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번아웃과 우울증 

글: 지오바니(콘텐츠팀, ISC)

번역: 이재오(번역팀, ISC)

성과의 주체

출처: Unsplash+

“다음 시험에는 공부를 더 잘해야 해…”

“이 책은 내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되겠지…”

“시간 낭비하지 말고 더 생산적인 걸 해야 하는데…”

한병철은 생산성과 자기 계발에 집중하는 사고방식을 “긍정력”이라고 불렀다. “긍정력”은 모든 행동을 칭찬받을 만하거나 게으른 행동으로 무자비하게 구분한다. 비생산적이라는 죄책감을 마음에 심는 게 바로 이것이다. 이 자기 감시가 정신에 파고들어 마음이 쉴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생산적이지 않으면 [꿈, 목표 등을] “현실화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긍정력”은 언제나 과도한 생산성, 그리고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과도한 긍정성으로 사람을 몰아붙인다. 한병철은 이것이 바로 우리 성과사회의 중심축이라고 본다. 이는 상, 학위 등이 부여하는 “가치”로 인간을 판단하는 사회이다. 살면서 성공할 무한한 기회가 있다면 최고가 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로막는 것은 “내적 제한과 자기 구속”뿐이다. 꿈에 그리던 그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 “평범함”에 안주하지 말고 가장 높은 과녁을 향해 쏘아야 한다는 말이다. 

자본주의, 더 정확히는 신자유주의와 이로 만들어진 성과사회는 끊임없이 직함, 상, 지위를 찾아 헤매는 나르시시스트를 만들어낸다. 나르시시스트는 긍정력을 극한으로 확대하여 모든 사람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하는 일종의 프로젝트라고 본다. 우리는 사회의 인정을 끊임없이 갈망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된다. 

“외적 강제나 타인의 억압에서 해방되었다고 믿는 프로젝트로서의 자아는 성과와 최적화의 강요라는 형식으로 작동하는 내적 강제와 자기 강제에 예속된다.” 

- 한병철, ⟪심리정치⟫ 1장 “자유의 위기”

최고를 향한 이 갈망은 서구의 극단적 개인주의와 합쳐져 더욱 거세지며 사회를 무한경쟁으로 몰아넣는다. 직함, 상, 지위를 숭상하는 우리 성과사회에서 개인은 자기 스스로 인정하는 것과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에 강박적으로 몰두한다. 한병철에 의하면 긍정력은 자신의 가치를 증진하겠다는 강박을 통해 우리를 우울증과 번아웃으로 스스로 착취하게 몰아간다. 그는 특히 “구속의 반대말이어야 할 자유 그 자체가 강제력을 만들어낸다”고 강조한다. 긍정력의 자기 감시와 자본주의의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합쳐지면 사람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스스로를 착취한다. 한 마디로, 두 눈을 부릅뜨고 생산성을 찾아 정신 속을 헤집는다면 번아웃, 수치심, 우울증이 올 수밖에 없다. 필연적인 “부족함”이나 “실패”는 사람의 “가치”와 불가능을 가능케 하겠다는 믿음을 좀먹어간다.

출처: Lee Nallalingham

성과와 성공을 향한 이 끝없는 돌진이 과도해지면 번아웃과 우울증으로 번지게 되는 것이다. 18세에서 29세 인구의 거의 절반(48%)과 30세 이상 인구의 40%가 무기력함을 호소하고, 여성(46%)은 남성(37%)보다 번아웃 수준이 더 높다. 이 성과사회에서 실패하거나 성공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실패에 대해 스스로 자책하고, 사회나 체제에 의문을 품기보다는 수치심을 느낀다.” 우리는 끊임없이 개발되어야 할 개별적인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긍정력으로 인한 자기 착취는 우리의 공격성을 가기 자신으로 돌리게 된다. 그 결과 많은 이가 실질적인 변화를 위한 사회적 프로젝트를 요구하는 대신 우울증에 빠지곤 한다.

출처: VectorStock

“실패”를 검색해 보면 사람이 성공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실패를 겪었는지 알 수 있다. 마이클 조던은 고등학교 농구팀에서 퇴출당했고, 월트 디즈니는 “상상력이 부족하고 아이디어가 없다”는 이유로 신문사에서 해고 되었으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여러 대학 입학에서 탈락했고 첫 학교에서는 퇴학당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어느 서점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수많은 자기 계발서는 꿈을 가로막는 건 자기 자신뿐이니 열심히 노력하라고 말한다.  

“미국의 자기 계발서에서 통용되는 마법의 주문은 힐링이다. 힐링이란 효율성과 성과의 이름으로 모든 기능적 약점, 모든 정신적 억압을 치료를 통해 깨끗이 제거함으로써 자아의 최적화를 이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 한병철, ⟪심리정치⟫ 6장 “힐링 혹은 킬링”

이 모든 예시는 긍정력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우리 주위 모든 곳에서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든 실패는 그저 장애물에 불과하고, 그런 것으로 의기소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공담이 생존 편향의 한 유형에 불과하다면 어떨까? 아메리칸드림의 성공 사례는 수천 개가 있지만, 이보다 더 많을 실패 사례는 들어볼 수 없다. 존 스타인벡은 “사회주의가 미국에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는 가난한 이들이 스스로를 착취당하는 노동자로 보지 않고 잠시 어려움에 빠진 백만장자로 보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사람들은 당장은 힘들어도 오랫동안 갈망해 온 부와 성공을 달성하는 게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긍정력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긍정력”의 “권력”이 우리의 모든 결정, 우선순위, 가치관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나르시시스트가 되어 긍정력을 완전히 받아들이든지, 긍정력에 순응하든지 간에 그 존재를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런 인지를 통해 스스로의 버릇과 사고방식에 대해 생각할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나는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나?

내 목표는 나 자신의 것인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것인가?

나는 스스로에게 공정한가?

미국의 유명한 체조선수 시몬 바일스는 정신 건강상의 이유로 2020년 하계 올림픽에서 기권했다. 많은 비평가가 그의 “포기”를 비판했으며, 미국 보수 진영의 찰리 커크는 그를 “이기적인 소시오패스”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커크는 “우리는 시몬 바일스 같은 나약한 세대를 키우고 있다. 정신 건강 문제가 있으면 애초에 나오지 말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동시에 바일스는 올림픽에서 성과를 내라는 엄청난 압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먼저 생각하겠다는 단순한 결정으로 폭넓은 지지를 얻기도 했다. 바일스는 여러모로 성과보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담론에 다시 불을 지핀 것이다. 

최종적인 목표는 건전한 생산성과 끊임없는 긍정력의 나르시시즘을 확실히 구분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주변에서 매일 과도하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이들에게 이런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우리는 아무런 불평 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이도록 잘 훈련이 되어있기에 번아웃과 우울증을 식별하기란 어렵다.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 그리고 당신의 세상을 위해 긍정력을 떨쳐내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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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다음 장소, 다음 직장, 다음 파트너에 있다는 종점 중독을 조심하라. 행복이 다른 어딘가 있다는 생각을 버리기 전까지 행복은 지금 여기로 찾아오지 않는다. ”

- 로버트 홀든