이, 에콰도르,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등에서 혁명적이고 진보적 세력이 정치적 승리를 확장해 나갔지만, 현재에 들어서 이러한 추세가 주춤하고 있고, 세력이 축소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따라 아르헨티나의 선거 패배 이후 온두라스, 파라과이, 베네수엘라, 브라질에서 보수 정치의 음모가 나타나고 있다.

체계적인 경제 공격과 함께, 많은 경우 집단적 행동이 뒤따르는 선거 절차와 숨길 수 없는 외부적 음모를 통해 보수 세력은 지난 해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 일부 정부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이전 수 년에 걸쳐 쌓아 올린 수 많은 사회적 승리가 무위로 돌아갔고, 이념적인 미디어 선전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진보 정부가 패배를 맞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위 “사이클의 종료”를 운운하며 오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이클의 종료”를 불가피하고 불가역적인 것으로 이야기하지만, 그 목적은 인간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원동력이자 역사를 설명하는 근원으로서 인간의 실천을 훼손하고, 어떠한 사건이 인간의 행동 자체로 인한 것이 아닌, 그 외부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여기는 패배주의적 사고가 지배하는 무기력한 사회로 되돌리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르네상스 이전의 이념적 개념으로 되돌아가는 구태의연한 후퇴일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적 세계를 구성하는 주요 기반으로서의 사회적 자결권을 제거하려는 의도적인 노력이다.

우파와 제국주의 세력은 지금까지도 그랬듯이 민중의 해방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 명백하다. 이것이 그들이 존재하는 사회적 이유이자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든, 그들은 좌파 정부와 사회 해방 프로세스에 대해 적대적 행동을 지속할 것이다.

현재 라틴아메리카에서 벌어지는 제국주의 반동세력의 공격은 지난 세기 60년대, 70년대, 80년대의 그것과는 형태가 다르다. 과거에는 공공연하게 무력을 쓰는 것을 선호했으며, 뒤에서는 정치인과 기업가들이 사회보다는 군사독재를 지지했다.

이제는 언론, 경제,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먼저 공격을 하고, 이 모든 것들이 실패로 돌아가고 또 필요한 경우에만 무장 세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선택지를 가지고 사회적 충돌을 일으킨다. 오늘날 주로 사용되는 가혹한 공격의 수단은 대상 국가의 경제를 약화시키는 것, 경제적 보이콧, 정부와 사회 혁명 세력에 대한 이념적-문화적 포위공격 등에 집중되어 있다.

예전에 미 육군이 전 세계에서 게릴라와의 전투를 위해 손자병법을 도입했다면, 오늘날 미 국무부에서는 대(對)게릴라전 전략가 그람시의 서적을 필독서로 채택했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새로운 권력 다툼이라는 맥락에서 문화적 전투가 유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라틴아메리카의 황금기로 여기는 시기에 집중적인 공격을 가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1세기의 시작 이후 1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라틴아메리카 대륙은 19세기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건국된 이후 사상 최대의 자치와 주권 확립이라는 시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했다. 어떠한 과정은 다른 것보다 더 급진적이기도 했고, 이 과정이 도시 중심이거나, 농촌 중심이기도 했으며, 서로 다른 언어로 진행되었지만, 모두가 진정한 융합의 방식을 거쳐 이루어졌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주권을 세웠던 승리의 10여년 동안 크게 4가지의 역사적 성과가 있었다.

  • 정치적 민주주의 확대

제국주의 지정학적 이해에 따른 정치적 돌격대로서의 군부가 퇴장한 이후, 민주주의는 하위 계급을 위한 헌법적 권리의 보장, 표현의 자유, 이동의 자유, 선거권 보장, 기본적 인권의 회복, 정도는 덜하지만 결사의 자유 등의 유효성을 상징했다.

그러나, 독재 이후의 민주주의가 하위 계급이 정치적 결정과 국정에 참여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이는 그저 권리의 민주주의였을 뿐, 국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좌파 사회계급과 대중세력이 강력하게 성장하기 시작했고, 이는 집회나 사회운동, 국가권력의 쟁취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이전에는 정부 구조에서 배제되었던 대중세력과 좌파세력의 선거 승리일 뿐만 아니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전 세계적인 대중운동의 위축과, 대중세력 내에 팽배했던 패배주의를 반영하고 개인 삶의 조건을 변화시키는 ‘미립자 변혁’을 달성하기 위해 권력 쟁취를 위한 대규모 정치적 싸움을 하지 말자는 요구가 구현된 슬로건인 ‘권력 쟁취 없이 세상을 바꾸기 위한’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사회주의 이념이 약화되던 시기에 촉발되었던 논쟁을 극복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 부의 재분배와 사회적 평등 확대

두 번째로, 브라질,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에콰도르, 파라과이, 우루과이,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등 국가의 사회적 영역에서 사회적 부가 엄청난 규모로 재분배되어 지난 수 십 년 간 커질 대로 커진 불평등과 부의 형성 간의 고리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전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곳으로 만들었던 부를 초집적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맞서, 2000년 이후 혁명적이고 진보적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정부는 강력한 부의 재분배 정책을 실시하여 노동계급의 삶의 조건을 대폭 향상시켰고, 수 백만 명에 달하는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이 절대빈곤에서 벗어났으며, 중산층을 위해서는 사회의 진전을 위한 객관적 선택지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부의 재분배는 중산층의 확대로도 이어져, 사회정치적 의식의 확대가 아닌 소비능력의 신장을 낳았다. 노동자, 농민, 원주민의 소비능력도 커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십 수년에 걸쳐 사회적 불평등이 역사적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90년대에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의 격차가 100, 150, 심지어 200배에 달했다면, 2010년경에는 이 수치가 80, 60, 40배로 줄어들었고, 이는 사회 각 분야에서의 참여와 평등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 포스트 신자유주의 방식으로 경제와 부 관리

세 번째 성과는 경제 관리 측면이다. 각 국가는 정도는 다르지만 포스트 신자유주의 계획을 실험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것은 포스트 자본주의 계획이 아니다. 포스트 자본주의 계획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실행될 때 성공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포스트 신자유주의 계획을 통해 국가적 이해와 대중계급을 우선하는 부의 생산과 경제적 행정의 규제에서 각 국가가 강력한 주체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민간 기업을 국유화하거나 공기업을 설립하고, 다른 국가에서는 정부가 경제, 사회적 잉여의 관리, 빈곤층을 위한 재분배, 노동자 소득 증대 등에 더 많이 참여하는 것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든 정부가 내수시장, 부의 분배자로서의 국가, 전략적 경제부문에서의 국가 참여 등의 중요성을 회복히면서 경제 관리를 포스트 신자유주의 방식으로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라틴아메리카의 경험은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궤도에서 반환점이 될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의 경험을 통해, 신자유주의는 더 이상 ‘유일하게 가능한 세상’이 아니게 될 것이다. 오늘날, 부와 경제를 관리하는 다른 가능성이 대두되었고, 신자유주의가 정체되고, 부패하며, 낡은 체제임을 보여주는 가능성도 나타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경험에서 나타난 각종 장애물이 있지만, 남반구 국가[1]들은 지울 수 없고 결정적인 깃발을 남겼다. 즉, 다른 세상이 가능하고, 신자유주의가 역사의 끝–사실 신자유주의가 계속된다는 것은 역사를 화석으로 만드는 것이다–이 아니며, 부가 다른 방식으로 생산될 수 있고, 이렇게 생산된 부를 분배하여 대중 계급이 가장 많은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 세계 민중에게 실질적인 방식으로 보여준 것이다.

  • 진보적이고 자주적인 라틴아메리카 인터내셔널의 건설

네 번째로, 21세기 라틴아메리카의 각성은 자주권과 자결권에 기반한 대륙차원의 외교 정책의 생산(라틴아메리카 국가 건국 이후 최초)으로 규정된다.

19세기 이래로, 라틴아메리카 외교정책의 큰 그림은 영국 제국, 이후에는 미 제국의 감독 하에 있었다. 이들 제국은 채권, 관세, 기술이전, 담론, 정부 안전성을 통제했고, 따라서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정치적 질서를 관리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이 질서가 무너졌다. 민중을 대변하는 정부가 승리를 거두면서, 비공식적으로는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인터내셔널이라고 칭하는 단계가 라틴아메리카 대륙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위원회(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서 그랬듯) 같은 기구는 없었지만,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아르헨티나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이 모여 라틴아메리카 인터내셔널 중앙위원회라고 칭할 수 있을 회의체를 구성했고, 이는 자주적으로 라틴아메리카 차원에서 의사결정을 하고 각국의 미래를 계획하는 큰 걸음을 내디딘 것이었다.

2000년부터 2010년 사이, 그 동안 미국의 영향력 하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운명을 결정하고 라틴아메리카 국가에 대한 침략을 정당화했던 미주기구(OAS)는 그 영향력을 상실했다.

그리고 마침내 남미국가연합(UNASUR, 우나수르)과 중남미·카리브 해 국가 공동체(CELAC)라는 라틴아메리카 차원의 기구가 탄생했다. 여기에는 미국이 배제되었으며,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자신의 운명을 토론하고 결정하게 되었다. 100년, 아니 50년 전만 하더라도 이는 상상할 수 없었다.

이는 이전 같았으면 최소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필요로’했을 극심한 정치적 갈등을 국제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예전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이웃국가 간의 연대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2002년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 대통령과 2008년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에 대한 쿠데타 시도가 그 예이다.

2008년 8월과 9월에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과 부통령인 필자는 우파 파시스트 세력이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주에는 한 발자국도 디딜 수가 없었다. 민주정부가 국가의 관리와 통제를 할 권한을 상실했고, 의회 폭력배가 이를 탈취해 소위 ‘이중적 지역 권력’을 수립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국가권력을 부정하고 내전을 촉발하고자 했다.

그러나 키르치네르 대통령, 차베스 대통령, 코레아 대통령, 그리고 룰라 대통령 등이 UNASUR에서 함께 연대했기 때문에 볼리비아는 파시스트 세력에게 권력을 찬탈 당하는 것을 막고 정치권력을 국가 정부의 손에 되돌려놓는 등의 민주적 질서를 회복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지난 십 년여 간의 승리는 정치적 변화(새로운 국가 건설 과정에 민중이 참여), 사회적 변화(부의 재분배와 불평등 감소), 경제적 변화(국가의 적극적 경제 개입, 내수시장 확대와 신 중산층 창출)를 가져왔고, 국제적 차원에서 보면 미국의 존재 없이 라틴아메리카 국가간 정치적 협력을 달성했다. 이는 결코 작은 성과가 아니다. 19세기 이래로,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역내 통합, 자주와 독립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십 수년은 라틴아메리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1. 선진국이 대체로 북반구에 위치하고 발전도상국이 남반구에 위치하는 데서 비롯된 명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