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녹색혁명’, 아프리카를 넘보다
글: 알란 브러톤(Alan Broughton)
번역: 지민경, 예선희, 홍정희(번역팀, ISC)
* 본 기사는 그린레프트 위클리(Green Left Weekly)의 “Misnamed ‘Green Revolution’ eyes Africa” (https://www.greenleft.org.au/content/misnamed-green-revolution-eyes-africa)를 번역한 글입니다.
“녹색혁명”이라는 용어는 1960년대부터 주식으로 사용되는 작물, 특히 쌀과 밀의 다수확 품종을 제3세계 국가에 도입하는 것을 말한다.
처음에는 멕시코, 인도, 필리핀이 표적이었다. 녹색혁명의 명시적 목표는 식량 생산을 늘려 기아를 종식하고 혁명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 외의 암묵적 목표는 바로 농기업의 제3세계 국가 진출을 증대하는 것이었다. 이들 농기업의 사업적 성공에 필수불가결한 새로운 품종의 종자, 비료, 살충제, 농기계의 판매를 통해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녹색혁명은 농업의 생산량을 증가시켰으나, 기아와 빈곤을 감소시키고, 영양소 섭취를 개선하며, 환경을 보호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일부 실패에 대해서는 녹색혁명 옹호론자들도 인정했지만, 이들의 답은 “다른 대안이 없었다,”였고, 특히 아프리카와 같이 대체로 개발이 덜 된 국가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대안이 없다.
인도 인도가 1947년 독립을 이룬 뒤에, 정부는 전쟁과 분열 그리고 식민주의에 의해 황폐해진 인도 농업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농업장려정책을 내놓았다. 이는 다양성, 자연 존중, 자립, 생태라는 인도의 전통적인 농업 개념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인도와 관련해 세운 비전은 인도의 전통적인 방식과는 정확히 반대였다. 이는 자연을 정복하는 것에 기반하여, 투입을 집약적으로 하고, 작물과 (비료나 농약 등에 대한) 의존성을 획일화하는 것이었다. 이를 주장하는 미국 전문가들은 인도의 정치인들에게 성공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그들의 비전이 채택되었다.
녹색혁명을 선택한 모든 나라의 농업 생산량이 증가했다. 하지만 이전에는 간작 작물, 윤작 작물, 가축과 짚을 쓰는 전통적인 수확방식이었음을 고려할 때, 수확량을 녹색혁명 이전과 비교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인도에서 농업 생산량은 녹색 혁명 이후보다 이전이 더 높았다. 또한 보리, 병아리콩 그리고 면과 같은 비 녹색혁명 작물의 생산량은 새로운 품종과 화학비료 없이도 증가했다.
생산량 대비 물이나 화학비료의 단위 사용량을 비교하였을 때 전통방식의 종자들은 화학비료와 관개시설을 사용하지 않고도 녹색혁명의 “고수확 품종”보다 더 높은 수확량을 보였다. 또한 전통적 종자는 가축의 사료가 되는 짚을 생산 했고, 지붕을 이는 재료로도 사용되었으며 토양을 위한 유기물로도 쓰였다.
펀자브(Punjab)의 밀 수확량은 1970년대에 정점을 찍었다. 토양의 침식과 유기물의 토양 유실 때문이었다. 일정한 수확량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더 많은 양의 화학비료가 필요하게 되었고, 이는 오직 큰 농장주들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었다.
1974년이 되자, 필리핀의 쌀 생산자들은 토양의 토질이 낮아지자 고수확 품종의 수확량이 감소함을 알게 되었다. 토질 악화와 환경의 황폐화가 (품종 개발 시)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것이다.
녹색혁명 도입을 장려하고 식량 생산을 증대하기 위해 녹색혁명(종자)에는 세계 농산품 가격의 100%에 이르는 막대한 보조금이 지급되었다.
사회적 영향 녹색혁명이 세계 기아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주장은 실현되지 않았다. 1970 년과 1990 년 사이에 세계 기아 인구가 9 억 4천 2백만에서 7 억 8천 6백만으로 16 % 감소했지만, 이러한 개선은 토지 재분배와 같은 사회 정책과 새로운 기술을 결합한 중국(의 식량 문제 해결)의 성과이다.
중국인을 제외하면, 이 기간에 기아 인구는 실제로 11 % 증가했다. 1973 년과 1983 년 사이에 인도에서는 1 인당 칼로리 소비량이 2,266 칼로리에서 2,221 칼로리로 감소했다. 전 세계 영양실조 어린이의 절반이 거주하는 국가가 바로 녹색혁명이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하는 인도였다.
인도에서 녹색혁명은 몇몇 농민에게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빈부 격차를 증가 시켰다. 부농은 값싼 대출과 노동력, 관개 시설 접근에 더 용이했으며 보다 나은 토지를 경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80 년이 되자 부농의 부채도 늘어났다. 소농은 은행에서 더 이상 돈을 빌릴 수 없게 되었고, 막대한 이자를 지불해야 하는 사채업자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1993 년 ~ 2003 년에 10 만 명의 인도 농민이 살충제를 마시고 자살했다. 그 이후로 평균 30 분에 1 명꼴로 농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토양의 유기물 감소로 토양 비옥도도 부실해졌다. 그루터기와 퇴비가 줄고, 바이오매스를 많이 생산하는 (사료의 주원료인) 수수와 기장을 밀이 대체하게 되었다. 콩류가 윤작에서 제외되어 더 이상 자연적인 질소 고정 작용(생물이 대기 중에 존재하는 질소를 흡수하여 생물체가 이용할 수 있는 상태의 질소화합물로 바꾸는 작용)도 일어나지 않았다. 비료 또한 토양 산성도를 증가시켜 알루미늄 독성을 일으켰다.
새로운 품종은 해충, 질병 및 잡초에 더 취약하여 더 많은 양의 살충제와 제초제가 사용되었다. 따라서 쌀 생산을 위한 살충제 사용이 7 배나 증가했다.
고수확 품종은 3 배 더 많은 물이 필요하다. 농경지 물을 펌프 우물에서 공급받는 펀자브에서는 해마다 지하수면이 30cm씩 감소하고 있다. 관개수로를 사용하는 곳에서는 지하수면의 상승으로 (지하수의 증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지하수가 증발되는 과정에서 남게 되는 염류들이 토양 내에 지속적으로 집적되어) 토양 내에 염분이 쌓여 토양이 나트륨화 되고 침수가 잦아졌다.
유전적 획일성과 단작(單作)이 토착 작물의 생물 다양성을 파괴하였다. 수천 년 동안 농민이 관리해온 전통적 농법으로는 엄청난 수의 품종을 생산했는데 말이다.
녹색혁명 이전에는 최소 3,000 종의 벼가 필리핀에서 재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0 년대에 이르러 대부분의 쌀 재배는 고수확 품종인 인디카종(IR8)에서 비롯된 5 가지 품종만이 생산되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7,000 종의 쌀이 자취를 감췄다.
다양성의 상실은 안정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전통 품종은 일반적으로 더 향기롭고 해충과 질병에 대한 내성이 강하고 단단하고 최소한의 투입물만 필요했다.
새로운 밀 품종은 질병에 훨씬 더 취약했다. 이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3 ~ 5 년마다 새로운 품종으로 교체해야 했다.
유기농 인증을 받은 농민 수(인도 585,000 명, 멕시코 204,000 명, 필리핀 166,000 명)가 가장 많은 두 나라가 녹색혁명으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 나라에는 생태학적 농법을 사용하지만 공식 "유기농" 인증을 받지 못한 농민이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로 눈을 돌리다 녹색혁명 기업들은 이제 세계에서 유일하게 농기업의 지배에서 벗어나 있는 아프리카로 눈길을 돌렸다.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은 농사에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 토종 종자를 가지고 있다.
기업들은 아프리카의 기아를 없애기 위해서는 식량 생산을 늘려야 한다며, 이전에 녹색혁명을 선전했던 동일한 내용으로 떠들어대고 있다.
록펠러재단(Rockefeller Foundation)과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Bill and Melinda Gates Foundation) 등이 설립한 아프리카녹색혁명동맹(AGRA)이 새로운 녹색혁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대부분 몬산토를 비롯한 민간 부문 출신이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게이츠 재단은 몬산토의 일부를 소유하고 있다.
AGRA의 최우선순위는 유전자 변형이다. 지금까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유전자 변형 옥수수를 허용하는 유일한 국가이지만, 다른 나라에까지 변화를 요구하는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
유전자 변형 연구의 기괴한 사례는 카로틴 함량을 높여 "실명을 예방" 하고자 유전자 변형 바나나를 개발에 1,500 만 달러를 지원한 것이다. 이 연구를 수행하는 퀸즐랜드 공과대학교(Queensland University of Technology)의 제임스 데일(James Dale)은 오렌지색 바나나의 아수피나 품종 유전자를 캐빈디시에 삽입하였다.
오렌지색 바나나는 이미 카로틴 함량이 높으며 유전자 변형이나 로열티 지불 없이도 전 세계 널리 재배되고 있다. 게이츠와 데일이 진정으로 영양에 대해 걱정한다면 연구 대신 이 내용을 널리 알릴 것이다.
아프리카의 농업 문제가 심각하지만 녹색혁명이 해결하지는 못한다. 작물-축산-임업을 결합시킨 혼농임업, 멀칭(뿌리 덮개), 피복 작물 재배, 퇴비, 등고선 경작, 간작, 보존 경운(논밭을 갈면서 표면의 30% 이상을 작물의 잔재물로 덮는 경운 방법. 흙과 물의 유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 생물 다양성, 더 나은 방목 관리를 사용하는 농법으로 대체될 수 있는 잘못된 농업 관행으로 토지가 황폐화된 것이 아프리카의 수확량 감소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사용 중인 몇 가지 훌륭한 통합 농법 체계가 있다. 킬리만자로 산의 경사면에 있는 차가(Chagga) 먹거리 숲과 우간다에서의 유사한 경험을 사례로 들 수 있다. 그 중 일부는 1970 년대 빌 모리슨(Bill Mollison)과 데이비드 홈그렌(David Holmgren)이 영속농업을 개발하는데 영감을 주었다.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화학 비료, 농약, 하이브리드 종자 및 유전자 변형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것은 기업이 퍼뜨린 거짓 선전일 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화학 비료, “개량 종자,” 또는 환경과 소비자 건강을 해치는 종자가 없이도 지속 가능한 높은 수확량을 거둔 수많은 사례가 있다.
아프리카에서 사용되는 농생태학 체계에 관한 많은 문헌이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조차도 생태농업이 사람들에게 지속 가능하게 먹거리를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였다.
녹색혁명으로 기업 자본주의는 이전에 침투하지 못했던 곳의 농업까지 침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굶주림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환경 및 사회적 비용도 엄청나게 들었다.
이익은 주로 투입물을 생산하는 기업에게 돌아간다. 이러한 기업들이 생산성 향상을 도용해왔다.
이 녹색혁명 모델을 아프리카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은 이에 순응하는 정부가 아닌, 농민과 이들을 지지하는 조직의 저항을 받고 있다. 이러한 저항은 녹색혁명이 처음으로 도입된 나라들과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산업화 된 국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