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번역] 위기와 저항 사이를 오가는 세계
우리는 저항의 시대에 살고 있다. 거리를 가득 메우고 민중의 필요와 열망에 귀를 닫는 체제에 요구사항을 제기하는 시위에서 그 어떤 국가도 자유롭지 않다. 실업과 정부의 교육, 보건, 빈곤 완화, 그리고 노인 복지 예산 감축으로 수백만 명이 고통과 비참함을 경험한다. 시위의 슬로건은 각기 다른 언어로 쓰였지만, 메시지는 하나다. '우리는 긴축의 고통을 거부하고, 이에 저항하며, 그러한 고통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본 리포트 1월호에서는 글로벌 이슈(1부)의 개괄과 함께, 트라이컨티넨탈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카리브해 및 라틴아메리카(2부) 지부에서 제공한 심층 보도를 다룬다.
1부. 부채와 절망
10년 전 신용 위기가 닥쳤을 때, 미국 정부는 금융 시장을 안정화하고 금융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금을 조달하는 전 세계적 노력(대부분은 미국 연방준비은행(연준)이 지원)을 이끌었다. 잉여자금이 충분한 국가가 금융 기관 구제 자금을 제공하도록 만들기 위한 컨퍼런스가 일정 간격을 두고 끊임없이 개최된 것을 보면, 이를 긴급한 사안으로 인식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실업, 기아, 질병, 그리고 사회 제도의 총체적 잠식(공공부문의 민영화) 등의 절실한 문제를 금융 위기처럼 긴급한 사안으로 인식한 적은 없었다. 전 세계 10억 명에 달하는 인구에게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 자금이 투입된 적도 없었다. 2019 세계 기아 지수에 따르면, 117개 국가 중 43개 국가가 "심각" 수준의 기아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작물에 다량의 독성물질을 사용하고, 재배된 식량의 영양학적 가치가 악화되면서, 아연 결핍 인구와 단백질 결핍으로 고통 받는 인구 수가 증가할 위험이 있지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 국가 수반들이 모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금융 시장이 흔들릴 때 나타나는 공포에 견줄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각국 중앙은행과 UN 산하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서구권과 남반구 국가들은 제조업과 서비스 분야에 대한 자본 저(低)투자, 대다수 분야의 생산성 정체, 이로 인한 저성장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낮은 글로벌 경제 성장률과 저투자는 고용 문제를 심화하고, 더 나아가 사회 제도의 붕괴를 한층 악화시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르면 2021년부터 글로벌 경제가 둔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IMF는 2019년 10월에 발표한 IMF 세계 경제 전망에서 2019년 세계 경제 성장률을 3.0%로 전망했고, 이는 ‘2008-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전망치’였다. 2020년 경제 성장률은 소폭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전망은 ‘중남미, 중동, 유럽의 신흥국과 개도국’의 경제 활동 개선에 대한 기대에 기반한다.. 또한, 브라질, 멕시코, 헝가리, 폴란드의 경제 회복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수출세 회복에도 희망을 걸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IMF발(發) 희망은 위태위태하다. 중남미,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할 것 없이 이들 지역 곳곳은 저항의 물결로 뒤덮이고 있다.
IMF와 IMF의 정책 옹호자들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가장 제한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바로 대내적으로는 긴축정책을 유지하고 대외적으로는 무역 긴장을 종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무역 긴장이 긴축 정책으로 인한 사회의 공동화 현상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일관성이 결여된 정책안이다. 하나의 현상이 다른 현상의 원인이 되고, 두 현상은 서로의 자양분이 된다.
긴축의 시대
약 50년 전,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이 고조되는 글로벌 부채 위기에 항복하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긴축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부채 위기의 압박과 다른 금융조달 경로가 거의 전무했던 제3세계 국가들은 긴축 정책으로 강력하게 무장했다. 긴축의 시대가 탄생한 배경에는 몇 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다.
기술적 요인
세계적인 야심을 지닌 자본주의는 일부 기술적 한계로 그 야심을 펼치는 데 제약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는 아래와 같이 기술적 한계를 극복했다.
- 전 세계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고품질 통신 시스템
- 복잡한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함으로써 기업이 물류를 관리할 수 있게 하는 전산화
- 효율적인 물류 및 표준화. 운송용 컨테이너의 도입으로 운송과 상품 분배에 소요되는 시간이 단축되었다. 국제표준화기구(ISO)의 엄격한 규정으로 세계 어느 곳에서든 상품을 공급받는 것이 가능해졌다. 전기 케이블 등급과 유리 종류의 표준화도 이루어졌다.정치적 요인
바르샤바 조약 회원국의 정치, 경제적 위기 및 제3세계 국가의 부채 위기 이후 소련과 제3세계 국가가 약화한 것은 국제 체제 내, 특히 교역, 개발 및 노동 분야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이 줄어들었음을 의미했다. 소련이 붕괴되고 제3세계가 항복하면서 수백만 명의 노동자가 자본주의 기업에 투입되었다.경제적 요인
이 수억 명의 노동자는 서로 경쟁하게 되었고, 임금차익거래(wage arbitrage, 임금이 저렴한 국가로 사업장을 이전하거나 시장에 저임금 노동자를 유입시키는 행위)가 기업 업무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생산의 분절(워킹 도큐먼트1: 현재라는 폐허에서 내에서 상술)로 다국적 기업은 하도급 제조 방식에 의존하였고, 이는 기업이 직접 생산에 투자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떠한 리스크도 감수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생산에 따른 모든 부담은 제3세계 국가의 하청업체가 고스란히 짊어졌다. 그 덕분에 통상적으로 성장률이 정체되는 기간에도 다국적 기업들의 이윤율은 급증했다.사회적 요인
이들 다국적 기업과 하도급 업체는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세금 파업에 나섰다. 조세 피난처에 감춰놓은 금액은 급격히 증가했다. 조세정의네트워크에 따르면, 조세 피난처에 은닉된 총 자산은 32조 달러이다. 이는 전 세계에서 채굴되어 유통 중인 금의 총 가치의 4.5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렇듯 엄청난 액수의 사회적 부의 소실, 즉, 사회적 생산을 통해 개인이 어마어마한 잉여 가치를 축적한 현상은 미국 재무부와 그 동맹 세력의 압력에 못 이긴 제3세계 국가 정부가 적자지출을 반대하고 균형 예산을 추진하는 것과 동시에 나타났다. 세수입이 줄고, 적자지출을 막는 장벽을 세우면서, (다양한 정치적 목적을 지닌) 국가는 군비 지출이 아닌, 사회, 보건, 교육, 노인 복지, 빈곤 완화 비용 등 사회적 비용을 대폭 삭감했다.긴축 정책
긴축의 세계는 자본주의가 공동체를 형성하는 제도에 가하는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모든 사회적 형태에 막대한 압력을 가하며 사회를 파괴했다. 저항은 필연적이었다. 1970년대 시작된 ‘반(反) 긴축 시위’(1976년 페루 리마에서 최초 시작)는 지배세력을 뒤흔들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시위는 점점 고조되었고, 그 중에서도 1985년 인도네시아에서 개최된 시위가 특히 격렬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출신 앨든 W. 톰 클라우젠은 반(反) 긴축 시위가 최고조에 달했던 1981-1986년 세계은행 총재를 역임했다. 클라우센 전 총재는 반대 시위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사람들이 절박한 상황에 놓일 때, 혁명이 일어난다"고 말하며, "사람들이 강제로 혁명에 휘말리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 이롭다. 환자가 죽는다면 약을 써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에 빈곤과 약탈 정책이 반드시 변해야 한다는 암시는 없었다. 그저 강도짓의 수준이 소요의 원인이 될 정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긴축정책과 약탈은 공존했다.
긴축 체제의 관리자들은 다양한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고, 다양한 정치적 질서 안에서 긴축 정책을 감독했다. 이들 중에는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 장군과 민간인이 섞여 있었다. 21세기 초기 수년간 신자유주의는 긴축 정책의 주요한 사상적, 정책적 기본 틀이자 부유층에게는 우호적이지만 대다수 인류에게는 사회적 지평을 약화시키는 체제였다. 혹독한 신자유주의 하에서 성공에 이르는 수단으로서의 민영화와 기업가 정신은 바싹 말라버렸다. 좌파의 약화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절망감을 조직해 사회 개선을 위한 의제를 갖는 정치 세력을 구성할 수 없음을 의미했다
이 틈새에서 신파시즘이 등장했다. 사회적 절망에 대한 태도가 신파시스트를 연합하게 만들었다. 사회 문제에 대한 그들의 해답은 이민자, 원주민 공동체, 성소수자 등 취약 계층에 대한 비방이다. 우리 시대의 신파시스트는 '타자'의 개념을 이용해 취약 계층의 한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더 크고, 우월하다고 느끼게 만든다. 이와 같은 악의에 찬 대혼란 중에는 '무역 전쟁'이 있다. 트럼프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 내 실업 문제의 원인을 멕시코와 중국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자본주의 논리가 위기에 처했음을 인정하는 것보다 더 쉽다. 남아프리카의 경우, 전국적인 해방 운동의 유산이 이러한 해로운 비방주의에 대한 보호막 역할을 하고 있어 아직까지는 신파시스트의 물결로부터 안전하다.
IMF 수석 경제학자 기타 고피나트는 2019 세계 경제 전망 서문에서 "무역과 지정학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입안자들의 협력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국가 간 무역 체제에 혼란을 야기한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전쟁'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도씨에 7, 금융 자본의 제국주의와 ‘무역 전쟁' 참조) 그러나 바로 그 '정책입안자들' 이 긴축 체제로 대표되는 무역 전쟁의 사회적 기반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양극화된 세계
2009년에 신흥 경제 5국(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브릭스를 결성한지도 10년이 지났다. 브릭스가 부상할 당시, 미국을 세계 질서의 축으로 하는 '단극 체제' 시대가 종식되고, '다극 체제'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브릭스는 미국 정부가 통제하는 기구와 비견될만한 다른 기구(개발은행, 신용평가사 등)를 창설하기 위한 의제를 제시했다. 지난 10년 간, 브릭스 국가 중 브라질과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중대한 내부의 변혁을 겪었다. 계급분파(동일 계급 내 분파)는 점점 사회 민주주의가 아닌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입장에 서고, 인도와 브라질에서는 신파시즘 정권이 집권했다. 신자유주의, 때로는 신파시즘에 대한 이러한 신념으로 이들 3국은 미국의 종속되는 방향으로 기울었다. 브릭스가 다극 체제의 한 축이 될 것 이란 희망은 옅어지기 시작했다.
옌쉐퉁 중국 칭화대학(베이징 소재) 국제관계학 교수는 세계 질서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단극 체제에서 중국과 미국이 초강대국 구도를 형성하는 양극 체제로 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양극 체제로의 전환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고, 양국 간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옌 교수는 핵 억지력이 경쟁 구도가 무력 사태로 악화하는 것을 막아줄 것이고, 무역 전쟁과 제재,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긴장을 조성할 것이며, 이러한 과도기에는 '혼돈과 무질서'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덧붙이며, 중국이 미국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가 2012년에 발간한 보고서 역시 ‘2030년까지 미국, 중국 또는 그 어떤 국가도 패권국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비동맹' 또는 다극 체제 환경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주연 배우의 지위를 상실한 반면, 러시아는 양극 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파트너로 부상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최소 2가지 이유에서 신 양극체제의 구축을 위해 협력해왔다.
오랫동안 미국과 미국의 동맹 세력은 러시아 인접지역까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세력을 확장하거나 일본에서 대만에 이르는 미국의 공격적인 해군 전략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의 주권을 자극하는 전략을 추진해왔다. 이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이어져, 러시아가 유럽 시장에서 소외되는 결과를 낳았지만, 중국과는 더욱 긴밀한 경제적 협력관계를 구축하게 했다.
미국은 중국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미국 기업에 넘겨주도록 하기 위한 시도를 해왔고, 이것이 미-중 무역 전쟁을 촉발시켰다. 중국은 오랫동안 미국 시장과의 밀접한 연결고리를 끊을 방법을 모색해왔다. 유라시아와 인도양을 포함하는 일대일로와 진주목걸이 정책이 이러한 노력에 포함된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은 러시아가 여전히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앙 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했다.
옌 교수는 급속한 중국의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군사력과 문화력(또는 '소프트파워'), 전략적 관계는 미국에 뒤쳐진다고 말한다. 중국은 자국의 영토를 방어할 능력은 있지만 군사력을 외부로 널리 확대할 수는 없고,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다양한 국가들과의 파트너십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점점 강화되는 러시아와의 파트너십은 중국이 미국 정부와는 다른 외교적 입장을 갖는 기반을 제공했다. 이란, 일본(댜오위다오), 시리아, 우크라이나, 베네수엘라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보면 그것이 잘 드러난다.
양극 체제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국제 질서의 무게 중심은 미국과 중국 사이를 오갈 것이다. 양국이 IMF, 세계은행 등의 국제 기구에 대해 일정하게 합의하거나, 각기 다른 기준을 갖고 더욱 이질적으로 교역과 개발을 이해하는 지역 차원의 기구가 생겨날 수 있다. 이러한 분열적 경향이 세계 금융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금융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남반구 국가의 입장에서, 지금의 금융 권력이 유지된다는 것은 양극 체제 하에서도 세계적 차원의 큰 변화는 없을 것임을 함의한다. 긴축 체제에 대한 어떤 대안이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2부. 대륙별 리포트
남아프리카공화국
2018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남아공은 지니 상관계수가 0.63으로 전 세계에서 불평등 지수가 가장 높고, 세대간 이동성도 낮아 불평등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대물림된다. 남아공의 엘리트와 중산층에서 백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이전만큼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빈곤은 여전히 흑인 인구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2020년에는 남아공이 저성장과 낮은 일자리 창출률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노동연령층 인구의 증가는 실업, 빈곤, 불평등 문제를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남아공의 경제성장률은 6년 연속 인구성장률을 밑돌게 되었다.
특히 청년층에 심한 타격을 가한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실업위기와 장기적인 저성장은 이미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많은 평론가는 현재 남아공의 상태가 정치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아프리카민족회의(ANC)와 경제자유투사(EFF, 남아공 급진정당) 모두에서 나타나는 외국인 혐오 폭력과 권위주의 포퓰리즘이 더 많은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위기의 언어가 모든 정치 스펙트럼에 걸쳐 사용되고 있다.
엘리트가 차지한 공공 영역에서 나오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긴축, 민영화, 노동조합 때리기 등 일련의 신자유주의 조치를 강력히 추진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남아공 재무장관이 제출한 일련의 제안은 대기업, 우파 싱크탱크, 대부분의 대중 방송 해설가, IMF 등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부패
공개 토론과 국민 여론 대부분은 제이콥 주마 정권(2009~2018) 하에서 탄생한 도둑 정치(kleptocracy, 빈국에서 통치계층이나 정부에 의해 이루어지는 부패 체제)에 대한 광범위한 반대에 근간을 두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도둑 정치는 급진적 민족주의의 탈을 쓰고 자신을 정당화하고, ‘가짜 뉴스’를 유용하게 활용하면서 계속해서 여당과 EFF의 강력한 정파로부터 든든한 지지를 받는다.
주마 정권 당시 국영기업의 심각한 방만 경영으로 결국 국고에서 약 1조 란드를 낭비하게 되었다. 이렇든 엄청난 부패와 공적자금 운영상의 대대적인 실책으로 국민 대부분이 정부에 대한 신뢰도를 상실했고, 심지어는 민영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 매력적으로 들리게 만들었다.
타보 음베키 정권(1999-2008) 시절, 정부는 정부/준정부 기관을 활용해 흑인 다수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도둑 정치는 사회 변화를 추동하고 경제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는 정부의 능력을 심각하게 저해했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땅바닥에 떨어지다 못해 일부 노동조합이 이제 민영화를 지지할 정도이다.
이와 동시에, 주요 노조의 주마 정권 지지와 일부 노조가 심각한 부패(심지어는 조직 폭력 행위)의 나락에 빠지자 사회에서 노조의 입지도 약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우파의 노조 때리기 열풍을 불러왔다. 노조는 이제 도둑 정치의 협력 세력, 또는 (어느 저명한 평론가의 말을 빌어) 긴축에 반대하면서 물가상승률에 연동해 매년 급여를 인상할 것만 요구하는, ‘국익’을 저해하는 ‘빌어먹을 놈들’로 묘사되고, 왜곡된다. 많은 공적 인물이 노조를 지칭할 때 마거릿 대처가 말했던 ‘내부의 적’이라는 악명 높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긴축
남아공은 국가신용도 하락이라는 실재적인 위협에 시달린다. 신용평가사가 신용등급을 발표할 때마다 언론에서는 발표 내용과 그것이 국가에 미칠 영향에 대해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러한 언론의 히스테리는 정부가 긴축 정책을 도입하기 위해 대중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대중은 긴축 정책이 시행되지 않으면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할 것이고, 그 결과는 재난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끊임 없이 듣는다.
또한 언론은 GDP 대비 부채 비율과 공공부문 임금 법안에 대해 병적일 정도로 보도를 쏟아낸다. IMF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 평균 GDP 대비 부채 비율은 82.9%로 예상된다. 선진국은 103.7%, 신흥경제국은 55.1%로 예측되었다. 남아공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60.8%로, 브라질(92.4%), 아르헨티나(69%), 인도(67.8%), 이집트(84.6%), 파키스탄(79.1%)보다 낮다. 남아공에는 GDP 성장 문제 가있는 것이지 부채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3년 간 정부는 2,000억 란드에 이르는 지출을 삭감했다. 재무부는 2019년 10월 중기예산안에서 향후 2년 간 삭감해야 할 것으로 파악된 금액이490억 란드라고 밝혔다. 거기에 더해 1,500억 란드 이상의 추가 긴축 조치를 희망했지만, 어느 부분에서 예산을 삭감할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긴축은 GDP 성장률을 낮추고, 낮은 GDP 성장률은 정부의 세수를 줄게 만들어 결국 높은 재정 적자와 높은 부채 비율로 이어지게 한다. 이것이 GDP 대비 부채 비율의 증가로 이어진다.
언론은 추가 삭감이 가능한 최선의 선택지는 공공부문 임금 법안이라는 담론을 밀고 있다. 예산내역서를 보면, 공공부문의 평균 보수액은 2010년-11년 이래로 연평균 8% 증가했는데, 이는 나머지 경제 전반에 걸쳐 임금이 7.2% 상승한 것을 감안하면 상승률이 월등히 높은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인구 대비 공무원의 비율과 총 공무원 수는 국제 기준에 한참 미달한다.
좌파 프로젝트
최근까지 남아공의 정부 기관에 떠넘겨진 공무원의 부패로, 이제는 우파가 반부패와 긴축 담론을 융합하기 쉽게 되었다. 그 결과, 우파의 경제 담론이 전국에서 남아공의 경제문제를 해결한 유일한 방법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지난 10년 간 정부의 실책으로 공공 영역에서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었다.
공공 영역에서 좌파의 언어를 구사하는 주요 세력은 ANC 내에서도 도둑 정치를 일삼는 주마 정파와 포퓰리스트적이고(그리고 역시 부패한) 인종에 기반한 EFF이다. 이렇듯 약탈적이고 권위적인 구조가 좌파의 언어를 강탈해 간 탓에 좌파의 언어는 심각하게 신뢰도를 상실했고, 도둑 정치의 위장 수단 그 이상으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긴축, 민영화, 노조 때리기에 대한 대안을 제안하는 것을 통해 좌파 프로젝트가 신뢰도를 회복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ANC 내 주마 정파와 EFF의 도둑 정치와 도둑 정치의 유일한 대안으로 묘사되는 신자유주의 정책 모두에 명확하게 반대하는 담론과 정책 프레임워크가 필요하다.
우파 경제 사상이 뿌리를 내리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조직된 진보 지식인 프로젝트의 부재다. 진보적인 경제학자와 정책 전문가는 있지만, 이들이 실질적인 정치적 세력으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그 결과, 남아공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남아공의 경험과 긴축 정책이 적용되고 그것이 국가의 안정과 안보에 영향을 미친 다른 나라의 경험이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인도
인도 경제가 심각한 침체에 직면하고 인도 정치와 사회가 위기로 심하게 흔들리면서, 우파 힌두교 우월주의자들이 정부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인도인민당(BJP) 정부는 사회의 깊은 상처를 해결하려고 노력을 기울이기는커녕 국가를 비참함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다.
위기가 진행 중이라는 신호는 수 년간 나타났다. 장기간에 걸친 농업 부문의 어려움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이러한 어려움은 정부가 농업과 농촌 경제를 방치했기 때문이며, 가뭄과 홍수와 같은 극심한 기후 문제가 빈발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인도 라자스탄 주와 마하라슈트라 주의 농민은 농산물에 대한 정당한 가격, 농업에 대한 공공 투자 증대, 소규모 자영농을 위한 저리의 신용 제공 등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이에 대해 집권 BJP는 궤변이나 늘어놓는 무심한 태도를 보였다.
산업과 서비스 부문도 농업 경제를 뒤따라 곤두박질쳤다. 정부의 고용 조사결과를 보면 고용률은 하락하는 반면 실업률은 지난 40년 넘게 보지 못했던 수준으로 높아졌다. 산업생산지수도 성적표가 좋지 못했다. (특히 자동차와 건설무문 지수 하락) 농민뿐만 아니라 이제는 건설 노동자 사이에서도 수 많은 자살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고액권 화폐의 통용을 정지(원래는 부패문제 해결 목적)하고 새로운 간접세 제도(통합간접세, GST)를 도입한 나렌드라 모디의 그릇된 행동으로 대부분의 인도 비농업 부문 일자리를 창출하는 비공식 부문이 약화되었다. 비공식 부문(소규모, 가족 기반의 소매업 포함)은 공식적인 가치 창출 기여도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비농업 부문 노동력 대부분이 비공식 부문에 종사한다. 집권 BJP는 통합간접세가 비공식 부문을 과세 영역으로 전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낮은 마진으로 운영되는 사업체의 비용부담이 높아져 경영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이제 대기업 재벌은 위기에 처한 소매업체를 더욱 손쉽게 시장에서 일소 할 수 있게 되었다.
금융위기
인도 대기업 재벌과 억만장자들은 여전히 공공 부문 은행이 지배적인 인도 은행 부문을 사취하고 피해를 입혔다. 지난 10여년 간, 인도 기업은 국민들이 국영 은행에 예치한 예금을 가지고 마구잡이 투자에 나섰다. 투자 대부분이 허구였고, 조세도피처로 돈을 빼돌리는 데 사용되었다. 이렇게 정부가 은행 사기에 일조하면서 엘리트 계층은 이들이 실제 인도 경제에 기여하는 정도와는 비견되지 않을 정도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이러한 금융 낭비로 인도 은행은 더 이상 경제에 투자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운용 자본과 투자 자금 조달을 위해 은행에 의존했던 소규모 기업과 사업체는 차례로 폐업하거나 운영 중단에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어느 쪽이 되었든 노동자는 실업자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 그러나 잉여 자금을 보유하고 은행이 아닌 곳으로부터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는 대기업은 투자를 하지 않거나 투자 규모를 감축 하고있다. 주로는 발전, 철강, 자동차 같은 산업 부문에서는 과잉 설비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GDP 수치상으로 보면 인도 경제는 거의 정지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 투자와 소비가 낮을 것으로 예측되면서, 인도 경제 내에서 성장률을 회복하고 고용 창출을 자극할 자발적인 메커니즘이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미지가 아닌 현실을
BJP는 국민의 삶을 회복하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이들의 관심사는 이미지와 언론 관리일 뿐이다. 정부 보고서에 경기 침체의 증거가 포함되면, 그 보고서는 묵살된다. 그러한 보고서는 내부고발자를 통해서나 대중에 공개된다. 정부 보고서에 실업률이 지난 45년을 통틀어 최고치라는 내용이 실리자, BJP는 보고서 공개를 2019년 선거 이후로 미루었다. 소비수준이 40년 만에 처음으로 하락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을 때에는 정부가 그 결과를 폐기했다.
BJP 정부는 고용을 늘릴 수 있는 공공 투자의 증대를 거부하기 위한 목적으로 경제 번영이라는 헛된 환상 뒤에 숨어버린다. 그리고 공공 투자를 늘리는 대신 법인세 삭감폭을 더욱 높여 공공 지출을 위한 소득원을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민간기업을 달래기 위해 전략적으로 수익성이 좋은 공공 부문 산업체를 민영화한다. 민간기업은 이러한 공기업을 싼 값에 사들이고, 공공 자원을 잠식하며 자신의 배를 불린다. 이것이 바로 인도 엘리트 계층의 순자산이 경기 침체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이유이다.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기업인인 무케시 암바니를 예로 들면, 순자산이 약 6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힌두민족주의
BJP가 경제 문제를 방치하는 것은 인도를 힌두교 국가(힌두민족주의)로 전환하려는 독특한 목표와도 궤를 같이 한다. 고삐가 풀린 우파 세력이 소수자를 공격하는 동안, 정부는 소수자의 권리를 점차 줄여왔다. BJP는 인도에서 종교적 양극화를 만들기 위해 정부가 취한 일련의 조치가 경제 문제를 가려줄 것이라 생각한다.
잠무-카슈미르 민중이 바라는 것과는 반대로, 정부는 각 주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헌법 370조를 폐기했다. (자세한 내용은 적색경보 1: 카슈미르 참조) 카슈미르 주의 민중은 기본적인 자유를 박탈당했고, 주는 2019년 8월부터 봉쇄 상태에 처했다.
27년 전, BJP 계열의 여러 단체가 16세기에 건설된 모스크를 파괴했다. 이러한 단체들은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힌두교 사원을 짓고자 했다. 법원은 자연적 정의(영국의 법 원리. 편견배제원칙과 쌍방청문원칙으로 구성) 원칙과 사실관계에 반하여 이들 단체들의 손을 들어주었고,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힌두교 사원을 세울 수 있게 허락했다.
그리고 BJP는 아쌈주에서 국가시민명부(NRC)를 도입하면서 인도 내 무슬림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심화했다. NRC의 공식적인 목적은 불법 이민자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지만, NRC와 2019년 시민권법 개정안을 보면 BJP가 종교 정체성을 둘러싸고 양극화를 심화하고자 한다는 것이 명확히 드러난다. 아쌈주에서만 해도 2백만 명이 NRC 등록이 되지 않아 인도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할 위기에 놓여 있다. NRC와 시민권법 개정안의 영향은 광범위하지만, 주로는 소수민족 공동체를 배제하고 다수파주의 정서가 확대될 것이다.
소요
BJP가 종교적 양극화를 통해 불평등과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근원적인 문제로부터 대중의 관심을 돌리려고 했지만, 대중들, 특히 농촌과 도시의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정부에 대한 분노와 환멸이 쌓이기 시작했다. 좌파 운동이 이러한 민중의 고통과 환멸을 사회 운동으로 전환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었지만, 인도 좌파는 그러한 역량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좌파가 이끄는 강력한 블록이 없으면 공포감이 전체 사회 운동에 해를 끼치게 된다. 좌파가 아닌 반대 세력은 BJP와도 동맹을 맺는 등 기회주의적인 연합체로 전락해버렸다.
농민과 노동자의 행진은 인도에서 일상적으로 있는 일이다. 학생 시위도 마찬가지다. 그 중 하나가 델리에 있는 자와할랄 네루 대학교에서 기숙사 요금 인상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운동이다. 학생들은 고등 교육의 민영화와 대학을 우파 사상의 요새로 만들려는 시도에 반대하며 투쟁하고 있다. 학생, 농민, 노동자, 소수자 모두가 운동의 선봉에 서 있다. 이들의 운동이 우파의 지배에 도전할 정도로 강력해질 지는 앞으로 더 지켜보아야 한다.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 민중은 적어도 2015년부터 보수 신자유주의 세력의 공세에 직면했다. IMF와 강대국이 연금, 에너지, 노동, 교육, 보건 부문에 대한 광범위한 친시장 개혁을 추진했고, 중남미 지역의 보수 신자유주의 세력이 이를 밀어붙였다. 이러한 공세로 초국적 민간기업의 천연상품(natural goods, 천연자원을 상품의 형태로 가공한 것) 전유가 심해졌고, 미국의 개입과 미국에 대한 종속도 심화되었다. 이러한 보수 신자유주의 정책은 선거, 의회 쿠데타 또는 제한, 우파 연정 등을 통해 추진되었고, 자유민주주의 형식을 제한하고 보수(심지어 신나치주의적, 인종차별주의적인) 문화에 힘을 실어주었다. 지역적인 불안정성과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이러한 정책들은 약탈과 착취를 더욱 증가시켰고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불러왔다.
신자유주의 공세의 위기와 재편
2019년 한 해 동안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은 신자유주의 공세의 한계, 위기, 그리고 재편 과정을 겪었다. (도씨에 22,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신자유주의 공세와 새로운 저항 사이 참조) 한편에서는 대중 봉기, 대규모 집회, 제도와 선거를 통한 변화가 일어나 민중이 IMF가 추진한 친시장 개혁 정책을 거부함을 보여주었다. 긴축 체제 전체가 정당성의 위기를 경험한 것이다. 10월에는 이 지역 각국의 민중이 거리로 나와 신자유주의와 구조조정 정책을 펼쳐온 정부를 위협했다.
그런가 하면, 11월 초 볼리비아에서 있었던 쿠데타와 이후 자행된 대중 운동에 대한 유혈 탄압은 제국주의 공세가 권위주의적이고 군국주의적이며 탄압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데 있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었다. 볼리비아 쿠데타 정권은 칠레, 콜롬비아, 에콰도르, 아이티 정부가 반정부 집회와 사회 불안에 똑같은 방식으로 대처했던 것을 그대로 따라 해 폭력이 활개치게 만들었다. 이러한 보수 정치는 카리브해와 라틴아메리카 지역을 피로 물들였다. 10월 말 이래로 100명이 넘게 암살당했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으며, 수천 명이 구속되었다.
하이브리드 전쟁에서 쿠데타까지
많은 이들이 미국과 미주기구(OAS)가 볼리비아 쿠데타 상황을 관리하는 데 개입한 것을 규탄했다. 이러한 개입은 중남미 대륙에서 자행되는 제국주의 개입의 역학과 강도를 잘 보여준다. 2019년 초부터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은 하이브리드 전쟁(한 국가가 가진 정치, 경제, 군사적인 약점과 한계를 이용하는 것)의 고조라는 맥락에서 외부로부터의 군사개입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한 혹독한 금융, 상업, 언론 봉쇄를 증대했다. (도씨에 17, 베네수엘라,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에서의 하이브리드 전쟁 참조)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군사적, 경제적 봉쇄로 질식 당할 상황에 처했음에도 베네수엘라와 쿠바 정부와 이들 정부가 상황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회복력은 신자유주의 공세와 중남미 대륙 내 민중 저항의 투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진보와 반동 세력이 싸우는 전장이 새롭게 계속해서 형성되기 때문에, 하루 하루 새로운 위기가 찾아온다. 이러한 전장은 라틴아메리카 지역이 미국과 중국의 세력 싸움에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험지역임을 보여준다. 한편에서는 미국의 군사적, 외교적 개입이 다른 한편에서는 상업과 인프라 건설 사업을 통한 중국의 경제 개입이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저항
2019년 4분기에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에는 투쟁의 물결이 넘실댔다. 특히, 2019년 중반에 시작된 아이티에서의 민중봉기는 시위와 그에 대한 탄압의 기간과 정도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또한 아이티는 더 넓은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독립혁명(1823년)을 이룩한 최초의 국가로 유명하다. 아이티의 독립혁명이 이 지역 내 다른 국가에 영감을 준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도씨에 8, 아이티에서 뿌리뽑기: 혁명적 과거의 속삭임과 미래 참조) 저항의 사이클은 우선 조베넬 모이즈의 긴축 정부를 타깃으로 삼았다. 그러나 미국의 베네수엘라 금수조치에도 반대했다. 이 조치로 아이티가 페트로까리베(베네수엘라와 카리브해 국가 간 원유 제공 동맹)로부터 연료를 수입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적색경보 4, 아이티 참조) 저항은 이후 수 개월에 걸쳐 계속되었으며 더욱 심화되었다.
칠레 대중 집회와 시위(2019년 10월에 시작), 에콰도르 시위(특히 2019년 10월 2일~13일 사이), 콜롬비아 장기 전국 파업(2019년 11월 21일 시작), 그리고 아이티 시위는 계속해서 중남미 지역을 뒤흔들었고,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에 도전했다. 이들 집회에는 많은 유사점이 있다. 첫째, 신자유주의 아젠다에 따른 주요 개혁안 중 하나에 대한 반작용으로 저항이 촉발되었다. 대표적으로는 연료에 대한 보조금 삭감과 그에 따른 교통비, 식료품 가격의 인상이다. 둘째, 저항이 급속도로 확대되었던 이유는 빈곤과 신자유주의 정책의 다른 측면으로부터의 약탈에 직면한 사회 계급이 저항의 주요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불안은 점차 밖으로 퍼져나갔고, 쉽게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2019년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저항은 2000년대에 이 지역에 대한 기존 신자유주의 공격의 헤게모니를 파괴했던 저항과 그 맥을 같이한다. 장기간의 저항, 대중성, 청년과 여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 점, 대중 계급을 투쟁에 동원한 점, 거리와 광장을 점거한 것 등은 모두 지난 시기의 투쟁과 많이 닮았다. 이 지점에서 신자유주의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새로운 단계가 과연 열릴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정당성의 위기가 가진 방법과 한계
중남미 지역에서 신자유주의의 정당성이 위기를 겪는 것은 거리에서만이 아니라 선거 결과에서도 나타났다. 2019년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2015년 이래로 국정을 운영해 온 보수 연정이 패배한 것이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2019년 12월에 정권을 잡은 아르헨티나의 새로운 좌파 정부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즈 대통령은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라는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에 취임했다.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는 이미 심각한 수준의 대외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IMF로부터 추가 차관을 받기로 한 것을 포함, 가혹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용한 것에서 촉발되었다. (도씨에 10, 아르헨티나, 다시 IMF에 의존하다 참조) 새 정부가 전 정권에서부터 물려받은 문제가 산적해있는데다, 우파 세력이 미 제국주의의 지원을 받는 상황에서 국정 운영에 대한 위협과 어려움으로 정부의 취약성도 증가했다. 아르헨티나 좌파 정부의 동맹은 볼리바리안 혁명 과정에 속한 국가들과 멕시코의 로페즈 오브라도 정부뿐이다.
또 다른 희망은 루이즈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전 대통령이 580일에 걸친 부당한 구속수감 생활을 마치고 석방되었다는 데 있다. 룰라가 수감되었던 기간 동안 벌어진 룰라 석방 운동은 경제위기와 아마존 산불과 천연상품 전유 정책 심화로 자이르 보우소나루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도씨에 14, 브라질 아마존: 대지의 부는 인류의 빈곤을 낳는다 참조) 속에서 벌어졌고, 브라질 좌파가 아젠다를 명확하게 표출하는 통로를 제공했다. 한편, 페루의 제도적 위기는 의회가 부패 혐의로 휴회하면서 의회의 정치적 생명에 오점을 남겼다. 2020년 1월에 치러질 국회의원 선거에서 긴축을 주장하는 정당이 유권자의 신임을 받지 못한다면 페루에도 일정하게 국가 안정성을 위한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권위주의적 대응
반면, 저항과 시위는 정치적 위기를 촉진하기는커녕 부분적인 양보와 강력한 탄압 정책 시행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가장 최근의 신자유주의 물결은 법률 전쟁과 같은 메커니즘을 이용해 권력을 되찾고 공고화하려 했다. 법률 전쟁은 법을 우파의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자유민주주의 체계를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신자유주의와 신파시스트의 공격은 국가 폭력의 무자비한 사용, 민주적 자유의 축소, 그리고 국내 차원의 문제에 직접적인 군사 개입 실시 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고, 이렇게 더욱 폭력적인 메커니즘은 권위주의로의 경향을 심화한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과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 부통령을 축출하고 망명에 이르게 했던 볼리비아 쿠데타는 이들의 소속한 정당(사회주의운동당, MAS)의 의원과 투사, 그리고 대중 운동에 대한 탄압을 선동했고, 원주민에 대한 혐오를 공공연하게 표출하는 것으로도 이어졌다. 여기서 현재 자행되는 공격의 특성이 잘 나타난다. 이러한 권위주의적이고 인종차별주의적인 정권의 정책 방향은 대체로 중남미 지역 내 각국을 신자유주의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달라졌을 뿐, 목표는 언제나 같다.
전망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이 가진 두 얼굴을 모두 살펴보았다.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거부가 늘어나고 있는 반면, 지역 정세로 보면 미국의 비호 하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옹호하는 정부가 점점 더 권위주의적이 될 위험성이 있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정책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정부는 앞서 말한 긴장을 민주적이고 대중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가장 최근 사례: 아르헨티나)과 우리가 신자유주의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나아가는 길에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더욱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