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재군사에 맞서는 일본인들
인터뷰: 송대한, 마이클 맥그라(네트워크 팀)
번역: 심태은(번역팀장)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전국회의(平和と民主主義をめざす全国交歓会, 약칭 ZENKO(젠코))”의 전국 상임위원인 히나다 세이시와 진행한 인터뷰이다. 젠코는 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을 기반으로 1970년에 창립되었다. 히나다 상임위원이 젠코에 합류한 것은 히로시마에서 반핵 평화 운동을 하는 대학생 활동가였던 1981년이다. 국제전략센터의 송대한 네트워크팀장과 회원 마이클 맥그라는 온라인으로 그를 인터뷰했다. 본 인터뷰는 내용의 명확성과 간결성을 위해 편집되었다.
질문: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많은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다. 어떤 경우는 역설적이고 모순적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인 맥락과 과정을 살펴보면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일본과 미국의 관계를 조금 더 살펴보고자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서로 적대했던 사이가 아닌가. 게다가 미국은 2개의 핵폭탄을 투하하고 도쿄에 공습을 가하는 등 엄청난 공격을 퍼부었다. 그런데도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의 수는 약 55,000명이고 일본 내 미군 기지는 85개나 된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오키나와에 있는 상황이다. 오키나와 주민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고 알고 있는데, 일본의 일반 대중은 미군 주둔에 관해 대체로 어떤 입장인가? 그리고 이런 입장이 형성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답변: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미국이 가장 먼저 비무장화한 것이 바로 일본군이다. 현행 일본 헌법 9조(일명 평화헌법)에서는 전쟁과 군사력의 포기를 명시하고 있다. 일본은 히로히토 일왕이 일본 제국의 수반으로서 전쟁 기간 자행된 전쟁 범죄를 면죄받는다는 것을 조건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결국 히로히토 일왕은 일본의 전후 파시스트 헌법의 상징으로 규정되었다. 한편,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2개의 도시에 핵폭탄을 투하하여 수천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는데도 국제법 위반의 책임을 지지 않았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양국 지도층이 서로 결탁한 것이다. 미국은 히로히토 일왕이 한국을 식민 지배하고 중국과 다른 아시아 국가를 침략한 것에 관한 책임을 묻지 않았고, 일본은 미국이 핵폭탄을 투하하여 민간인을 무자비하게 불법적으로 대량 학살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이다. 양국이 이렇게 결탁한 것은 미국이 일본을 소련에 맞선 반공 요새로 만들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전쟁 후에 일본을 부추겨서 재무장을 시작하게 만들고 상당한 수의 미군 기지를 일본에 만든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양국의 밀월 관계는 일반 대중이 일본이 전쟁에 책임을 지고, 또 미국에 (학살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을 잊게 했다. 그 결과, 오키나와 등지에서 미군 기지로 직접 고통을 받는 사람을 제외한 보통의 일본인은 일본 내 미군 기지에 매우 관대한 입장을 갖게 되었다.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 반대 운동은 일본 내 다른 곳보다 상당히 강력하다. 최근에는 오키나와의 젊은 세대가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오키나와에는 다른 일본 지역보다 훨씬 강력한 평화 운동이 존재한다.
질문: 현재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신냉전을 벌이고 있으며, 미국 군사 전략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한-미-일 군사 동맹이다. 한국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 군사 동맹의 강화를 촉진하기 위해 많은 양보를 했다. 일본에서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향후 5년간 군 예산을 50% 증액하겠다고 공언했다. 일본 대중은 재무장 노력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여러 지역에서 연설하면서 경험한 반응을 소개해 주어도 좋다.
답변: 일본 정부는 대규모 군비 증강과 외국기지 타격 역량 확보 정책에 관한 대중적 지지를 얻을 목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한의 로켓 발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군비 증강의 경우, 일반 대중은 해당 정책을 지지하기는 하나 맹점이 있다. 군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하는데, 이를 위해 세금을 늘리겠다고 하면 지지율이 떨어진다. 따라서 기시다 총리는 대놓고 세금 인상을 말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사회 복지, 의료, 교육 등 다른 부문의 예산을 삭감하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본 인구는 이전에 예측한 것보다 훨씬 빠르게 줄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획기적인 조치를 내놓으라는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미 예산의 상당 부분을 군사비에 할당했기 때문에 그럴 재정적 역량이 없다. 이런 모순을 폭로하면 더 많은 사람이 지금 이 시대에 군사 동맹과 군비 증강 정책이 아닌 평화적인 대화와 비무장으로 시급히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대중의 의식도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시다 총리의 지지 기반이 그렇게 강하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질문: 군비 증강에 관한 야당의 입장은 어떤가?
답변: 일본 의회 구성을 살펴보면, 여당은 자민당과 공명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야당으로 분류되는 정당 중 2개는 사실 정부에 반대하는 일이 거의 없고 오히려 이들과 연정을 구성하려 한다. 일본 유신회는 여당보다도 훨씬 오른쪽에 있는 정당이다. 실질적인 야당은 일본 공산당과 일본 입헌민주당, 일본 사회민주당, 기타 군소 진보 정당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의석수로 보면 절대적 소수이다. 따라서 의회 활동 자체가 참 어렵다. 이런 정당이 절대적 소수이므로, 의회 밖에서 사회 운동이 강력하게 이들을 뒷받침해야 한다.
질문: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를 7월부터 방출할 것이라고 한다. 일본 대중은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특히 후쿠시마 주민들의 상황은 어떠한가?
답변: 일본 대중의 의식은 기업 언론이 통제하고 있다. 이런 언론은 오염수 방출 사실이나 후쿠시마의 상황을 거의 보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인터뷰가 있기 약 일주일 전에 도쿄전력 사옥 앞에서 오염수 방출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그리고 후쿠시마에서도 운동이 진행 중이다. 후쿠시마 어민 협회가 매우 강력하게 오염수 방출에 반대하고 있다. 정부는 어민들의 이해와 협조 없이는 오염수를 방출하지 않겠다고 주장하지만, 아직도 어민들의 이해를 구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민들은 아직도 강력하게 오염수 방출을 반대한다. 그렇지만 일상적인 뉴스나 주류 언론에서 이런 내용을 보도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그 때문에 일반 대중은 이 상황에 무관심하거나 이를 잘 알지 못한다.
질문: 젠코는 오키나와에서 미군 기지 반대 활동을 벌여왔다. 이 운동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젠코가 일본의 재무장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어떤 투쟁을 벌였는가? 이 투쟁에서 국제 연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보는가?
답변: 젠코는 여름마다 연례 총회를 연다. 올해는 7월 말에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1987년에는 오키나와에서 총회를 열었으며, 당시 모든 회원이 오키나와에 가서 오키나와 전투의 생존자를 만나 그들의 경험을 들었다. 이를 통해 군대가 민간인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다. 또한 미군 기지 반대 투쟁 활동가들을 만나 일본 본토에서는 알 수 없었던 오키나와의 강력한 미군 기지 반대 운동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젠코는 오키나와 주민의 투쟁에 연대해 오고 있다.
“오키나와 전투는 이제 그만(No More Battle of Okinawa)”이라는 단체는 오키나와 활동가들이 오키나와의 군사화와 요새화를 막는 일이 시급하다고 느껴 2년여 전에 결성되었다. 무장화와 요새화는 곧 전쟁 준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본과 미국은 현재 대만의 비상사태에 관해 논의하는 중이며, 오키나와에 미사일과 전쟁용 무기를 배치하고 있다. “오키나와 전투는 이제 그만”이라는 슬로건에는 이런 전쟁 위기감이 반영되어 있다. 활동가들은 오키나와의 군사화에 반대하기 위해 오키나와현 전체에 걸친 단체를 조직하고 있으며, 대만, 중국, 한국 등 주변국 사람들과의 대화로 평화를 위한 민간 외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질문: 얼마 전에 있었던 국제 평화 콘퍼런스에서 일본이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하고 이 지역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이 자명해졌다. 특히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이라는 개념을 만드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일본의 역내 역할에 관한 기시다 정부의 비전은 무엇인가?
답변: 기본적으로 기시다 총리는 아베 전 총리의 뒤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렇지만 군비 증강의 규모와 내용 면에서는 아베 전 총리보다 훨씬 심각하다. 어떤 사람은 일본이 미국에 군사, 경제, 혹은 정치적으로 여전히 의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미국의 식민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전 세계 군사 강국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본은 이미 동아프리카의 지부티에 해외 군사 기지를 건설했다. 미국,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일본은 전 세계에서 일본의 이익을 수호할 정도로 강력한 군대를 건설하고자 한다. 또한 기시다 총리는 의제에서 전쟁 배상 문제를 지워버리고 한국의 전쟁 피해자에게 잘못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점을 고려하면 기시다 총리의 행보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질문: 일본의 역내 역할에 관해 젠코가 생각하는 대안적인 비전이 있다면?
답변: 우선, 일본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와 강제노역 노동자를 포함한 전쟁 당시 피해자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 둘째로, 6자회담 같은 다자회담에 참여하여 외교와 대화로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 젠코는 이를 풀뿌리 차원에서 뒷받침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관련 국가의 사람들과 함께 국제 연대 활동을 더욱 확대하고, 역내 군사화와 신냉전 수사에 반대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젠코는 지난 2~3년 동안 국제 연대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이를 재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