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라는 아젠다, '키핑'이 필요하다
최근 손석희 앵커는 '장면들'이라는 책에서 '아젠다 키핑(의제 지키기)'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중요한 아젠다를 선정하고 지속적으로 보도함으로써 문제제기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지켜야할 중요한 아젠다는 무엇일까?
11월 13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린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이하 COP26)가 폐막했다. 10월 31일부터 시작해서 약 2주간 진행된 이 회의는 지구의 온도 상승을 1.5도씨 이하로 '키핑'하기 위해 각국이 모여 논의하는 자리였다. COP26를 앞두고, 혹은 진행되는 동안 각국에서는 탄소배출량을 얼마나 감축할지, 어떻게 감축할지에 대한 의제가 적어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가장 중요한 헤드라인을 장식하기도 했다.
하지만 COP26이 폐막한지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기후 위기에 대한 뉴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각에도 기후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렇다면 왜 이 기후위기라는 아젠다는 '키핑'되지 않고 사라지는 걸까?
11월 5일부터 10일까지 직접 글래스고에서 COP26 회의장 안팎을 본 필자의 결론은 '온도차' 때문이다. 기후위기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들과 기후위기를 그저 하나의 리스크로 보고 이익을 위해 이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논하는 사람들 사이의 '온도차'. 문제는 모든 결정권이 전자가 아닌 후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COP26은 13일 폐막하면서 <글래스고 기후 합의 Glasgow Climate Pact>를 대표 결정문으로 채택했다. 합의 결과 기후적응기금을 증액하고, 기후변화협약 시작 이래 처음으로 화석연료 퇴출이 언급되고, 기후위기 손실보상 의제가 회의장에서 논의되는 등의 성과는 있었다. 하지만 석탄 발전은 퇴출이 아니라 단계적 감축으로 후퇴했고, 지구의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내년에 다시 점검하기로 하면서 사실상 기후위기의 해결을 위한 지금 당장의 행동은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사항들이 논의되고 결정되는 동안 회의장 밖에서는 어떤 모습들이 펼쳐졌을까? 11월 6일 토요일에는 현지 주민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기후 위기의 긴급성과 지금 당장 행동을 요구하며 직접 행동에 나선 “기후정의 세계공동행동” 집회와 행진이 글래스고 시내에서 열렸다. 비가 오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었지만 글래스고의 캘빈그로브 공원에는 원주민, 이주민, 농민, 청년, 평화운동가, 페미니스트, 주거정의 운동가, 종교인, 멸종반란 활동가, 노동자, 진보정당 활동가, 일반 시민 등 10만 여명이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행진과 집회에 참여했다. 길거리의 민중들의 요구는 다양할 뿐만 아니라 매우 절박했다.
“지금 당장 기후정의”부터 “화석연료에 재정지원을 중단하라”, “페미니스트는 체제 변화를 원한다”, “주거 정의가 곧 기후정의이다”, “그린워싱을 멈추고 지금 당장 행동하라”, “정의로운 일자리 전환”, “COP26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까지 어린 아이부터 백발의 노인까지 지금 당장 진정한 변화를 위한 행동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11월 7일부터 12일까 민중총회(People’s Assembly)”라는 이름으로 글래스고 시내 곳곳에서 각국, 각 단체에서, 각 주제별로 기후 정의를 위한 활동을 공유하고, 토론하고, 힘을 모으는 세션과 공간이 열렸다. 필자도 민중총회 세션을 참가하기 위해 곳곳을 찾아다녔지만 몇몇은 이미 정원이 다 차 버려서 아쉽게 직접 참여하지 못한 세션들도 있다. 아쉬웠지만 사람들의 높은 관심에 내심 기분이 좋았다. 다음은 직접 참여했던 세션의 간단한 내용이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기술로 온실가스를 감축시킬 것을 발표하는 항공산업계의 그린워싱을 폭로하는 세션, 핵확산금지조약의 모델을 이용해 화석연료사용확산금지조약을 국제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각국의 단체나, 개인, 정치인들의 지지를 모으는 활동해 온 단체의 세션, 그리고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가 시작해서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 활동을 스코틀랜드에서 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세션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매일 저녁 운동 진영이 모여 주제별(원주민, 여성주의, 노동 등)로 활동을 보고하고, 전략을 세우고, 힘을 모으는 운동진영의 총회도 진행되었다.
또한 COP26 회의장에는 모두가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회의 참가자나 옵저버로 등록된 단체나 개인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이 회의장 입구에서는 매일 여러 단체와 개인들이 모여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피켓을 들며 99%의 목소리를 듣고 지금 당장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결정을 내릴 것을 촉구하는 활동들이 이어졌다. 회의장 앞에서 만난 한 예술가는 영국 남부에서 900km를 글래스고 회의장 앞까지 걸어 왔고,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이 코트에 작은 패치 한조각씩 붙여 주었다고 설명했다. 작은 헝겊조각에는 기후정의 실현을 요구하는 메시가 담겨 있었다. 그는 회의장에 들어가는 사람들에 코트를 입어볼 것을 권하고 있었다. 글래스고에 직접 오지는 못했지만 기후정의를 강렬하게 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의 무게를 느끼고 회의장에 들어가기 원했던 것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COP26회의가 열리기 전부터 이번 회의는 “기후변화 대응에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해”임을 강조했다. 적색경보가 세계 곳곳에서 울리고 있는 지금, 적절한 목표를 세우고 대응하지 않으면 기후 재앙은 필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1월 1일에는 전세계 정상이 모여 각국이 모여 발표한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는 -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도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를 감축하겠다는 “상향된” 목표를 자랑스럽게 발표했지만 - 필요한 감축량에는 미치지 못했고, 그마저 아무런 결론 없이 COP26은 폐막했다.
세계 곳곳에서 원주민들은 기후 위기와 초국적 에너지 기업의 화석 연료 추출 때문에 당장 생활터전을 잃고 있다는 울분이, 어린아이들부터 청소년까지 “기후 불안증”으로 기후 위기의 해결 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절절한 호소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하지만 회의장 안에서는 “위기”라는 용어보다는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을, 산업계는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 파괴되는 것과는 상관없이 이해타산을 따지며 자신들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으며 회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절박함과 위기의식보다는 아직은 시간이 있다는 여유로움을 부리는 이 온도차이. COP26이 폐막했으니 이 온도차이는 우리가 관심가지지 않는 사이 더 커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길 때까지 싸우지 않으면 공멸하는 기후위기의 문제는 99%가 연대해 투쟁할 수록 해결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작은 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가 끊임없이 이 의제를 지키면서 연대하고 행동하며 해결을 요구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